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밥 먹느라 잠시 잊고 있었다. 소피아의 그 대형 사고를."태수야. 해명 좀 해볼래?"미혜 누나가 웃고 있는데 눈은 안 웃었다. 하루 씨도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요구했다.이건 질투라기보다는, '외부의 침입자'에 대한 공동 대응이었다.식구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청문회가 시작됐다.나는 본능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아니, 꿇으려고 했다.근데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굳이 죄인처럼 굴 필요가 있나?'아니, 10년 전 대격변으로 전 세계 인구가 반토막 났잖아.'그때 죽은 사람이 억 단위다. 그중에서도 전투 병력이었던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죽었다. 남녀 성비가 박살이 났다는 소리다.그래서 UN이고 각국 정부고 부랴부랴 내놓은 게 [출산 장려 정책]이랑 [일부다처제 합법화] 아니던가. 한국도 작년에 통과됐고.'능력만 되면 두세 명이랑 결혼하는 게 오히려 애국인 세상인데, 내가 뭐 법을 어긴 것도 아니고.'물론 법이랑 정서는 다르다. 내 머리로는 이해해도, 이 놈의 K-유교 드래곤이 아직 승천을 못 해서 그런가, 여자 둘 셋 거느리는 게 영 뜨끔하고 찔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직 사회 분위기도 "능력 좋네"와 "짐승 같은 놈"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니까.'그래도... 찔리는 건 찔리는 거고, 변명은 해야지.'나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그... 오해입니다. 걔가 좀... 저한테 과하게 고마워하는 애라서요."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전쟁터에서 멘탈 나간 걸 제가 좀 도와줬더니, 고마움의 표시가 좀 과격하게 나온 겁니다. 진짜 아무 사이 아닙니다! 제 마음속 1순위는 언제나 여기, 하숙집 식구들입니다!""흐음..."미혜 누나가 과도로 사과 껍질을 길게 깎으며 나를 째려봤다."그럼 뽀뽀는? 피할 수 없었어? Z급 반사 신경이라며?""햄! 팩트 체크 들어간데이!"그때, 손목의 레비아탄이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당시 형님의 심박수는 급격히 상승하지 않았어. 당황하긴 했지만,
[부산 상공]"여기는 KF-21 편대장. Z급 기체의 영공 진입을 환영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귓가에 꽂히는 투박한 한국어 교신음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레비아탄의 좌우로 대한민국 공군의 최신예 전투기들이 호위 비행을 하고 있었다. 구름 아래로 익숙한 부산의 해안선이 보였다. 광안대교, 해운대,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우리 동네.[와... 형님. 저기 봐. 플래카드 깔렸는데? 완전 아이돌인데?]레비아탄이 줌인을 당겨 보여준 지상 풍경은 가관이었다.방벽 위, 건물 옥상, 심지어 도로변까지.[부산의 아들 하태수! 세계를 구하다!][Z급! 우리들의 영웅!]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부담스럽게 시리..."나는 헬멧을 고쳐 썼다.금의환향(錦衣還鄕). 남들이 보기엔 개선장군의 귀환이겠지만, 내 머릿속은 오직 하나뿐이었다.'이모님표 갈비찜. 잡채. 그리고 미역국.'하와이에서 직접 끓여 먹은 부대찌개도 나쁘진 않았지만, 역시 남이(최 여사님이) 해주는 밥이 최고다.[착륙 지점 도달: 통제구역 1구역]"내려간다."나는 조종간을 당겼다.쿠아아앙-!레비아탄이 역추진을 걸며 하숙집 앞 공터(이제는 전용 주기장이 된)로 하강했다.추진기의 엄청난 열기가 아스팔트의 물기를 순식간에 증발시키며 하얀 수증기 구름을 만들어냈다.쿵-!육중한 착지음. 땅이 울렸다.자욱한 수증기 사이로, 사령관님과 헌병대가 도열해 있는 게 보였다.치이익-콕핏 해치가 열리고, 내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하 병장! 아니, 영웅!"사령관님이 체면도 없이 달려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자네가 해낼 줄 알았네! 하와이를 구하고 태평양을 지켰어! 베히모스의 심장은 어제 수송선 편으로 무사히 연구소에 안치했네. 대통령님께서 친히 전화를...""사령관님. 그건 나중에 듣겠습니다."나는 정중하게 경례를 붙였다."지금 제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어서요.""아, 그렇지! 어서 가보게. 보고는 나중에 받아도 되네."사령관님이 흐
오후 2시. 작전 회의실.나와 S급들, 그리고 연합군 지휘부가 모여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어제 회수한 [군주의 심장]이 붉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레비아탄이 홀로그램 지도를 띄웠다. 태평양 지도 위에 7개의 붉은 점. 하와이는 하얗게 지워져 있었다."남은 기둥은 6개. 하지만... 위치가 안 보입니다."지도의 나머지 점들이 흐릿하게 점멸하고 있었다."놈들이 방어 기제를 작동시켰소."리 웨이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하와이 기둥이 파괴된 걸 감지하고, 나머지 기둥들을 고농도의 마력 폭풍 속에 숨겨버린 게요. 이 심장 하나로는 정확한 좌표를 특정할 수 없소."좌표를 모르면 갈 수가 없다.태평양 바닥을 이 잡듯이 뒤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그럼 어떡합니까? 나올 때까지 기다려요?""그 수밖에 없네."제임스 장군이 한숨을 쉬었다."연합 본부의 결정이오. 다음 기둥이 활성화되거나, 정확한 위치가 파악될 때까지 [심해 토벌대]는 잠정 해산한다."해산.그 단어가 이렇게 달콤하게 들릴 줄이야."각자 본국으로 돌아가 대기하시오. 재소집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합류하는 조건으로."'나이스! 집에 간다!'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임무 완료. 보수 빵빵. 이제 금의환향만 남았다."동의합니다. 저도 돌아가서 재정비 좀 해야겠습니다."나는 짐 챙길 생각에 벌써 엉덩이가 들썩거렸다.*복귀가 결정되자마자 나는 하숙집에 영상 통화를 걸었다.지금 한국은 저녁 시간."이모! 저 태수입니다! 저 내일 갑니다!"화면이 켜지자마자 나는 소리쳤다.식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아이고! 내 새끼! 살아서 오는기가!""햄! 진짜가! 와, 대박!"최 여사님이 국자를 흔들며 춤을 추셨고, 희선이와 히나는 하이파이브를 했다.그때, 마당으로 들어서던 미혜 누나가 화면에 잡혔다."태수야...!"누나는 나를 보더니 짐을 툭 떨어뜨렸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너 진짜... 진
밤새 쏟아지던 붉은 비가 그치고, 하와이의 아침이 밝았다.내가 전개한 [프로즌 돔] 덕분에 진주만 기지는 무사했지만, 돔 밖의 풍경은 처참했다.'머리 깨질 것 같네...'나는 레비아탄 콕핏에서 비틀거리며 내렸다.마력? 그건 차고 넘쳤다. 내 뱃속의 빙정과 레비아탄의 뇌정이 만들어내는 [무한 동력] 덕분에 에너지는 여전히 풀 충전 상태였다.문제는 내 [정신력]이었다.밤새도록 도시 하나 크기의 돔을 미세하게 컨트롤하느라 뇌가 과부하에 걸린 기분이었다. 컴퓨터로 치면 CPU가 열받아서 뻗기 직전이랄까."미스터 하! 일어났소?"제임스 장군이 퀭한 눈으로 달려왔다."당신 덕분에 살았소. 돔이 없었으면 우리 기지는 전멸했을 거요. 연합 사령부에서 당신에게 최고 등급 훈장을 수여하기로...""훈장은 됐고, 밥이나 주십쇼. 한국 가는 비행기랑."나는 손을 휘적거렸다.지금 내게 필요한 건 명예가 아니라, 뇌를 쉬게 해줄 휴식과 최 여사님이 끓여주는 김치찌개였다."일단 의무대 가서 검진부터 받으시죠.""됐습니다. 멀쩡해요. 잠만 좀 자면 됩니다."나는 비틀거리며 격납고 구석의 휴게실로 향했다.그런데 그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싫어! 오지 마! 저리 가!"소피아였다.그녀는 머리를 감싸 쥐고 구석에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주변에 의무병들이 다가가려 했지만, 그녀가 무차별적으로 방출하는 신성력 때문에 접근조차 못 하고 있었다."소피아! 진정해! 나야, 스티브!"스티브가 달려와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소피아는 그를 밀쳐냈다."안 돼... 비가... 붉은 비가 내려... 다들 죽어가... 내가 살려야 해...!"그녀의 눈동자는 초점이 없었다.[신성력 역류].그녀는 어젯밤, 돔 내부의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정신력을 한계까지 갉아먹으며 신성력을 쏟아부었다.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에만 집착하느라, 정작 독기가 자신의 내면을 파고드는 것은 막지 못한 것이다.남을 살리느라, 자신이 죽어가고 있었다
"밀어붙여!"스티브가 탱커 역할을 하며 앞으로 전진했다.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 기둥을 향해 달렸다.바닥은 썩은 살점과 뻘로 뒤덮여 있어 발이 푹푹 빠졌다.쿠르릉-!그때, 발밑이 요동쳤다.진흙탕 속에서 놈의 뿌리들이 솟구쳤다.가시가 돋친 굵은 뿌리들이 스티브와 리 웨이의 발목을 휘감았다."젠장!"스티브가 신음했다.뿌리에 돋친 가시가 S급 갑옷을 뚫고 들어왔다. 게다가 뿌리에서 분비되는 소화액이 갑옷을 부식시키고 있었다."이게 어디서 앙탈이야."나는 레비아탄을 조종해 스티브를 잡고 있는 뿌리를 낚아챘다.우드득!그대로 잡아 뜯어버렸다.녹색 수액이 튀었다."남의 다리 만지지 마라. 성추행이다.""고맙다."스티브가 식은땀을 흘리며 풀려났다.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이놈은 사냥을 하는 포식자다.[저 꽃봉오리야.]레비아탄이 놈의 약점을 스캔했다.[형님. 기둥이랑 놈은 하나로 연결돼 있어. 저 꽃봉오리 안쪽에 핵(Core)이 있어. 저걸 터뜨리면 기둥도 무너져.]문제는 저 꽃봉오리가 50미터 높이에 있다는 것.그리고 놈이 수십 개의 덩굴로 철통 방어를 하고 있다는 것."길을 열어야겠네."나는 빙검을 뽑아 들었다."저 꽃봉오리입니다. 제가 올라갈 테니, 밑에서 시선 좀 끌어주십쇼."내 말에 S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우리한테 맡겨."스티브가 방패를 두드리며 전의를 불태웠다."가자!!"스티브가 고함치며 정면으로 돌진했다.탱커의 도발.정원사의 덩굴들이 일제히 스티브를 향해 쇄도했다.쾅! 쾅! 쾅!스티브는 물러서지 않았다.방패 하나로 수십 톤의 덩굴 공격을 받아내며 버텼다. 발이 땅속에 박힐 정도로 무거운 충격이었지만, 그는 버텨냈다."하압!"그 틈을 타 리 웨이가 측면을 파고들었다.청룡언월도에 푸른 기운이 서렸다.[비기(秘技): 청룡참(靑龍斬)!]거대한 용의 형상을 한 검기가 놈의 옆구리를 휩쓸었다.두꺼운 줄기들이 숭덩숭덩 잘려 나갔다."크에에엑
다음날 아침."우욱..."레비아탄의 콕핏 안에서도 헛구역질이 나올 지경이었다.투명한 얼음 돔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더 이상 내가 알던 푸른 태평양이 아니었다.붉은 비와 독기에 오염된 바다는 마치 펄펄 끓는 토마토수프 혹은 거인의 고름처럼 걸쭉하고 탁하게 변해 있었다.수면 위로 둥둥 떠다니는 괴수들의 부패한 사체, 그리고 그 사체를 파먹으려 달려드는 기괴한 융합체들.지옥도가 따로 없었다."냄새 실화냐? 비위 상해서 못 해먹겠네."나는 코를 막으며 조종간을 잡았다.레비아탄을 중심으로 반경 50미터의 얼음 돔, 일명 '우산'을 유지한 채 우리는 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다.쿵! 콰직!"오른쪽! 온다!"스티브의 외침이 들렸다.바다 밑에서 튀어 오른 융합체 한 마리가 돔을 향해 자폭 공격을 감행했다.녀석의 몸이 얼음 벽에 부딪혀 터지면서 붉은 산성액을 흩뿌렸다.치이익-!얼음 벽에 금이 가고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막아요!"스티브가 돔 안쪽에서 방패를 들어 충격 지점을 받쳤다.동시에 리 웨이가 언월도를 휘둘렀다."핫!"그의 검기가 돔 밖으로 뻗어 나가, 달라붙으려던 또 다른 괴수들의 팔다리를 썰어버렸다.얼음 돔은 물리적인 공격은 막지만, 아군의 마력 투사체는 통과되도록 설정해 뒀다. 일방적인 딜교환이 가능한 구조."수리할게요!"소피아가 지팡이를 들어 금 간 얼음 벽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그녀의 빛이 닿자 녹아내리던 얼음이 다시 단단하게 응결되었다."팀워크 좋네."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꽉 잡아요! 과속 방지턱 넘습니다!"쿠당탕!레비아탄이 수면 위에 떠 있는 거대한 괴수의 사체를 밟고 도약했다.돔 안의 S급들이 중심을 잡느라 비틀거렸다."이봐! 운전 좀 살살 해!"스티브가 투덜거렸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멈추면 저 썩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그때였다.철썩- 철썩!바다 색깔과 똑같은 붉은색을 띤 젤리 같은 것들이 돔 표면에 달라붙기 시작했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