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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비밀은 우리끼리만 3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1 16:11:39

​별다방 앞.

가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CLOSE' 팻말이 삐딱하게 걸려 있었다.

하지만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은은한 조명 빛도 새어 나오고 있었다.

​똑똑.

​"누나... 저 태수인데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제발 문 좀 열어줘요. 신고만 하지 말아 주세요.

​잠시 후, 덜컹 하고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미혜 누나가 서 있었다.

​"......"

"......"

​우리는 서로 3초간 말이 없었다.

누나는... 예뻤다.

평소의 질끈 묶은 머리가 아니라, 찰랑거리는 웨이브 머리를 풀고 있었다. 입술에는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앞치마 대신 단정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마치 데이트라도 하러 가는 사람처럼.

​"어... 왔어?"

​누나의 목소리가 묘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는 모습.

​"저기, 누나. 그 문자 말인데요."

"드, 들어와. 일단."

​누나는 나를 안으로 들이고 문을 잠갔다.

철컥.

밀실이 되었다. 공기마저 핑크빛으로 변한 것 같은 숨 막히는 밀실.

​"저기, 오해하지 마시고요. 제가 보낸 게 아니라, 제 폰이 해킹을 당해서... AI 바이러스가..."

"태수야."

​누나가 내 말을 끊었다.

그녀가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났다.

​"나 다 알아."

"...예?"

"너 어제... 많이 힘들었지?"

​누나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그 큰 로봇... 혼자 조종하느라 얼마나 뜨거웠겠어. 그 불지옥 속에서... 얼마나 외로웠겠어."

​...어?

뭔가 대화가 묘하게 엇갈리는데, 결론은 나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누나는 내 '변태 문자'를 '전쟁 영웅의 외로움과 고통 호소'로 (아주 바람직하게)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채워줄게."

​누나가 나를 의자에 앉히고 카운터로 갔다.

​"커피로라도. 달달한 걸로."

​치이익-

스팀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내 앞에 머그잔이 놓였다.

하트 모양 라떼 아트가 그려진 카라멜 마키아또. 그리고 누나가 직접 구운 수제 치즈 케이크.

​"먹어. 당 떨어졌을 거 아냐."

"......고마워요, 누나."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달았다. 혀가 녹을 만큼.

​"우리 다 알고 있어."

​누나가 맞은편에 앉아 턱을 괴며 말했다.

​"희선이도, 성배 아저씨도, 히나도. 네가 누군지 다 알아."

"아..."

"그러니까 우리 앞에선 영웅 같은 거 안 해도 돼. 무리해서 괜찮은 척 안 해도 돼. 그냥 태수로 있어. 배고프면 밥 달라고 하고, 힘들면 커피 달라고 하고."

​누나의 눈빛이 너무나 진지해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Z급 파일럿? 인류의 수호자?

그런 거창한 타이틀보다, 지금 이 카페 안의 공기가 나를 더 단단하게 지탱해주고 있었다.

​"......네. 그럴게요."

​나는 쑥스럽게 웃으며 케이크를 포크로 찍었다.

​[형님. 분위기 좋은데? 키스해! 키스해! 지금이야! 공격해!]

​스마트워치 화면에 뜬 레비아탄이 뽀뽀 이모티콘을 날리며 지랄 발광을 했다.

나는 녀석을 부숴버리는 대신, 소매로 덮어버리고 자연스럽게 반대편 손으로 커피를 마셨다.

​"저기, 누나."

"응?"

"커피 다 마시면... 같이 갈래요?"

"어디?"

"집에요. 이모가 저녁 먹으러 오라고 하셨을 텐데."

​누나의 얼굴이 다시 환하게 밝아졌다.

​"그래. 가자. 나도 배고프다."

​*

​해 질 녘.

태수와 미혜는 나란히 골목길을 걸어 올라갔다.

하숙집 대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났다. 매콤하고 짭조름한 고등어조림 냄새.

​"다녀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모!"

​거실에는 이미 한바탕 판이 벌어져 있었다.

성배 아저씨, 희선이, 히나, 하루 씨, 철수, 그리고 할머니와 최 여사님까지.

아침에 비어있던 내 숟가락 옆에, 미혜 누나의 숟가락이 하나 더 놓였다.

​"어이구, 우리 화상 왔나! 미혜 쌤도 왔네! 잘 왔다, 앉아라!"

​최 여사님이 밥공기를 건네주셨다.

아무도 나에게 "네가 Z급이냐?"라고 묻지 않았다.

아무도 "어제 무서웠지?"라고 묻지 않았다.

​그저,

"니 늦잠 잤제? 얼굴 핐네."

"오빠, 고등어조림 무 조림 맛있다. 이거 먹어."

라며 내 밥 위에 반찬을 올려줄 뿐이었다.

​'지구 방위? 세계 평화? 다 좋은데...'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을 한 숟갈 크게 떴다.

​'일단 밥부터 먹자.'

​따뜻한 밥공기의 온기가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전쟁 같은 하루가 가고, 평화로운 저녁이 왔다.

이것이 내가 지키고 싶은 나의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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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29화: 출장 준비는 요란하게 2

    그때였다.우우웅-!!!하늘이 어두워졌다.구름이 갈라지며,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그림자가 부산항 위로 드리워졌다."......와."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그것은 비행기가 아니었다.하늘을 나는 항공모함.마블 영화에서나 보던 [공중 강습 항공모함(Aerial Assault Carrier)].[UN 연합 사령부 소속: 아크 로열 (Ark Royal)]수십 개의 거대한 터빈 엔진이 굉음을 내며 바다의 물결을 일으켰다.길이만 300미터가 넘는 강철의 요새가 하늘에 떠 있었다.[미친... 형님! 나 저거 타? 저거 타는 거야?!]레비아탄이 신나서 방방 뛰었다.[대박! 비즈니스석 업그레이드라니! 역시 천조국 형님들 스케일 보소!]항공모함 측면의 거대한 해치가 열리며 유도등이 깜빡였다.활주로가 내려오진 않았다.Z급이라면 알아서 타라는 뜻이겠지."가자."나는 조종간을 당겼다.쿠구구궁!레비아탄이 항구의 대형 크레인을 발판 삼아 도약했다.강철의 거인이 중력을 거스르고 허공을 날았다.쿵-!!!육중한 착지음과 함께, 레비아탄이 아크 로열의 갑판 위에 내려앉았다.갑판 위에 도열해 있던 연합군 병사들과 파일럿들이 일제히 경례를 붙였다.압도적인 위용.이것이 인류 최강의 전력이 전장에 입장하는 방식이었다."출발하자."아크 로열의 엔진이 불을 뿜었다.거대한 요새가 기수를 돌려 태평양을 향해 나아갔다.발아래로 부산이, 그리고 우리 하숙집이 점처럼 작아졌다.'금방 갔다 올게요. 청소 좀 빡세게 하고.'*[고도: 10,000m / 태평양 상공]구름 위를 나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나는 레비아탄을 갑판에 고정해 두고(사실 덩치가 커서 격납고에 안 들어감), 콕핏 안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메뉴는 최 여사님이 싸주신 3단 찬합 도시락.1단은 흑미밥, 2단은 계란말이와 장조림, 3단은 멸치볶음과 김치.미군들이 먹는 전투식량(MRE) 쪼가리와는 비교 불가능한 퀄리티다.[하... 형님. 계란말이 냄새 데이터 미쳤는데? 냄새만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28화: 출장 준비는 요란하게 1

    월요일 아침 밥상머리.평소라면 "학교 가기 싫다", "출근하기 싫다"는 투정이 오가야 할 시간이지만, 오늘따라 하숙집 거실엔 무거운 침묵만 감돌았다.TV 뉴스 속보가 쉴 새 없이 붉은 자막을 토해내고 있었다.[속보: 태평양 심해에서 역대 최대 규모 마력 파장 감지... '제2차 대해식' 전조?][미국 하와이 방어 사령부, '데프콘 2' 발령... 민간인 대피령][유럽 연합, 지중해 봉쇄 작전 난항... 로마, 베네치아 침수 위기]지구가 아주 실시간으로 불타고 있었다.특히 10년 전 대재앙의 발원지였던 [포인트 니모] 인근 심해.그곳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한다."세상이 우째 돌아갈라 카노..."최 여사님이 혀를 차며 숟가락을 놓으셨다.식구들의 표정이 어두웠다.부산은 내 덕분에 평화롭다지만, 저 넓은 태평양이 뚫리면 그다음은 우리 차례다.'댐이 무너지면 우리 집도 잠긴다.'내 소중한 밥상을 지키려면, 밥상을 엎으려는 놈들의 본진 근처라도 가서 틀어막아야 한다.어쩐지... 며칠 전부터 군주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했다.그때였다.두두두두두-!!!골목길이 떠나가라 굉음이 들려왔다.자동차 엔진 소리가 아니다.이건... 헬기 소리다.그것도 아주 거대한 놈의."뭐꼬! 지진 났나!""이모! 창문 흔들린다!"식구들이 놀라서 뛰쳐나갔다.나도 마당으로 나갔다.하숙집 앞 공터, 즉 '통제구역 1구역' 한복판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쿠우우웅-!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착륙한 건 국군 헬기가 아니었다.검은색 도장, 미끈한 바디.미군의 [UH-60 블랙호크]."빨래 다 날아가네, 젠장."내가 인상을 찌푸리는 사이, 헬기 문이 열리고 군복을 입은 사내들이 내렸다.선글라스를 낀 백인 장군, 그리고 익숙한 얼굴의 국방부 장관이었다."하 병장! 식사 중이었나!"장관이 헬기 소음에 묻히지 않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백인 장군이 나를 보더니 뚜벅뚜벅 걸어왔다.어깨에 별이 4개.4성 장군이다.그는 선글라스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27화: 통제 1구역 2

    ​일요일 아침.​"와! 대박! 여러분 보입니까! 저게 어제 Z급이 잡은 괴수랍니다!""좋아요, 구독 누르시면 제가 저기까지 가서 이빨 만져보겠습니다!"​일요일 아침부터 하숙집 골목 입구가 시장통이 되었다.어제 도망갔던 뉴튜버들은 약과였다. '괴수 출현' 소식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아이고 머리야... 소금을 가마니로 뿌려야 되나."​최 여사님이 이마를 짚으셨다.어제 3중 방어선으로도 감당이 안 될 물량이었다. 드론이 파리 떼처럼 윙윙거리고 있었다.​"나가서 다 뽀사뿔까?"​희선이가 건틀릿을 끼려는데, 그때였다.​두두두두두-!​하늘에서 헬기 소리가 들리더니, 골목 입구 쪽에서 육중한 엔진 소리가 땅을 울렸다.​끼이익-!​거대한 [군용 트럭]과 [K-808 장갑차]가 진입로를 틀어막았다.트럭 짐칸에서 검은색 대테러복을 입은 완전 무장 병력들이 쏟아져 나왔다.[SDT (특수임무대)]와 헌병대였다.​"뭐, 뭐야? 군대?""야, 카메라 끄라는데?"​뉴튜버들이 당황해서 웅성거렸다.장갑차 위에서 확성기를 든 지휘관이 방송을 시작했다.​"알립니다. 현 시간부로 이 지역은 [국가 1급 보안 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엄숙하고 단호한 목소리.​"거주민을 제외한 모든 외부인은 즉시 해산하십시오. 불응 시 [군사기밀보호법] 및 [통합방위법]에 의거하여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아니, 그런 게 어딨어요! 국민의 알 권리가 있지!"​눈치 없는 뉴튜버 하나가 카메라를 들이밀며 저항했다.그러자 SDT 요원 두 명이 순식간에 그를 제압하고 팔을 꺾었다.​"아악! 이거 놔! 나 100만 뉴튜버야!!""군사 지역 무단침입 및 촬영. 장비 압수하고 연행해."​짤없었다.카메라는 박살 났고, 뉴튜버는 질질 끌려갔다.금융 치료? 아니, 이건 법적 치료(인실좆)였다. 징역 5년 이하의 짜릿한 맛.​"와... 쎄다."​창문 틈으로 보던 희선이가 입을 딱 벌렸다.나머지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썰물처럼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26화: 통제 1구역 1

    토요일 저녁.​"으악! 우리 집 기와 다 깨진다!"​희선이의 비명 소리에 고개를 드니, 붉은 안개 속에서 거대한 낫이 번뜩이고 있었다.안개 낀 하늘에서 내려온 불청객.크기는 대략 20미터. 사마귀와 귀신을 믹서기에 넣고 갈아 만든 듯한 흉물스러운 놈이었다.​[식별 코드: 준(準) 군주급][해수 - '미스트 스토커(Mist Stalker)']​놈이 앞발을 휘두를 때마다 안개가 찢어지며 진공 칼날이 날아들었다.저거 한 방이면 하숙집 지붕은커녕 2층 내 방까지 통째로 날아갈 판이었다.​"아, 진짜... 주말에 야근이라니."​나는 한숨을 쉬며 손목을 털었다.레비아탄은 없다. 골목이 좁아서 불렀다간 우리 집이 먼저 무너진다.즉, 이 거대한 놈을 맨몸으로 상대해야 한다는 소리다.​"야근 수당은 챙겨주겠지?"​나는 손목에 찬 [청옥 팔찌]에 마력을 불어넣었다.S급 아티팩트가 푸르게 공명하며 내 뱃속의 빙정을 제어하기 시작했다.​팟-!​나는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중력? 그딴 건 Z급한텐 장식이다.​[기술: 빙결 보법 - 스카이 워크(Sky Walk)]​내 발끝이 닿는 허공의 수분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으며 투명한 발판이 되었다.타닥, 탁!나는 허공을 계단처럼 밟고 뛰어올라 놈의 눈높이까지 순식간에 도달했다.​"키에에엑?!"​놈이 당황한 듯 낫을 휘둘렀다.하지만 내 눈에는 슬로우 모션이었다.나는 허리를 뒤로 젖혀 칼날을 피하고, 놈의 관절 마디를 정강이로 걷어찼다.​퍼억-!​"키에?!"​타격음은 묵직했으나, 놈의 몸이 안개처럼 흐물거리며 충격을 흘려버렸다.물리 내성. 게다가 안개 속에 몸을 숨기는 은신 능력까지.까다로운 놈이다. 보통 헌터라면 여기서 말라 죽었겠지.​하지만 난 아니다.​"숨바꼭질 좋아하나 본데."​나는 허공에 선 채로 오른쪽 발을 들어 올렸다.​"술래가 너무 쎄서 어쩌냐."​콰앙-!!​내가 허공을 밟자, 강력한 냉기 파동이 돔(Dome) 형태로 퍼져나갔다.​[광역 동결 (Area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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