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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줄짜리 왕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8-13 07:05:46

쿵.

진동이 발바닥을 때렸다.

공략대의 웃음이 사라졌다.

방패를 든 탱커가 가장 먼저 자세를 낮췄다. 정찰수는 화살을 시위에 걸었고, 치유사는 주문을 외울 준비를 했다.

파티장이 마력 측정기를 벽에 갖다 댔다.

E.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낙석입니다.”

“낙석이 걸어와요?”

시우의 말에 창잡이가 혀를 찼다.

“F급이 괜히 분위기 잡네.”

“진동 간격이 일정합니다.”

“그래서? 네 고용 스킬로 땅이라도 고용하게?”

몇 사람이 웃었다.

시우는 더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의 말에는 무게가 없었다. F급, 비전투계, 고용 사기꾼. 이 세 단어면 어떤 경고도 겁먹은 사람의 헛소리가 됐다.

파티장이 손을 들었다.

“진형 유지하고 전진. 이상 개체 확인 시 즉시 후퇴합니다.”

그나마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공략대는 속도를 낮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시우는 자꾸 뒤를 돌아봤다. 푸른 이끼가 밝히는 통로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누군가 등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형씨.”

옆에서 걷던 박동석이 작게 불렀다.

“진짜 뭐 느껴져요?”

“모르겠습니다.”

“나도 아까부터 소름 돋아서.”

동석이 팔뚝을 문질렀다.

“돈이고 뭐고 그냥 나갈까요?”

시우도 같은 생각을 했다.

육십오만 원은 큰돈이었다.

하지만 목숨보다 크지는 않았다.

“다음 갈림길까지 보고 이상하면 같이 말하죠.”

“그래요.”

두 사람은 약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앞쪽에서 고블린 울음소리가 터졌다.

“적!”

열두 마리였다.

첫 무리의 두 배.

탱커의 방패에 돌도끼가 연달아 부딪쳤다. 공격수들이 양옆으로 벌어지고 화살이 머리 위를 날았다.

“보조 뒤로!”

시우는 동석과 함께 벽에 붙었다.

전투는 거칠었지만 일방적이었다. 고블린은 E급 몬스터다. D급 헌터가 섞인 공략대를 이길 수는 없었다.

마지막 고블린이 쓰러졌을 때 창잡이가 피 묻은 창을 털었다.

“봤냐, 인력사무소? 이게 진짜 스킬이다.”

창끝에서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시우는 대꾸하지 않고 시체 옆에 앉았다. 해체용 칼을 가슴에 찔러 넣었다.

뼈 사이에서 작은 마석이 나왔다.

손톱만 한 회색 결정.

협회 매입가 이만 삼천 원.

시우의 스킬 이름보다 저 돌멩이가 쓸모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시우가 손에 든 마석이 미세하게 떨렸다.

쿵.

이번 진동은 벽이 아니라 마석 안에서 울렸다.

그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놓쳤다.

바닥에 떨어진 마석 표면에 검은 실금이 퍼졌다. 곧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왜 그래요?”

동석이 물었다.

시우는 가루를 손가락으로 찍었다.

차가웠다.

“마석이 죽었습니다.”

파티장이 다가와 가루를 확인했다. 얼굴이 굳었다.

“전원 해체 중지.”

“무슨 일입니까?”

“마력 역류 징후다.”

이번에는 누구도 시우를 비웃지 않았다.

마력 역류.

게이트 내부의 생태가 갑자기 바뀔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상위 몬스터가 영역을 만들거나, 균열 자체가 붕괴하기 직전에 발생한다.

파티장이 통신기를 들었다.

“마포 7번 공략대. 내부 이상 징후 확인. 철수를 요청한다.”

잡음만 돌아왔다.

“통신 불가. 전원 입구로 복귀한다.”

명령이 떨어지자 공략대가 방향을 돌렸다.

그때 동굴 깊은 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고블린의 울음이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마리가 동시에 찢겨 죽는 소리가 통로를 타고 밀려왔다.

정찰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 안에 뭐가 있습니다.”

“보지 마. 뛰어!”

공략대가 달리기 시작했다.

시우도 배낭을 움켜쥐고 뛰었다. 흉갑이 갈비뼈를 때리고, 해체 도구가 안에서 부딪쳤다.

숨이 가빠졌다.

F급의 몸은 전투 헌터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앞사람과의 거리가 조금씩 벌어졌다.

동석이 시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조금만!”

“먼저 가요.”

“같이 나가기로 했잖아!”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을 찔렀다.

같이.

시우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다.

두 사람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입구의 검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앞에 있던 탱커가 게이트를 통과했다. 정찰수와 치유사가 뒤를 따랐다.

시우는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다.

쿵!

천장에서 바위가 쏟아졌다.

통로 가운데가 무너졌다. 시우와 동석, 후미를 지키던 창잡이가 안쪽에 고립됐다.

“제기랄!”

창잡이가 창날에 불꽃을 모아 바위를 내리쳤다.

콰앙!

암석 일부가 부서졌지만 구멍은 생기지 않았다.

반대편에서 파티장이 외쳤다.

“뒤로 빠져! 다른 통로를 찾아!”

또 한 번 진동이 울렸다.

이번에는 바로 등 뒤였다.

세 사람이 천천히 돌아봤다.

푸른 어둠 속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움직였다.

천장에 닿을 만큼 거대한 몸.

길게 굽은 뿔.

붉은 눈 두 개.

창잡이의 입이 벌어졌다.

“오우거……?”

E급 게이트에 나올 몬스터가 아니었다.

더구나 평범한 오우거도 아니었다. 피부 곳곳에 검은 결정이 갑옷처럼 돋아 있었고, 한 손에는 고블린 우두머리의 몸통을 들고 있었다.

괴물이 그것을 입에 넣었다.

뼈 씹는 소리가 났다.

창잡이가 비명을 지르며 불꽃을 쏘았다.

“죽어!”

화염이 오우거의 가슴을 덮었다.

평범한 E급 몬스터라면 흔적도 없이 탔을 공격이었다.

괴물은 연기를 뚫고 걸어 나왔다.

상처 하나 없었다.

오히려 화염을 맞은 검은 결정이 붉게 빛났다.

“도, 도망쳐!”

창잡이가 가장 먼저 등을 돌렸다.

자신이 비웃던 F급 두 명을 남겨 둔 채 옆 통로로 뛰었다.

오우거의 팔이 움직였다.

시우는 무엇이 날아갔는지 보지도 못했다.

퍽.

창잡이의 몸이 벽에 부딪쳤다.

그는 한 번 꿈틀거린 뒤 움직이지 않았다.

동석이 주저앉았다.

“엄마.”

오우거가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우는 단검을 꺼냈다.

손이 심하게 떨렸다.

칼날 길이는 괴물 손톱보다 짧았다. 스킬 창을 열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검투사를 고용할 수 있습니다.

승리 시 보상이 지급됩니다.

고용할 사람도, 승리할 가능성도 없었다.

“동석 씨.”

“예?”

“제가 소리 지르면 뛰어요.”

“뭐 하려고요?”

“둘 다 있으면 둘 다 죽습니다.”

시우는 괴물을 보며 천천히 옆으로 움직였다.

동석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안 돼요. 같이 나간다고 했잖아요.”

“만난 지 두 시간밖에 안 됐습니다.”

“그래도!”

오우거가 포효했다.

공기만으로 몸이 뒤로 밀렸다.

시우의 무릎이 저절로 꺾였다.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존재를 마주했을 때 걸리는 등급 억제였다.

숨을 쉬는 법조차 잊었다.

이것이 죽음이구나.

형도 마지막에 이런 것을 봤을까.

시우는 바닥을 짚고 억지로 일어났다.

“지금!”

단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괴물의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오우거의 주먹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 순간 검은 섬광이 지나갔다.

콰득!

괴물의 손목에 가느다란 상처가 벌어졌다.

공격은 오우거를 멈추지 못했지만 방향을 틀었다. 주먹이 시우의 어깨를 스치고 바닥에 꽂혔다.

충격파가 몸을 날려 버렸다.

시우는 몇 바퀴를 구른 뒤 벽에 부딪쳤다. 숨이 통째로 빠져나갔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누군가 서 있었다.

검은 코트.

가느다란 장검.

긴 머리를 낮게 묶은 여자.

여자는 오우거를 보지도 않고 시우부터 확인했다.

깊고 어두운 눈이었다.

“살아 있나.”

“누구…….”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우거가 상처 입은 손목을 휘둘렀다. 여자는 몸을 낮춰 피하고 검을 그었다.

검은 궤적이 괴물의 옆구리에 세 번 새겨졌다.

빠르다.

시우는 유나 외에 저렇게 움직이는 헌터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상처는 얕았다.

오우거의 몸에 박힌 결정이 검격의 위력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여자는 혀를 찼다.

“아직 부족해.”

그리고 시우를 돌아봤다.

마치 이곳에 그가 있을 것을 알고 있었다는 눈빛이었다.

“오늘은 아니군.”

무슨 뜻인지 물을 새도 없었다.

여자가 허공에 작은 검은 구슬을 던졌다. 구슬이 터지며 어둠이 통로를 가득 메웠다.

오우거가 포효했다.

“일어나.”

여자가 시우의 멱살을 잡아 세웠다.

“저 사람도…….”

“살아 있다.”

어둠 속에서 동석의 신음이 들렸다.

여자는 한 손으로 시우를, 다른 손으로 동석의 조끼를 붙잡았다. 믿기 어려운 힘으로 두 남자를 끌고 무너진 벽 옆의 좁은 균열로 몸을 밀어 넣었다.

셋이 빠져나오자 뒤에서 오우거의 주먹이 벽을 부쉈다.

바위가 무너지며 길을 막았다.

여자는 잠시 벽 너머를 바라봤다.

“저건 곧 밖으로 나온다.”

“당신은 누굽니까?”

“지금은 몰라도 돼.”

“왜 절 구했죠?”

여자의 시선이 시우의 가슴께에 닿았다.

정확히는 그 앞의 허공.

시우의 스킬 창이 떠 있는 자리였다.

“확인하려고.”

“뭘요?”

여자는 답하지 않았다.

바깥쪽에서 채유나가 암벽을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시우야!”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목소리.

시우의 얼굴이 굳었다.

여자는 그 이름을 듣고 눈을 가늘게 떴다.

“채유나.”

알고 있는 이름처럼 말했다.

다음 순간 암벽이 폭발했다.

푸른 마력이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먼지 속에서 유나가 걸어 나왔다.

항상 웃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시우가 본 적 없는 채유나였다.

“강시우.”

유나의 시선이 그의 상처를 훑었다.

그다음 검은 코트의 여자에게 멈췄다.

“그 사람한테서 떨어져.”

여자는 순순히 한 걸음 물러났다.

다만 시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직 때가 아니네.”

그 말을 남기고 여자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유나는 쫓지 않았다.

곧장 시우에게 다가와 양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쌌다.

“어디 다쳤어.”

“어깨만.”

“또.”

“뭐?”

“어디 다쳤냐고.”

목소리가 떨렸다.

시우는 그제야 유나가 얼마나 창백한지 봤다.

“괜찮아.”

유나는 그의 가슴에 귀를 댔다.

심장 박동을 확인하듯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시우를 꽉 끌어안았다.

부러진 어깨가 눌려 신음이 나왔다.

“아파.”

“아파야지.”

“뭐?”

“내 말 안 들었으니까.”

유나는 웃었다.

시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아무도 보지 못하게.

“집에 가서 얘기하자.”

그 한마디가 오우거의 포효보다 무서웠다.

*

협회 치료실에서 간단한 처치를 받은 뒤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왔다.

유나는 차 안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도 그랬다.

시우의 장비를 벗기고,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았다. 손길은 조심스러웠지만 표정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미안해.”

시우가 먼저 말했다.

대답이 없었다.

“병원비 때문에 그랬어.”

유나의 손이 멈췄다.

“무슨 병원비.”

시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말할 수 없었다.

형의 실종도, 아버지의 병상도, 본가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도.

그것을 말하는 순간 유나는 모든 돈을 내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시우는 식모가 아니라 완전히 유나에게 매달린 기생충이 된다.

“그냥…… 쓸 데가 있어.”

“나한테 달라고 하면 되잖아.”

“싫어.”

“왜?”

유나가 그를 정면으로 봤다.

“내 돈은 더러워?”

“그런 뜻 아니야.”

“내가 주는 월급은 받으면서?”

“일한 값이니까.”

“그럼 더 일해. 내가 줄게.”

“유나야.”

“얼마가 필요한데.”

“말 안 해.”

“왜!”

처음으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둘 다 놀라 잠시 말을 잃었다.

유나는 곧 표정을 수습했다.

“……미안해.”

“내가 미안하지.”

“다시는 가지 마.”

“오늘은 실수였어. 원래 E급이었잖아.”

“다시는.”

“알았어.”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는 그의 눈을 오래 들여다봤다.

거짓말인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약속해.”

“약속할게.”

그제야 유나는 시우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었다.

“죽는 줄 알았어.”

“안 죽었잖아.”

“네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고.”

그 말에 시우는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유나는 게이트 밖에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의 위험을 알았을까.

묻기 전에 유나가 몸을 일으켰다.

“약 먹고 자. 내일 얘기해.”

유나는 시우를 방에 눕히고 불을 껐다.

진통제 탓인지 잠은 금세 찾아왔다.

그러나 깊은 밤.

시우는 오래된 기억 속에서 다시 눈을 떴다.

삼 년 전, 이 집에 들어온 지 한 달째 되던 밤이었다.

허공에 푸른 창이 처음 나타났다.

```

[고유 스킬이 각성합니다.]

[콜로세움의 주인]

```

흥분한 시우는 유나의 방으로 달려갔다.

“유나야! 나 각성했어!”

잠옷 차림으로 나온 유나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시우가 그녀의 손을 잡은 순간.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

[가장 가까운 예속 관계를 확인합니다.]

[상호 소유 인식을 확인합니다.]

```

그때는 읽지 못했다.

빛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푸른 빛이 시우의 몸을 통과해 유나에게 흘러들었다. 유나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시우도 의식을 잃었다.

다음 날.

유나는 A급 헌터로 각성했다.

시우의 창에는 두 줄만 남았다.

검투사를 고용할 수 있습니다.

승리 시 보상이 지급됩니다.

시우는 잠결에 몸을 뒤척였다.

침대 옆에는 채유나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잠든 시우의 손을 잡고 허공을 보고 있었다.

시우에게 보이지 않는 창이 떠 있었다.

```

[제1 검투사 채유나]

[강제 연결 불안정]

[미정의 잔재 반응이 감지됩니다.]

[연결 상태: 불안정]

```

주인의 말이 아니었다.

잠든 시우의 무의식과, 아직 규칙이 정해지지 않은 강제 연결이 충돌한 경고였다.

유나는 창을 닫았다.

그리고 시우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괜찮아.”

속삭이는 목소리는 다정했다.

“두 번 다시 못 나가게 하면 돼.”

그날 이후 현관 비밀번호가 바뀌었다.

시우에게는 알려 주지 않은 번호로.

아침에 눈을 뜬 시우는 자기 집에서 길을 잃었다.

현관 패드가 먹통이었다.

정확히는 시우의 지문만 인식하지 않았다.

“뭐야.”

몇 번을 대도 붉은 불이 들어왔다.

`등록되지 않은 사용자입니다.`

시우는 번호를 눌렀다. 어제까지 쓰던 비밀번호도 틀렸다고 나왔다.

뒤에서 식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났어?”

유나가 앞치마를 두르고 서 있었다.

식탁에는 죽과 반찬이 차려져 있었다. 평소라면 시우가 해야 할 일이었다.

“비밀번호 바꿨어?”

“응.”

“왜?”

“보안 업데이트.”

“내 지문은 왜 지웠는데.”

“오류 났나 봐.”

유나는 태연하게 죽을 저었다.

“앉아. 밥 먹자.”

“번호 알려 줘.”

“나중에.”

“지금.”

유나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어깨도 다쳤는데 어디 가려고?”

“병원.”

“의사 불렀어. 오후에 올 거야.”

“편의점.”

“필요한 거 말해. 배달시키게.”

“산책.”

“내가 같이 갈게.”

“채유나.”

시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유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다칠까 봐 그래.”

“그래서 가둬?”

“가둔 거 아니야.”

“문이 안 열리는데?”

“내가 열어 주잖아.”

“그게 가둔 거야.”

유나는 입술을 다물었다.

시우는 한숨을 쉬며 소파에 앉았다. 어깨가 욱신거렸다. 어제 충격으로 뼈에 금이 갔다는 진단을 받았다.

유나가 그릇을 들고 따라왔다.

“죽 먹어.”

“생각 없어.”

“약 먹어야 해.”

“비밀번호.”

“죽.”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평소라면 시우가 졌다. 유나와 싸워 이긴 기억이 거의 없었다. 은인이라는 빚도 있었고, 이 집의 실제 주인이 유나라는 사실도 있었다.

오늘은 달랐다.

“나 나갈게.”

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로?”

“이 집.”

유나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장난하지 마.”

“장난 아니야. 사람 가둬 놓는 집에서 어떻게 살아.”

“가둔 거 아니라니까.”

“그럼 문 열어.”

“…….”

“지금.”

유나는 꼼짝하지 않았다.

시우가 방으로 가방을 챙기러 가자 등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해.”

그가 돌아봤을 때 유나는 현관 앞에 서 있었다.

패드에 손가락을 대자 잠금이 풀렸다.

“지문도 다시 등록했어.”

“번호는?”

“네 생일.”

처음부터 그 번호였던 모양이다.

시우는 신발을 신지 않았다.

대신 식탁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유나가 조심스럽게 맞은편에 앉았다.

“안 나가?”

“갈 데도 없어.”

자조 섞인 말이었다.

유나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

“그런 말 하지 마.”

“사실이잖아.”

“여기가 네 집이야.”

“네 집이지.”

“내 거면 네 거야.”

“그게 어떻게 같아.”

“같게 만들면 되잖아.”

유나가 너무 진지해서 시우는 더 묻지 못했다.

그는 죽을 한 숟갈 먹었다. 간이 형편없었다.

“짜.”

“물 더 넣을까?”

“됐어. 먹을 만해.”

유나는 안도한 듯 웃었다.

시우는 말없이 죽을 먹다가 물었다.

“어제 그 여자 알아?”

숟가락을 들던 유나의 손이 멈췄다.

“무슨 여자.”

“검은 코트. 나 구해 준 사람.”

“몰라.”

“이름도?”

“왜 궁금해?”

“목숨을 구해 줬으니까.”

“내가 구했어.”

“그 여자가 먼저 안 왔으면 오우거 주먹에 죽었어.”

짤그랑.

유나가 숟가락을 놓쳤다.

“그 여자 아니었어도 내가 갔어.”

“그래도 감사 인사는 해야지.”

“하지 마.”

“왜?”

“위험한 여자야.”

“모른다며.”

유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거짓말.

시우는 처음으로 그 단어를 유나와 연결했다.

채유나는 누구에게나 솔직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제부터 이상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자신의 위치를 알고 게이트에 나타난 일.

검은 코트의 여자를 보자마자 적대하던 모습.

현관 잠금을 바꾼 일.

그리고 잠들기 전 들었던 말.

두 번 다시 못 나가게 하면 돼.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꿈이었을까.

“유나야.”

“응.”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

유나는 웃었다.

너무 빠르게.

“없어.”

“정말?”

“응.”

“그럼 됐어.”

시우도 웃었다.

믿지는 않았다.

*

오후에 길드 전담 의사가 다녀갔다.

검사 결과는 예상보다 좋았다. 뼈에 갔던 금이 이미 붙기 시작했고, 근육 손상도 거의 없었다.

“회복 속도가 빠르시네요.”

의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따로 회복계 스킬이 있으십니까?”

“F급 고용 스킬뿐입니다.”

“이상하군요.”

“어제 협회에서 포션 맞았습니다.”

“일반 포션으로는 이 정도가 아닐 텐데.”

의사는 유나를 힐끗 봤다.

“길드 비축 상급 골유착제를 썼어요.”

유나가 먼저 인정했다.

“잠든 사이에. 강시우 씨 스킬과 무관한 의료 처치예요.”

의사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약이면 설명됩니다. 다만 다음부터는 본인 동의를 먼저 받으십시오.”

시우는 유나를 쳐다봤다. 회복이 빨라진 이유는 알았다. 허락 없이 약을 쓴 문제는 그대로 남았다.

진료가 끝난 뒤 시우는 방으로 들어왔다.

휴대폰에는 병원에서 온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거실에 유나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화장실 문을 잠갔다. 환풍기를 켠 뒤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한빛중앙병원 원무과입니다.

“아까 전화 주셨는데요. 강정호 환자 보호자입니다.”

―아, 네. 미납액 관련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오늘 중으로 일부라도 납부가 가능하실까요?

“이번 주 안에 백만 원 더 보내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중환자실 장기 이용료가 누적돼서요. 다음 주까지 최소 삼백만 원이 확인되지 않으면 병실 조정이 필요합니다.

병실 조정.

좋게 돌려 말했지만 사실상 나가라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마련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변기 뚜껑 위에 앉았다.

삼백만 원.

어제 게이트에서 받을 돈은 없었다. 공략 실패로 일당이 취소됐다. 부상 보상도 계약 조항 때문에 기대하기 어려웠다.

은행 잔액은 육십만 원 남짓.

시우는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형이 있었다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문장이 떠올랐다.

형이 있었다면 이 정도 돈은 하루 만에 벌었을 것이다.

*

강태욱이 각성한 날은 동네 잔치가 열렸다.

측정 등급 B.

스물세 살에 처음 각성한 사람으로서는 드문 수치였다.

아버지는 마당에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걸었다. 친척과 이웃들이 몰려와 형의 어깨를 두드렸다.

“강 씨네 팔자 폈네.”

“태욱이가 이제 집안을 일으키겠어.”

“동생들 공부도 다 시키겠구먼.”

형은 술잔을 들고 웃었다.

“제가 다 책임져야죠.”

그날 시우는 고기를 구웠다.

형이 친구들과 사진을 찍는 동안 불판을 갈았다. 누나는 술상을 날랐고, 시우는 형이 사 준 새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시우야.”

유나만이 불판 앞에 선 시우에게 다가왔다.

“너도 먹어.”

“나중에.”

“아까부터 나중에래.”

유나는 접시에 고기를 가득 담아 내밀었다.

“형 축하해 줘야지.”

“네가 안 먹는 거랑 축하하는 게 무슨 상관인데.”

“손님들 먼저지.”

시우가 웃자 유나의 얼굴이 굳었다.

“넌 왜 맨날 괜찮다고 해?”

“뭐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열일곱 살 시우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은 화목했다.

형이 성공해서 기뻤고, 집안 형편이 좋아질 거라 기대했다.

자신이 서운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유나는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면.”

유나가 말했다.

“너만 줄 거야.”

“갑자기?”

“하나도 안 나눠 줄 거야.”

“왜 네 돈을 나한테 줘.”

“그러면 너도 안 웃을 것 같아서.”

시우는 피식 웃었다.

“이상한 애네.”

유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의 소매를 잡았다.

그날 밤 형은 가족들 앞에서 첫 계약서를 펼쳤다.

중형 길드 청람.

계약금 삼억.

월 기본급 이천만 원.

레이드 성과급 별도.

아버지의 손이 떨렸다.

어머니는 울었다.

형은 계약금으로 집의 빚부터 갚았다. 시우에게 새 옷을 사 줬고, 누나의 등록금을 냈다.

시우에게도 봉투를 내밀었다.

안에는 백만 원이 들어 있었다.

“서울 가면 써.”

“아직 합격도 안 했는데.”

“미리 주는 거야.”

“고마워.”

“넌 조용하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형은 악의 없이 말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조용하니까.

알아서.

형이 가족을 책임지기 시작한 뒤 시우의 자리는 더 흐릿해졌다.

누구도 시우를 괴롭히지 않았다.

다만 아무도 찾지 않았다.

유나를 제외하고는.

*

형은 빠르게 승급했다.

B급에서 A급까지 일 년도 걸리지 않았다. 텔레비전에도 몇 번 나왔다. 청람 길드의 차세대 간판이라는 기사가 붙었다.

레이드가 없는 날이면 집에 내려와 고기를 샀다.

아버지는 형을 자랑했고, 어머니는 형이 좋아하는 반찬을 상 가득 차렸다.

시우도 자랑스러웠다.

정말로.

그래서 형이 마지막 출격 전화를 했을 때도 걱정하지 않았다.

―이번 거 끝나면 한 달 쉰다.

“웬일이래.”

―아버지가 자꾸 내려오래. 생신도 있고.

“가족들이 좋아하겠네.”

―넌 안 내려오냐?

시우는 유나의 주방에서 양파를 썰고 있었다.

“바빠.”

―식모가 뭘 바빠.

형은 웃었다.

시우도 따라 웃었다.

―유나한테 잘해. 걔 아니었으면 너 길바닥이었어.

“알아.”

―나중에 자리 하나 알아봐 줄게. 우리 길드 시설팀이라도 들어올래?

“됐어.”

―또 자존심 세우네.

“레이드나 잘하고 와.”

―그래. 끊는다.

그것이 형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

4년 4개월 전.

청람 길드 4팀은 강원도 산악 지대에 열린 B급 게이트로 출격했다.

평범한 공략이었다.

진입 인원 열두 명.

예상 소요 시간 여섯 시간.

실제 구조 신호가 울린 것은 진입 후 사십칠 분 뒤였다.

협회가 구조대를 투입했을 때 게이트 내부는 피로 가득했다.

시신 열한 구가 발견됐다.

모두 전투 흔적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죽었다.

강태욱만 없었다.

살아 나왔다는 기록도, 시체도, 장비도 없었다.

게이트는 그날 밤 닫혔다.

뉴스에서는 기적적인 생존 가능성을 말했다.

협회는 행방불명으로 처리했다.

가족들은 돌아오지 않는 사람의 장례도 치르지 못했다.

아버지는 매일 협회에 전화했다.

“시체가 없으면 살아 있는 거 아니냐.”

누구도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한 달 뒤, 아버지는 처음 쓰러졌다.

첫 뇌출혈 뒤에는 재활을 거쳐 불완전하게나마 일어났다. 발음이 흐려지고 오른손이 떨렸지만 형을 찾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보험사와 협회, 복원 공방의 이름을 수첩에 쌓은 시간이 거의 4년이었다.

넉 달 전, 두 번째 뇌출혈이 왔다.

이번에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시우가 감당하려는 병원비는 그 두 번째 입원 뒤 쌓인 돈이었다.

*

시우는 화장실 바닥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시우야.”

유나였다.

“왜.”

“괜찮아?”

“배 아파.”

“의사 다시 부를까?”

“됐어.”

“문 열어 봐.”

“똥 싸는데 왜 열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거짓말.”

유나의 목소리가 문 바로 앞에서 들렸다.

“너 울고 있잖아.”

시우는 뺨을 만졌다.

울지 않았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을까.

“안 울어.”

“문 열어.”

“혼자 있고 싶어.”

“나는 혼자가 아니잖아.”

말이 이상했다.

시우가 의미를 생각하는 사이 문손잡이가 돌아갔다. 잠겨 있어 열리지는 않았다.

“나한테 말해.”

“뭘.”

“돈 어디에 쓰는지.”

심장이 철렁했다.

“어떻게 알았어?”

“네 휴대폰에서 병원 앱 봤어.”

어제 아침, 송금 화면을 켜 뒀던 순간이 떠올랐다.

유나는 다 본 걸까.

“남의 휴대폰을 왜 봐.”

“누가 아파?”

“상관하지 마.”

“강시우.”

“내 일이야.”

문 너머의 기척이 사라졌다.

시우는 유나가 포기한 줄 알았다.

잠시 뒤 휴대폰이 진동했다.

은행 알림이었다.

`[입금] 10,000,000원`

보낸 사람 채유나.

시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을 열자 유나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이거 뭐야.”

“써.”

“돌려줄 거야.”

“그러면 또 게이트 갈 거잖아.”

“내가 알아서 해.”

“어떻게.”

유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어제 죽을 뻔한 네가 어떻게 알아서 할 건데.”

“그래도 네 돈은 안 받아.”

“왜!”

“네가 불쌍해서 주는 돈이니까!”

말이 튀어나왔다.

유나의 얼굴이 굳었다.

시우는 곧 후회했지만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나는 널 불쌍하게 생각한 적 없어.”

“그럼 왜 데려왔는데.”

“필요하다고 했잖아.”

“청소할 사람이?”

“너.”

유나는 시우의 손목을 잡았다.

“강시우 네가 필요했다고.”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돈도, 집도, 내 헌터 일도 다 필요 없어. 네가 여기 있으면 돼.”

시우는 말을 잃었다.

유나의 눈에는 그가 알던 친절한 소꿉친구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두려움.

욕심.

숨기기에는 너무 오래 자란 감정.

하지만 다음 순간 유나는 손을 놓았다.

“미안해.”

평소의 미소가 돌아왔다.

“흥분했나 봐.”

“유나야.”

“돈은 안 돌려줘도 돼. 빌려주는 거야.”

“받을 수 없어.”

“그럼 월급 선불.”

“그것도 싫어.”

“정말 고집 세네.”

유나는 웃으며 돌아섰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밥을 먹었다.

시우는 천만 원을 돌려보냈다.

유나는 다시 보내지 않았다.

대신 밤늦게 길드로 출근했다.

문이 닫히자 시우는 협회 앱을 켰다.

저급 게이트 공고를 검색했다.

어제의 공포가 아직 몸에 남아 있었다. 오우거의 주먹, 부서진 벽, 창잡이가 죽는 소리.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병원은 다음 주까지 삼백만 원을 요구했다.

형은 가족의 첫 각성자였다.

실종될 때까지는 유일한 고등급 전투 각성자이기도 했다.

시우가 F급 비전투 각성 판정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1년 4개월 뒤였다.

이제 형은 없었다.

시우에게는 쓸모없는 스킬이라도 있었다.

그는 새 공고 하나를 북마크했다.

`F급 참가 가능 / 긴급 야간 해체 보조 / 일당 280만 원.`

평소 시세의 열 배였다.

수상했다.

그래도 통장 잔액 육십만 원을 더하면 병원의 최소 납부액을 맞출 수 있었다.

“이 정도는 괜찮아.”

아무도 듣지 않는 방에서 변명했다.

그때 알 수 없는 번호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마포 7번에서 살아 나온 남자 맞지?`

시우의 손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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