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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Penulis: 빅비58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5-22 22:32:24

돌은 차가웠다.

아니, 차갑다는 감각조차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노파의 모습을 한 왕비는 숨을 들이마시려 했다. 그러나 좀처럼 호흡이 이어지지 않았다. 가슴 한쪽이 바위에 눌려 있었고, 목에서는 노파의 연약한 갈라진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노파.

주름진 손, 굽은 등, 한때 거울 앞에 서던 몸과는 전혀 다른 형체. 이게 지금의 자신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지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끝이, 누구보다도 추악한 노파의 모습이라니. 웃음 비슷한 숨이 흘러나왔다. 젊었을 때의 목소리였다면, 이렇게까지 처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순간, 왕비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분노도, 저주도 아니었다.

이름이었다.

아직 왕비가 아니었고, 마녀도 아니었을 때 불리던 이름.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노파의 굳은 가슴이 잠시 풀리는 듯했다. 그때의 그녀는 귀족 가문의 하녀였다. 대리석 바닥을 새벽마다 닦았고, 주인 아가씨의 드레스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숨을 죽이고 바느질을 했다. 손은 늘 바빴고, 시선은 항상 낮아야 했다.

"눈 마주치지 마." "먼저 말하지 마." "웃어도 소리 내지 마."

그런 규칙 속에서 살았지만, 그녀는 그 생활을 싫어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귀족 아가씨는 언제나 아름다웠고, 그녀는 언제나 그 곁에 있는 존재였다. 누구도 그녀에게 누가 더 예쁜지를 묻지 않았다. 누구도 그녀를 평가하지 않았다. 그저

"손이 야무지네." "일을 믿고 맡길 수 있겠어."

그 말이면 충분했다. 그녀는 거울을 오래 보지 않았다. 아가씨의 머리를 빗겨주며 자연스럽게 비치는 자기 얼굴을 스쳐 지나가듯 볼 뿐이었다. 그 얼굴은 특별할 것도, 흉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게 좋았다.

왕비는 돌 아래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려다 멈췄다. 노파의 손은 말을 듣지 않았다. 관절은 굳어 있었고, 손톱은 부러져 있었다.

이 손으로, 아가씨의 드레스를 정리했었다.

이 손으로, 머리 장식을 닦았고, 왕관을 받쳐 들었고,

그리고 나중에는 사과를 깎았다.

독을 바른 것도, 바로 이 손이었다.

그 사실이 숨이 막히듯 늦게 와서 가슴을 눌렀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가 보는 사람이 아닌 보여지는 사람이 된 건. 아가씨 대신 연회에 나섰던 날.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멈칫했던 그 순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아름답군요."

그 말은 축복처럼 들렸지만, 곧 그녀를 갉아먹는 사슬이 되었다. 그 하녀 소녀는 이런 미래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귀족 아가씨의 뒤에 조용히 서서 그림자처럼 살아가던 자신이, 이렇게 추한 모습으로 절벽 아래에서 죽어가게 될 줄은.

왕비는 깨달았다.

자신이 두려워했던 건 백설공주가 아니었다. 다시 하녀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아름다움을 잃은 뒤에도 계속 살아 있어야 하는 미래, 그 미래가 두려웠다. 숨이 크게 한 번 새어 나왔다. 아직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왕비는 마지막으로, 이 노파의 몸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 그 하녀 소녀를 떠올렸다. 이름이 있었던 시절. 거울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었던 시절. 아무도 그녀에게 가장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았던 시절. 그 시절의 그녀는 지금보다 덜 빛났을지 몰라도, 적어도 이런 모습으로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은 여전히 무거웠다. 하지만 그보다 무거운 건, 이미 선택해버린 길이었다.

돌 아래에서, 노파의 숨이 한 번 크게 흔들렸다. 기억은 더 이상 멈추지 않았다. 마치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떠올릴 수 없다는 걸 몸이 먼저 알고 있는 것처럼. 귀족 가문의 대리석 바닥도, 아가씨의 드레스도 천천히 뒤로 밀려났다.

그보다 훨씬 오래된 냄새가 떠올랐다.

눅눅한 나무 냄새. 비에 젖은 천.아침마다 끓이던 묽은 수프에서 올라오던 이름 없는 풀 냄새.

고아원이었다.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곳에 있었다. 부모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아이들은 많았고, 침대는 늘 부족했다. 같은 담요를 두세 명이 나눠 덮는 날도 있었다.울면 혼났고, 아프면 더 조용히 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주 일찍 배웠다.

울지 않는 법. 부르지 않는 법. 눈에 띄지 않는 법.

착한 아이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선생들은 늘 말했다.

"얌전해야 해." "말 잘 들어야 해." "쓸모 있는 아이가 되어야지."

그녀는 그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켰다. 다른 아이들이 투정을 부릴 때 그녀는 바닥을 닦았고,남은 빵 조각이 있을 때 가장 마지막에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벌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쫓겨나지 않았다. 그게 전부였다.

그곳에는 거울이 없었다. 자기 얼굴을 확인할 이유도 없었다. 아름다움은 그 아이들에게 아무 쓸모가 없었으니까. 대신 손이 중요했다.

빨래를 할 수 있는 손. 바느질을 배울 수 있는 손. 누군가에게 맡겨질 수 있는 손.

그녀는 그 손을 열심히 움직였다. 그러다 어느 날, 고아원을 찾은 귀족 부인이 아이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그 시선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물건을 고르는 눈이었다.

그녀는 그때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눈에 띄지 않게. 괜히 선택받지 않게.

하지만 손을 보던 그 여자는 말했다.

"저 아이."

그 말 한마디로 그녀는 고아원을 떠났다. 그게 구원이었는지, 그저 다른 종류의 굴레였는지 그때의 그녀는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선택된 아이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훗날 어떤 대가를 요구할지 아직은 몰랐다.

노파의 입술이 떨렸다. 평생을 살아오며 수없이 선택을 해왔다고 믿었지만, 사실 그녀는 언제나 선택당하는 쪽이었다.

고아원에서, 귀족 가문에서, 왕궁에서조차도.

아름다움조차 스스로 원한 것이 아니라 요구받은 것이었다. 그 사실이 이제야, 돌보다 무겁게 가슴을 눌렀다. 숨이 가늘게 새어 나왔다. 아주 어린 시절, 그 고아원 바닥에서 작은 몸을 웅크리고 잠들던 아이는 단 한 번도 왕비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 아이가 원했던 건 그저,

내일도 쫓겨나지 않는 것. 오늘보다 아프지 않는 것. 누군가에게 필요 없는 존재가 되지 않는 것.

그 소망이 이렇게까지 비틀려 이 노파의 몸으로 돌아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

왕비는

아니, 노파는

그 아이를 처음으로 불러보고 싶어졌다.

이름이 있었던 아이를.

마차는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무 바퀴가 자갈을 밟을 때마다 덜컹거리는 소리가 일정하게 반복됐다. 소녀는 마차 안쪽에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등받이에 기대지도 못한 채,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그 손은 작았지만 이미 굳어 있었다.

귀족 부인은 창밖을 보고 있다가 문득 시선을 돌려 소녀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넌 왜 손이 이렇게 굳었니."

"일을... 많이 해서요."

"그래서 널 데려가는 거야."

소녀의 눈이 조금 커졌다. 부인은 말을 이었다.

목소리는 낮았고, 부드러웠지만 단정했다.

"널 하녀로 데려가는 건 내 딸을 잘 보필할 것 같아서야."

소녀는 그 말을 이해하려 애썼다.

보필이라는 단어는 고아원에서는 잘 쓰이지 않았다.

부인은 소녀의 손을 한 번 더 보았다.

"다른 아이들 손은 말랑하지. 아직 굳을 필요가 없는 손들이거든. 그런데 넌 달라. 이 손은... 일을 잘하는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손이야."

칭찬처럼 들렸지만 소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차는 저택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멀리서 높은 담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인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딸은 말이야, 조금 예민한 성격이야. 쉽게 상처받고, 쉽게 화를 내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아이지. 그러니까 네가 비위를 맞춰가며 잘 돌봐야 해."

그 말은 부탁이 아니었다. 조건이었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아원에서 배운 대답이었다. 부인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먹을 건 줄게."

잠시 후,

"잘 곳도."

그 두 마디가 마차 안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먹을 것. 잠잘 곳.

소녀의 가슴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그건 약속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선택지의 끝이었다. 소녀는 그 순간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오늘 밤 비를 맞지 않아도 되는 곳. 내일 아침 쫓겨나지 않아도 되는 자리. 그것이면 충분했다. 마차는 계속 달렸다. 소녀는 창밖을 보지 않았다. 어차피 선택지는 없었으니까.

그녀는 자기 손을 다시 한 번 내려다보았다.

굳은 손. 일하는 손.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는 데 쓰일 손.

그 손이 훗날 무엇을 쥐게 될지, 무엇을 깎고, 무엇에 독을 바르게 될지 그때의 소녀는 알지 못했다. 그저 이 손이 자신을 오늘 하루 더 살아 있게 해줄 거라 믿었을 뿐이었다.

마차가 멈췄다.

문이 열리자, 소녀는 처음으로 저택을 올려다보았다. 숨이 아주 잠깐 멎었다. 담장은 고아원보다 훨씬 높았고, 돌은 반질반질하게 닦여 있었다. 금이 간 곳 하나 없이 모서리까지 단정했다. 무너지지 않겠다는 얼굴의 건물이었다.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자갈이 깔린 길이 길게 이어졌고, 그 길의 끝에 저택이 있었다.

소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크다...'

하지만 그 말조차조심스러웠다. 마치 소리를 내면 이 풍경이 깨질 것 같아서. 계단은 넓었고, 손잡이는 차가운 금속이었다. 손을 대자 자기 손의 거칠음이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문이 열리자 공기가 달랐다.

고아원의 공기는 늘 눅눅하고 무거웠다. 사람의 숨과 냄새가 겹겹이 쌓여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은 비누 냄새가 났고, 햇빛 냄새가 났다. 소녀는 신발을 벗으며 바닥을 힐끗 보았다. 나무 바닥은 자기 얼굴이 어렴풋이 비칠 만큼매끄러웠다.

'이걸 매일 닦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천장은 높았고, 창은 컸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아무 장애물 없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고아원에서는 빛이 늘 부족했다. 사람보다 먼저 어둠이 자리를 잡곤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빛이 남아돌았다. 소녀는 속으로 조심스럽게 감탄했다.

'여기서는 밤도 덜 무서울 것 같아...'

복도를 따라 걸을 때마다 그림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소녀는 그림 속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괜히 눈이 마주칠까 봐.

하지만 옷은 보였다.

비단. 레이스. 주름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소매.

'저 옷을 입는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그런 생각은 금방 접었다. 자기 몫이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자기에게 허락된 것만 떠올렸다.

이 집에서는 비를 맞지 않아도 될 것이다.

겨울에 손이 얼어붙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밤에 몰래 일어나 자리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조금 따뜻해졌다. 소녀는 자기 마음이 이렇게 쉽게 움직인다는 게 조금 무서웠다. 하지만 그 무서움보다 안도감이 더 컸다.

'여기서는... 조금 오래 살아도 되겠다.'

그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소녀는 곧 만날 귀족 아가씨를 떠올리며 자세를 더 낮췄다. 이 집이 이렇게 아름다운 만큼, 그 안에서 요구될 것들도 분명 많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면서.

그래도. 그래도 이 저택은 그녀가 지금까지 본 어떤 곳보다 안전해 보였다. 그 착각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아직 알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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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차는 어느새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돌길은 어느새 흙길로 바뀌었고, 바퀴는 부드럽게 흙을 밟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창밖을 바라보던 클레르의 눈이 크게 반짝였다. 설렘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이 산 진짜 예쁘다!!"엘로이즈는 잠시 책에서 시선을 떼고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창문 너머로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초록색 나무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햇살을 머금은 잎사귀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반짝였다.숲 사이로는 맑은 계곡물이 은빛으로 반짝였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야생 과일 나무들이 탐스럽게 열매를 맺고 있었다. 나뭇가지 위에서는 참새 몇 마리가 쥐저기고 있었고, 다람쥐 한 마리가 줄기를 타고 재빠르게 오르내리는 모습도 보였다.엘로이즈는 잠시 그 풍경을 바라보다 미소지었다"...그래. 예쁘네.""언니! 저기 참새도 있어!""우와! 다람쥐다!""저 계곡도 엄청 시원해보인다!!"클레르가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해맑게 웃는 얼굴에는 꾸밈도, 망설임도 없었다. 좋으면 좋다고, 예쁘면 예쁘다고, 그 마음을 그대로 말하는 아이였다.엘로이즈는 그런 동생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잠시 부러운 듯한 눈빛이 스쳤다.'언니도 너처럼... 마음속에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그 생각 역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엘로이즈는 조용히 시선을 거두고, 무릎 위에 놓인 책을 다시 펼쳤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한편, 마차 밖.안장 위에 앉은 루시안은 묵묵히 고삐를 쥔 채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도 푸른 숲과 햇살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 풍경은 그의 눈에 조금도 아름답게 들어오지 않았다.루시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죄 없는 아이를 죽이려 하다니...''평생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구나.'루시안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다시 묵묵히 마차를 몰았다.마차는 더욱 깊은 산길을 따라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루시안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26화

    잠시 후. 드 로베르 저택 앞마당. 따뜻한 햇살이 돌바닥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며 두 자매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로이즈는 은은한 아이보리색 드레스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햇살을 머금은 듯한 부드러운 색감은 그녀의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 옆에는 연한 크림색 드레스를 입고, 곱게 땋은 금빛 머리에 파란 리본을 단 클레르가 종종걸음으로 따르고 있었다. 파란 리본은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고, 클레르의 얼굴에는 꽃밭으로 향한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저택 앞에는 검은 마차 한 대가 조용히 준비되어 있었다. 말들은 숨을 내쉬며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고, 마차 앞에는 늙은 마부가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루시안 로웬.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온화한 미소를 띤 그는 허리를 살짝 숙였다. "아가씨, 오셨습니까." 인사를 마친 루시안은 조용히 마차 문을 열어 두 사람을 맞이했다. 엘로이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마차에 오르기 전 루시안을 바라보았다. 늘 보던 온화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미소를 짓고 있는데도 얼굴에는 어딘가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의 눈빛은 이유를 알 수 없을 만큼 슬퍼 보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내 대수롭지 않게 넘긴 엘로이즈는 클레르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클레르는 밝게 웃으며 먼저 마차에 올라탔다. 계단을 오르다가 몸을 홱 돌려 엘로이즈를 바라봤다.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언니! 우리 가면 후레지아 꽃 많이 따와서 꽃병에 예쁘게 장식해놓자! 언니 방에도 놓고 내 방에도 놓으면 진짜 예쁘겠다!" "그래, 그래. 일단 타. 조심히." "응!" 클레르는 신이 난 듯 마차 안으로 쏙 들어갔다. 엘로이즈도 뒤이어 조용히 올랐다. 두 사람이 모두 자리에 앉자, 루시안은 문을 천천히 닫았다. 문이 잠기는 소리가 철컥. 작게 울렸다. 그는 천천히 마부석으로 걸어가 안장 위에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프롤로그

    주요 등장인물 소개 그림 하일드 : 고아원 출신의 귀족가 하녀, 훗날 사악한 왕비,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지워온 소녀. 고아원에서는 울지 않는 법을 배웠다. 부르지 않는 법을 배웠다. 눈에 띄지 않는 법을 배웠다. 쓸모 없는 아이는 남겨지지 않는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녀는 항상 마지막에 손을 내밀었고, 항상 조용히 있었고, 항상 문제되지 않는 존재로 남았다. 그렇게 살아남았다. 귀족가에 들어온 뒤, 그 규칙은 더 정교해진다. 틀리지 않는 법. 말보다 먼저 표정을 읽는 법.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8화

    쾅!!굵은 가지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짧게, 아주 짧게 엘로이즈의 목에 걸려 있던 진주 목걸이가 빛을 받았다. 햇빛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반응하듯, 한 점에서 번져 나오는 미세한 반짝임. 그 반짝임이 공기를 스쳤다. 그리고,툭. 가지의 낙하 궤도가 아주 미세하게 비틀렸다. 정확히 머리 위로 떨어지던 것이 한 치 옆으로 어긋났다. 쾅!가지가 엘로이즈의 바로 옆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흙이 튀었고, 꽃잎 몇 장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엘로이즈!" 부인의 목소리가 터졌다. 그녀가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7화

    철문이 완전히 닫힌 뒤에도 마부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은 여전히 고삐 위에 얹혀 있었고, 시선은 묘지 한쪽ㅡ 그림 하일드의 뒷모습이 사라진 방향에 머물러 있었다. 바람이 한번 스쳤다. 마른 풀들이 낮게 스쳤고, 철문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마부는 그제야 고개를 조금 숙였다. "...하." 짧은 숨이 새어 나왔다. 그는 아무도 없는 쪽을 향해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괜히 겁줘서... 미안했다." 말은 조용했지만, 아까의 위협과는 전혀 다른 결이였다. "암살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ㅡ" 잠깐 말을 멈췄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6화

    마부의 말이 끝난 뒤에도 마차는 같은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 말발굽이 규칙적으로 울리는 소리. 그 모든 것이 이야기와 전혀 상관 없다는 듯 계속 이어졌다.그림 하일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손은 무릎 위에 그대로 올려져 있었지만 손끝에 힘이 아주 조금 들어가 있었다.그때, 마부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 대신 말이다..."고삐를 쥔 손을 살짝 비틀었다."겉으로 보기엔 참 점잖지."짧은 웃음."말도 조용하고, 체면도 챙기고."잠시 후"근데 그런 인간일수록 더 무서운 법이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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