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심해의 괴물 새끼들은 뇌가 없다.그저 피 냄새를 쫓아 본능적으로 밀려드는 짐승일 뿐이다.그런데 그 짐승 새끼들이 부산의 외곽 방어막을 물리적으로 부수지 않았다.동력실의 마석 원자로 제어 코드가 아주 깔끔하고 정확하게 '오프(Off)' 처리되었다.방벽이 내려가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것처럼 붉은 안개가 도심의 전파를 차단했고, 기형 해수들이 썰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괴물들은 메인 서버를 해킹하지 못한다.괴물들은 방어막 스위치를 곱게 끄고 들어올 만큼 예의 바르지 않다.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문을 안에서 열어준 새끼들이 있다.'가장 경계가 닿아있는 곳.낙동강 하구 방어선의 제어 코드를 공유하고 있던, 해운대 길드의 양복쟁이 새끼들.추론이 거기까지 미치자, 내 머릿속에서 차갑게 식어 있던 이성의 퓨즈 하나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태수야! 우짜노! 저 뻘건 거, 우리 마당까지 들어오는데!"여사님의 다급한 비명 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붉은 안개의 끄머리가 어느새 하숙집의 녹슨 대문을 넘어, 빗물이 고인 마당의 시멘트 바닥을 부식시키며 거실 코앞까지 들이닥치고 있었다.안개 너머로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린 흉측한 짐승들의 윤곽이 어른거렸다."전부 거실 한가운데로 모이십쇼. 창문 꽉 닫고."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현관문을 나서며 마당의 처마 밑으로 걸음을 옮겼다."태, 태수야! 너 혼자 어딜 가려고!""금방 청소하고 오겠습니다."나는 내 왼쪽 손목을 감싸고 있던, 낡고 칙칙한 가죽 스트랩을 거칠게 풀어 던졌다.그 안에 숨겨져 있던 은은하고도 투명한 푸른빛.남포동 암시장에서 주워 온 S급 아티팩트, 마력 제어용 '청옥 팔찌'가 초여름의 밤비 속에서 서늘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내 단전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EX급 빙정의 코어를 서서히 열어젖혔다.레비아탄의 무한 동력이 없는 맨몸 상태.비축해 둔 배터리 에너지를 깎아 먹어야 하는 제약이 따르지만, 내 식
투둑, 투두둑.창문을 때리는 굵은 빗소리에 얕은 잠에서 깼다.초여름을 재촉하는 거친 장맛비가 며칠째 부산의 밤거리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나는 침대에서 몸을 반쯤 일으킨 채, 습관적으로 손목의 스마트워치를 확인했다.새벽 1시 15분.아직 이모님이 새벽 시장에 나가기까지는 두어 시간 남짓 여유가 있는 시각.다시 이불을 끌어당겨 누우려던 찰나였다.위이이잉-.웅... 툭.내 신경을 거스르는 아주 미세한 위화감이 귓바퀴를 파고들었다.부산 시민들이라면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느끼는 백그라운드 소음.남포동 앞바다에서부터 영도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수십 미터 높이의 해안 방파제 실드 발생기에서 들려오던 거대한 저주파 구동음.그 육중한 엔진의 진동 소리가, 마치 누군가 전원 플러그를 냅다 뽑아버린 것처럼 일순간 뚝 끊어진 것이다.정전인가.아니, 그럴 리가 없다.해안 방위선의 동력실은 삼천 그룹이 설계한 독립된 마석 원자로 세 기가 병렬로 연결되어 있다.설령 진도 8의 지진이 일어나 도심의 전기가 다 끊어져도, 그 방어막의 동력만큼은 절대 꺼지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애써 무시하려던 불길한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서늘하게 기어올랐다.애에에에엥-!!!!우우우우웅-!!!!예감은 틀리지 않았다.구동음이 멎은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부산 도심 전체를 찢어발길 듯한 1급 비상 공습 사이렌이 칠흑 같은 밤하늘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나는 반사적으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낡은 군용 외투를 걸쳐 입었다."태, 태수야! 퍼뜩 온나! 짐 챙기라!"거실로 뛰쳐나가자, 이미 하숙집 안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최 여사님이 사색이 된 얼굴로 비상 생존 배낭에 식수와 통조림을 쓸어 담고 있었다.하루와 미혜 누나 역시 잠옷 바람으로 뛰어나와 덜덜 떨며 겉옷을 챙겨 입었고, 성배 아저씨는 1층 세탁소에서 무쇠 다리미를 쥔 채 뛰어 올라왔다."아지매요! 방벽이 터졌답니더! 밖에서 난리가 났어예!"성배 아저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방의 구석.검게 타들어 가는 융단 위로, 시뻘건 불씨를 품은 기괴한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버러지 같은 필멸자들의 요란한 투정 소리가, 심연의 밑바닥까지 진동하는구나.]고막을 거치지 않고 뇌수를 직접 태워버릴 듯한, 지독하게 오만하고 끔찍한 사념의 목소리.아지랑이가 뭉쳐지며 만들어진 것은 거대한 불기둥의 형상이었다.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이목구비 대신 맹렬하게 타오르는 흑적색의 화염만이 일렁이는 기괴한 악마의 그림자.판탈라사 제국 제2 군단장, 염마(炎魔).그의 아주 작은 파편이 대리인으로서 이 견고한 빌딩의 심장부로 스며들어 온 것이다."헉, 허억... 심, 심해의 괴물이 어떻게 서울 한복판에..."최무진이 호흡 곤란을 일으키며 뒷걸음질 치다 소파 위로 나자빠졌다.윤대호 역시 다리가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었다.S급 헌터 수십 명을 부리며 영웅 행세를 하던 길드의 수장들이었지만, 진짜 재앙의 파편 앞에서는 그저 도축장에 끌려온 가축처럼 비참하게 떨 뿐이었다.[떨지 마라. 너희 같은 구더기들의 고기에는 흥미가 없으니.]불꽃의 형상이 일렁이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그 발걸음이 닿은 바닥의 대리석이 순식간에 시뻘건 용암처럼 녹아내렸다.[내 목적은 단 하나. 남쪽 바다에서 우리의 수확을 방해하는 그 오만한 쇳덩어리. 그 애송이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것.]그림자가 내뱉은 쇳덩어리라는 단어.최무진과 윤대호의 떨리던 동공에 일순간 이채가 돌았다.공포에 짓눌려 있던 그들의 탐욕스러운 뇌 회로가, 본능적으로 지금 상황의 이해득실을 계산하기 시작했다."그, 그 미친 흑기사를... 죽여버리겠다고?"최무진이 침을 꿀꺽 삼키며 더듬거렸다.[그렇다. 하지만 그 애송이는 군벌들의 두꺼운 방벽 뒤에 웅크리고 있지. 내가 직접 남쪽 바다를 휩쓸기 위해서는, 그 거추장스러운 인간들의 성벽을 먼저 허물어야 한다.]화염의 그림자가 두 양복쟁이를 향해 시
[금요일 새벽. 서울 화이트 타이거 길드 본사 최상층 밀실]쨍그랑-!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크리스탈 글라스가 두꺼운 마호가니 벽면에 처박혀 산산조각 났다.호박색 위스키가 핏자국처럼 벽을 타고 흘러내리며, 값비싼 페르시안 융단을 축축하게 적셨다."개새끼가 감히 나를! 우리를 상대로 그딴 미친 깡패 짓을 벌여?!"화이트 타이거의 실질적 지배자, 최무진 이사가 핏발 선 눈으로 씩씩거렸다.명품 슈트의 넥타이는 진작에 쥐어뜯겨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깔끔하게 빗어 넘겼던 포마드 머리칼은 땀에 젖어 흉하게 헝클어져 있었다.밀실의 가죽 소파 맞은편에는 또 다른 중년 사내가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낙동강 방어선을 독점하고 있는 영남권 최대 군벌, 해운대 길드의 윤대호 회장이었다.대한민국의 한강과 낙동강, 내륙의 가장 거대한 꿀단지를 빨아먹으며 국가 예산과 여론을 쥐락펴락하던 두 거두.하지만 지금 이 최고층 밀실에 감도는 공기는 참담한 패배감과 숨 막히는 분노뿐이었다."진정하십시오, 최 이사."윤대호가 테이블 위의 시가에 불을 붙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빈 깡통이 요란한 법입니다. 우연히 고대 유물 하나 주워서 무력이 조금 비대해졌을 뿐, 근본 없는 부산 뒷골목 양아치입니다.""그 근본 없는 양아치 새끼한테 한강 제방이 뚫렸을 때 무릎을 꿇고 수백억을 뜯긴 게 바로 접니다!"최무진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악을 썼다.단순히 돈을 뜯긴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그날 이후, 언론과 여론의 흐름이 완전히 뒤집혀버렸다.시민들의 찬사와 천문학적인 방위비 예산은 모조리 부산의 해안 방위사령부, 그 미친 흑기사가 소속된 '아크 부대'로 쏠려 들어가고 있었다.안전한 내륙 강줄기에서 잔챙이들이나 주워 먹으며 영웅 행세를 하던 대형 길드들의 입지는 하루가 다르게 쪼그라드는 중이었다."삼천 그룹의 늙은 너구리 회장이 그놈의 뒤를 봐주고 있습니다."최무진이 새 잔에 위스키를 거칠게 따라 부으며 이를 갈았다."거기다
나는 시원한 보리차를 한 모금 들이켜며 마당 하늘을 올려다보았다.별이 총총하게 박힌 맑은 초여름의 밤하늘.심연의 괴물들이 설치든 말든, 이 좁고 허름한 하숙집 마당의 밥상머리만큼은 그 어떤 재앙도 침범할 수 없는 완벽한 나의 성역이었다.고기 굽는 냄새와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웃음소리.그 따뜻한 소음에 기대어, 나는 묵묵히 젓가락을 움직였다.시간이 훌쩍 지났다.거실 벽시계의 바늘이 새벽 2시를 막 넘어가고 있었다.시끌벅적했던 잔치는 진작에 끝이 났고, 마당 평상은 여사님의 손길로 깨끗하게 치워졌다.손님방을 차지한 외국인 랭커들의 요란한 코골이 소리가 얇은 목조 벽을 타고 희미하게 들려왔다.나는 내 방 침대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육체의 피로는 극에 달해 있었지만, 심해에서 극한까지 쥐어짰던 플렉소 코어의 여운이 아직 핏속을 맴돌며 수면을 방해하고 있었다.그때였다.스으윽-.오래된 복도의 나무 바닥이 아주 미세하게 눌리는 소리.일반인의 귀라면 바깥의 풀벌레 소리에 묻혀 절대 알아채지 못했을, 지극히 은밀하고 기척 없는 발걸음이었다.나는 감았던 눈을 조용히 반쯤 떴다.방문 밖 복도에 누군가 서 있었다.달칵, 찰칵.내 방 문고리 안쪽에서 기계적인 마찰음이 들렸다.열쇠가 없는데도 쇳조각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자물쇠의 핀이 정밀하게 돌아가는 소리.기운을 읽어보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순백색의 신성한 마력이 자물쇠 구멍 안으로 스멀스멀 스며들어, 아주 섬세하게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있는 것이다.신의 권능과 기적을 행한다는 바티칸의 숭고한 힘을, 남의 집 방문을 따는 야밤의 빈집털이에 쓰고 있는 미친 인간.끼이익-.잠금이 풀리고 낡은 방문이 아주 천천히, 손가락 두 마디쯤 열렸다.열린 문틈 사이로 짙고 유혹적인 서양 백합 향수 냄새가 훅 끼쳐 들어왔다.소피아였다.낮에 입고 있던 두껍고 경건한 수녀복은 온데간데없고, 달빛에 실루엣이 훤히 비치는 아주 얇고 하늘하늘한 실크 슬립 차림.자칭
[2026년 5월 하순. 목요일 저녁. 부산 남포동 하숙집]아크 부대 지하 격납고에 기체를 세워두고 남포동으로 돌아온 시간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초저녁 무렵이었다.익숙하고 비좁은 골목길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코끝을 강렬하게 찌르는 냄새가 있었다.된장과 통후추, 그리고 굵은 대파를 아낌없이 썰어 넣고 무쇠솥에서 푹 끓여내는 진한 돼지 육수의 향기.그 사이로 알싸한 마늘과 까나리액젓으로 갓 버무린 매콤한 고춧가루의 냄새가 폭력적으로 섞여 들고 있었다."아이고! 우리 식구들 인자 오나!"낡은 철제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자, 최 여사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우리를 반겼다.마당 한가운데 펼쳐진 널찍한 평상 위에는 이미 거대한 잔칫상이 차려져 있었다.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큼직한 도자기 접시 위로, 껍질까지 쫀득하게 삶아진 두툼한 돼지고기 수육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그 옆으로는 숨이 채 죽지도 않은 싱싱한 배추 겉절이가 새빨간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짭짤한 새우젓과 쌈장이 가득 담긴 종지들이 빈틈없이 놓여 있었다.세상을 멸망시킬 뻔했던 심연의 군주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지독하게 평화롭고 구수한 일상의 풍경."아지매! 냄새가 쥑이네! 내 오늘 고기 썰기 전에 막걸리부터 한 사발 주이소!"1층 세탁소의 성배 아저씨가 참지 못하고 평상 구석에 주저앉으며 찌그러진 양은 사발을 내밀었다."퍼뜩 수돗가 가서 손들 씻고 와서 앉으라! 고기는 뜨실 때 무야 제맛이데이!"여사님이 커다란 식칼로 도마 위에 남은 수육 덩어리를 숭텅숭텅 썰어내며 호통을 쳤다.나와 식구들, 그리고 내 등 뒤를 어색하게 졸졸 따라온 이방인들까지 모두 마당 수돗가에 일렬로 서서 비누로 대충 손을 씻었다.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와 삐걱거리는 간이 의자가 총동원되어 평상 주위로 둥그렇게 원을 만들었다."오 마이 갓."내 옆자리에 엉거주춤하게 주저앉은 스티브가, 산처럼 쌓인 수육과 겉절이를 번갈아 보며 입을 떡 벌렸다."이 냄새는 대체... 고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