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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화: 명품백과 밥상머리의 평화 4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2 10:01:07

그날 저녁 내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향수와 가방을 조공으로 바치고도 식탁 구석에 꿇어앉아 대역 죄인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차원의 틈새 압력보다 미혜 누나의 국자 끄트머리가 천만 배는 더 공포스럽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끔찍한 밥상머리였다.

[자정. 남포동 하숙집 내 방]

거실의 불이 모두 꺼지고 식구들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깊은 잠에 빠져든 심야 시각.

나는 침대에 대자로 뻗어 누운 채 지친 숨을 길게 토해냈다.

억울하게 해명하느라 진을 뺀 탓에 온몸의 근육이 노곤하게 늘어져 당장이라도 코를 골며 기절할 것 같았다.

그래도 선물을 뜯어보며 기뻐하던 식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마음만은 더없이 꽉 차오르는 밤이었다.

눈을 스르르 감고 수면의 세계로 빠져들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위이이이잉-!!!! 징-!!!! 징-!!!!

협탁 위에 벗어둔 스마트워치가 미친 듯이 발광하며 요란한 진동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아크 부대의 일상적인 호출이 아니었다.

화면 전체가 핏빛 빨간색으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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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207화: 물가 폭등과 태평양 뚫어뻥 3

    나는 콕핏의 푹신한 조종석에 몸을 기댄 채, 통신 패널의 주파수 다이얼을 돌려 글로벌 해운사들의 공용 해상 통신망(VHF 채널 16번)에 강제로 접속했다."아아. 마이크 테스트."지독하게 건조하고 나른한 한국어 음성이, 자동 번역 시스템을 거쳐 태평양에 고립된 수천 척의 화물선 조타실 스피커를 동시에 때렸다."여기는 대한민국 아크 부대 소속 하태수 준위. 태평양 한가운데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선사들에게 알립니다."나는 입안에 스피어민트 껌을 하나 까서 밀어 넣고 질겅질겅 씹으며 흉악한 미소를 지었다."여기 꽉 막힌 태평양 바닷길, 지금부터 아주 시원하게 뚫어드릴 테니까. 각 화물선 소속 선사들은 당장 아크 부대 계좌로 호위 비용 성의껏 쏘세요."세계 경제의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의 절망적인 바다 위에서 울려 퍼지는, 지독하게 노골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요금 청구서."입금 확인되는 배들부터 살려서 보내드립니다. 1분 늦을 때마다 연체료 10퍼센트씩 붙일 거니까 육지 본사에 연락해서 빨리들 송금 처리 하십쇼."무전기 너머로 선장들의 당혹스러운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지만, 이내 생존을 향한 맹렬한 무전이 각국 해운사 본사로 빗발치기 시작했다.그리고 채 3분도 지나지 않아. 내 왼쪽 손목의 스마트워치에서 경쾌한 알림음이 미친 듯이 폭주하기 시작했다.띠링! 띠링! 띠링! 띠링-!!!![머스크 라인(Maersk Line): 특별 호위 수당 입금 완료.][에버그린 마린(Evergreen Marine): 우선 통항 비용 입금 완료.][하팍로이드(Hapag-Lloyd): 긴급 구조 자금 입금 완료.]글로벌 해운사들이 쏘아 보낸 천문학적인 달러와 유로화가 부대 계좌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크으. 역시 대기업들이라 결재 라인이 시원시원하네."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메인 조종간의 그립을 단단히 틀어쥐었다."입금 확인 끝났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프리미엄 수송 서비스 시작하죠."위이이이잉- 철컥!레비아탄의 우측 어깨에서부터 뻗어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206화: 물가 폭등과 태평양 뚫어뻥 2

    내 두 눈동자에 서늘하고도 흉악한, 지독하게 폭력적인 살의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세계 평화나 인류의 존망 따위를 걱정하는 거룩한 영웅의 분노 같은 게 아니었다. 가장 자본주의적이고 원초적인 소시민의 분노가 활화산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여사님."나는 텅 빈 장바구니를 들고 걷던 그녀를 불렀다."부대에서 긴급 호출이 와서 지금 당장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트 장 보는 건 오늘 하루만 꾹 참으세요. 제가 내일 아침 눈뜨기 전까지 이 미친 물가 원래대로 다 돌려놓을 테니까.""어? 태수야? 부대 호출이라니, 밥도 안 묵고 가나!"나는 최 여사님의 당황한 부름을 뒤로한 채, 부서진 마트 카트를 복도 구석에 내팽개치고 주차장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아스팔트를 짓이기며 달리는 내 머릿속에는, 태평양 앞바다를 모조리 얼려버리겠다는 극단적인 살육의 의지만이 가득 차 있었다.[오후 3시. 부산 해안 방위사령부 아크 부대, 지하 메카닉 랩실]쾅-!!!!랩실의 두꺼운 철문이 뜯겨 나갈 듯한 굉음을 내며 열려 젖혀졌다.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레비아탄의 발밑에서 기체 프레임을 점검하고 있던 신수지와 윤철수에게 다가갔다."태, 태수 씨? 오늘 휴가 아니었어요?""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터졌어?!"내 살벌한 등장에 두 공돌이가 바짝 군기가 든 채 차렷 자세를 취했다."당장 레비아탄 스탠바이 시켜요. 초전도 쿨링 시스템 100퍼센트로 꽉 채우고, 오메가 폼 관절부 동기화 한계치까지 다 풀어버려요. 브류나크 예열도 당장 시작하고."내 무자비한 출격 명령에 신수지의 두 눈이 탁구공처럼 튀어 올랐다."네?! 지, 지금 당장요? 태수 씨, 바티칸에서 차원 도약하고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어요! 지금 혼자서 그 넓은 태평양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건 자살 행위예요!"신수지가 패널을 두드리며 만류했지만, 나는 이미 개인 로커에서 피 묻은 전투용 가죽 장갑을 꺼내 손에 욱여넣고 있었다."미 해군 함대도 전멸했다는데 혼자서 뚫어보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205화: 물가 폭등과 태평양 뚫어뻥 1

    [2026년 6월 중순. 오후. 대한민국 부산, 남포동 인근 대형 마트]태평양과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글로벌 해상 물류망이 심연의 해수 군단에 의해 전면 봉쇄되었다는 심야의 경제 안보 비상경보가 울린 지 고작 나흘.그 짧은 시간은 대한민국이라는 수출입 의존 국가의 일상을 철저하고 끔찍하게 붕괴시키기에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끼기기기긱-!!!!대형 마트의 지하 식품 코너 입구부터, 쇼핑카트의 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와 사람들의 날 선 고성이 엉켜 지옥 같은 아수라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시식 코너의 냄새와 경쾌한 판촉 음악이 흘러넘쳤을 일상의 공간. 하지만 지금 이곳의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텅 빈 매대 앞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람들의 지독한 한숨과, 밀가루 한 포대라도 더 카트에 욱여넣으려는 처절한 몸싸움뿐이었다.나는 낡은 캡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빈 카트를 밀며 최 여사님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붙고 있었다."아이고, 세상에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이고. 피난길 전쟁통이 따로 없네."최 여사님은 마트 진열대를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가장 먼저 동이 난 것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오던 수입산 식자재 코너였다. '1인당 1개 구매 제한'이라는 붉은색 경고문이 무색하게, 밀가루와 식용유 진열대는 혓바닥으로 핥은 것처럼 텅텅 비어 있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찢어진 종이 포대 잔해만이 치열했던 생존 경쟁을 증명할 뿐이었다.우리는 텅 빈 가공식품 코너를 지나 농수산물과 정육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하지만 그곳의 풍경은 텅 빈 진열대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절망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태, 태수야. 내 눈이 어떻게 된 거 아이가? 저 가격표에 영이 하나 더 붙은 거 맞제?"정육 코너의 냉장 쇼케이스 앞에서 걸음을 멈춘 최 여사님의 목소리가 사시나무처럼 파르르 떨렸다.나는 카트 손잡이를 쥔 채, 쇼케이스 상단에 붙어 있는 붉은색 가격표를 무심하게 올려다보았다.호주산 냉장 소고기 백 그램당 만 이천 원. 노르웨이산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204화: 명품백과 밥상머리의 평화 4

    그날 저녁 내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향수와 가방을 조공으로 바치고도 식탁 구석에 꿇어앉아 대역 죄인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차원의 틈새 압력보다 미혜 누나의 국자 끄트머리가 천만 배는 더 공포스럽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끔찍한 밥상머리였다.[자정. 남포동 하숙집 내 방]거실의 불이 모두 꺼지고 식구들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깊은 잠에 빠져든 심야 시각.나는 침대에 대자로 뻗어 누운 채 지친 숨을 길게 토해냈다.억울하게 해명하느라 진을 뺀 탓에 온몸의 근육이 노곤하게 늘어져 당장이라도 코를 골며 기절할 것 같았다.그래도 선물을 뜯어보며 기뻐하던 식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마음만은 더없이 꽉 차오르는 밤이었다.눈을 스르르 감고 수면의 세계로 빠져들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위이이이잉-!!!! 징-!!!! 징-!!!!협탁 위에 벗어둔 스마트워치가 미친 듯이 발광하며 요란한 진동을 토해내기 시작했다.아크 부대의 일상적인 호출이 아니었다.화면 전체가 핏빛 빨간색으로 점멸하며, 글로벌 헌터 연합에서 발송한 최고 등급의 경제 안보 비상경보가 내 망막을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다."아, 진짜 사람 잠 좀 자자. 하루에 비상 알람이 도대체 몇 개가 터지는 거야."나는 신경질적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스마트워치의 홀로그램 패널을 허공에 띄웠다.화면에 나타난 것은 심연의 게이트가 열려 몬스터가 특정 도심을 습격했다는 흔한 텍스트가 아니었다.전 세계의 지도가 펼쳐지고, 붉은색의 치명적인 경고 마크들이 바다를 중심으로 끝도 없이 수놓아져 있는 소름 끼치는 홀로그램이었다.[긴급 속보: 태평양 및 대서양 주요 해상 무역 항로, 심연의 대규모 해수(海獸) 군단에 의해 전면 봉쇄.][전 세계 물류망 마비. 화물선 및 초대형 유조선 수백 척 동시다발적 침몰. 글로벌 해상 운송 기능 백 퍼센트 정지.]내 졸음기가 가득했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매섭게 수축되었다.스크롤을 내려 첨부된 위성 사진을 확인하자, 거대한 컨테이너선들이 촉수와 가시를 가진 기괴한 바다 괴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203화: 명품백과 밥상머리의 평화 3

    갓 지은 하얀 쌀밥과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산더미처럼 쌓인 소불고기와 노릇하게 구워진 큼직한 고등어구이.나는 숟가락을 들고 허겁지겁 쌀밥에 고기를 얹어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짭조름하고 달착지근한 불고기 양념이 혀끝을 강타하며 뼛속까지 차오르던 피로를 단숨에 씻어내렸다.식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떠들썩하게 저녁 식사를 즐기던 중.밥상 한쪽 끄트머리에 켜져 있던 벽걸이 티비에서 8시 메인 뉴스의 오프닝 멘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아침, 유럽 대륙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이탈리아 바티칸 시국의 대규모 심연 게이트 사태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하태수 준위에 의해 완벽하게 진압되었다는 감격스러운 소식입니다.]티비 화면 위로, 내가 레비아탄에 탑승한 채 하늘을 가르며 그림자 엠페러 만타의 대가리를 부숴버리는 압도적인 전투 영상이 고화질로 송출되고 있었다."우와! 태수 오빠 티비에 나온다! 고마 쌔리 억수로 멋있다!"히나가 고등어 살을 씹으며 티비 화면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최 여사님과 성배 아저씨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했고, 미혜 누나와 하루 역시 내 밥그릇에 불고기를 더 얹어주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여기까지는 분위기가 최고조로 완벽했다.나도 어깨를 으쓱하며 된장찌개 국물을 여유롭게 떠먹으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특히 오늘 전투 직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포착된 감동적인 장면이 전 세계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유럽의 수호 성녀로 불리는 소피아 아르젠토가, 구원자인 하태수 준위의 품에 달려가 감격적인 포옹을 나누는 장면이 각국 취재진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푸웁-!!!!나는 입에 머금고 있던 된장찌개 국물을 뿜을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내며 컥컥 기침을 터뜨렸다.티비 화면 가득, 고화질 줌렌즈로 뚜렷하게 당겨 찍은 그 문제의 스캔들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박제되어 송출되고 있었다.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엉거주춤 서 있는 나와.내 가슴팍에 얼굴을 깊숙이 파묻고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202화: 명품백과 밥상머리의 평화 2

    "다치긴요. 그냥 덩치 큰 가오리 새끼들 몇 마리 쫓아내고 온 거예요. 출장 갔는데 빈손으로 올 수 없어서 이것저것 좀 주워 왔습니다."나는 마루에 내려놓았던 가장 크고 고급스러운 검은색 쇼핑백을 들어 최 여사님의 품에 안겨드렸다."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꿰맨 악어가죽 백입니다. 시장 가실 때 파 대파 꽂고 다니시면 아주 폼 나실 거예요."최 여사님은 조심스럽게 포장 박스를 열고, 영롱한 빛깔을 뿜어내는 짙은 갈색의 악어가죽 가방을 꺼내 들었다. 그녀의 두 눈이 화들짝 커지더니, 이내 가방을 품에 소중하게 꽉 끌어안고는 거실 한가운데서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아이고메! 이게 대체 얼마짜리고! 우리 태수가 최고다! 동네 아지매들 계모임 나갈 때 이거 딱 들고 나가면 다들 기절초풍을 할 기다! 고맙데이, 내 새끼!"할머니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나는 헛기침을 하며 옆에 서 있던 성배 아저씨에게도 묵직한 쇼핑백을 건넸다."아저씨, 이거 받아요. 유명한 오토매틱 명품 시계랑 최고급 와인 두 병입니다. 매일 세탁소 다리미질하시느라 고생하시는데, 쉬는 날엔 폼 나게 이거 차고 다니세요.""어이구, 태수야! 내가 이런 걸 다 받아도 되냐! 묵직한 게 아주 손목에 쫙 감기네! 진짜 고맙다!"성배 아저씨가 눈시울을 붉히며 시계를 손목에 차보았다. 하숙집의 든든한 어른들 입이 귀에 걸리는 것을 보니 내 기분도 덩달아 둥실둥실 떠올랐다.나는 곧바로 다음 타깃들을 향해 쇼핑백을 풀기 시작했다."히나랑 희선이는 이거. 로마 명품 거리 장남감 가게 사장 협박해서 박스째로 털어 온 한정판 풀 메탈 기갑 피규어랑 최신형 게임기다.""우와아아아앗! 태수 오빠 최고! 진짜로 최고다!"두 꼬맹이는 자기 몸통만 한 피규어 박스를 껴안고 방방 뛰며 거실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가장 세련되게 포장된 하얀색 쇼핑백 두 개를 미혜 누나와 하루에게 각각 내밀었다."이건 누나랑 하루 거예요. 로마에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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