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연정헌과 나는 어린 나이에 부부가 되어 반평생을 함께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날, 온 나라가 애도했다. 황제는 특별히 덕안후의 작위를 추서했다. 나는 그의 한평생이 아쉬움 없이 다 채워졌으리라 생각했다. 유품을 정리하던 날, 모서리가 말리도록 읽은 원고 한 뭉치를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렸다. 낡은 나무 상자도 함께 굴러떨어져 편지 여러 통이 흩어졌다. 몸을 굽혀 주우려다, 누렇게 바랜 종이에 적힌 글을 보았다. 모두 같은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였다. 등줄기를 타고 한기가 올라왔다. 얼음 구덩이에 빠진 듯 그 자리에 굳었다. 내가 열일곱이던 해, 연정헌은 칙명을 받고 남녘으로 수해를 다스리러 갔다가 한 여인을 데려왔다. 목숨을 구해 준 은혜를 갚으려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질투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고 소란을 피웠다. 목숨을 걸고 매달린 끝에 그 여인을 돌려보내게 했다. 그 뒤 연정헌은 눈시울을 붉힌 채 나를 놓칠세라 끌어안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인, 제발 나를 겁주지 마시오. 내게는 당신뿐이오. 남은 평생 당신만 있으면 되오. 내 말을 믿어 주겠소?" 그 뒤로 그의 곁에 다른 여인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종이에 적힌 뜨거운 사랑의 맹세를 보고 있자니 끝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그가 류지란을 저택에 데려왔던 날로 돌아와 있었다.
Mehr anzeigen질문이 아니라 확신이었다.그 말로 힘을 모두 소진한 듯했다.나도 침상 위에 힘없이 주저앉았다.방 안의 촛불은 이미 꺼져 있었다.우리는 서로의 눈에 제 모습이 비칠 만큼 가까이서 마주 보았다.틀린 말이 아니었다.사실 처음부터 연정헌이 미친 척한다는 것을 알았다.그는 어린 나이부터 아버지와 형을 따라 전장에 나갔다.훨씬 참혹한 광경도 겪어 본 사람이었다.열 살 때 적들이 눈앞에서 아버지와 형의 목을 베었다.그런데도 이튿날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보내 적의 군량고를 불태웠다.그런 참상을 겪은 사람이, 고작 류지란에게 속았다고 제정신을 잃을 리 없었다.어린 나이에 이름을 떨치기까지, 남들은 겪어 보지 못할 고난을 수없이 견뎠다.돌아보면 나는 그 반생을 지켜본 사람이었다.어쩌면 우리는 자신보다 서로를 더 잘 알았다.연정헌이 웃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웃음이었다."이제 돌아갈 수 없는 거요?""당신을 지키지 못해서, 혹은 지란을 데려와서 떠난 거라고 수없이 나를 달랬소.""다 갚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소. 당신을 고문한 자들도 죽였고 지란도 죽였소. 그런데 당신 눈에서 나를 향한 마음이 보이지 않소."잠긴 목소리에는 끝없는 고통이 배어 있었다."처음 보았을 때부터 미친 척하는 줄 알면서도, 내 곁에 남아 주었구려.""어릴 적부터 쌓아 온 정마저 내가 다 써 버린 셈이오?"그의 흐느낌은 변방의 바람처럼 울었다.어린 나와 어린 그는 자라는 동안 서로가 알아보지 못할 만큼 변해 버렸다."말해 주시오. 언제부터 떠날 생각을 했소?"먹구름이 달을 가렸다.고개를 돌리자 그의 얼굴이 어둠 속에 있었다."나리께서는 전생과 현생을 믿으십니까?"잠시 방 안이 고요해졌다.그의 숨소리가 조금 거칠어졌다."어릴 때부터 우리를 알던 이들은 천생연분이라고 했습니다.""그 뒤 나리 집안에 변고가 닥쳐, 제가 시신 더미에서 나리를 끌어냈을 때 두 눈이 새빨갰습니다.""다들 심지가 굳어 큰일을 맡을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날 밤 나리께서는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사람들은 모두 연정헌이 제정신을 잃었다고 했다.황제가 보낸 어의도 몇 번이나 살피러 왔다.지금은 자극을 주면 안 되며, 가까운 사람과 지내면 나아질 여지가 있다고 했다.하지만 그의 아버지와 형은 그가 어릴 때 이미 전장에서 죽었다.그의 어머니마저 도관인 청허관에 들어가 속세와 연을 끊은 뒤였다.결국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나뿐이었다.황제는 연씨 가문이 나라에 바친 공을 늘 잊지 않았고, 이제는 내게 연정헌 곁을 지키라고 했다.돌고 돌아도 도성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었다.다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소식을 들은 동생과 어머니가 당장 도성으로 오겠다고 했다.나는 말리지 않았다.연정헌은 완전히 미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 곁에서 떨어지지 못했다.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왔다.주위에 다른 사내가 나타날 때마다 크게 성을 냈다.우현을 볼 때는 특히 심했다.나는 받아 주지 않았다. 소란을 피우든 말든 내버려 두었다.우현은 오라버니가 보낸 사람이었다. 내가 누군가 따라다니는 것을 싫어하자, 갖은 방법으로 내 일상에 스며들었던 것이다.그날은 다른 관원 부인들의 잔치에서 술을 많이 마셔, 우현의 부축을 받고 돌아왔다.연정헌은 뜰에 앉아 있었다.희디흰 장포 차림의 연정헌은 얼굴빛이 옥처럼 맑고 온화했다.하지만 나와 우현이 가까이 있는 모습을 보자 불같이 성을 내며 성큼성큼 다가왔다."무슨 짓이냐?"우현이 재빨리 나를 제 뒤로 옮겼다."아씨를 방으로 모셔다 드리는 중입니다."두 사람은 날카롭게 맞서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그 사이에 낀 나는 머리가 깨질 듯했다."나리께서 상관하실 일이 아닙니다. 돌아가십시오!"연정헌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눈에 서운함이 어렸다."어찌 내게 이러오?"나는 대꾸하지 않고 우현에게 부축해 들어가 달라고 했다.휘장을 내리고 나니 가슴에 무언가 걸린 듯 답답했다.한밤중, 잠결에 누군가 침상으로 기어오르는 듯했다.눈을 번쩍 뜨자 정신
연정헌이 깨어난 것은 한밤중이었다.곁에 심단희가 없어 어리둥절했다.분명 심단희를 안고 있었던 기억이 났다.잠시 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람을 잘못 본 것이었다.후회에 짓눌려 참지 못하고 제 뺨을 후려쳤다.그러다 류지란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그녀를 찾으려고 몸을 일으켰다.뜰에 나서자 구석에 서 있는 류지란이 보였다.부르기도 전에 그늘 속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확실히 알아봤어? 단희가 정말 돌아왔어?"밝은 달빛에 류지란의 얼굴 절반은 그늘에 잠겨 있었다. 깊은 밤의 어둠 속에서 어딘가 섬뜩해 보였다."돌아온 지가 언젠데. 일을 어떻게 한 거야? 죽었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멀쩡히 돌아온 건데?"그늘 속 인물이 목소리를 낮췄지만 짜증은 감추지 못했다."그렇게 명줄이 길 줄 누가 알았겠어. 더 오래 괴롭히고 싶다던 건 너잖아. 내 말대로 그날 정헌의 부하들을 속여 내보낸 뒤 바로 죽였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이제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야? 단희를 죽여!"연정헌은 그 뒤의 말은 듣지 않았다.어떻게 방으로 돌아왔는지도 몰랐다.머릿속이 윙윙 울리며 수많은 목소리가 뒤엉켰다.그날 부하들은 그가 떠난 뒤 곧장 철수했다고 말했다.분을 이기지 못해 단옥원으로 쳐들어가 몇 사람을 죽였다. 깨어난 뒤 다시 조사에 나섰지만, 몇 년을 함께한 호위 하나가 죄가 드러날까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죽기 전에 편지도 남겼다.그날 술을 조금 마시고 다른 이의 돈을 받아, 동료들을 전부 철수시켰다고 했다.큰 죄를 지었으니 죽음으로 갚는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그저 뜻밖에 벌어진 일이라 믿고 있었다.하지만 이제야 알았다. 심단희를 해친 것은 결국 자신이었다. 그 모든 고통을 제 손으로 심단희 앞에 가져다 놓았던 것이다.어둠 속에서 연정헌이 손을 들자, 몇 사람이 소리 없이 내려섰다."오늘 밤은 파리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라."옷을 걸친 채 조심스레 돌아온 류지란은 유난히 고요한 분위기를 느꼈다.
나는 웃었다."누군가 떠났다고 해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난 삼 년이 그 증거 아닙니까?"연정헌이 굳었다."제가 없으면 안 되는 건 그토록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이제 제가 나리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제게도, 지란에게도 그러셨습니다."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었다."처음에는 저만 사랑하겠다고 하셨습니다.""그러다 남녘에서 지란을 데려오셨습니다. 그때 나리 눈에는 그 사람을 향한 사랑도 있었습니다. 둘 다 눈앞에 있는데도 나리 마음은 언제나 그쪽으로 기울었습니다.""저를 옥에 가두실 때 정말 사심이 없으셨습니까? 제가 굽히고 잘못을 빌기를 바라셨습니다. 그 일로 목숨을 잃을 뻔할 줄은 모르셨을 겁니다."연정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무어라 말하려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지금 이리 매달리시는 것도 제가 먼저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게 익숙하지 않으신 겁니다.""처음부터 지란을 쫓아내고 평생 억지로 곁에 붙들어 두었다면 저를 원망하고 미워하셨을 겁니다. 그랬다면 지금 그리워하는 사람도 제가 아니었을 겁니다."그 순간 연정헌의 큰 몸이 조금씩 굽었다.몽롱한 가운데, 자신이 꾼 꿈이 떠올랐다.'정말 그런 사람이었던가. 가질 수 없는 것만을 늘 원했던가.'나는 두어 걸음 물러서서 몸을 낮추어 예를 갖추었다."나리, 그 아씨를 첩으로 들이셨으니 잘해 주십시오.""우리 사이에는 어린 시절의 정만 남아 있어도 충분합니다. 이제 저를 찾아오지 않으셔도 됩니다."바람이 불어 비단 치맛자락이 나부꼈다.어릴 적 연정헌이 만들어 준 백옥 비녀가 어찌 된 일인지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그는 멍하니 바라보았다.나는 돌아서서 두 번 다시 뒤돌아보지 않았다.다만 바람을 타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채령이 어찌할 바를 모르며 나를 보았다."아씨?"나는 고개를 저었다.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것이었다.누군가 눈물을 조금 흘린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지는 않았다.하지만 이튿날 연씨 저택에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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