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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화: 제0 구역, 인과율의 심연 3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1 01:16:11

과거 자신이 목숨을 바쳐 토벌했던 뇌전의 군주가, 이제는 껍데기만 남아 나의 충실한 노예가 되어 있는 모습이 그에게는 적잖이 기이하게 보였을 것이다.

주지헌의 사념은 다시 몸을 돌려, 찬란하게 빛나는 신살창 브류나크를 쓰다듬듯 손을 뻗었다.

그의 손길이 닿자 창이 기괴한 공명음을 내며 아공간 전체를 뒤흔들었다.

"너의 대답은 첫 번째 사념을 통해 똑똑히 전해 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현실과 단절된 차원의 심연. 영혼의 대답과 육신을 이끌고 직면하는 현실의 무게는 다른 법이다."

주지헌의 목소리가 한층 무겁고 엄숙하게 가라앉았다.

그의 반투명한 눈동자가 나를 꿰뚫을 듯이 직시했다.

"이 창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다. 세상의 인과율을 베어내고 불멸을 소멸시키는 힘. 그 권능을 쥐는 순간, 너는 평범한 일상을 영원히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공간의 압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무거워지며 레비아탄의 장갑판을 짓눌렀다.

SSS급 헌터의 사념이 뿜어내는, 영웅으로서의 지독한 패기이자 마지막 시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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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174화: 제0 구역, 인과율의 심연 3

    과거 자신이 목숨을 바쳐 토벌했던 뇌전의 군주가, 이제는 껍데기만 남아 나의 충실한 노예가 되어 있는 모습이 그에게는 적잖이 기이하게 보였을 것이다.주지헌의 사념은 다시 몸을 돌려, 찬란하게 빛나는 신살창 브류나크를 쓰다듬듯 손을 뻗었다.그의 손길이 닿자 창이 기괴한 공명음을 내며 아공간 전체를 뒤흔들었다."너의 대답은 첫 번째 사념을 통해 똑똑히 전해 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현실과 단절된 차원의 심연. 영혼의 대답과 육신을 이끌고 직면하는 현실의 무게는 다른 법이다."주지헌의 목소리가 한층 무겁고 엄숙하게 가라앉았다.그의 반투명한 눈동자가 나를 꿰뚫을 듯이 직시했다."이 창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다. 세상의 인과율을 베어내고 불멸을 소멸시키는 힘. 그 권능을 쥐는 순간, 너는 평범한 일상을 영원히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공간의 압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무거워지며 레비아탄의 장갑판을 짓눌렀다.SSS급 헌터의 사념이 뿜어내는, 영웅으로서의 지독한 패기이자 마지막 시험이었다."다시 한 번 묻겠다. 하태수. 진정으로 세상의 방패가 되어, 남은 이들을 위해 네 한 목숨을 희생할 각오가...""하하, 진짜 아저씨들 뇌절은 알아줘야 한다니까."나는 주지헌의 엄숙한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콕핏 내부에 울려 퍼질 정도로 크고 건조한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잘라버렸다.나는 안전벨트를 툭 풀고, 의자 등받이에 거만하게 몸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그때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내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세상의 짐? 희생? 그딴 거창한 사명감 따위, 관심 없다고요."내 돌발적인 대답에 주지헌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영웅이랍시고 자기 목숨 내던져서 세상 구하는 거. 그거 결국 남은 사람한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지독한 짐을 떠넘긴 것뿐이라는 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나는 다시 조종간을 단단히 틀어쥐며, 레비아탄의 거대한 기계 팔을 들어 올려 전방을 향해 뻗었다."나는 존나게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아서, 세상의 짐 따위 짊어질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173화: 제0 구역, 인과율의 심연 2

    콰아아아아앙-!!!!차원의 틈새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오감이 모조리 박살 나는 듯한 끔찍한 멀미가 척추를 강타했다.빛과 소리가 거꾸로 흐르고, 위장이 뒤틀리며 피가 역류하는 듯한 차원 도약의 생리적 부작용.레비아탄의 무광 장갑판이 엄청난 차원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찌그덕거리며 비명을 질렀다.영원처럼 길게 느껴진 수십 초의 끔찍한 시공간의 멀미.그리고 마침내.파아아아앗-!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던 불쾌한 노이즈가 거짓말처럼 걷히며, 레비아탄의 거구가 차원의 벽을 뚫고 미지의 공간 속으로 튕겨 나갔다.“허억... 하아...”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파노라마 모니터를 통해 바깥을 확인했다.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는 순간, 나는 조종간을 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을 풀 수밖에 없었다.기괴하고도 오묘한 침묵의 세계.상하좌우의 개념이 완벽하게 상실된, 무중력의 잿빛 아공간(亞空間).그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허공 속에는, 지구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초현실적인 잔해들이 파편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아스팔트가 엿가락처럼 휘어진 고속도로의 파편들과, 그 위에 널브러진 수백 대의 녹슨 자동차들.심지어 수십 미터 높이로 솟구치다 그 형태 그대로 얼어붙어 정지해버린, 거대한 바다의 해일(쓰나미) 덩어리.반으로 뚝 부러진 채 붉은 녹이 슬어있는 거대한...도쿄 타워?“뭐야. 이게 다... 10년 전 대해식의 파편들이라고?”내 목소리가 콕핏 안에서 공허하게 맴돌았다.10년 전, 심연의 군주들이 융기하며 전 세계 해안가를 집어삼키고 일본 열도를 침몰시켰던 대재앙의 날.그날 차원이 찢어지며 휩쓸려 들어온 잔해들이, 시간의 흐름마저 멈춰버린 이 제0 구역의 아공간 속에 완벽하게 박제되어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하나의 거대한 무덤이자, 멸망의 시간을 가둬둔 우주의 쓰레기장.[형님. 전방 3시 방향입니다! 공간의 중심부에서 엄청난 에너지 파장이 감지되고 있습니다!]레비아탄의 다급한 알림에, 나는 기체의 자세 제어 스러스터를 미세하게 조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172화: 제0 구역, 인과율의 심연 1

    [부산 해안 방위사령부 아크 부대 지하 격납고]매캐한 용접 가스 냄새와 뜨겁게 달아오른 윤활유 냄새가 거대한 지하 격납고를 꽉 채우고 있었다.평소라면 정비병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소음을 냈을 공간이지만, 오늘 밤만큼은 숨 막히는 정적만이 맴돌았다.수십 명의 아크 부대 수뇌부와 연구원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올려다보고 있는 곳.그 시선의 끝에는, 지난 일주일 동안 신수지와 윤철수가 피를 토해가며 마개조를 감행한 20미터의 흑기사, 레비아탄이 육중한 위용을 뽐내며 서 있었다.가장 눈에 띄게 변한 것은 기체의 등 뒤, 메인 스러스터 하단부에 새롭게 증설된 거대한 보조 동력로였다.이그니스의 가슴팍에서 뜯어낸 거대한 붉은 마석, ‘염마의 심장’.그 흉악한 심연의 동력원을 삼천 그룹의 최신형 위상 반전 코어와 강제로 융합시켜 만든 미친 발명품.주변의 빛마저 빨아들일 듯 일렁이는 검붉은 에너지를 토해내고 있는 그것이 바로, 물리적인 공간을 찢어발기고 아공간으로 진입하게 해줄 ‘차원 도약 엔진(블랙홀 드라이브)’이었다.나는 한 손에 할머니가 챙겨주신 3단 스테인리스 만두 찬합을 든 채, 레비아탄의 발밑에서 퀭한 눈을 한 두 명의 공돌이를 쳐다보았다.“테스트는 다 끝난 거 맞지.”내 건조한 물음에, 윤철수가 충혈된 눈을 비비며 태블릿의 홀로그램 패널을 허공에 띄웠다.“이론상으로는 완벽해. 염마의 심장이 뿜어내는 공간 왜곡 파장을 역으로 위상 반전시켜서, 전방 100미터의 3차원 좌표를 강제로 붕괴시키는 원리지.”“이론상이라는 말이 제일 무서운 거 알지.”내가 혀를 차자, 옆에 서 있던 신수지가 기름때 묻은 작업복 소매를 걷어붙이며 코웃음을 쳤다.“걱정 마십쇼! 저랑 철수 씨가 며칠 밤을 새워서 안전장치를 삼중으로 걸어놨으니까요! 만약 실패하면 랩실 연구비 몽땅 반납하고 하숙집 화장실 청소 한 달 동안 도맡아 하겠습니다!”“청소는 당연히 해야지, 내 방까지 다 해라.”나는 가볍게 농담을 던지며 만두 찬합을 고쳐 들었다.농담으로 긴장을 풀긴 했지만,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171화: 차원 도약 엔진과 김치 만두 2

    나는 소매를 걷어붙인 채, 물기를 꽉 짠 묵은지를 식칼로 사정없이 다지기 시작했다.EX급 빙신이자 흑기사의 파일럿이 동체 시력과 근력을 100퍼센트 활용하여 선보이는 신들린 칼질.도마 위에서 타다다다닥- 하는 경쾌한 마찰음이 울려 퍼지며, 거대한 묵은지 덩어리들이 순식간에 눈꽃처럼 곱게 다져졌다.“어휴, 우리 태수 칼질 솜씨는 언제 봐도 예술이야.”내 옆에 바짝 붙어 앉은 미혜 누나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져진 속재료를 커다란 대야에 넣고 버무리기 시작했다.그녀가 팔을 움직일 때마다 은은하게 풍기는 라벤더 샴푸 향기가 매콤한 김치 냄새와 묘하게 섞여 들며 코끝을 간지럽혔다.“누나. 양념 튄다. 좀 떨어져서 해.”“왜에? 우리 장인어른한테 허락도 다 받은 사이에 이 정도도 못 붙어 있어?”미혜 누나가 며칠 전 내가 주지헌의 사념을 만나고 왔다는 사실을 짓궂게 놀려대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뺨에 묻은 하얀 밀가루를 내 콧등에 툭 하고 묻혔다.능글맞고 성숙한 연상녀의 과감한 스킨십에 평상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아, 진짜. 애들 보는데 장난치지 맙시다.”내가 콧등을 찡그리며 툴툴거리려던 찰나.“태, 태수 오빠. 여기요... 아, 하, 한 입 드셔보세요.”반대편에 앉아 있던 하루가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럽게 다가왔다.그녀의 하얀 손에는 방금 막 대형 찜기에서 쪄낸,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투명한 김치 만두 하나가 젓가락에 들려 있었다.어쩜 저렇게 정갈하고 예쁘게 빚었는지, 터질 듯이 얇은 찹쌀 만두피 속으로 새빨간 김치와 고기소가 훤히 비쳐 보였다.하루가 호호 입김을 불어 뜨거운 김을 식힌 뒤, 내 입가로 만두를 쏙 내밀었다.나는 미혜 누나의 따가운 눈흘김을 애써 무시하며, 하루가 내민 만두를 덥석 받아먹었다.“오.”입안에서 얇고 쫀득한 만두피가 터지며, 매콤하고 아삭한 묵은지의 식감과 돼지고기의 고소한 육즙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그 매콤함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으깬 두부의 담백함과 참기름의 고소한 향기까지.단언컨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170화: 차원 도약 엔진과 김치 만두 1

    [부산 해안 방위사령부 아크 부대 지하 작전 회의실]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지하 회의실.거대한 원탁 중앙에 띄워진 홀로그램 패널 위로, 시퍼런 색깔의 3D 좌표 하나가 기괴하게 점멸하고 있었다.10년 전, 인류 유일의 SSS급 헌터 주지헌이 뇌전의 군주를 토벌하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 남겨놓은 궁극의 아티팩트.존재의 인과율 자체를 썰어버린다는 전설의 무기, ‘신살창 브류나크’가 잠들어 있는 위치.제2 군단장 이그니스가 죽고 방해 전파가 걷히자마자 기적적으로 드러난 그 좌표를 보며, 아크 부대 사령관은 마른세수를 연거푸 해댔다.“이건... 불가능해. 애초에 접근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공간 아닌가.”사령관의 탄식에, 테이블 한쪽에 앉아 있던 삼천 그룹 수석 연구소장 신수지가 신경질적으로 볼펜을 딸깍거렸다.“불가능하죠.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저긴 지구의 하늘이나 바다가 아니니까요.”신수지가 홀로그램 패널의 좌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저 좌표가 가리키는 곳은, 10년 전 대해식 당시 차원이 찢어지며 생겨난 에러 공간입니다. 상하좌우의 개념이 없고, 중력도, 산소도, 물리 법칙도 통하지 않는 고립된 아공간. 이른바 ‘차원의 틈새, 제0 구역’이죠. 일반적인 비행이나 잠항으로는 백 년을 날아가도 절대 도달할 수 없는 허상의 좌표란 말입니다.”회의실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기껏 10년 만에 전설의 무기가 숨겨진 위치를 찾아냈건만,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는 상황.“그럼 어떻게 가는데.”내가 회의실 구석의 자판기에서 뽑은 미지근한 캔 커피를 따며 무심하게 물었다.“좌표가 떴으면 가는 길도 있을 거 아니야. 설마 여기까지 와서 못 간다고 손가락만 빨 건 아니지?”내 건조한 물음에, 신수지의 입가에 기괴하고도 광기 어린 미소가 번졌다.그녀의 눈동자가 흥분으로 번들거리며 내 옆에 서 있던 윤철수를 향했다.“철수 씨. 띄워요.”“예, 소장님.”철수가 태블릿을 조작하자, 회의실 중앙의 홀로그램 화면이 레비아탄의 기체 설계도로 전환되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169화: 염마의 완전한 소멸과 국밥 배식 2

    파일벙커의 쐐기 끝에 매달려 있는 전리품.승합차만 한 크기의 거대하고 순도 높은 화염 마석이, 주인을 잃었음에도 스스로 영롱한 붉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잘됐네. 마석 크기를 보니까, 며칠 동안 갈아 넣은 우리 집 공돌이들 수당은 충분히 나오겠다."나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실없이 웃었다.하지만 긴장이 풀리자마자 400퍼센트 오버클럭의 부작용이 해일처럼 밀려왔다.단전의 빙정 코어가 바닥을 드러내며 욱신거렸고, 전신의 근육과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며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삐비빅-! 지이잉-!그때, 내 손목의 스마트워치와 레비아탄의 통신 패널이 일제히 요란한 알람을 울리기 시작했다.지독하게 끼어들던 아날로그의 백색 소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깔끔하고 선명한 디지털 HD 통신망이 복구되는 소리였다.이그니스가 죽음으로써, 놈이 뿜어내던 전파 방해가 완벽하게 사라지고 도심의 모든 위성망이 정상화된 것이다.[하 준위! 하 준위! 내 목소리 들리나!]메인 암호화 통신망을 타고 아크 부대 사령관의 환희에 찬 목소리가 콕핏을 울렸다.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리며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방역 작업 끝났습니다. 벌레 새끼, 완전 연소시켜서 청소 완료했습니다."[오오! 하 준위! 자네가 해냈군! 자네가 또 이 도시를 구했어!]사령관의 호들갑스러운 외침 뒤로, 멀리 후방 방어선에서 전투의 결과를 숨죽여 지켜보던 S급 랭커들과 아크 부대원들이 환호성을 터뜨리는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선명하게 들려왔다.나는 콕핏의 조명을 어둡게 낮추며 나른하게 중얼거렸다."사령관님. 수거팀 보내서 이 마석 덩어리나 떼어가십쇼. 저는 이만 퇴근...""태수야-!!!!"내가 통신을 종료하려던 찰나, 먹통이 풀린 민간 주파수를 뚫고 들어온 아주 익숙하고 우렁찬 목소리가 내 고막을 때렸다.파노라마 모니터를 통해 바깥을 내다보자, 처참하게 무너진 해안가 폐허 한가운데로 낡고 찌그러진 하얀색 봉고차 한 대가 미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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