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놈의 머리가 빙하 바닥에 처박혔다. 턱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용암 튀고, 얼음 조각 튀고, 난리도 아니었다."어때요, 아저씨. 제가 좀 더 빠르죠?"내가 스피커로 류지를 도발했다.류지가 쳇, 하고 혀를 차려는 순간.쿠르릉!처박혀 있던 파이로와, 등껍질이 깨진 옵시디언이 동시에 울부짖었다.놈들의 눈빛이 변했다. 생존 본능이 발동한 것이다.두 마리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동료애? 아니, 융합이었다.철컥- 치이익!옵시디언이 몸을 웅크려 방어 태세를 취하자, 파이로가 그 위에 올라탔다.검은 장갑차 위에 붉은 포탑이 올라간 형상.파이로의 용암이 흘러내려 옵시디언의 깨진 등껍질을 메우고, 더 단단하고 뜨거운 [용암 전차]가 되었다."키에에에엑!!"놈들이 동시에 포효했다.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오며, 내가 만든 빙하 필드가 급속도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발 디딜 곳이 사라지고 있었다."이런 젠장. 합체 로봇은 내 로망인데. 감히 괴수 따위가?"빙하가 쩍쩍 갈라지며 바다로 가라앉고 있었다.류지가 밟고 있던 얼음 조각도 녹아내렸다."발판이 사라진다. 네놈의 얼음, 이게 한계냐?"류지가 허공을 밟으며(경공술) 내 쪽으로 튀어왔다."그럴 리가요. 리필해 드립니다."쾅!레비아탄이 발을 구르자, 녹아내리던 빙하가 다시 두껍게 얼어붙었다.하지만 놈들의 열기가 워낙 강해서 오래 버티진 못할 것 같았다."합체하니까 단단하고 뜨겁군. 내 검으로 껍질은 깔 수 있지만, 그 안의 심장까지 닿으려면 틈이 부족해."류지가 냉정하게 분석했다.옵시디언의 방어력에 파이로의 열기 장막까지 더해지니, 접근해서 베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그럼 이렇게 하죠."나는 레비아탄의 오른팔을 변형시켰다.손이 사라지고, 거대한 드릴 형태의 파츠가 회전하기 시작했다."아저씨가 껍질 좀 까주세요. 길만 터주면 제가 뚫어버립니다.""호오. 나보고 조연을 하라?"류지의 입꼬리가 비틀렸다.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남중국해 빙하 필드]쿠구구구-!!내가 만든 거대한 얼음 대륙 위에서, 3km짜리 괴물 두 마리가 동시에 포효했다.그 소리에 빙하가 쩌적 갈라지고, 주변의 바닷물이 튀어 올랐다.보통 헌터라면 오줌을 지리고 도망갔을 광경이지만, 내 옆에 있는 아저씨는 달랐다."흥. 덩치만 컸지 굼뜨군."카미키 류지.낡은 도복을 입은 이 중년의 검객은, 3km짜리 괴수를 보고도 '굼뜨다'고 평가했다.SS급의 패기인가, 아니면 그냥 성격이 더러운 건가."갑니다, 아저씨! 내기 잊지 마요!""짖지 마라, 애송이. 내 칼이 더 빠르다."팟-!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류지의 모습이 사라졌다.아니, 사라진 게 아니다.내 Z급 동체 시력으로도 잔상만 겨우 보일 정도의 초고속 이동.그는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 검은 도마뱀 [옵시디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키에에엑!"옵시디언이 반응했다.놈이 꼬리를 휘둘렀다. 꼬리 끝에 달린 거대한 흑요석 철퇴가 공기를 찢으며 날아왔다.스치기만 해도 항공모함이 두 동강 날 위력.하지만 류지는 피하지 않았다.그저 검자루에 손을 올리고, 한 걸음 더 내디뎠을 뿐.발도(拔刀).챙-!맑은 금속음이 전장을 울렸다.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투욱.옵시디언의 거대한 꼬리 끝부분, 집채만 한 철퇴가 깔끔하게 잘려 얼음 바닥으로 떨어졌다.절단면이 거울처럼 매끄러웠다.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하다는 흑요석 비늘을, 마치 두부 자르듯 베어버린 것이다."와... 미쳤네."레비아탄 콕핏 안에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저게 사람인가? 기계인 나보다 더 기계 같다.마력 포격도 아니고, 그냥 쇠붙이 하나로 저런 절단력을 낸다고?"크르르...!"꼬리가 잘린 옵시디언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몸을 웅크렸다.그러더니 팽이처럼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등껍질에 돋아난 날카로운 가시들이 전기톱처럼 돌아갔다.[죽음의 팽이 (Death Spinner)]빙하를 갈아버리며 류지를 향해 돌진하
"반대죠, 아저씨.""뭐?""지킬 게 있으니까 악착같이 버티는 겁니다. 아저씨처럼 잃을 게 없으면 막살게 되거든요.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인 칼이랑, 살아서 돌아가야 하는 칼이랑... 부딪히면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류지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주변 공기가 서늘해졌다. 끓고 있던 바다의 열기가 무색할 만큼 차가운 검기(劍氣)가 뿜어져 나왔다."입만 산 놈인지, 실력도 있는지... 확인해 볼까?"그가 검을 뽑으려는 찰나, 리 웨이가 끼어들었다."그만하시오! 내 배 위에서 싸우지 마시오! 다 가라앉힐 셈이오?!"리 웨이의 호통에 류지가 쳇, 하고 혀를 차며 검에서 손을 뗐다."전장은 바다 위다. 거기서 증명해 봐라, 애송이.""그러죠. 구경이나 잘 하십쇼."나는 뒤돌아섰다.까칠하긴. 그래도 실력 하나는 확실해 보였다.저런 인간이 아군이라니 든든하긴 하네. 성격 파탄자만 아니면 딱인데.쿠구구구-!!그때, 배 전체가 요동쳤다.지진? 아니, 해저 폭발이다."온다!"리 웨이가 고함을 질렀다.정오가 되자, 바다 한가운데서 거대한 물기둥... 이 아니라 시뻘건 [용암 기둥]이 하늘로 솟구쳤다.콰아아앙-!!!!바다가 갈라지고, 끓어오르는 용암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 두 개가 튀어 올랐다.하와이의 베히모스처럼 둔해 보이는 놈들이 아니었다.날렵하고, 흉폭하며, 거대했다.하나는 전신이 시뻘건 마그마가 흐르는 가죽으로 뒤덮인 붉은 도마뱀.하나는 번들거리는 흑요석 비늘을 두른 검은 도마뱀.[심해 군주: 작열의 파이로 (Pyro)][심해 군주: 흑철의 옵시디언 (Obsidian)]크기는 각각 3km 정도. 하지만 놈들의 움직임은 덩치에 맞지 않게 빨랐다.마치 거대한 코모도왕도마뱀처럼 수면을 박차고 함대를 향해 돌진해왔다."키에에엑!!"파이로가 입을 벌리자, 거대한 화염탄이 함대를 향해 날아왔다."전원 방어막 전개! 요격해!"산둥함의 대공포가 불을 뿜었지만, 화염탄은 끄떡없었다. 이대로면
[남중국해 상공]슈우우웅-!레비아탄이 구름을 뚫고 강하했다.고도계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지만, 나는 계기판을 볼 필요도 없었다.피부로 느껴지는 열기만으로도 우리가 지옥 입구에 도착했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와... 이거 실화냐?"콕핏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가관이었다.바다 색깔이 시커멓다 못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여기저기서 거대한 수증기 기둥이 간헐천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수면 위에는 떼죽음 당한 물고기들이 하얗게 익어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여기선 매운탕이 아니라 지리가 자동으로 되네. 사우나가 따로 없다."[형님. 농담할 때가 아니야. 외부 온도 80도 돌파. 내 냉각수 끓기 직전이라고.]레비아탄이 투덜거렸다.해저 화산이 폭발해서 바다 전체를 끓이고 있다니. 군주급이란 놈들은 하나같이 스케일이 무식하다.[아군 식별 신호 감지: 중국 남해 함대]저 멀리, 하얀 증기 속에 떠 있는 거대한 함대가 보였다.중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항공모함 [산둥함]을 필두로 수십 척의 구축함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특이한 건, 함대 주변으로 반투명한 푸른 막이 쳐져 있다는 거였다."결계인가?"수백 명의 마법사들이 갑판에 나와 필사적으로 [냉각 결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거 없었으면 배들이 진작에 찜통이 돼서 병사들이 쪄 죽었겠지.쿠우웅-!레비아탄이 산둥함의 갑판에 착지했다.함교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하 준위! 기다리고 있었소!"리 웨이가 갑판으로 뛰어 나왔다.일주일 만에 보는 얼굴인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눈은 퀭하고 수염은 덥수룩한 게, 며칠 동안 잠 한숨 못 잔 폐인 꼴이었다."오랜만입니다, 리 웨이 씨. 얼굴이 반쪽이 되셨네요.""말도 마시오. 이놈의 열기 때문에 에어컨도 다 터져나가고... 지옥이 따로 없소."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나에게 물을 건넸다. 미지근했다."상황은 어떻습니까?""최악이오. 저 바다 밑에... [쌍
-[아, 하 병장님! 아니, 이제 하 준위님이시죠?]수화기 너머로 소피아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식 들었습니다. 전략 부대 '아크' 창설과 준위 임관,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연합 본부에서도 난리예요. Z급에 걸맞은 대우라고.]"아, 감사합니다. 소피아 씨 덕분에 잘 풀린 것 같네요."공적인 축하 전화였다.미혜 누나와 하루 씨도 "누구야?" 하는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당연히 축하드려야죠. 저의 구원자이신데.]소피아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그런데 준위님... 지금 혹시 혼자 계신가요?]"예? 뭐... 커피 마시고 있습니다만."-[흐음... 주변이 좀 소란스럽네요. 혹시... 그 여자분들 가게인가요?]귀신같은 여자.하와이에서 부산까지 레이더를 돌리고 있나."아, 예. 단골이라서요."-[그렇군요. 휴식을 즐기는 건 좋지만... 너무 풀어지시면 안 됩니다.]소피아의 목소리에 뼈가 있었다.-[제 축복... 잊지 않으셨죠? 다음 작전 때는 제가 꼭 옆에 있을 겁니다. 틈주지 않을 거예요.]통화 소리가 컸는지, 옆에 있던 미혜 누나와 하루 씨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카페 안의 온도가 순식간에 영하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아, 하하... 예. 걱정 마십쇼.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나는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미혜 누나가 행주를 꽉 짜며 웃었다. 눈은 안 웃었다."축하 전화인가 봐? 목소리가 아주... 꿀이 떨어지네?""아니요! 그냥 업무 연락! 국제 업무!"나는 식은땀을 닦으며 커피를 원샷했다.전쟁터보다 여기가 더 위험한 것 같았다.이놈의 인기란.*일주일은 화살처럼 지나갔다.남중국해로 떠나기 전까지 주어진 7일간의 휴가. 나는 그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알차게 낭비했다.희선이, 히나와 함께 PC방을 점령했다.Z급 동체 시력과 반응 속도로 FPS 게임을 휩쓸었더니, 상대편에서 "핵쟁이 신고합니다"라며 난리가 났다.성배 아저씨와는 목욕탕에 가서 서로 등을 밀어줬다.
내 레비아탄을 포함해 현존하는 모든 대 괴수 병기의 원천 기술을 보유한 곳이다. 본사는 서울에 있지만, 핵심 연구 시설은 부산에 있다."오... 목표가 높네. 너 이과였냐?""공대생 무시하냐? 나 수석 졸업이다."철수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니가 지구 구하는 동안, 나는 내 인생 구하려고 지난주 내내 방에 콕 박혀서 자소서만 썼다. 삼천 그룹 연구직... 내년엔 꼭 명찰 단다."짠했다. 그리고 멋있었다.나는 Z급이 되어서 떵떵거리고 있지만, 내 친구는 부모 빽 없이 맨땅에 헤딩하며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많이 묵어라. 밥심으로 하는 거지."나는 내 계란말이 두 개를 철수 밥그릇에 올려줬다."고맙다... 너밖에 없다..."철수가 울먹이며 계란말이를 씹었다.친구야, 힘내라. 내가 남중국해 가서 몹 잡을 때, 너는 토익 잡아라. 언젠가 네가 만든 부품으로 내가 싸우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는 츄리닝 차림에 슬리퍼를 질질 끌며 대문 밖으로 나갔다."충성!"하숙집 골목 입구에 설치된 검문소.완전 무장한 헌병들이 나를 보더니 각 잡고 경례를 붙였다."어, 그래. 고생한다. 밥은 먹었냐?""예! 먹었습니다! 하 준위님도 편안한 휴식 되십시오!"나는 대충 손을 들어 답례하고 골목을 빠져나왔다.하숙집이 있는 골목 안쪽은 '통제구역'이라 조용했지만, 검문소 밖으로 나오자 남포동 특유의 활기찬 소음이 들려왔다."저 총각이 그 Z급이라며?""아이고, 평소엔 그냥 동네 백수 같더만."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수군거렸다.나는 어색하게 목례를 하며 걸었다.목적지는 통제구역 경계선 바로 바깥에 위치한, 나의 안식처 [별다방]이었다.딸랑-풍경 소리와 함께 별다방 문을 열었다.가게 안은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통제구역 바로 옆이라 장사가 안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검문소 근무를 서는 비번 군인들과 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로 평소보다 더 붐볐다."어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