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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사라진 그녀

Author: 안나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0 13:34:42

쿵―, 쿵―.

강렬한 비트가 여전히 클럽 안의 공기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주연의 귀에는 음악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어지러워.”

주연은 한 손으로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평소 술을 거의 마시지 않던 그녀에게 달콤한 칵테일 몇 잔은 생각보다 강했다. 하얀 뺨은 복숭아처럼 붉게 달아올랐고, 맑던 눈동자에는 술기운이 어렸다. 시야는 조금씩 흔들렸고, 몸은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주연아, 진짜 괜찮아?”

김지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얼굴이 너무 빨개.”

주연은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응. 괜찮아. 잠깐 바람만 쐬고 오면 될 것 같아.”

“내가 같이 갈까?”

“아니야. 금방 다녀올게.”

“정말 괜찮겠어?”

“응. 여기서 기다려.”

주연은 친구들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을 울리는 음악과 번쩍이는 조명,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한꺼번에 뒤섞였다. 향수 냄새와 독한 술 냄새가 코끝을 찔렀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어깨가 부딪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낯설지만 신기하게 느껴졌던 풍경이 이제는 유리벽 너머의 장면처럼 흐릿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주연은 벽을 짚으며 간신히 화장실에 도착했다.

수도꼭지를 틀어 찬물에 손을 적신 뒤 뜨거운 뺨을 여러 번 눌렀다. 차가운 물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머릿속의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던 주연의 눈빛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붉게 상기된 얼굴 위로 아침의 기억이 겹쳐졌다.

차갑게 내려다보던 이진성의 눈빛.

그리고 잔인하게 내뱉었던 한마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주연은 세면대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오늘만큼은 잊고 싶었다.

오빠의 미움도, 집 안의 숨 막히는 공기도, 자신이 그 가족 안에서 언제나 환영받지 못한 존재라는 사실도.

하지만 아무리 웃고 술을 마셔도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바보.”

주연은 거울 속 자신에게 작게 중얼거렸다.

스물셋이 된 지금까지도 오빠가 언젠가는 달라질 거라고 기대했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찬물로 얼굴을 한 번 더 적신 뒤 화장실을 나섰다. 그러나 복도로 발을 내딛는 순간, 거센 어지러움이 다시 밀려왔다.

주연은 벽을 짚었다.

“잠깐만 바람을 쐬면 괜찮아질 거야.”

복도 끝에는 야외 테라스로 이어지는 유리문이 보였다. 문 너머로 어두운 밤하늘과 도시의 불빛이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주연은 휘청이는 몸을 간신히 추스르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철컥.

문이 열리자 시원한 밤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아….”

답답했던 숨이 조금 트이는 듯했다.

테라스 난간 아래로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불빛이 길게 이어졌고, 멀리 한강이 은빛으로 반짝였다. 낮은 조명이 테라스 가장자리를 따라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주연은 한쪽에 놓인 벤치로 다가가 주저앉듯 앉았다.

긴 머리카락이 앞으로 쏟아져 옆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난간 너머의 초승달을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이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오빠도.

집도.

생일도.

그저 잠시 혼자 있고 싶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유리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주연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확인한 순간, 얼굴이 굳었다.

검은 셔츠.

흐트러진 넥타이.

날카롭고 잘생긴 얼굴.

2층 VIP석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남자였다.

최진태.

그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여기 있었네요.”

주연은 자리에서 몸을 바로 세웠다.

“…안녕하세요.”

형식적인 인사를 남긴 뒤 시선을 피했지만, 진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 옆으로 다가왔다.

“혼자 바람 쐬러 나온 겁니까?”

“네.”

“클럽이 처음인 것 같던데.”

주연은 짧게 대답했다.

“.....”

진태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였다. 짙은 향수 냄새가 순식간에 주연의 주변을 채웠다.

주연은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옮겼다.

진태가 낮게 웃었다.

“몇 번 만난 적 있죠?”

“…연말 모임에서요.”

“기억하고 있었네요.”

“얼굴만 기억해요.”

차갑고 단정한 대답이었다.

진태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나는 이주연 씨를 꽤 오래전부터 기억했는데.”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시선은 그렇지 않았다.

주연은 그 눈빛이 불편했다. 자신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먼저 들어가 볼게요.”

그러나 몸을 일으키는 순간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주연이 잠시 휘청였다.

그때 진태가 재빨리 팔을 뻗었다.

“조심해야죠.”

그의 손이 주연의 팔을 붙잡았다.

주연은 즉시 몸을 빼며 차갑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놓아주세요.”

하지만 진태는 바로 손을 놓지 않았다.

“술도 못 마시는 사람이 너무 많이 마셨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해요.”

주연은 그의 손을 밀어냈다.

진태는 불쾌해하기는커녕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여전히 까칠하군요.”

“그런 말 들을 이유 없어요.”

주연은 다시 클럽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바로 그때, 진태가 손을 뻗어 주연의 머리카락 끝을 붙잡았다.

주연의 표정이 단숨에 굳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머릿결이 정말 좋네요.”

“손 치우세요.”

주연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러나 진태는 그녀의 경고를 장난처럼 받아들이는 듯했다. 손끝으로 머리카락을 천천히 흘려보내며 말했다.

“연말 모임에서는 그렇게 차갑게 굴더니, 오늘은 분위기가 다르네요.”

주연은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났다.

“다시 말할게요. 손 치우세요.”

“왜 그렇게 화를 내요?”

“불쾌하니까요.”

그녀는 곧장 문 쪽으로 걸어가려 했다.

하지만 술기운에 발이 꼬였고,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 순간 진태가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주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놔주세요.”

“넘어질 뻔했잖아요.”

“괜찮으니까 놔요.”

주연은 그의 팔을 떼어내려 했지만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진태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웃었다.

“혼자서는 서 있기도 힘들면서.”

“그래도 당신 도움은 필요 없어요.”

“너무 경계하지 마요.”

“이건 경계가 아니라 거절이에요.”

주연은 또렷하게 말했다.

“놔주세요. 지금 당장.”

그러나 진태의 표정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거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주연이 반항할수록 더 흥미롭다는 눈빛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주연의 가슴속에 차가운 공포가 밀려왔다.

이 남자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아니, 들으면서도 무시하고 있었다.

주연은 다시 몸을 비틀어 빠져나오려 했다.

“도와주세요!”

목소리를 높이려 했지만, 클럽 안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이 모든 소리를 삼켜버렸다.

유리문 너머에서는 사람들이 여전히 춤추고 웃고 있었다.

고작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진태가 낮게 말했다.

“소리쳐도 잘 안 들릴 겁니다.”

주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때 클럽 안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김지혜가 문득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시간은 어느새 꽤 지나 있었다.

“…이상하다.”

지혜는 주연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자리를 떠난 뒤, 너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주연이가 아직도 안 왔어?”

친구의 물음에 지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만.”

지혜는 서둘러 주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안감이 순식간에 커졌다.

“주연아….”

그 시각, 테라스 바닥에는 주연의 휴대전화가 떨어져 있었다.

화면에는 김지혜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주연은 바로 눈앞에 있는 휴대전화를 바라봤지만, 손을 뻗을 수 없었다.

그리고 최진태가 천천히 발을 움직여 휴대전화 화면을 가렸다.

“친구가 찾나 보네요.”

주연은 창백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전화 받아야 해요.”

진태는 대답 대신 유리문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주연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문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철컥.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주연의 숨이 멎었다.

진태는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느릿하게 웃었다.

“이제 방해받을 일은 없겠네요.”

한편, 지혜는 점점 커지는 불안감을 누르지 못한 채 화장실 쪽 복도로 뛰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주연이 화장실에도, 복도에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친구가 불과 몇 미터 떨어진 테라스에서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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