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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Author: 빅비58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2 22:33:14

복도를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 그들은 한 번 멈춰 섰다. 앞에 서 있던 여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린 나이 많은 하녀가 다가와 있었다. 저택 안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 특유의 굳은 기척이 있었다. 하녀장은 귀족 부인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였다.

"이 아이가 오늘 새로 들어온 아가씨의 하녀입니까."

"그래요."

부인의 말은 짧았고, 망설임이 없었다.

"손을 보니 일은 할 줄 알겠더군요."

하녀장은 그 말에 더 묻지 않았다. 귀족 부인은 덧붙였다.

"우리 애 성격이 조금 예민한 건 저한테 이미 들었어요."

"네. 그럼, 잘 가르치겠습니다."

"규칙만 제대로 익히게 해요. 우리 애 곁에 설 아이니까."

그 말은 부탁도, 걱정도 아니었다. 지시였다. 하녀장은 소녀를 돌아보았다. 그 눈빛에는 연민도, 호기심도 없었다. 그저 이 집에 새로 들어온 역할 하나를 확인하는 눈이었다.

"따라와."

그 한마디에 소녀의 발이 움직였다. 하녀장은 소녀를 데리고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짧은 복도 끝으로 이동했다. 창은 작았고, 빛은 충분하지 않았다. 일을 가르치기엔 딱 알맞은 장소였다.

"이름."

하녀장이 먼저 말했다. 소녀는 잠깐 망설이다가 작게 대답했다.

"그림 하일드입니다..."

하녀장은 그 이름을 반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는 이름이 크게 중요하지 않아."

소녀의 시선이 바닥에 더 깊이 박혔다.

"중요한 건 역할이야."

하녀장은 소녀의 손을 보았다. 굳은 손. 이미 여러 번 일에 길들여진 손.

"아가씨의 시녀는 아가씨의 하루를 흐트러지지 않게 만드는 자리야. 아침에 기분이 상하면 하루가 망가진다. 하루가 망가지면 책임은 네 몫이야."

그 말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마치 당연한 순서처럼.

"그러니까 기억해라."

하녀장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첫째. 아가씨의 얼굴을 볼 때는 표정을 먼저 본다. 말보다 먼저, 숨보다 먼저."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아가씨의 말은 말 그대로 듣지 않는다."

하녀장은 짧게 웃었다. 웃음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짧은 숨이었다.

"'괜찮다'는 말은 대개 괜찮지 않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좋아'는 네가 알아서 틀리지 말라는 뜻이고."

소녀의 손끝이 무릎 위에서 조금 더 굳어졌다.

"셋째."

하녀장은 고개를 숙여 소녀에게 눈높이를 맞췄다.

"실수했을 때 변명하지 마라. 설명하지 마. 울지도 마라. 그건 아가씨를 더 피곤하게 만든다."

잠시 침묵.

"그리고 마지막."

하녀장은 몸을 바로 세웠다.

"네가 불편한 건 중요하지 않아."

그 말은 조용했지만 단단했다.

"아가씨가 편안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하녀장은 말을 마치고 잠시 소녀를 바라보았다.

"지킬 수 있겠지."

"네..."

"좋아. 그럼 이제 네가 왜 여기에 있는지 직접 보게 될 거다."

그 말과 함께 복도 끝에서 다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보다 조금 더 가까운 소리. 하녀장은 소녀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기억해. 여기서는 틀리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복도 끝에서 가볍고 규칙적인 발소리가 들려왔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 귀족 아가씨가 다가와 서 있었다. 소녀와 나이가 비슷해 보였지만,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흑발 머리는 윤기가 흘렀고 한 올도 흐트러짐 없이 정리되어 있었다. 피부는 햇빛을 과하게 맞은 적이 없는 듯 깨끗했고, 눈매는 길고 또렷했다. 무엇보다도, 어린아이에게서 나올 법하지 않은 기품이 있었다. 말을 하지 않고 서 있기만 해도 주변의 공기가 자연스럽게 정돈되는 느낌. 소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숨을 고르는 데에만 온 신경이 쏠렸다. 아가씨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위아래로 훑는 시선이었지만 무례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잠시 후, 아가씨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안녕."

정말 다정한 웃음이었다. 고아원에서 보던 관리인의 웃음보다도, 귀족 부인의 미소보다도, 훨씬 부드러웠다. 소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더 숙였다.

"오늘부터 여기서 일하게 된 아이구나?"

"네..."

"이름은?"

"그림 하일드입니다..."

"그림 하일드. 예쁜 이름이네."

소녀의 가슴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 그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아가씨는 한 걸음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 또렷했다. 눈동자 안에는 자기 자신이 비쳤다. 작고, 조심스럽고, 이 집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앞으로 내 곁에 있으면 되겠네."

아가씨는 웃으며 말했다.

"잘 부탁해."

"네... 잘 모시겠습니다."

그 말에 아가씨는 만족한 듯 미소를 조금 더 깊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소녀는 설명할 수 없는 아주 미세한 감각을 느꼈다. 그 미소가 자기를 향해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위에 놓여 있는 것 같다는 느낌. 마치 이미 정해진 자리로 자기를 밀어 넣는 것처럼. 아가씨는 다시 한 번 웃었다.

"괜찮아. 나, 까다롭지 않아."

그 말이 왜인지 모르게 소녀의 손을 더 굳게 만들었다. 그녀는 아직 몰랐다. 이 다정한 미소가 훗날 거울보다 더 자주 자기를 평가하게 될 얼굴이 되리라는 걸.

아가씨의 방은 저택에서도 가장 빛이 잘 드는 곳에 있었다. 창문은 크고, 커튼은 얇았으며, 햇빛은 언제나 아가씨 쪽으로 먼저 떨어졌다. 그림 하일드는 아가씨의 머리를 빗고 있었다. 손놀림은 조심스러웠고, 숨조차 크게 쉬지 않았다.

"오늘은 이 리본이 좋을 것 같아."

아가씨는 거울을 보며 말했다.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부드럽고, 나긋 나긋 했다. 그림 하일드는 준비해둔 리본 중 하나를 집었다. 색도, 질감도 아가씨가 평소 좋아하던 것이었다. 조심스럽게 머리카락 사이로 리본을 끼워 넣었다.

"이렇게요?"

아가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림 하일드는 손을 멈춘 채 거울 속 아가씨의 표정을 살폈다. 미소는 그대로였다.

"응."

아가씨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 말에 그림 하일드는 숨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어제 들었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겹쳐졌다.

''괜찮다'는 말은 대개 괜찮지 않다는 뜻이다.'

그림 하일드는 손을 내리지 않은 채 리본의 각도를 다시 살폈다. 조금 더 왼쪽인지, 아니면 이미 지나친 건 아닌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거웠다.

그때, 아가씨는 거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덧붙였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왼쪽으로 기울어도 괜찮을 것 같아."

말투는 여전히 다정했다. 부탁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림 하일드는 그 말이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는 뜻이라는 걸 느꼈다. 그녀는 황급히 손을 움직였다. 아주 조금. 정말 눈으로만 겨우 구분될 만큼.

"이제는 어때요?"

"응."

다시, 같은 대답.

"괜찮아."

그림 하일드는 이번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손을 내리면서도 확신은 없었다. 괜찮다는 말이 이번엔 어디까지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림 하일드."

이름이 불렸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처음 들었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너무 긴장하지 마."

아가씨는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는 다 괜찮아."

"죄송합니다."

그 순간, 아가씨의 눈썹이 아주 잠깐, 정말 잠깐 움직였다. 하지만 그림 하일드는 그걸 보았다. 아가씨는 곧 다시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사과할 일도 아니야."

그러면서 거울 속 자신을 다시 보았다.

"다만... 다음엔 처음부터 내가 말한 대로 해주면 좋겠어."

그림 하일드는 그 말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이해했다. 괜찮다는 말은 끝이 아니라 유예라는 것. 미소는 허락이 아니라 감시라는 것. 그날 이후로 그림 하일드는 아가씨가 괜찮아라고 말할 때마다 손에 힘을 더 주게 되었다.

확인하고, 다시 보고, 혹시 모를 왼쪽과 오른쪽을 몇 번이고 바꿔보았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밤이 되어 작은 하녀 방에 누웠을 때도 그림 하일드는 리본의 위치를 떠올렸다. 왼쪽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아주 조금 더였는지. 아무도 혼내지 않았다. 벌도 없었다. 목소리는 끝까지 부드러웠다. 그런데도 그림 하일드는 그날 밤 쉽게 잠들지 못했다. 고아원에서 배운 규칙은 단순했다. 잘못하면 혼난다.

하지만 이곳의 규칙은 달랐다. 잘못해도 혼나지 않는다.

대신, 다음부터는 절대 틀리면 안 된다. 그림 하일드는 그 사실을 아주 조용히 배웠다. 그리고 그 배움은 오래도록 몸에 남았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저택의 아침 공기는 밤보다 훨씬 조용했다. 소리조차 규칙을 지키는 것처럼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아가씨의 방에 들어서기 전, 문 앞에서 아주 잠깐 숨을 골랐다. 어제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왼쪽으로.'

그 말은 이제 기억이 아니라 기준이 되어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리본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은 어제보다 더 단단했다.

망설임 없이,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이번엔 처음부터 약간 왼쪽으로. 아주 조금. 누가 봐도 의식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만큼. 리본을 매는 동안 아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매듭을 정리한 뒤 한 걸음 물러섰다.

"이렇게는 괜찮으신지요..."

아가씨는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림 하일드의 심장이 그 짧은 침묵 속에서 한 번 크게 뛰었다.

그리고, 아가씨가 웃었다. 어제보다도 더 다정한 미소였다.

"응. 오늘은 마음에 들게 매줬네."

그 말에 그림 하일드의 어깨가 눈에 띄지 않게 풀렸다. 아가씨는 거울에서 시선을 떼고 그림 하일드를 돌아보았다.

"앞으로도 이렇게 해주면 좋겠어."

말투는 부드러웠고, 눈빛은 온화했다.

"잘 부탁해, 그림 하일드."

"네. 앞으로도 잘 모시겠습니다."

그 순간, 아가씨의 미소가 조금 더 깊어졌다. 그리고 그 미소를 유지한 채 아주 조용히 덧붙였다.

"다시는... 틀리지 않게 매줬으면 좋겠어."

그 말은 속삭임에 가까웠다.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림 하일드는 왜인지 모르게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틀리지 않게. 어제는 괜찮다고 했다. 오늘은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다음엔... 아가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거울을 보았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

그 한마디가 마치 보상처럼 들렸다. 그림 하일드는고개를 숙인 채 아가씨의 뒤로 물러섰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알게 되었다. 이 저택에서 잘했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유예라는 것을. 그리고 틀리지 말라는 말은 경고가 아니라 약속이라는 것을. 그림 하일드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점점 더 많은 것을 미리 맞추기 시작했다.

말투를, 걸음 속도를, 숨 쉬는 타이밍까지.

아직 아무도 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아무도 벌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림 하일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집에서는 실수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그날 아침, 리본은 완벽하게 아주 조금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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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로이즈는 잠시 말없이 클레르를 바라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금방 "죄송해요..."하고 웃어 넘겼을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의 클레르는 달랐다. 너무 조용했다. 엘로이즈의 시선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클레르..." 클레르의 어깨가 움찔했다. 엘로이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걱정스러운 눈으로, 고개를 푹 숙인 동생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대신은 잠시 더 클레르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푹 숙인 아이. 테이블 위에 번진 소스. 굳어버린 손끝. 그는 낮게 혀를 찼다. "쯧." 그리고 냅킨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을 밀며 낮은 소리를 냈다. 부인이 눈을 들었다. "왜, 더 안 드시고요?" "입맛이 없어졌소." 대신은 아무 말도 더 하지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식당 밖으로 걸어나갔다. 무거운 발소리가 멀어졌다. 식당 안은 더 조용해졌다. 클레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포크를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고, 입술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부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클레르... 아버지 앞에서 그런 모습 보이면..." 말이 거기서 멈췄다. 클레르가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큰 눈 안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울음을 참고있는 얼굴.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부인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그녀는 잠시 클레르를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 한숨에는 피곤함과 복잡한 감정이 함께 섞여 있었다. 부인은 결국 아무 말도 더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레스 자락이 바닥 위를 조용히 스쳤다. "...먼저 일어나마." 그녀는 잠시 두 딸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몸을 돌려 식당 밖으로 걸어 나갔다. 곧 문이 조용히 닫혔다. 덜컥. 이제 식당 안에는 엘로이즈와 클레르 둘만 남았다. 엘로이즈는 한동안 말없이 클레르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인 채 울음을 참고있는 동생. 평소처럼 밝게 웃지도 못하고, 포크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던 모습. 엘로이즈의 눈빛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19화

    덜컥. 살롱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리고, 다시 조용함이 내려 앉았다. 복도에는 늦은 오후의 햇빛만 길게 깔려 있었다. 클레르는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방금 전 넘어졌던 자세 그대로. 작은 손에는 하얀 손수건이 쥐어져 있었다. 하녀가 다가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작은 아가씨. 괜찮으세요?" 하지만 클레르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눈은 멍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이네스가 서 있던 자리. 부드럽게 웃던 얼굴. 다정했던 목소리. '언니분까지 영애를 창피해하시고, 싫어하게 되실지도 모르잖아요.' 그 말이 아직 귓가에 남아 있었다. 클레르의 손이 떨렸다. "...아가씨?" 하녀가 다시 조심스럽게 불렀다. 클레르는 그제야 아주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손수건. 자기 손 안에 쥐어진 새하얀 천. 조금 전까지는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차갑게 느껴졌다. 손가락이 천을 조금 더 세게 움켜쥐었다. 꾸깃. 하얀 천이 손안에서 천천히 구겨졌다. 하녀의 얼굴이 더 굳었다. "...작은 아가씨, 어디 다치신 건 아니시죠?" "...진짜.." "...네?" "내가 진짜로... 언니를 창피하게 만들어?" "아가씨..." "내가 자꾸 뛰어다녀서... 말도 안 듣고... 그래서 언니도...나 싫어하게 되는 거야?"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작은 아가씨." 하녀가 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다급히 말했다. 하지만 클레르는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손수건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까까지 그렇게 신나게 뛰어다니던 아이가 거짓말처럼 조용해져 있었다. 복도 창문 사이로 바람이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그 바람에 클레르의 금빛 머리카락 끝이 아주 약하게 흔들렸다. 그녀의 손안에서, 하얀 손수건이 점점 더 작게 구겨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드 로베르 저택의 식당은 조용했다. 하인들이 벽 쪽에 조용히 서 있었고, 식당 안에는 나이프와 포크가 부딪히는 작은 소리만 간간히 들렸다. 엘로이즈는 평소처럼 단정한 자세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8화

    쾅!!굵은 가지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짧게, 아주 짧게 엘로이즈의 목에 걸려 있던 진주 목걸이가 빛을 받았다. 햇빛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반응하듯, 한 점에서 번져 나오는 미세한 반짝임. 그 반짝임이 공기를 스쳤다. 그리고,툭. 가지의 낙하 궤도가 아주 미세하게 비틀렸다. 정확히 머리 위로 떨어지던 것이 한 치 옆으로 어긋났다. 쾅!가지가 엘로이즈의 바로 옆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흙이 튀었고, 꽃잎 몇 장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엘로이즈!" 부인의 목소리가 터졌다. 그녀가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7화

    철문이 완전히 닫힌 뒤에도 마부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은 여전히 고삐 위에 얹혀 있었고, 시선은 묘지 한쪽ㅡ 그림 하일드의 뒷모습이 사라진 방향에 머물러 있었다. 바람이 한번 스쳤다. 마른 풀들이 낮게 스쳤고, 철문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마부는 그제야 고개를 조금 숙였다. "...하." 짧은 숨이 새어 나왔다. 그는 아무도 없는 쪽을 향해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괜히 겁줘서... 미안했다." 말은 조용했지만, 아까의 위협과는 전혀 다른 결이였다. "암살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ㅡ" 잠깐 말을 멈췄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6화

    마부의 말이 끝난 뒤에도 마차는 같은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 말발굽이 규칙적으로 울리는 소리. 그 모든 것이 이야기와 전혀 상관 없다는 듯 계속 이어졌다.그림 하일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손은 무릎 위에 그대로 올려져 있었지만 손끝에 힘이 아주 조금 들어가 있었다.그때, 마부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 대신 말이다..."고삐를 쥔 손을 살짝 비틀었다."겉으로 보기엔 참 점잖지."짧은 웃음."말도 조용하고, 체면도 챙기고."잠시 후"근데 그런 인간일수록 더 무서운 법이다."그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5화

    거울 속에서 서로의 시선이 잠시 맞물려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아직도 자신의 얼굴이 거울 안에 또렷하게 있다는 것이 조금 낯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희미하게 입가를 움직였다. 조심스러운 미소였다. 마치 웃는 방법을 천천히 떠올리는 사람처럼. "칭찬 감사합니다, 아가씨.." "지금... 웃은거야?" 그림 하일드는 잠깐 당황한 듯 눈을 내렸다. 엘로이즈의 미소가 조금 더 깊어졌다. "너 웃는 거..." 그녀는 거울 속에서 그림 하일드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았다. "처음 보는 것 같아." 그 말은 놀림도 아니었고 비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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