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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장 평범한 일상

Author: 신도아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5 17:00:28

다음 날 오후.

우진은 한참 동안 현관 앞을 서성였다.

신발을 신었다가 벗기를 벌써 두 번째였다. 나갈 것처럼 차 키까지 챙겨놓고는 거실로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소파에 앉아 있던 도희가 결국 책에서 눈을 뗐다.

“뭐 해요?”

“네?”

“아까부터 왜 자꾸 왔다 갔다 해요?”

“아….”

우진이 괜히 손에 들고 있던 차 키를 만지작거렸다.

별것도 아닌 말이었다. 그런데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장 보러… 같이 갈래요?”

도희가 눈을 깜빡였다.

“장이요?”

“네.”

“어제 장 본 거 아니었어요?”

우진의 시선이 슬쩍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 안에는 어제 사 온 식재료가 아직 가득했다. 당장 며칠은 장을 보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 그게….”

도희가 가만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안 산 게 있어서……!”

“뭘 안 샀는데요?”

“….”

우진의 입이 다물렸다.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도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강우진 씨.”

“네.”

“거짓말 진짜 못한다고 어제 말했죠?”

“……갈 거예요, 말 거예요?”

괜히 퉁명스러워진 목소리에 도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뭘 사러 가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정해요?”

“가서 보면 생각나겠죠.”

“그게 무슨 장보기야.”

도희는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리면서도 읽던 책을 덮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요.”

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진짜요?”

“장 보러 가자면서요.”

“…네.”

우진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현관문을 열었다.

사실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제 장을 보면서도 필요할 만한 건 전부 사 왔다. 굳이 또 마트에 갈 이유는 없었다. 그저 도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싶었다. 며칠 동안 창문 너머로만 바깥을 보던 사람에게 바람이라도 쐬어주고 싶었다.

물론 이제는 자신이 데리고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도희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자신과 같이 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안 가요?”

어느새 먼저 문밖으로 나간 도희가 돌아봤다. 우진은 그녀를 바라보다 뒤따라 나섰다.

“가요.”

-

마트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희는 우진의 거짓말을 확신했다.

“강우진 씨.”

“네?”

“안 산 게 있다면서요.”

“네.”

“그게 뭔데요?”

우진은 카트를 밀던 손을 멈췄다.

두 사람 앞에는 과일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우진은 잠시 고민하다 사과 한 봉지를 집었다.

“이거.”

“집에 있잖아요.”

도로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옆에 있던 귤을 집었다.

“그럼 이거.”

“그것도 있어요.”

귤도 내려놓았다.

도희가 팔짱을 꼈다.

“뭐가 필요한지도 모르죠?”

“….”

“그냥 나오자고 한 거죠?”

우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대답이나 마찬가지였다.

“왜요?”

“뭐가요?”

“왜 굳이 나오자고 했냐고요.”

우진은 카트를 밀기 시작했다.

“답답할 것 같아서.”

도희의 걸음이 아주 잠깐 느려졌다.

“뭐가요?”

“집에만 있는 거.”

우진은 아무렇지 않게 진열대로 고개를 돌렸다.

“며칠 동안 제대로 밖에도 못 나왔잖아요.”

“누구 때문에요?”

“…그러게요.”

너무 순순한 인정에 도희는 할 말을 잃었다.

우진은 도희를 슬쩍 바라봤다.

“그러니까 바람이라도 좀 쐬라고요.”

“마트에서요?”

“사람 많고 좋잖아요.”

“보통 마트에 바람 쐬러 오진 않아요.”

“그럼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요?”

도희가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어디에 가고 싶냐는 말을 들은 게 얼마 만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도 그랬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에 갈지, 어떤 식장에서 결혼할지.

누군가는 늘 자신의 의견을 묻는 척했지만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다.

도희는 말없이 카트 손잡이를 내려다봤다.

“오늘은 마트면 됐어요.”

우진이 그녀를 돌아봤다.

“그래요?”

“네.”

“그럼 천천히 봐요.”

우진은 정말로 걸음을 늦췄다. 도희가 먼저 진열대를 지나갈 때까지.

그 작은 행동을 도희는 모른 척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별다른 목적도 없이 마트를 돌았다.

필요하지도 않은 과자를 하나 담았다가 도희가 다시 빼고, 우진이 아무 생각 없이 비싼 고기를 집어 들었다가 가격을 본 도희에게 제지당했다.

“이걸 왜 사요?”

“먹으려고요.”

“집에 고기 있어요.”

“다른 고기잖아요.”

“고기는 고기예요.”

“그런 논리면 꽃은 다 꽃이게요?”

도희가 우진을 쳐다봤다.

“지금 플로리스트한테 시비 거는 거예요?”

“아니요.”

우진이 얌전히 고기를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도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조금 더 걷던 도희가 채소 코너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기다란 봉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우진이 멈춰 섰다.

“그건 왜 사요?”

“당근이요.”

“그건 알아요.”

“어제 산 거 좀 썩었더라고요.”

“그래도 안 사도 될 것 같은데.”

“먹어야 어른 된다면서요.”

“저 이제 어른이에요.”

“누가 그래요?”

“제가요.”

“본인이 정하는 거예요?”

“서른하나면 충분하지 않아요?”

도희가 웃으며 당근을 카트에 넣었다. 어느새 카트 안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아니…!”

우진은 도로 빼려고 손을 뻗었지만 도희가 먼저 카트를 끌고 앞으로 가면서 당근을 빼지 못했다.

“안 돼요.”

“뭐가요?”

“당근 빼지 마요.”

“….”

“다 봤어요.”

우진은 얌전히 손을 거뒀다.

그 모습을 보던 도희가 또 웃었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웃음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남자가 무서웠다. 눈을 뜨자마자 묶여 있던 손목을 확인했고, 잠긴 현관문을 잡아당겼다. 어떻게든 그 집에서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남자와 나란히 카트를 밀며 당근을 사느니 마느니 실랑이를 하고 있다. 이상했다.

여전히 우진을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납치한 이유도,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도 아직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런데도 싫지 않았다.

도희는 그 생각이 조금 불편해 괜히 카트를 앞으로 밀었다.

“빨리 와요.”

“같이 가요.”

우진이 뒤따라왔다.

-

계산대로 향했을 때였다.

도희가 카트에 담긴 물건들을 하나씩 계산대 위에 올렸다.

“이것도 올려요.”

우진이 카트 구석에 있던 과자를 내밀었다.

“이건 언제 담았어요?”

“아까요.”

“필요한 것만 사자니까.”

“도희 씨도 과자 먹잖아요.”

“내가 언제요?”

“어제 소파에서 먹던데.”

도희의 손이 멈췄다.

“그걸 봤어요?”

“지나가다가요.”

“뭘 그런 것까지 기억해.”

“그냥 기억난 건데.”

“….”

도희가 과자를 빼앗듯 받아 계산대 위에 올렸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직원이 작게 웃었다.

“신혼이신가 봐요.”

“네?”

도희와 우진이 동시에 직원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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