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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결혼, 진짜 신분
가짜 결혼, 진짜 신분
Author: 윤소정

제1화

Author: 윤소정
결혼 2년 차인 어느 날, 강지현은 서랍을 정리하다 실수로 혼인신고서를 찢어버렸다.

재발급받으려고 구청에 가서 직원에게 말했더니 직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고객님, 시스템에 조회가 안 되는데요. 고객님 혼인 등록 정보가 없습니다.”

“네? 그럴 리가요. 저 이제 결혼한 지 2년이나 됐는데요?”

강지현이 찢어진 혼인신고서를 내밀었다.

이에 직원도 인내심 있게 세 번이나 더 확인했지만 결국 컴퓨터 화면을 그녀 쪽으로 돌렸다.

“정말 등록 정보가 없어요. 그리고 이 도장도 비뚤었네요... 아마도 위조된 혼인신고서 같아요.”

강지현은 넋이 나간 채로 구청을 나섰다. 별안간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강지현 씨. 저는 강지현 씨 아버님의 위임 변호사 안범수입니다. 재산 상속 관련 서류에 서명하셔야 하는데 권성 로펌으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웬 사기 전화라 생각하며 이제 막 끊으려는데 상대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강지현 씨 어머님 성함이 강서영 맞으시죠? 20년 전에 강지현 씨를 해원 보육원 앞에 두고 가셨는데 조사 결과 강지현 씨가 전 해원시 갑부 주승호 씨의 유일한 혈육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가 곧장 로펌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변호사에게 평생 들을 수 없을 것 같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강지현의 친아버지인 주승호는 재벌 총수인데 지난달에 세상을 떠났다. 주식, 부동산, 회사를 합쳐 자산이 수십조 원에 달했고 강지현은 그의 유일한 딸이라고 했다.

머릿속이 윙윙거릴 때, 변호사가 대뜸 질문을 건넸다.

“강지현 씨 혼인 관계는 어떻게 되시죠?”

그 순간 남편 이도운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방 안에 찢어진 가짜 혼인신고서를 생각하면서 그녀는 펜을 꽉 잡았다.

“일단 두 시간만 기다려 주세요. 먼저 가서 확인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로펌에서 나온 그녀는 곧장 남편 회사로 향했다.

이도운의 사무실 문이 살짝 열려 있어 이제 막 들어가려는데 안에서 성숙하고 매혹적인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운아, 우리 결혼한 지도 벌써 5년이나 됐는데 대체 언제 관계를 공개할 거야?”

강지현은 순간 온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너무나 익숙한 이 목소리, 바로 그녀와 이도운의 대학 시절 지도 교수였던 백하린이었다.

백하린은 이도운보다 여섯 살 연상이지만 나이만 제외하고 외모와 몸매 전부 여신급이었다.

학교에서도 늘 인기가 많았고 모두에게 사랑받았으며 전교에서 가장 훌륭한 여자 지도 교수라는 명예까지 얻었다.

강지현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곧이어 남편의 늘 자상하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회사가 곧 상장을 앞두고 있어서 아직 지현의 도움이 많이 필요해. 게다가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하린이 너를 집에 들여선 안 된다는 유언을 남기셨어. 지금 공개했다가 할머니가 우리 자기 못살게 굴기라도 하면 나 마음 아프단 말이야...”

강지현은 귓속에 굉음이 울려 퍼지고 두 손으로 입을 꾹 틀어막았다. 행여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올까 봐...

그녀는 다 찢어진 혼인신고서를 조심스럽게 맞춰서 가방에 소중히 넣어두기까지 했는데 애초에 자신이야말로 저들에게 놀아난 광대였다니.

강지현은 빠른 걸음으로 회사를 나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마음을 가다듬고서 매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변호사님, 재산 상속 관련 서류에 지금 바로 사인할게요. 아 그리고 저는 현재 미혼이고 자녀도 없어요. 모든 유산은 저 혼자 상속받겠습니다.”

상속 절차를 마친 강지현은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다가 추돌 사고를 냈고 이마를 살짝 다쳤다.

응급실에서 상처를 치료한 뒤 문득 뭔가 생각나 산부인과로 향했다.

검사 결과를 본 그녀는 마음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니까... 제 자궁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결과만 보면 아주 건강하십니다.”

“제가 임신할 수 있다고요?”

“물론입니다.”

“부부 생활에도 전혀 지장이 없고요?”

강지현의 질문에 지긋한 나이의 여의사마저 얼굴을 붉혔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하지만 결혼 전에 건강검진을 했을 때 이도운은 그녀에게 검진 결과를 보여주면서 자궁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임신은커녕 정상적인 부부 생활조차 그녀 몸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힐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난 너랑 결혼할 거야.”

그때 이도운은 강지현의 손을 꼭 잡고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이번 생에 내게 여자는 오직 너뿐이야.”

그 약속 하나를 믿고 두 사람은 이씨 가문 어른들의 거센 반대에도 끝까지 버텼다.

시아버지는 찻잔을 집어 던지며 노발대발했었고...

“애도 못 낳는 년을 데려와서 우리 가문의 대를 끊을 셈이냐?”

시어머니는 가족 연회에서 친척들에게 눈물로 하소연했었다.

“우리 도운이가 어쩌다 저런 여자한테 홀렸는지...”

하지만 그때마다 이도운은 늘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마. 내가 있잖아.”

2년 동안 시어머니가 공공연히 퍼붓던 비난의 말들은 가슴 속 깊이 박혀서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웠었다. 알도 못 낳는 암탉이라는 둥, 아이도 못 낳는 년이랑 결혼해서 뭐 하냐는 둥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악담이었다.

...

강지현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이도운은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왔다.

180이 훌쩍 넘는 훤칠한 몸매의 남자가 흰 셔츠를 입고서 황급히 달려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문득 함께한 6년의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두 사람은 지도 교수인 백하린의 사무실에서 처음 만났다. 친구의 자료를 대신 전달해주러 갔는데 이도운과 백하린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이도운은 예의 바르게 눈인사만 건넬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뒤로 이 남자의 4년간 맹렬한 구애가 펼쳐졌다.

이도운은 학교 킹카였던 터라 외모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공부도 잘했으며 집안 형편 또한 넉넉했다.

거기에 구애 방식이 거침없는 데다가 자상하기까지 해서 그에게 넘어가지 않을 여학생이 별로 없었다.

물론 강지현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모 없이 자라 성격이 차갑고 괴팍한 그녀였지만 이도운의 열정적인 대시에 끝내 마음의 문을 열었다.

이도운이 계속 말을 걸어도 강지현이 아무 반응이 없자 큰 충격을 받아서 그런 줄로 여기며 품에 안으려 하는데 별안간 그녀가 팔을 홱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이만.”

강지현은 짧게 내뱉고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예전에는 따뜻하고 안정감을 줬던 그의 품이 이제 마냥 역겹게 느껴졌다.

차에 올라탄 후에도 이도운은 여전히 그녀의 상태를 걱정했다.

“무슨 일 있었어? 평소에는 항상 조심해서 운전하더니 오늘은 어떻게 된 거야?”

“...”

강지현은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시선이 손에 머물렀는데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가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났다.

이도운은 무시당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다.

이에 그녀가 다시 한번 피했다.

“왜 또 화를 내고 그래? 알았어. 말하기 싫으면 더 강요하지 않을게. 오늘 집에 귀한 손님이 오셔서 아줌마더러 네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준비하라고 했어. 맛있는 거 먹고 기분 좀 풀어.”

이 남자는 자상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가 이럴수록 강지현은 오히려 헛웃음만 새어 나왔다.

“화내지 말고 기분 풀자, 응? 이 고비만 넘기거든 계속 옆에 있어 줄게. 요즘 회사 상장을 앞두고 있어서 나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어.”

이도운은 그녀가 기분이 풀린 줄 알고 덩달아 웃었다.

“그러게. 나 기분 엄청 좋아. 인생이 정말 다채로워졌다고나 할까?”

말 속에 숨겨진 뜻이 있었지만, 이도운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이씨 가문 저택은 해원시에서 가장 비싼 지역인 레이 파크에 있는데 별장 부지만 거의 170평에 달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다 강지현이 졸업 후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이도운과 함께 회사에서 발로 뛰며 일군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위층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아이의 목소리와 부드럽고 달콤한 여자 목소리였다.

남자아이는 강지현과 이도운이 금방 결혼했을 때 입양한 아이였다. 올해 다섯 살이고 이름은 이윤후였다.

강지현이 고개를 들자 예상대로 백하린이 보였다. 그녀는 무려 5년 만에 나타났다.

파란색 니트 원피스를 입고 긴 웨이브 머리를 한 백하린은 서른이 넘었지만, 얼굴은 여전히 20대 초반처럼 앳돼 보였고 몸짓마다 성숙미가 물씬 풍겼다.

“지현아, 누가 왔는지 봐봐.”

이도운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낮고 깊은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흥분이 담겨 있었다.

강지현은 이 인간이 이렇게 들뜬 모습을 처음 보게 되었다.

평상시에 그녀에게 아무리 다정하고 잘해준다 해도 이렇게까지 흥분하진 않았었다.

그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남자의 원초적인 애정이었다.

“백 교수님?”

강지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놀란 척했지만, 속으로는 역겨움이 극에 달했다.

눈앞의 백하린은 단정하고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 사무실에서 보여줬던 애교 넘치는 모습과는 아예 딴판이었다.

“지현아, 오랜만이야.”

백하린은 이윤후의 손을 잡고 서둘러 위층에서 내려오더니 강지현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강지현의 시선은 이윤후에게 향했다.

이도운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지현이 예전에 지냈던 보육원에서 남자아이를 입양하자면서 이름은 이윤후로 짓자고 상의했었다.

아이를 입양하면 이씨 가문의 어른들을 상대하기 수월할 것이고 부모님도 더는 강지현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때 강지현은 이도운이 자신을 배려한다고 생각하여 흔쾌히 동의했었다.

하지만 이윤후를 키우는 2년 동안 그녀는 엄청나게 고생했다.

아이의 성격이 난폭해서 기분이 잡칠 때마다 강지현에게 물건을 마구 내던졌다. 꼭 마치 그녀에게 깊은 적대심이라도 품은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어느 한번은 강지현이 보는 앞에서 이도운에게 친엄마를 돌려달라고 요구한 적도 있었다.

화가 난 강지현이 양육을 포기하겠다고 할 때마다 이도운은 그녀를 설득했다.

이윤후가 엄마가 없어 불쌍하다며 더 너그러이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그 마음도 굳이 꼭 끄집어내곤 했다.

이윤후가 백하린의 손을 꽉 잡은 모습과 이도운의 일련의 행동들을 떠올리니 강지현은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결혼한 지 5년이 되었고 이윤후도 이제 5살이다.

이씨 가문에서 백하린을 며느리로 받아들이지 않으니 이도운은 그녀를 방패막이로 삼아 수년간 모진 고생만 짊어지게 했다.

식사할 때 이도운과 이윤후는 백하린에게 반찬을 집어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화기애애한 세 사람이야말로 한 가족 같았고 옆에서 조용히 식사하는 강지현은 외부인이 돼버렸다.

“지현아, 교수님이 요즘 육아 관련 서적을 집필하고 있는데 조용한 환경이 필요하대. 마침 회사도 바쁘고 너도 할 일이 많으니까...”

이도운이 적절한 타이밍에 젓가락을 내려놓고 부드러운 어투로 강지현에게 말했다.

“교수님을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게 하는 건 어때? 너 대신 윤후도 잘 돌봐줄 수 있고, 이 녀석도 교수님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

‘하! 5년 동안 몰래 만나다가 이젠 대놓고 집에까지 들이겠다고?’

강지현은 그의 말을 못 들은 척 천천히 밥만 먹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이도운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치더니 낮은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지현아? 내 말 들었어?”

탁 소리와 함께 강지현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백하린이 덥석 가로챘다.

“미안해. 내가 괜히 두 사람 곤란하게 했지. 지현아, 오해하지 마. 도운이는 그저 네가 일하랴 집안 살림까지 챙기랴, 거기에 또 윤후까지 돌보느라 너무 힘들까 봐 나더러 도와주길 바란 거야...”

“아니야, 난 하린 이모랑 같이 있을래.”

백하린의 옆에 앉아 있던 이윤후가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젓가락을 던지고 식탁을 마구 내리쳤다.

“윤후야, 이러면 안 돼.”

“이윤후, 버릇없이 굴 거야?”

순간 아이를 말리는 백하린의 목소리와 엄하게 꾸짖는 강지현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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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a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강희숙
넘 재밌네요 다음화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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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라고요?”“신경 쓰지 말라고요?”현다영과 하원영이 동시에 얼어붙었다.‘정말 김태하가 한 말이라고?’하원영은 결국 욕설까지 튀어나왔다.“김태하 미친 거 아니에요? 강지현이잖아요! 자기 아내인데!”하원영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자 주시언이 얼른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겼다.그들이 이야기하는 사이 서지아와 지현우도 급히 달려왔다.두 사람 역시 은주희와 지순옥에게서 소식을 들었다. 어른들은 이미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주병찬은 조금 전 경찰에 신고하고, 결혼식은 일단 제쳐 두고 강지현부터 찾자고 제안했다.하지만 그 말이 나오자마자 김태하가 사람을 시켜 막았다.서지아가 도착했을 때 김씨 집안 어른들은 마침 김태하를 찾아간 뒤였다.“육 대표님이 정보망이 제일 좋다고 했던 것 같은데, 도움을 부탁하면 안 될까요?”주시언이 문득 육운성을 떠올렸다.그는 강지현에게서 육운성의 지하 정보망이 대단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예전에 엄경미와 공회 문제도 육운성이 뒤에서 도와준 덕분에 해결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번 결혼식 때문에 육운성의 사람들도 돌발 상황에 대비해 미리 해원시에 배치돼 있지 않았던가?“맞아! 육 대표님!”하원영의 눈이 번쩍 빛났다.그런데 그제야 모두 육운성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친지들 가운데 지금 행방을 알 수 없는 사람은 육운성뿐이었다....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결혼식 시작 시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사람들은 상원궁 입구를 몇 번이나 들락거렸지만, 끝내 강지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마침내 결혼식 생중계가 시작됐다.상원궁에서 가장 큰 연회장의 문이 활짝 열렸다. 안은 하객들로 가득했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들 사이를 카메라가 한 번에 훑었다.거대한 원형 스크린에서는 홍보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찬란한 장면마다 감탄이 터져 나왔다.하지만 정작 신부가 걸어야 할 무대에는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드넓은 연회장 안에 수군거림이 조금씩 번져 갔다.“들었어요? 신부가 사라졌대요!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912화

    “대표님, 사모님께 무슨 일이 생긴 것 아닐까요? 경찰에 연락할까요?”최동윤은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김태하와 강지현이 겪어 온 일이 워낙 많다 보니 그 역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하지만 말을 끝내기도 전에 김태하가 차갑게 끊었다.“그럴 필요 없어.”김태하는 CCTV 영상을 최동윤에게 돌려주며 말했다.“나한테 미리 아무 연락도 없었으니, 조금 있으면 올지도 모르지.”“그...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최동윤은 경악했다.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평소 사모님을 목숨처럼 여기는 대표님 입에서 나올 말인가?’김태하가 냉랭하게 말했다.“왜 불가능하지? 영상 보면 본인이 직접 차에서 내렸잖아.”최동윤의 머리가 복잡해졌다.‘이런 상황에 설마 대표님이 사모님과 감정싸움이라도 하는 건가?’최동윤은 다시 영상을 확인했다.확실히 김태하의 말대로 강지현은 스스로 차에서 내렸다.곁에는 아무도 없었다.차에서 내린 강지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치맛자락을 들고 뛰기 시작했고, 도중에는 면사포까지 벗어 던졌다.하지만 그 모든 행동이 너무 이상했다.“사모님답지 않아요. 분명 무슨 사정이 있는 것 아닐까요...”“할 일이 그렇게 없어?”김태하가 다시 최동윤의 말을 막았다.온몸에서 뿜어지는 냉기가 섬뜩할 정도였다.“결혼식 시작까지 한 시간 남았어. 전 세계 생중계까지 하는데, 설마 이때 도망이라도 갔다고 생각해?”“도망이라니요... 아니에요.”최동윤은 말문이 막힌 채 고개를 저었다.김태하는 더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연회장은 이미 하객들로 가득 찼고, 지금은 일손이 필요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최동윤에게도 맡은 일이 있었고, 김태하 역시 촬영 스튜디오로 가 사전 인터뷰를 준비해야 했다.김태하는 소름 끼칠 만큼 침착했지만, 소식을 들은 집안 어른들과 친지들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최동윤은 처음 보고를 김태하에게만 하고 따로 소문내지 않았다.하지만 강지현은 식장으로 오는 길에, 수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갑자기 사라진 상태였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911화

    그제야 공포에서 조금 진정된 강지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상대 남자는 변조기조차 쓰지 않았다. 분명 그녀가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하지만 서운혁과 자신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주변 사람이거나, 오래전부터 몰래 자신을 조사해 온 자일 터였다.지금 강지현에게 남은 원수는 단 하나, 공회뿐이었다.송준호도 떠나기 전, 해원시에 남아 있는 공회의 잔당을 반드시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었다.그래서 요즘 강지현과 김태하는 최대한 조용히 지내며 매사에 주의를 기울였다.저 미친놈들이 자신들에게 손쓸 기회를 찾지 못하자... 결국 서운혁에게 표적을 돌린 모양이었다.지금 여기서 신고라도 했다가는 서운혁은 절대 살아남지 못한다.그렇다고 범인들을 잡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결혼식까지 망가질 게 뻔했다...강지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상 묵인한 셈이었다.목적을 이뤘다고 생각한 상대가 목소리를 낮추며 본론을 꺼냈다.“이제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해.”전화기 너머 목소리를 듣던 강지현은 갑자기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소리쳤다.“길가 약국에 세워 주세요. 살 게 있어요.”“물건을 사신다고요? 강지현 씨, 필요하신 게 있으면 사람을 시키면 돼요. 지금 시간이...”“세우라면 세워요. 지금 당장!”기사는 당황했지만 강지현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어 급히 길가에 차를 세웠다.함께 출발한 차량은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었고, 하필 강지현의 차가 멈춘 곳은 사거리였다.뒤따르던 차들도 무슨 일인지 몰라 하나둘 멈춰 섰다.그 순간 강지현이 갑자기 차에서 내려 치맛자락을 들어 올린 채 약국 안으로 전력 질주했다.바로 뒤 차량에서도 경호원들이 내려 그녀를 따라갔다.하지만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강지현은 감쪽같이 사라졌다.강지현은 전화를 든 채 이미 약국 뒷문으로 빠져나와, 미리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올라탔다.상대는 분명 미리 현장을 답사해 모든 걸 준비해 둔 상태였다.그 약국은 사람들의 시야를 피하기에 더없이 좋은 사각지대에 있었다.택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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