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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밥벌이요정
고하준의 말은 보이지 않는 칼날처럼 송서윤의 가슴을 깊게 베었다.

사랑하는 아들이 남편을 유혹해 가정을 파탄 낸 여자를 위해 무릎까지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송서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준아, 방금 뭐라고 했니?”

고하준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투정 부리듯 말했다.

“엄마, 엄마는 예쁜 반지도 많잖아요. 그중에 하나쯤 연수 이모한테 준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엄마도 항상 연수 이모가 저를 잘 돌봐줬다고 고마워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엄마 대신 이모한테 선물한 거예요.”

고하준의 말에서 죄책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오히려 당당했다.

‘그날 학교 끝나고 집에 오니까, 연수 이모가 현관에서 반지를 보고 너무 좋아하는 거야. 이모는 평생 이런 반지 못 사본다면서 엄청나게 부러워했어. 그 모습이… 그냥 너무 안쓰러웠단 말이야. 엄마도 맨날 주변 사람들한테 인심 쓰라고 했잖아! 근데 왜 지금 와서 나만 뭐라고 해!’

송서윤은 세면대 가장자리를 꽉 잡고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그녀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모한테 선물하기 전에 반지의 주인인 엄마한테 먼저 물어봤어야지. 엄마가 항상 말했잖아. 남의 물건을 허락 없이 가져가는 건 도둑질이라고.”

그러자 고하준은 삐죽거리며 대답했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엄마 물건은 다 제 거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가져간 것도 결국 제 물건을 미리 선물한 것뿐이에요. 그게 왜 도둑질이죠?”

송서윤의 심장이 서늘하게 식어갔다.

“누가 그래? 내 물건이 네 거라는 말, 누가 했니?”

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엄마가 항상 말했잖아. 사람은 결국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고하준은 여전히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몰랐고 뻔뻔하리만치 당연한 표정이었다.

송서윤은 가슴 한쪽에서 말로 다 못 할 서러움이 북받쳤다.

적어도 자신이 갑자기 떠나면 아들이 조금은 슬퍼하고 그리워할 줄 알았다.

하지만 고하준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을뿐더러, 이미 엄마가 죽은 뒤 물려받을 것들만 생각하고 있었다.

송서윤에게 혼나자, 고하준은 입술을 꾹 다물었고 눈에는 금세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억울함과 고집이 한데 섞여 있었다.

‘누구긴요, 할머니가 그랬죠. 나중에 제가 케이원 그룹이랑 부모님 거 다 물려받을 거라고요. 크면 케이원 그룹도 제 거고, 연수 이모한테 예쁜 보석도 마음껏 사줄 수 있다고요. 그때는 엄마가 뭐라고 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엄마, 어차피 반지는 다시 엄마한테 돌아왔잖아요. 그러니까 연수 이모도 그냥 용서해 줘요. 이모도 이제 우리 집에 안 올 거니까, 그냥 없던 일로 해요.”

‘없던 일로 해달라니...’

송서윤은 아직 앳된 고하준의 얼굴을 실망스럽게 바라봤다.

‘정작 이 일이 자기한테 닥친 게 아닌데, 어떻게 그 아픔을 알겠어.’

“너희 아빠가 고소하겠다고 한 거야. 나 말고 아빠한테 사정해 봐.”

그 말을 끝으로, 송서윤은 고하준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화장실을 나섰다.

결국 허연수는 고소당하지 않았다.

경찰은 고하준이 미성년자인 데다, 고의로 그런 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 송서윤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건을 종결했다.

이 내용 역시 고영훈을 통해 전해 들은 말이었다.

늦은 밤 별장.

고영훈은 서재에서 여전히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며칠 전 송서윤이 산산조각 낸 결혼사진도, 어느새 말끔히 복원되어 있었다.

고영훈은 예전과 다를 바 없는 평온한 서재에 있었다. 변한 걸 단 하나도 눈치채지 못했다.

송서윤은 김태원과 집안 도우미들에게 모두 월급을 더 얹어주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주 침실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그곳만큼은 고영훈과 허연수 누구도 침범하지 못한 공간이었기에, 그나마 잠시나마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밤중에 갑자기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왔다.

고하준이 곰 인형을 안은 채 송서윤에게 달려와 안겼다.

뒤따라 들어온 건 새로 고용된 입주 튜터 이원주였다.

“엄마, 새로 온 선생님 싫어요! 치약도 제대로 못 짜고 내가 어떤 잠옷 입는지도 모르고 어떤 장난감 좋아하는지도 몰라요. 내 곰돌이도 빨래통에 집어넣고 돌려서 다 망가졌단 말이에요. 그 선생님이랑 있기 싫어요. 정말 싫어요!”

송서윤은 고하준을 품에 안으며, 화난 아들의 표정과 한쪽에 멀뚱히 서 있는 이원주를 번갈아 봤다.

“원주 씨, 잠시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이원주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나갔다.

송서윤은 문 너머로 사라지는 이원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깔끔하게 잠근 셔츠와 단정한 슬랙스, 꼿꼿이 세운 자세, 예의 바른 태도가 눈에 띄었다.

그와 동시에 문득 떠오른 건, 가슴팍이 다 드러나는 브이넥에, 주저앉으면 엉덩이 반쯤 보일 만큼 짧은 청 반바지를 입던 허연수의 모습이었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그러고 보니, 허연수는 처음부터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도우미들도 그녀의 옷차림이 부적절하다며, 일할 땐 유니폼을 입으라고 여러 번 권했었지만 허연수는 끝끝내 거부했다.

그때만 해도 송서윤은 아직 어린 허연수가 자유분방하고 구속을 싫어하는 거로 생각하며, 도우미들에게 뒷말 삼가라고 타일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게 참 우스웠다.

그때, 고하준이 송서윤의 팔을 흔들며 시선을 돌렸다.

송서윤은 그의 맑은 눈망울과 마주했다.

“아무도 원주 이모에게 네 취향이나 습관을 알려주지 않았으니, 처음부터 네가 원하는 대로 잘해주기 어렵겠지. 하지만 너도 벌써 다섯 살이잖아. 치약 정도는 스스로 짤 수 있어야 해. 모르는 건 직접 물어보면 돼.”

고하준은 입을 삐죽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빠가 엄마 앞에서 연수 이모 얘기 꺼내지 말랬지만, 연수 이모가 제일 좋은데. 하루만 떨어져도 벌써 보고 싶단 말이야.’

“연수 이모는 처음 왔을 때부터 내가 뭘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었어요. 내가 말 안 해도 다 해줬잖아. 원주 이모는 너무 답답해!”

송서윤의 눈에 순간 당혹감이 스쳤다.

‘허연수가 하준이의 취향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았던 거지? 혹시 고영훈이 다 알려준 건가?’

“남 얘기 함부로 하지 마. 그리고 이제 잘 시간이야.”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고하준은 그녀의 품에 안긴 채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엄마, 오늘 밤에는 나랑 같이 자줘요. 이야기 들려줘요.”

허연수가 집에 있을 땐, 아무리 송서윤이 같이 자자고 해도 고하준이 고집을 피우며 거부했었다.

이제 와서야 엄마를 찾는 모습에, 송서윤은 단호히 말했다.

“이제 다 컸으니까, 혼자 자는 연습도 해야지.”

그 말을 듣자, 고하준은 세상이 무너진 듯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의 팔을 꼭 잡고 흔들었다.

고영훈이 소란을 듣고 방으로 들어와, 고하준을 번쩍 안아 올렸다.

그 순간, 하준이 품에서 곰 인형이 떨어졌다.

곰 인형의 투명한 배 주머니에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세탁기에 넣고 돌려서 색이 바래버렸지만, 사진 속 모습은 선명했다.

유치원 소풍 날, 부모 동반 없이 떠난 첫 여행 날이었다.

주희영이 혹시나 걱정돼서 허연수를 자원봉사자로 따라가게 했었다.

‘그날 영훈 씨는 출장 중이었는데... 거짓말이었나 보네. 내가 없는 사이에 이미 한 가족이나 다름없게 되었네?’

사진에는 고하준과 허연수, 그리고 고영훈이 다정하게 기대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행복해 보이는 그 미소가, 오히려 송서윤의 가슴을 깊게 찔렀다.

고영훈은 곰 인형을 집어 고하준에게 돌려줬다.

송서윤은 더는 이들 부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여보, 그날 막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엄마한테서 연락이 왔었어. 하준이가 소풍 도중에 사라졌다고 해서, 바로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지. 당신이 걱정할까 봐, 일부러 알리지 않았어. 다행히 무사히 찾았고...”

고영훈은 괜히 변명이라도 하듯,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고하준도 덩달아 말했다.

“엄마, 그날 새 친구도 사귀었어요!”

하준이는 인형 배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뒷면을 보여줬다.

사진에는 서로 어깨동무한 또래 아이 두 명이 있었다.

송서윤이 사진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고영훈이 그것을 빼앗았다. 그리고 송서윤 앞에서 사진을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여자는 널 제대로 케어도 못하고 네 엄마 반지까지 훔쳐 갔어. 그러니까 앞으로 그 여자 사진 따윈 집에 들이지 마. 알겠어, 고하준?”

고영훈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고하준은 입술을 꾹 깨문 채 속상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송서윤은 더는 그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고영훈은 언제나 송서윤 앞에선 그녀의 감정을 먼저 살피는 척했다.

무엇이든 그녀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는 남편인 양 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다정함은 송서윤에게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았다.

그저 냉랭한 시선으로 찢긴 사진을 보며 꾸중을 듣고 울면서 방을 뛰쳐나가는 고하준을 바라볼 뿐이었다.

고영훈의 위로와 다짐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었다.

모두가 방을 나가고 난 뒤, 송서윤은 조용히 문밖을 향해 말했다.

“쓰레기통 좀 비워줘요.”

다 찢긴 그 사진 조각들조차, 곁에 두기조차 역겨웠다.

'이제 딱 29일만 버티면 돼. 곧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이원주가 복도에서 조심스레 들어와, 바닥에 흩어진 사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주워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다 문득, 손에 쥔 작은 사진 조각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거... 허연수 씨 딸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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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정
2025. 12. 20. AM.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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