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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첫 회진부터 찍혔다

Author: Rionha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6 19:21:12

# 5화. 첫 회진부터 찍혔다

의국 문을 열고 들어온 윤재혁은 실내를 한 번 훑어봤다.

소이와 눈이 마주친 것은 고작 한순간이었다.

그는 처음 보는 레지던트를 확인하듯 무심하게 시선을 거둔 뒤 오현석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리엔테이션 중이셨습니까?”

“거의 끝났어. 마침 잘 왔네.”

오현석은 기다렸다는 듯 소이가 있는 쪽을 가리켰다.

“이번 달 윤 교수 팀에 들어갈 신입이야. 한소이 선생.”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며칠 전 호텔 레스토랑에서 마주 앉았든, 빈 물잔을 들이켤 뻔한 모습을 들켰든, 그가 면접에서 자진 회피했든 이제는 아무 상관 없는 사이가 되어야 했다.

소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모범적인 각도로 허리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소이입니다.”

윤재혁의 시선이 소이의 정수리에 닿았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처음?”

낮은 목소리에 소이의 허리가 그대로 굳었다.

의국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두 사람을 바라봤다.

소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윤재혁의 표정은 평소처럼 무심했다. 하지만 검은 눈동자 한편에 아주 희미한 장난기가 걸려 있었다.

설마 여기서 맞선 이야기를 꺼내려는 건 아니겠지.

“처음...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소이는 급히 말을 고쳤다.

윤재혁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 한마디로 넘어갔지만 등 뒤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맞선 자리에서는 분명 사적인 연락도, 아는 척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저 남자는 약속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부터 의심스러웠다.

오현석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른 미묘한 기류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자료를 덮었다.

“윤 교수 팀에는 한소이 선생하고 박민우 선생이 들어가. 첫 달이라 손이 많이 가겠지만 잘 가르쳐.”

“수련을 받으러 온 사람에게 손이 많이 가면 곤란하죠.”

윤재혁의 시선이 다시 소이에게 향했다.

“알아서 따라와야 합니다.”

소이는 즉시 대답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는 건 기준이 아닙니다.”

“그럼 어떤 기준을...”

“실수하지 않는 것.”

단호한 대답이었다.

소이는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이제 막 시작하는 레지던트에게 실수하지 말라는 건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배우라는 것과 비슷했다.

“사람이 어떻게 실수를 한 번도 안 합니까?”

말이 튀어나온 뒤 의국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옆에 앉아 있던 배하린이 소이의 가운 자락을 몰래 잡아당겼다.

늦었다.

윤재혁은 소이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불만 있습니까?”

“불만이라기보다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요구 같습니다.”

오현석이 입술을 깨물었다. 웃음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신입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윤재혁이 물었다.

“그럼 한소이 선생이 생각하는 기준은 뭡니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겁니다.”

“첫 번째 실수로 환자가 죽어도?”

소이의 입이 다물렸다.

갑자기 질문의 무게가 달라졌다.

윤재혁은 사람을 압박하기 위해 과장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런 순간을 겪어 본 사람의 눈이었다.

“외과에서 실수는 경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본인이 배우는 동안에도 환자에게는 단 한 번뿐인 수술일 수 있으니까.”

소이는 손끝을 말아 쥐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대신 모르면 묻고, 틀렸다고 생각하면 즉시 보고하세요. 숨기는 순간부터는 실수가 아니라 선택입니다.”

“알겠습니다.”

윤재혁은 더 말하지 않고 오현석에게 인사한 뒤 의국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멈춰 있던 공기가 한꺼번에 풀렸다.

배하린이 소이의 팔을 붙잡았다.

“너 미쳤어?”

“뭐가?”

“윤 교수한테 첫날부터 어떻게 말대꾸를 해?”

“말대꾸가 아니라 의견 교환이었어.”

“그건 상대도 의견을 교환했다고 생각할 때 쓰는 말이야.”

오현석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웃었다.

“걱정하지 마. 윤 교수 저 정도면 기분 좋은 편이야.”

소이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어느 부분에서요?”

“대답을 길게 해 줬잖아.”

그 말을 끝으로 오리엔테이션은 마무리됐다.

배정된 팀의 첫 근무는 다음 날 새벽부터였다.

소이는 알람을 네 개 맞춰 놓고도 두 시간마다 눈을 떴다.

지각하는 꿈을 꾸다 놀라 일어나고, 윤재혁이 맞선 사진을 병동 게시판에 붙이는 꿈을 꾸다 다시 깼다.

결국 오전 네 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병원에 도착했다.

외과 병동은 아직 어두웠지만 간호사실은 이미 분주했다.

소이는 전날 입원 환자 명단과 밤사이 기록을 확인했다.

윤재혁 팀의 환자는 열두 명이었다.

수술 전 환자 세 명.

수술 후 환자 여섯 명.

퇴원 예정 환자 두 명.

중환자실 환자 한 명.

모든 기록을 빠르게 훑으려 했지만 검사 수치 하나를 확인하면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배액관의 색은 왜 어제와 달라졌는지.

혈압이 낮은 환자는 원래 그런 것인지.

간 수치가 올라간 환자는 재검사를 해야 하는지.

목록을 정리할수록 모르는 것만 늘었다.

“처음부터 다 보려고 하면 회진 전에 늙어 죽어.”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소이가 돌아봤다.

박민우가 종이컵 두 개를 들고 서 있었다.

그는 소이에게 하나를 건넸다.

“커피.”

“감사합니다.”

“아침은 먹었어?”

소이는 대답 대신 커피를 마셨다.

박민우가 혀를 찼다.

“벌써 윤 교수 스타일을 따라 하네. 질문에 대답 안 하는 거.”

“오늘은 진짜 시간이 없었습니다.”

“내일부터는 주머니에 뭐라도 넣어 다녀. 사탕이든 에너지바든.”

소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자 목록을 보여 줬다.

“이 환자분은 새벽에 배액량이 늘었는데 괜찮을까요?”

박민우가 기록을 살폈다.

“색은?”

“연한 혈성입니다.”

“수술 다음 날이라 이 정도는 지켜볼 수 있어. 대신 회진 때 바로 보고해.”

“이 환자분은 열이 조금 올랐습니다.”

“혈액검사 확인했고?”

“아직 결과가 안 나왔습니다.”

“결과 나오는 대로 정리해. 윤 교수는 숫자만 읽어 주면 싫어해. 왜 변했는지 네 생각까지 같이 말해야 해.”

“틀리면요?”

“틀릴 수 있지.”

“어제는 실수하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요.”

박민우가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모르는 걸 틀리게 추측하는 것과 확인해야 할 걸 놓치는 건 다르잖아. 윤 교수도 그 정도 구분은 해.”

“생각보다 믿으시네요.”

“실력은 믿지.”

“성격은요?”

“그건 다른 문제고.”

오전 여섯 시 삼십 분.

회진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윤재혁은 약속된 시간보다 삼 분 먼저 병동에 도착했다.

흰 가운 아래로 짙은 남색 수술복이 보였다. 한 손에는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박민우와 소이가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윤재혁은 짧게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첫 환자부터.”

박민우가 환자 상태를 보고했다.

수술명, 밤사이 활력징후, 배액량, 검사 결과까지 막힘이 없었다.

소이는 옆에서 열심히 들으며 메모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환자까지는 무사했다.

세 번째 병실 앞에서 박민우가 소이에게 눈짓했다.

네가 해 보라는 뜻이었다.

소이는 침을 삼켰다.

보고할 내용은 분명 정리했다. 조금 전까지 여러 번 읽었다.

그녀는 차트를 들고 윤재혁 앞에 섰다.

“오십팔 세 남성 환자분으로 어제 복강경 담낭절제술 시행했고, 밤사이 특이 사항은 없었습니다. 혈압은 안정적이고 체온은...”

“수술 적응증.”

말이 잘렸다.

“네?”

“왜 수술했습니까?”

“담석이 있어서...”

윤재혁의 시선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소이는 곧바로 말을 고쳤다.

“반복적인 우상복부 통증을 동반한 증상성 담석증이었고, 초음파에서 담낭벽 비후와 다발성 담석이 확인됐습니다.”

“수술 중 특이 사항은?”

“유착이 조금 있었지만 큰 문제 없이...”

“조금이 어느 정도죠?”

소이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수술 기록을 읽었다.

분명 읽었는데 정확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경도의 유착이 있었습니다.”

“어디에?”

“담낭 주변에...”

“주변 어디?”

병실 앞에 선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소이에게 모였다.

환자와 보호자까지 대화를 듣고 있었다.

소이는 손에 힘을 줬다.

“죄송합니다.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윤재혁은 더 추궁하지 않았다.

“확인해서 수술 기록에 표시해 두세요.”

“네.”

환자 상태를 확인한 뒤 복도로 나오자 소이는 몰래 숨을 내쉬었다.

윤재혁이 걸음을 멈췄다.

“한소이 선생.”

“네.”

“환자 앞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하지 마세요.”

소이가 놀라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제가 확인하지 못한 게 맞습니다.”

“모르는 걸 인정하는 것과 환자에게 불안감을 주는 건 별개입니다. 정확히 확인한 뒤 다시 보고하겠다고 하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보고할 때 ‘조금’, ‘약간’, ‘대충’ 같은 표현 쓰지 마세요.”

“대충이라고는 안 했습니다.”

“앞으로 쓸 것 같아서 미리 말하는 겁니다.”

소이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윤재혁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다음 환자는 간 절제술을 받은 뒤 사흘째 되는 중년 여성이었다.

윤재혁은 환자의 배를 직접 살피고 배액관을 확인했다.

“밤에 통증은 어떠셨어요?”

환자에게 말하는 목소리는 의외로 부드러웠다.

“아까보다 좀 나아요. 그런데 이 관은 언제 빼요?”

“상태 확인하고 최대한 빨리 빼 드릴 겁니다. 불편해도 조금만 참으세요.”

병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표정은 다시 차가워졌다.

“오늘 검사 결과.”

소이는 서둘러 차트를 확인했다.

“혈색소는 어제보다 소폭 감소했고 간 수치는...”

“소폭?”

첫 환자에게 지적받은 단어를 또 썼다.

소이는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혈색소가 10.2 에서 9.6 으로 감소했습니다.”

“원인은?”

“수술 후 변화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게 끝입니까?”

“배액량과 활력징후가 안정적이어서 현재 활동성 출혈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뭘 해야 하죠?”

“추적 검사하면서 배액량과 활력징후를 확인하겠습니다.”

윤재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맞는지 틀린지 알 수 없는 침묵이었다.

소이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필요하면 수혈도 고려하고요.”

“9.6에?”

“당장은 아니고 더 떨어지면...”

“얼마까지?”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소이는 아는 지식을 총동원했지만 말할수록 확신이 사라졌다.

“환자 상태를 종합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교과서적인 대답이군요.”

“교과서를 보고 공부했으니까요.”

박민우가 옆에서 작게 기침했다.

소이는 입을 닫았다.

또 말실수했다.

윤재혁은 한동안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뜻밖에도 그냥 넘어갔다.

회진은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마지막 환자까지 확인한 뒤 윤재혁은 병동 스테이션 앞에 멈춰 섰다.

“박민우 선생.”

“네.”

“오늘 수술 두 건 준비하고 중환자실 환자는 내가 직접 볼 겁니다.”

“알겠습니다.”

윤재혁의 시선이 소이에게 향했다.

소이는 본능적으로 차트를 가슴 앞에 끌어안았다.

“한소이 선생.”

“네.”

“오늘부터 김복순 환자 담당하세요.”

방금 간 절제술 후 회복 중인 중년 여성이었다.

소이의 눈이 커졌다.

첫날인 자신에게 환자를 맡긴다고?

그것도 윤재혁이 직접 수술한 환자를.

박민우 역시 의외라는 표정으로 재혁을 봤다.

윤재혁은 사람들의 반응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검사 결과, 배액량, 통증 변화 전부 직접 확인하고 보호자 설명까지 맡습니다.”

소이가 마른침을 삼켰다.

“제가 혼자 합니까?”

“혼자 하라고는 안 했습니다.”

“그럼...”

“모르면 박민우 선생에게 묻고, 이상이 있으면 즉시 나한테 보고하세요.”

그는 태블릿을 소이에게 내밀었다.

화면에는 김복순 환자의 수술 기록과 치료 계획이 떠 있었다.

“첫 환자입니다.”

소이가 태블릿을 받아 들었다.

가벼운 기계가 손안에서 이상하리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윤재혁의 시선이 그녀에게 단단히 박혔다.

“한소이 선생이 끝까지 책임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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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전 1화. 두 번째 데이트의 조건두 번째 데이트는 세 번이나 미뤄졌다.첫 번째는 한소이의 응급외과 당직이 길어졌고.두 번째는 윤재혁의 수술이 예상보다 늦게 끝났으며.세 번째는 약속 장소로 출발하기 직전, 소이가 맡은 환자에게 갑작스러운 복통이 발생했다.“이번 주도 어렵겠네요.”금요일 밤 열한 시.한소이는 의국 소파에 등을 기댄 채 휴대전화를 귀에 붙였다.윤재혁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렸다.“환자 상태는 어떻습니까?”“CT 확인했고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은 아닙니다. 밤새 경과를 봐야 할 것 같아요.”“그럼 병원에 남습니까?”“네.”소이는 천장을 바라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미안해요.”“왜 사과합니까?”“내일 아침부터 만나기로 했잖아요.”두 사람은 토요일 하루를 통째로 비워 두었다.오전에는 전시회를 보고, 점심은 소이가 고른 식당에서 먹고, 저녁에는 윤재혁의 집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수술 일정과 당직표를 몇 번이나 확인한 끝에 만든 계획이었다.“환자가 아픈 건 한소이 씨 잘못이 아닙니다.”“그래도 재혁 씨는 내일 휴일까지 바꿨잖아요.”“다음에 또 바꾸면 됩니다.”“실망 안 했어요?”잠시 침묵이 흘렀다.예전의 윤재혁이었다면 괜찮다고만 대답했을 것이다.그러나 이제는 싫은 것도 말하기로 했다.“실망했습니다.”소이의 입술이 천천히 내려갔다.“역시 그렇죠?”“많이 기대했습니다.”“미안해요.”“하지만 소이가 환자를 두고 나오는 건 더 싫습니다.”윤재혁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그러니까 실망한 것과 소이를 탓하는 것은 별개입니다.”소이는 말없이 휴대전화만 조금 세게 잡았다.이 사람은 여전히 정답처럼 말할 때가 있었다.다만 이제는 그 정답 안에 자신의 감정도 숨기지 않았다.“재혁 씨.”“네.”“병원으로 올래요?”“지금요?”“데이트는 못 해도 같이 야식은 먹을 수 있잖아요.”“근무 중 아닙니까?”“환자 검사 결과 기다리는 중이에요. 삼십 분 정도는 괜찮습니다.”전화기 너머

  • 교수님, 맞선은 근무 외입니다   # 60화. 맞선은 근무 외입니다 [본편완결]

    # 60화. 맞선은 근무 외입니다 [본편완결]이정훈이 의식을 되찾은 것은 수술 다음 날 오후였다.진정제를 줄이자 눈꺼풀이 천천히 움직였다.한소이는 침대 가까이 다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이정훈 환자분,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환자의 눈이 힘겹게 열렸다.초점이 흔들리던 시선이 소이의 얼굴에 멈췄다.기관 삽관 때문에 대답할 수는 없었지만 손가락을 움직여 보라는 말에는 약하게 반응했다.“수술은 끝났습니다.”소이는 환자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천천히 설명했다.“배 안에서 출혈이 많았고 비장이 크게 손상돼 제거했습니다. 지금은 출혈이 멈췄고 혈압도 안정되고 있습니다.”이정훈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아내분과 아드님도 병원에 와 계십니다.”그 말을 듣자 환자의 눈가가 붉어졌다.손이 무언가를 찾듯 움직였다.소이는 그 손을 잡았다.“아드님도 무사히 집에 돌아갔습니다.”환자의 손가락이 소이의 손을 힘없이 눌렀다.“약속을 못 지킨 게 아니라 사고를 당하신 겁니다. 아드님도 알고 있습니다.”이정훈은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모니터의 숫자는 안정적이었다.이번에는 의식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가족이 무사하다는 말을 듣고 긴장을 놓은 얼굴이었다.중환자실 밖으로 나오자 보호자와 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남편이 깨어났습니까?”“간단한 지시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현재 수치가 유지되면 호흡관도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남학생은 고개를 숙인 채 소매로 눈을 닦았다.“아빠가 저 때문에 다친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환자분께는 학생이 무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소이는 아이의 앞에 앉았다.“학생도 아버님을 만나면 꼭 말해 주세요. 사고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요.”남학생이 울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아버님이 회복하시면 직접 말씀드리세요.”그날 저녁 이정훈은 호흡관을 제거했다.처음 나온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우리 아들은요?”침대 옆에 있던 아내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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