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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남편은 내 편이 아니었다

Author: 복순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10-28 14:01:28

영상 속 강신혁의 옆얼굴은 부드러웠다. 권나영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이서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

이서하는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심장을 누군가 쥐어짜는 듯 아팠다.

6년이었다. 그는 그녀 앞에서 늘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가 무정한 사람이었던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다정함을 전부 다른 여자에게 주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때, 며칠 전의 기억이 머릿속 깊은 곳에서 불쑥 떠올랐다.

그날 밤늦게, 강신혁은 안방 욕실에서 샤워하고 있었다. 이서하는 그에게 수건을 가져다주려고 욕실 앞까지 갔다. 그런데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물소리 사이로 억누른 듯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결혼한 지 6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안은 적이 없었다. 알고 보니 그는 차라리 혼자 해소할지언정 그녀에게는 손끝 하나 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욕실 안에서 들려오던 숨소리가 갑자기 거칠어졌다. 그가 마침내 참아 왔던 욕망을 터뜨리는 순간, 참고 참았던 그리움이 묻어나는 낮고 쉰 목소리가 문 너머로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나영아.”

그때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하며 애써 현실을 외면한 채 도망쳤다. 하지만 어젯밤 소파에서 벌어진 일, 귓가에 들려온 그 이름, 그리고 지금 눈앞의 영상까지. 모든 진실이 하나로 맞춰지자 그녀의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이서하는 거울 앞으로 걸어가 잠옷을 벗었다.

거울 속 자신의 어깨와 다리에는 흉측한 화상 흉터가 가득했다. 한때 늘씬했던 모델의 몸매는 흔적도 없이 망가져 있었고, 창백하고 부석부석했다.

이런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처량하기 짝이 없는데, 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 주길 바랐던 걸까?

이서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흉터를 가릴 수 있는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 위에는 수분이 빠져 말라 가는 반찬 몇 접시가 놓여 있었다. 어젯밤 그녀가 세 번이나 다시 데워 놓았던 바로 그 음식들이었다.

가사 도우미 김 이모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땅콩을 까먹으며 말했다.

“사장님이 오늘 안 들어오신다고 하셨잖아요. 저도 굳이 밥할 생각 없어서요. 남은 반찬이나 대충 드세요. 버리면 아깝잖아요.”

이서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전 안 먹을게요. 약속이 있어서요.”

김 이모는 이서하의 절뚝거리는 다리를 힐끗 보더니 비웃었다.

“사모님은 다리도 불편하시면서 매일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세요? 집에서 편하게 지내시면 좋잖아요. 괜히 밖에 나가 사장님 망신이나 시키지 마시고요.”

귀에 거슬리는 조롱이 공기 중에 떠돌았다. 이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강남의 오후 햇살은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했다.

길을 지나가는 젊은 여자들은 짧은 치마에 하이힐을 신고 가볍고 경쾌하게 걸었다. 이서하는 옷깃을 여미며 최대한 절뚝거리지 않고 걸으려 애썼다.

길모퉁이에서 불어온 바람이 소매를 걷어 올렸다. 팔에 남은 짙은 붉은색 흉터가 드러났다.

옆에 있던 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엄마, 저 사람 몸에 너무 무서운 게 있어!”

아이의 어머니는 겁에 질린 얼굴로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혐오스럽다는 듯 한 걸음 물러나더니 아이의 손을 잡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이서하는 그 자리에 굳어 선 채 말없이 소매를 끌어내렸다.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경멸 어린 시선 하나하나가 바늘처럼 몸을 찔렀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재촉해 식당으로 향했다.

청담동의 한적한 레스토랑.

해외 유학 입학 상담을 마친 이서하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 모퉁이를 돌던 중, 문이 반쯤 열린 프라이빗 룸에서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이서하는 그냥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한 이름이 천둥처럼 그녀의 귓가를 때렸다.

“나영아, 이번에 돌아왔으니 이제 안 떠날 거지? 어떤 사람은 남의 자리를 차지하고 너무 오래 버텼잖아. 이제 그만 강 사모님 자리를 너한테 돌려줘야지!”

이서하는 걸음을 멈췄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강신혁의 오랜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그 한가운데,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앉아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권나영이었다.

김태호가 술잔을 든 채 크게 웃었다.

“그러게! 우리 신혁이가 지난 몇 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봐라. 저렇게 흉측한 여자를 아내로 맞았으니, 흉터투성이인 몸뚱이를 매일 보면서 밥맛이나 나겠냐?”

권나영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더니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태호 오빠, 서하 언니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 언니는 그때 신혁 오빠를 구하려다가 다친 거잖아. 다리를 절게 되긴 했지만, 신혁 오빠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니까 언니를 돌봐 주는 게 당연하지.”

“돌봐 준다고? 자리는 자리대로 차지하고 블랙카드까지 쓰면서, 떼어 낼 수도 없는 짐짝이나 다름없잖아!”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진작 이혼하자고 했겠지. 대체 왜 신혁이 곁에 눌러앉아 있는 거야?”

“책임감은 무슨!”

김태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일부러 다리를 절뚝이며 몇 걸음 걸었다. 그러다 우스꽝스럽게 소파 위로 넘어졌다.

“너희는 걔가 걷는 거 못 봤지? 오리처럼 뒤뚱거리면서 걷는다니까! 나라면 저런 여자랑 밖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쪽팔려서 못 견딜 거다!”

룸 안에서 거리낌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권나영은 허리를 꺾으며 웃더니 자연스럽게 남자의 품에 기대었다.

“아, 진짜! 오빠 흉내 진짜 똑같다. 배 아파 죽겠어!”

김태호는 더욱 음탕한 눈빛으로 강신혁에게 다가가 은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신혁아. 솔직히 걔 몸을 보고도 침대에서 입을 맞출 수는 있냐? 매번 눈이라도 감고 우리 나영이라고 생각해야 흥분되는 거 아니냐?”

“하하하!”

입에 담기 힘든 음담패설이 룸 안에 울려 퍼졌다. 남자들은 음흉하고 거침없이 웃어 댔다.

이서하는 온몸이 얼어붙은 듯 차가워졌다. 손톱이 손바닥을 깊숙이 파고들었지만,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감각이 무뎌졌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권나영이 기대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강신혁은 바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

몸에 꼭 맞게 재단된 고급 맞춤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담담한 얼굴로 크리스털 잔을 굴리고 있었다.

룸 안을 가득 채운 웃음과 모욕적인 말들이 그의 아내의 존엄을 짓밟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자존심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이서하는 차갑게 굳은 그의 옆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심장이 난도질당하는 듯 아팠고,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녀는 기다렸다.

6년 동안 한 침대를 쓰며 살아온 남편, 청춘을 전부 바쳐 사랑한 남편이 이 순간만큼은 입을 열어 주기를 바랐다.

그저 차갑게 한마디만 해 주어도 좋았다.

“그만해.”

그 한마디만으로도 그녀는 최소한의 체면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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