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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7화. 친구라는 가면의 균열

Author: 6ja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8 07:30:24

“10년째라고?”

서율의 목소리가 작게 갈라졌다.

도현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방금 전까지 가까웠던 열기가 빠지자 현관의 찬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네가 19살이던 봄부터.”

“그런데 한 번도 말 안 했잖아.”

“말하면 네 옆에 남을 수 없을 것 같았어.”

“그래서 친구인 척했어?”

도현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라는 자리는 안전했으니까. 네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제일 먼저 들을 수 있었고, 위험한 사람이 접근하면 자연스럽게 막을 수도 있었어.”

“막았다고?”

서율의 얼굴에서 남은 온기가 사라졌다.

도현은 서율을 마주 본 채 말했다.

“대학 때 너한테 계속 술을 권하던 선배, 회사 초년생 때 거래를 핑계로 연락하던 실장. 뒷조사해서 문제가 있는 사람은 네 주변에서 치웠어.”

“치웠다는 말, 사람한테 쓰지 마.”

서율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데?”

“선배의 폭행 전력을 학생회에 넘겼고, 그 실장이 접대비를 빼돌린 자료는 회사 감사팀에 보냈어.”

“그 사람들이 잘못한 것과 네가 내 뒤에서 결정한 건 별개야.”

“알아.”

“아니, 지금 처음 듣는 사람 얼굴 앞에서 너무 쉽게 안다고 하지 마.”

도현은 입을 다물었다. 서율이 다시 입을 열 때까지 손가락만 느리게 접었다 폈다.

“내가 부탁했어?”

“아니.”

“그럼 보호가 아니라 간섭이야.”

서율의 말이 현관에 또렷하게 울렸다. 도현의 손가락이 천천히 말렸다.

“알아. 그래도 멈추지 못했어.”

“왜? 내가 네 물건이라서?”

“내 것이길 바랐으니까.”

서율은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도현은 자신을 지켜본 시간과 감시한 시간을 구분하지 못한 채 같은 문장에 담고 있었다.

“계약서도 그래서 만든 거야?”

“네가 내게 먼저 와줄 기회라고 생각했어.”

“내가 도움을 청한 순간에도 내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안 보였어?”

도현의 눈이 흔들렸다.

“보였어.”

“그런데도 이용했네.”

“그래.”

도현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 짧은 인정이 차라리 더 아팠다. 다정한 위로를 건네던 손과 계약서를 준비한 손이 같은 손이었다.

“기회?”

“다른 사람은 선택지에서 지우고, 나는 유일한 답이 되는 기회.”

서율이 손을 들어 그의 가슴을 밀었다.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지 마.”

도현은 순순히 물러났다.

“네가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 내가 널 원해왔다는 사실은 더 숨기지 않을 거야.”

“그런 말을 하고도 오늘 같은 침대를 쓰자고?”

“원하지 않으면 내가 거실에서 자.”

서율이 눈을 좁혔다. 불과 전날에는 생활 흔적을 이유로 한 침대를 고집했던 남자가 먼저 물러서고 있었다.

“갑자기 양심이 생겼어?”

“네가 지금 나를 무서워하니까.”

그 말이 더 화가 났다. 서율은 복도를 지나 마스터 베드룸으로 들어갔다. 도현이 따라오지 않자 문가에서 돌아봤다.

“네 집에서 내가 쫓겨난 사람처럼 다른 방을 찾을 이유는 없어.”

“그럼?”

서율은 킹사이즈 침대 가운데에 놓인 장식 쿠션을 세로로 줄지어 세웠다.

“왼쪽은 내 자리. 오른쪽은 네 자리. 이 선 넘으면 난 바로 나가.”

도현의 시선이 쿠션 벽과 서율 사이를 오갔다.

“알겠어.”

“그리고 문 잠그지 마.”

그는 침실 문을 끝까지 열어두고 도어록 표시등을 껐다.

서율은 먼저 침대에 누워 등을 돌렸다. 잠시 뒤 매트리스 오른쪽이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 도현은 쿠션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서율은 열린 문을 확인한 뒤에야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렸다. 도현은 조명을 끄기 전에도 쿠션 선을 한 번 더 봤다.

“도현아.”

“응.”

“오늘은 내가 묻는 것만 대답해.”

“그래.”

“우산 씌워주던 날도 계산했어?”

한참 뒤 답이 왔다.

“아니. 네가 감기 걸릴까 봐 그랬어.”

“공모전 때 커피 놓고 간 건?”

“네가 밤새고도 아침을 안 먹어서.”

서율은 더 묻지 못했다. 좋은 기억까지 전부 거짓이길 바랐는지, 적어도 그것만은 진심이길 바랐는지 자신도 몰랐다.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숨소리만 들렸다.

“서율아.”

“말하지 마. 지금은 듣기 싫어.”

“그래.”

도현은 더 말하지 않았다.

서율은 눈을 감았지만 잠들지 못했다. 쿠션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그의 체온이 느껴졌다. 다정했던 친구와 자신을 몰래 골라온 남자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좀처럼 한 얼굴로 겹쳐지지 않았다.

한참 뒤 서율이 눈을 떴을 때, 침실 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도현도 약속한 선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빠져나갈 길은 있었고, 그래서 오히려 그의 고백이 더 무겁게 남았다.

도현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서율이 뒤척일 때마다 숨을 죽였고, 쿠션이 흔들리면 손부터 몸 쪽으로 거둬들였다. 서율은 그 작은 움직임까지 들었다. 둘 다 잠든 척만 한 채 새벽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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