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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Author: 빅비58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3 20:12:01

그날 아침 식사 시간.

식당은 저택에서 두 번째로 빛이 많이 드는 공간이었다. 긴 테이블 위에는 은식기와 얇은 도자기 접시가 정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빵은 이미 적당한 두께로 썰려 있었고, 수프에서는 희미한 김이 올라왔다. 그림 하일드는 아가씨의 오른편, 반 걸음 뒤에 서 있었다.

시선은 낮게. 숨은 일정하게. 소리는 나지 않게.

아가씨는 자리에 앉아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묵직한 발소리가 들어왔다. 아가씨의 아버지였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으며, 말보다 시선이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었다.

궁정 대신.

왕의 곁에서 재정을 맡고, 조약을 검토하고, 귀족들의 이해를 조율하는 사람. 그는 집에서도 걸음이 일정했다. 과장도, 낭비도 없었다. 그는 자리에 앉기 전 식탁을 한 번 훑어보았다. 식기, 접시, 딸의 표정, 그리고 딸의 뒤에 서 있는 그림 하일드.

그 시선이 아주 잠깐 멈췄다. 짧았지만, 분명히 멈췄다.

그림 하일드는 그 멈춤을 느꼈다. 고개를 더 숙이지도, 더 들지도 않았다. 그저 그대로.

"저 아이가.. 새로 들어왔다는 하녀냐."

남자의 목소리는 낮았다. 부드럽지도, 거칠지도 않았다.

사실을 확인하는 어조였다. 아가씨가 웃으며 대답했다.

"네. 며칠전부터 제 곁에 서기로 했어요."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그림 하일드를 다시 보았다.

이번에는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였다.

손을 먼저 보았다.

굳은 손. 짧게 정리된 손톱. 하녀장의 규칙을 잘 지킨 자세. 그는 천천히 말했다.

"손은 쓸 줄 아는군."

칭찬도, 감탄도 아니었다. 평가였다.

그림 하일드는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배운 대로 하겠습니다."

남자는 그 말에 작게 코로 숨을 내쉬었다.

웃음도 아니고, 불만도 아니었다.

"배운 대로라."

그는 딸을 보았다.

"마음에 드느냐."

아가씨는 잠시 포크를 내려놓고 아버지를 향해 미소 지었다.

"네. 마음에 들어요."

식당 안의 다른 하인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림 하일드의 심장은 한 박자 늦게 뛰었다. 남자는 다시 수프를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게 되면 바꾸면 된다."

아주 자연스러운 말이었다. 날카롭지도 않았다. 위협도 아니었다. 그저 이 집의 질서를 설명하는 문장이었다. 그림 하일드는 그 말의 무게를 몸으로 이해했다. 이 저택에서 바꾼다는 건 물건에도, 사람에게도 같이 쓰이는 단어라는 걸. 아가씨는 아무렇지 않게 빵을 작게 잘랐다.

"그럴 일 없을 거예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림 하일드는 틀리지 않거든요."

식탁 위의 빛이 잠시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남자는 그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그림 하일드를 보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그림 하일드는 손끝에 힘을 더 주었다. 남자는 수프를 내려놓고 말했다.

"틀리지 않는 건 능력이 아니라 운이다."

식당 안의 공기가 한 겹 더 무거워졌다.

"운은 언제든 바뀐다."

그 말은 딸에게 한 것인지, 그림 하일드에게 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아가씨는 잠시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웃었다.

"아버지는 항상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녀는 가볍게 말했다.

"하지만 전 운보다 습관을 믿어요."

그리고 아주 조용히 덧붙였다.

"잘 길들여진 습관은 운보다 오래 가거든요."

그림 하일드의 등줄기가 식은 듯 서늘해졌다. 아버지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멈췄다. 이번에는 딸에게서 그림 하일드로.

잠깐의 침묵.

그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 순간 그림 하일드는 알았다. 자신은 이 집에서 단순히 '아가씨의 하녀'가 아니라—

관찰 대상이라는 것을. 그리고 틀리지 않는다는 약속이 이제는 아가씨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날 아침의 식사는 끝까지 조용했다.

은식기는 정확히 부딪혔고, 빵 부스러기는 흩어지지 않았으며, 아가씨는 단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림 하일드는 그날 이후로 자신의 손뿐 아니라 등 뒤의 시선까지 의식하게 되었다.

그날 점심의 살롱 시간.

왕실과 가까운 몇몇 가문의 영애들이 모여 있었다. 이 모임은 사교의 형식을 띠고 있었지만, 실상은 왕의 귀에 가장 가까운 두 가문의 딸들이 나란히 앉는 자리였다. 한쪽은 왕의 정책을 설계하는 궁정 대신 가문. 그리고 다른 한쪽은 왕실 재정을 장악한 재무대신 가문.

정책과 돈.

왕의 양쪽 팔이라고 불리는 두 가문은 겉으로는 협력했지만, 왕이 누구의 말을 더 오래 듣는가에 따라 궁정의 바람은 달라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각 가문의 외동딸이 있었다. 재무대신 가문의 영애는 오늘도 단정하고 절제된 차림이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눈을 피하지 않는 옷. 자신의 집안이 실리를 다룬다는 걸 아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 아이가.. 새로 들어왔다는 영애의 하녀인가요?"

시선은 궁정 대신의 딸, 아가씨의 뒤에 서 있는 그림 하일드에게 향해 있었다. 아가씨는 부드럽게 웃었다.

"네. 며칠전부터 제 곁에 두고 있어요."

"아, 그렇군요."

영애의 입꼬리가 조용히 올라갔다.

"그림 하일드."

아가씨가 자연스럽게 말했다.

"과자 접시가 비었네. 가서 더 가져다 줄래?"

"네, 아가씨."

그림하일드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문쪽으로 향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아주 작게 났다.

그 순간 그 영애의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갔다.

"저 아이.. 고아원 출신이라 들었는데..."

찻잔을 들며 무심하게 덧붙였다.

"생각보단 꽤 예쁘장하게 생겼더군요."

테이블 위 공기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다른 아가씨들이 아주 작게 시선을 주고받았다. 아가씨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저도 걱정했어요."

말은 부드러웠다.

"혹시 둔하지 않을까 해서요. 그런데 생각보다 이해력도 빠르고, 일도 야무지게 잘하더라구요."

칭찬처럼 들리는 문장.

영애는 찻잔 가장 자리를 손끝으로 가볍게 돌렸다.

"그렇군요."

잠시 침묵. 그리고,

"그런데..."

말끝이 조금 느려졌다.

"저런 근본도 모르는 고아원 출신 아이를 곁에 두면..."

그녀는 고개를 기울였다.

"영애의 가문의 품격이... 조금 떨어져 보이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걱정. 그 단어가 너무 매끄럽게 흘러나왔다.

"게다가..."

그녀는 일부러 말을 멈췄다.

시선이 살짝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왔다.

"예전에, 영애의 동생이 알 수 없는 사고로 떠난 이후로..."

테이블 한쪽에서 찻잔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가문의 소문도 조금은 뒤숭숭했잖아요."

말은 낮았지만 분명히 들렸다.

"그런 상황에서 출신도 모호한 아이를 곁에 두면..."

그녀는 미소 지었다.

"...괜히 더 말이 붙지 않겠어요?"

다른 아가씨 중 하나가 작게 숨을 삼켰다. 살롱 안의 공기가 눈에 보이지 않게 팽팽해졌다. 아가씨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소는 그대로였다. 그러나 손에 들린 찻잔의 손잡이를 잡는 힘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품격은..."

목소리는 여전히 고왔다.

"...피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태도에서 나오는 거라고 저는 배웠어요."

영애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아가씨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소문은 늘 사실보다 빨리 자라죠."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걸 두려워해서 사람을 쓰지 않는다면 그건 품격이 아니라 겁이겠죠."

말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끝음이 조금 단단했다. 영애는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웃었다.

"역시.. 말씀은 참 곱게 하시네요."

그녀의 눈빛은 웃고 있지 않았다.

"다만 전..."

찻잔을 내려놓으며 덧붙였다.

"예쁜 건 가까이 둘수록 위험하다고 배웠거든요."

그 말이 떨어진 순간, 문이 열렸다. 그림 하일드가 과자 접시를 들고 조용히 들어왔다. 고개를 숙인 채 아무것도 듣지 못한 얼굴로. 하지만 공기가 아까와 다르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접시를 내려놓는동안 영애의 시선이 아주 노골적으로 그 얼굴 위에 머물렀다.

잠시. 그리고 다른 아가씨를 향해 돌아갔다.

아가씨는 그림 하일드를 한 번 보았다. 그 시선은 다정했지만, 그림 하일드의 얼굴에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그날 저녁 식사 전, 아가씨의 방.

아가씨의 방에는 해가 거의 기울어 빛이 부드럽게 바닥을 스치고 있었다.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커튼이 느리게 흔들렸다. 거울 앞에 앉은 아가씨의 머리카락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오늘은 리본이 아니라 얇은 진주 장식이 달린 핀을 꽂은 상태였다. 그림 하일드는 조용히 말했다.

"아가씨. 저녁 식사하실 시간입니다."

아가씨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시선을 움직였다. 거울 속에 그림 하일드의 모습이 함께 비쳤다. 작고, 조심스럽고, 늘 반 걸음 뒤에 선 얼굴.

"그림 하일드."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네, 아가씨."

"넌... 고아원에서 자랐다 했지."

질문은 가볍게 던져졌다. 마치 날씨를 묻는 것처럼.

그림 하일드의 손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네."

아가씨는 거울을 보며 말을 이었다.

"거기선... 어떤 걸 배웠어?"

공기는 여전히 고요했다. 하지만 질문은 가볍지 않았다.

그림 하일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고아원에서 배운 것.

울지 않는 법. 눈에 띄지 않는 법. 먼저 말하지 않는 법.

쓸모 있는 아이가 되는 법.

하지만 그 말들은 이 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그냥..."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을... 잘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가씨의 눈동자가 거울 속에서 아주 조금 움직였다.

"일을?"

"네."

그림 하일드는 시선을 더 낮추었다.

"청소하는 법, 바느질하는 법,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법."

마지막 말은 아주 작게 흘러나왔다. 아가씨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직접, 그림 하일드를 바라보았다.

"그건 기술이지."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난... 그게 아니라."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다가왔다.

"사람을 믿는 법이라든지, 누군가를 미워하는 법이라든지, 자기 걸 지키는 법 같은 건 배운 적 없는지 물어보는거야."

그림 하일드는 숨이 잠시 막힌 듯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질문은 익숙하지 않았다. 고아원에서 누군가를 믿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미워하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지키는 건... 애초에 가진 것이 없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 건...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아가씨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네."

그림 하일드는 고개를 숙였다.

"그냥... 쓸모 없는 아이가 되지 않는 게 중요했습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창밖에서 마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아가씨는 한동안 그림 하일드를 바라보았다. 마치 처음으로 하녀가 아닌 사람을 보는 것처럼.

"쓸모 없는 아이."

그녀가 낮게 되뇌었다.

"그럼 지금은?"

그림 하일드는 살짝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지금은... 아가씨께 필요 있는 사람이 되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비굴하지도, 과장되지도 않았다. 그저 사실처럼 들렸다. 아가씨는 그림 하일드의 얼굴을 한참 보다가 다시 거울 쪽으로 돌아섰다.

"넌 참... 이상해."

작게 웃었다.

"화도 안 내고, 바라는 것도 없어 보이고."

그녀는 천천히 덧붙였다.

"그렇게 살면... 언젠가는 누군가한테 다 빼앗기지 않을까?"

그림 하일드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빼앗길 것.

애초에 자기 것이라 부를 만한 게 무엇이 있었는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빼앗길 게 있다면, 그때 생각해보겠습니다.”

아가씨는 그 대답에 아주 조용히 웃었다.

"그래."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럼 넌... 누가 빼앗아도 괜찮은 아이구나."

그 말이 칭찬인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잠시 후— 아가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을 바꾸었다.

"가자. 저녁 늦겠다."

그림 하일드는 고개를 숙였다.

"네, 아가씨."

문을 나서기 전 아가씨는 거울을 한 번 더 보았다.

거울 속에는 자신과, 그 뒤에 서 있는 그림 하일드가 함께 비쳤다.

잠깐, 아주 잠깐 아가씨의 시선이 그림 하일드의 얼굴 위에 머물렀다.

고아원 출신. 예쁘장한 얼굴. 바라는 게 없는 아이.

그 조합이 왜인지 모르게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가씨는 처음으로 자기 옆에 선 하녀의 얼굴을 조금 더 또렷하게 의식하게 되었다.

식당 안.

촛대의 불빛이 길게 늘어진 테이블 위를 따라 차분히 흔들리고 있었고, 은식기는 정확한 간격으로 놓여있었다. 상석에는 아가씨의 아버지, 궁정 대신이 앉아 있었다. 의자에 등을 깊게 기대지는 않았지만, 몸은 단단히 중심을 잡고 있었다. 하루 종일 궁정에서 말을 다루던 사람의 피로가 아주 얇게 남아 있었다. 그의 오른편에는 귀족 부인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표정은 단정했고, 손은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다.

문이 열렸다.

아가씨가 들어섰다. 걸음은 일정했고, 고개는 곧았다. 그 반 걸음 뒤를 그림 하일드가 따르고 있었다. 궁정 대신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딸에게 닿았다가, 곧 그 뒤에 선 그림 하일드에게 옮겨졌다.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그림 하일드의 얼굴에서 잠시 더 머물렀다. 미심쩍은 눈빛이었다. 그림 하일드는 그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더 숙이지도, 들지도 않았다. 그저 정해진 위치에 서 있었다. 궁정 대신은 아주 천천히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딸을 바라보았다.

"늦었구나."

목소리는 낮았고, 감정은 실려 있지 않았다. 그는 의자에서 아주 미세하게 자세를 바로 세웠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어서 먹자."

그날 밤.

저택의 복도는 낮보다 더 고요했다. 촛불이 벽을 따라 길게 흔들렸고, 하인들의 발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대신의 서재 문이 닫혔다. 안에는 책장과 문서 더미, 그리고 낮게 타는 촛불 하나가 있었다. 귀족 부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대신은 책상에 놓인 문서를 덮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아이."

짧은 두 음절. 귀족 부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되물었다.

"혹시.. 그림 하일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대신의 목소리는 낮았다.

"어떤 아이 같소."

귀족 부인은 잠시 미소를 띠었다.

"그 아이라면... 그냥 묵묵히 일 잘하는 아이로 보이던데요."

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말도 많지 않고, 우리 애 시중도 잘 들고 있고... 우리 애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부드럽게 덧붙였다.

"왜 그러십니까."

대신은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창밖을 잠시 바라보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난... 그 아이가 탐탁지 않소."

귀족 부인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탐탁지 않다니요."

대신은 기억을 더듬듯 천천히 말했다.

"그 아이의 얼굴을 보았소."

"..."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눈은 죽어 있지 않았소."

귀족 부인은 잠시 말이 없었다. 대신은 이어 말했다.

"무엇이든 다 이루고야 말겠다는 욕심이 담긴 눈이었소."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무거워졌다. 귀족 부인은 작게 웃었다.

"고아원 출신 아이에게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대신은 고개를 저었다.

"출신과 욕심은 다르오."

그는 천천히 말했다.

"관상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다고 했소."

귀족 부인이 조용히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신의 시선이 촛불 위로 잠시 멈췄다.

"그 아이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야욕이 있소."

단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확신이 있었다.

"지금은 얌전해 보이오. 하지만 그런 눈은... 자기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오."

귀족 부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 애는 그 아이를 아끼는 것 같았습니다."

대신의 눈빛이 조금 단단해졌다.

"그래서 더 문제요."

짧은 침묵.

"우리 애 곁에 두는 건 좋소. 하지만..."

그는 분명하게 말했다.

"너무 가까이 두지는 마시오."

귀족 부인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설마... 하녀 하나가 우리 애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대신은 조용히 답했다.

"영향은 힘 있는 자에게서만 오는 게 아니오."

촛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때로는 곁에 서 있는 사람이 가장 깊이 스며드는 법이오."

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 아이를 우리 애와 너무 가까이 두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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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롱 안에는 은은한 차 향이 퍼져 있었다. 찻잔이 부딪히는 소리는 작았고, 웃음소리도 지나치게 커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귀족 영애들의 다과 시간. 하지만 왕의 양쪽 팔이라 불리는 두 가문의 외동딸이 마주 앉아 있는 이상, 이 자리는 단 한 번도 단순한 사교 모임이었던 적이 없었다.엘로이즈 드 로베르. 그리고 재무대신 가문의 영애, 이네스 드 몽브랑.두 사람의 대화는 언제나 부드러웠고, 언제나 우아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늘 얇은 칼날 같은 긴장이 숨어 있었다.그래서인지 같이 차를 마시러 온 다른 영애들은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조용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찻잔을 괜히 더 천천히 들었고, 누군가는 시선을 애매하게 창밖으로 돌렸다.한 영애가 아주 작게 한숨을 삼켰다.또 시작이구나.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찻잔을 쥔 손끝에 들어간 힘만이 보이지 않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입가에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간신히 유지된, 그러나 완벽하게 흐트러지지 않은 미소였다."...글쎄요..."엘로이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렇게까지는..."말끝은 부드러웠다.하지만 이네스는 그 틈을 그대로 넘기지 않았다."제가 영애였어도... 저 아이에게 잘해줬을지도 모르겠어요..."이네스는 천천히 이어갔다."아무리 고아원 출신의 하녀라지만... 동생분과 얼굴이 닮았다면..."이네스의 눈이 조금 휘어졌다."돌아가신 동생에게 속죄한다는 생각으로... 저 아이에게 잘해주시는 것도 이해가 되거든요."말은 다정했다. 하지만 그 다정함은 상대를 편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깊숙이 파고들기 위한 것이었다.다른 영애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엘로이즈는 잠시 찻잔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네...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아 있겠죠."그녀는 미소를 유지한 채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10화

    저택 안.문이 열리자, 바깥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밀려왔다. 조용하고, 정돈되어있고,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유지된 공간.엘로이즈가 먼저 들어섰다. 걸음은 일정했고, 자세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 뒤를 귀족 부인이 따랐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그림 하일드가 문턱을 넘었다. 문이 닫혔다. 덜컥. 소리와 함께, 바깥의 일은 완전히 끊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세 사람 모두 잠시 말이 없었다. 하인들은 멀리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고, 복도는 여전히 정숙했다.귀족 부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엘로이즈."부드러운 목소리였다.엘로이즈의 걸음이 아주 미세하게 느려졌다."네, 어머니."짧은 대답.부인은 그녀를 한 번 더 살폈다. 얼굴. 숨. 걸음. 그리고 묘지에서의 일. 사과나무. 떨어진 가지. 그 모든 것을 포함해서. 부인의 손이 아주 가볍게, 엘로이즈의 어깨에 닿았다."괜찮니."짧은 질문. 하지만 단순한 확인이 아니었다.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이 약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흔들림 없이, 단정했다.부인은 그 대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눈이 조금 더 깊어졌다."많이 놀랐을 텐데."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여전히 부드럽게, 하지만 조금 더 낮게."들어가서 쉬렴."그 말은 배려처럼 들렸지만, 동시에 결정이었다. 엘로이즈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녀는 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여전히 일정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한 번도 뒤로 돌아가지 않았다.그 순간, 그림 하일드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엘로이즈의 걸음이 방향을 틀자마자— 한 발 먼저,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것처럼 그녀의 뒤로 붙었다. 반 걸음. 항상 유지하던 그 거리. 숨도, 발걸음도 맞춘 채— 조용히 그대로 따라갔다. 지시를 기다리지 않았다. 묻지도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9화

    마차 문이 닫히고,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림 하일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은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고, 시선은 낮아져 있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고개를 들지 않은 채ㅡ 시선만,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안장 위. 카일.그는 이미 그림 하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 아무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눈. 하지만 그 시선이 닿는 순간, 그림 하일드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목이 아주 미세하게 조여드는 느낌이 되살아났다."..."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한 걸음, 천천히 마차 옆으로 다가가 발을 올리고, 안장 위로 올라탔다. 움직임은 조심스러웠고,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시선은 다시 앞으로 고정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옆에 있는 시선은 느껴지고 있었다. 카일이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그림 하일드를 바라봤다. 아주 잠시, 침묵. 그리고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씨익. 소리 없는 웃음. 짧지만 분명한 의미를 담은 웃음. 그림 하일드의 숨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긴장이 그대로 굳어졌다. 카일은 그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고삐를 쥔 손에 힘을 실었다.찰싹.짧은 소리."...가자."낮은 목소리.말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덜컹ㅡ 바퀴가 굴러갔다. 자갈 위를 밟으며 일정한 리듬으로. 마차가 다시 길 위로 나아갔다.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가 일정하게 이어졌다. 마차는 조용히 길을 따라 움직였다. 말들은 고개를 흔들며 걸었고, 바람은 옆을 스치듯 흘러갔다.안장 위의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없었다. 그림 하일드는 여전히 앞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손끝은 아주 미세히 굳어져 있었다. 그때,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너."짧은 한 음절. 그림 하일드의 어깨가 굳었다. 숨이 한 번, 얕게 끊겼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아주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8화

    쾅!!굵은 가지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짧게, 아주 짧게 엘로이즈의 목에 걸려 있던 진주 목걸이가 빛을 받았다. 햇빛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반응하듯, 한 점에서 번져 나오는 미세한 반짝임. 그 반짝임이 공기를 스쳤다. 그리고,툭. 가지의 낙하 궤도가 아주 미세하게 비틀렸다. 정확히 머리 위로 떨어지던 것이 한 치 옆으로 어긋났다. 쾅!가지가 엘로이즈의 바로 옆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흙이 튀었고, 꽃잎 몇 장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엘로이즈!" 부인의 목소리가 터졌다. 그녀가 급하게 다가와 엘로이즈의 어깨를 붙잡았다."괜찮니? 어디 다친데는 없니?" 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자리. 자기 머리 위로 떨어졌어야 할 가지. 그리고 바로 옆에 박혀 있는 무게.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괜찮아요."목소리는 평소보다 아주 조금 느렸다."맞지는 않았어요."부인은 여전히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하마터면ㅡ"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 대신 눈으로 가지를 확인했다. 굵기. 무게. 낙하 위치."...큰일 날 뻔했어."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엘로이즈는 고개를 조금 돌렸다. 떨어진 가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눈을 좁혔다."...이상하네."혼잣말처럼 낮게. 하지만 이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표정은 다시 정리되고 있었다. 그때, 조금 뒤에 서 있던 그림 하일드의 손이 굳었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방금 전. 나무의 움직임. 바람의 흐름. 그리고 철문 밖에서 느껴졌던 그 시선. 그녀의 눈이 아주 잠깐, 철문으로 향했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있었다.'...카일.'그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목이 조여오던 감각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손. 숨이 막히던 순간.'...너도 죽는다. 이해했지?'그 목소리가 그대로 되살아났다. 그림 하일드의 입술이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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