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이혜정은 대체 송서윤에게 뭘 가르쳤을까!열여섯 살에 이미 다크웹에서 이름을 날리게 했다.그러나 그에게는 단 한 번도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송서윤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녀가 전화를 받는 순간, 이윤영의 권총이 그녀의 심장을 압박했다. “어디야?” 수화기 너머로 심건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송서윤의 머릿속에 심건모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심건모가 해커들을 막아내고 제로를 제지한다 해도 그 손실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어쩌면 기지의 컴퓨터 부서 전체가 날아갈지도 모른다. 꼬박 10년 동안 공들여 온 피땀 어린 결과물이다. 송서윤은 심건모가 그것을 잃게 둘 수 없었다. 그것은 심건모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버팀목 중 하나이자 그의 무기였으니까.“여보, 저 무사히 돌아갈게요.”송서윤은 전화를 끊고 신호를 차단한 뒤 노트북 앞으로 걸어가 휴대폰을 연결했다. 제로 역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2시간의 정전 카운트다운. 3, 2, 1.... 네트워크가 연결되었다.그 찰나, 다크웹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로의 거대한 시스템이 경원시의 네트워크 위를 배회했고 그 뒤로 기세등등한 수많은 해커가 뒤따랐다. 제로는 순식간에 경원시의 네트워크를 침투해 마비시켰다.“네 시스템은 어디 있지?”마스크 뒤에 가려진 제로의 눈에는 득의양양함과 조롱이 가득했다. 바로 그 순간, 13년 동안 다크웹을 떠돌던 거대한 지뢰 찾기 시스템이 움직이며 수많은 해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송서윤이 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뒤에 있어.”“뭐?”제로는 자신의 노트북을 확인했다. 그의 시스템이 경원시를 침입한 순간 네트워크는 마비되었지만 정작 아무런 실질적 손실은 발생하지 않았다. 뒤따라오던 해커 중 누구도 기술 기밀을 훔치거나 소란을 피우지 못한 것이다. 그는 다시 다크웹으로 접속했으나 그곳엔 들어가지조차 못한 채 애원하는 목소리들만 가득했다.“세상에, 케이시가 나타나서 다크웹을 봉쇄했어!”“이 거대한 시스템 대체 정체가 뭐야?
송서윤은 뒤를 돌아 총을 든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이윤영?”송서윤은 당황했다. ‘이윤영은 마귀 훈련소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그녀는 AI 부활 발표회 현장에 없었으니 해커 제로일 리가 없었다.“뜻밖이지? 경원시는 이제 심건모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 이윤영은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쇼핑몰 안, 비상용 조명등 불빛에 비친 이윤영의 피부는 검게 그을려 있었고 얼굴은 상처투성이였다. 예전의 긴 머리는 짧은 삭발 머리로 변해 있었고 몸에 걸친 아름다운 원피스는 어울리지 않게 이상한 느낌을 주었다.이윤영은 차가운 총구로 송서윤의 이마를 압박하며 소리쳤다. “모든 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나를 괴물로 만들었어.”송서윤은 경비실에서 챙겼던 전기 충격기를 곧장 이윤영의 손에 가져갔다. 통증을 느낀 이윤영의 손에서 권총이 떨어져 몇 미터 밖으로 튕겨 나갔다. 송서윤은 봐주지 않고 이윤영의 무릎을 전기 충격기로 내리쳤다. 이윤영은 그 자리에 바로 무릎을 꿇었다.“지난번에 나를 총으로 쏘려 했을 때 감옥에 갔어야 했어. 마귀 훈련소로 보낸 건 선처였지.”“네가 망가진 건 나 때문이 아니라 네가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야.”이윤영은 송서윤의 전기 충격기를 움켜잡았다. “내가 너한테 고마워라도 해야 해?”전류가 손바닥을 타고 흘러갔지만 이윤영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전기 충격기를 뺏어 들더니 송서윤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송서윤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윤영은 송서윤의 앞에 서서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심건모는 너 때문에 나와 파혼했어. 큰오빠는 너 때문에 나를 마귀 훈련소에 처넣었지.”“너도 이씨 가문 사람이라며?”“오빠는 너를 떠받들면서 어떻게든 집으로 데려오려 안달이야. 나는 물건 취급하며 이산 그룹을 위해 천우진에게 팔아넘겼고!”“천우진이 무너졌다고? 다음 사람이 또 오겠지!”“도대체 네가 뭔데! 내 남자를 뺏고 이제 내 오빠까지 뺏으려 들어!”“송서윤! 네
“이제 가요.” 송서윤은 이리안의 손을 잡고 먼저 사무실을 나섰다.심건모가 그 뒤를 따르며 주위를 한 번 훑었다.직원들은 숨을 죽인 채 얼어붙어 있었지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만은 똑똑히 익혀두었다.송서윤은 회사 밖으로 나오고서야 따라온 이들이 일반 경찰이 아닌 특수경찰이며 문 앞에 세워진 차 역시 밴이 아닌 방탄차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조수석에 앉아 아이패드를 만지작거리던 고하준이 그들을 보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저씨, 저 미션 성공했어요.”심건모가 성큼성큼 다가가 고하준의 아이패드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잘했어.”고하준은 환하게 웃었다.심건모가 뒷좌석 문을 열자 송서윤이 이리안을 안고 올라탔다.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심건모가 이렇게 요란하게 움직였으니 이제 회사 사람들도 두 사람의 관계를 다 알게 되었을 터였다.송서윤은 심건모가 일부러 과시하려 한 게 아님을 알았다. 기지 컴퓨터 부서는 24시간 다크웹을 감시하고 있었다.심건모는 분명 제로의 대규모 작전과 그가 케이시에게 보낸 도전장도 알고 있을 것이다.심건모는 가족의 안전이 걱정되었던 것이다.빌라로 돌아온 후.심건모는 송서윤을 따라 3층까지 올라왔다.“하준이가 있을 땐 3층에 안 오겠다고 했잖아요.”“일에도 우선순위가 있는 법이지. 내가 제로를 찾아낼 테니 너는 손대지 마.” 심건모는 송서윤을 무릎 위에 앉히며 속삭였다.“제로는 동건우 아니면 성범일 거예요.” 송서윤은 순종적이고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심건모의 목을 끌어안았다. “오늘 도둑이 내 서류 가방을 훔쳐 갔어요!”송서윤은 서지원을 만난 일과 나중에 CCTV를 확인했던 일을 심건모에게 털어놓았다.“노트북을 내 가방에 몰래 넣어서 밖으로 유출할 수 있었던 사람은 동건우와 성범 뿐이에요.”“오늘 전시장에 나타난 모든 사람을 감시하고 있어.” 심건모가 나직이 말했다.“감시 중이라면...” 송서윤은 조심스럽게 심건모를 살피며 제안했다. “제로가 시스템을 돌려 경원시의 네트워크를 마비시키려
밴 차량 안에서 송서윤과 심건모가 나눈 대화는 동건우를 제대로 자극했다.“건우야, 너무 경솔했어. 네가 해커 제로라는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하면!”“뒷감당은 감당할 수 없을 거야.”“네가 직접 나서서 컴퓨터를 되찾아오는 게 아니었어.”동봉우가 말을 이었다. “다행히 내가 심건모 곁에 심어둔 사람이 있어서 제때 소식을 들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발표회장에 잠복시켰던 네 사람들을 철수시키지도 못했을 거야.”“송서윤이 제 시스템을 뚫을 수 있다고 했다더군요. 제 시스템 후방 방어벽이 약하다면서요.” 동건우가 비웃었다. 그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군!”“송서윤의 시스템을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부수어버리겠습니다. 송서윤은 심건모의 가장 큰 조력자입니다. 입국장에서 해커들을 막아낸 것도 송서윤이였죠. 아버지, 송서윤만 무너뜨리면 심건모는 팔 하나를 잃는 셈입니다.”“그뿐만이 아닙니다. 심건모가 송서윤을 꽤 아끼는 모양인데 어쩌면 아예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될지도 모르죠.”“그렇게 되면 심건모가 어떻게 아버지 자리를 넘보겠습니까? 제가 나서게 해주십시오.”동봉우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물었다. “정말 할 수 있겠어? 어찌 됐든 너와 어머니가 같은 이복동생이잖아.”“동생이라고요?”동건우가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이혜정도 안중에 없었던 저입니다. 고작 몇 번 본 동생 따위가 대수겠습니까?”“아버지, 제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제일 소중합니다.”“심건모의 취임까지 이제 15일 남았습니다.”동봉우의 깊은 시선이 동건우에게 머물렀다. “강헌의 부하들이 웬일인지 심건모에게 복종하고 있어. 경원시를 아주 빈틈없이 다스리고 있더구나. 해커 사건이 심건모를 끌어내릴 유일한 열쇠가 될 거야.”“아들아, 고생이 많구나. 하지만 너도 조심해야 해.”“만에 하나 들통나게 되면 대신 뒤집어쓸 놈을 미리 찾아두는 거 잊지 말고.”“네. 이미 구해두었습니다.” 동건우가 덧붙였다. “제가 들키는 일은 없을 겁니다
도둑은 검은색 작업복에 검은색 모자, 그리고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는 서지원의 뺨을 후려치더니 그녀의 목을 움켜쥐고 하수구 입구 쪽으로 밀어붙였다.서늘한 목소리가 귓전에 들렸다.“한 번만 더 송서윤을 건드리면 네 목숨은 없어.”도둑은 그 한마디를 남긴 채 서류 가방 안에 있던 노트북을 챙겨 유유히 사라졌다.서지원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은 서지원이 매수한 도둑이 아니었다.송서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도둑의 실루엣은 이미 골목 모퉁이 너머로 사라진 뒤였고 바닥에는 서지원이 엉망진창이 된 채 쓰러져 있었다.송서윤은 서지원을 본체만체하며 자신의 서류 가방부터 챙겨 내용물을 확인했다.“뭐 잃어버린 거 있어?”서지원은 발목이 삐었을 뿐만 아니라 바닥에 쓸린 두 손은 피투성이였고 목에는 선명한 손자국이 남은 상태였다.송서윤은 처참한 서지원의 모습에 잠시 시선이 멈췄지만 이내 차갑게 대답했다. “아니.”서지원은 도저히 혼자 일어설 수 없었다. “구급차 좀 불러줘. 급하게 쫓아오느라 핸드폰을 못 챙겼어.”“내 물건 훔쳐 간 도둑을 네가 왜 쫓아가는데?”“서윤아...”“그렇게 부르지마. 우리 친한 사이 아니니까.” 송서윤은 서지원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119에 전화를 걸었다.구급차를 기다리던 중 정적 속에서 서지원이 입을 열었다.“서윤아, 우리 한때 제일 친한 친구였잖아. 내 것이 아닌 남자를 탐냈던 건 내가 눈이 멀어 실수한 거야. 미안해.”서지원은 목소리를 낮추며 거의 애원하듯 말했다. “제발 나 좀 용서해 주면 안 될까? 나 곧 민호 씨랑 결혼해. 우린 곧 가족이 될 거잖아.”“네가 이민호랑 결혼하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송서윤은 서지원을 향해 쏘아붙였다. “너 참 건망증도 심하네. 불과 이틀 전에 백화점에서 나 모욕하고 때리려던 게 누구였더라?”“이제 와서 무슨 가련한 척, 후회하는 척이야.”“서윤아, 난...”“뭐?”‘네가 이민호 사촌 동생인 줄 몰랐으니까!’서지원의 눈에는
그들의 첫 순간은 서로의 마음이 온전히 맞닿은 때여야 했다. 송서윤 역시 간절히 심건모를 원하는 그런 순간이어야 했다.이런 곳에서 치러질 일은 아니었다.더 안락하고 편안한 곳이어야만 했다.심건모는 기다릴 수 있었다.긴 세월을 살아갈 텐데 그 정도 기다림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끈적하고 뜨거웠던 분위기가 서서히 잦아들었다.심건모는 열기가 가신 송서윤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물었다. “누가 의심스러워?”송서윤은 기억을 더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수진은 그럴 능력이 없어요.”“음. 여수진은 제외하고.”심건모의 신뢰에 송서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송서윤은 기분이 좋아진 듯 심건모의 목을 껴안았다. “제로와는 예전에 맞붙어본 적이 있어요. 제로의 시스템은 상대방의 시스템을 침투해서 바이러스처럼 끊임없이 감염시키고 마비시켜 버리죠.”“자신이 강하다고 자부해서 그런지 시스템 백도어에는 방어벽이 그리 높지 않아요.그래서 방금 내 방어 시스템에 딱 걸린 거고요.”송서윤은 말할수록 점점 흥분되었다. “이 팀장님의 보안 센터 도움으로 내 시스템은 이미 업그레이드됐거든요.”“다음에 또 마주친다면 내 시스템은 분명 제로의 시스템을 박살 낼 수 있을 거예요.”“설령 제로를 잡지 못하더라도 더 이상 국장님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겠죠.”“안 돼.”심건모는 조잘거리는 송서윤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을 막았다. “실체를 드러내선 안 돼.”“네.”송서윤은 입으로는 수긍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제로.지난 20년간 다크웹의 지배자.그를 다시 한번 이길 수만 있다면...“만약 대규모 작전을 벌인 사람이 바로 제로라면요? 만약 나만이 제로를 막을 수 있다면요?”송서윤이 끈질기게 묻자 심건모의 차분한 눈동자가 그녀를 향했다. 그가 입을 열려는 찰나, 송서윤이 얼른 그의 입술을 훔쳤다.심건모에게 아부하는 몸짓이었다.심건모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송서윤의 입술은 참 부드러웠다. 그녀가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