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황종우는 전혀 그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위약금은 어차피 위반하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을 일, 그의 눈엔 지금 계약금만 보였다.이 지역에, 이 정도 시세면 기껏 해봐야 연 4억이 최선이었다. 그런데 고해는 무려 그거의 2배 넘는 가격인 10억을 불렀다. 이런 호구가 다시 나올 리 없었다.이건 다시 올 수 없는 기회였다. 미치지 않고서야 계약 위반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여기 건물주 누구야?”고해가 떠나고 채 10분도 되지 않아, 또 험악한 분위기의 중년 남자가 허리춤에 검을 꽂은 채 건물 입구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광고 그대로 있던데, 이 건물 안 나갔지?”황종우는 단번에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중년 남자의 정체는 바로 삼죽문의 새 문주, 왕종서였다. 재벌과 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정체를 모를 수가 없었다. 맹월과 오대붕이 죽은 뒤로, 삼죽문도 대폭 물갈이되었다. 왕종서는 바로 그 새로 구축된 삼죽문도의 주인으로서 현재 봉황국에 가장 유명한 거물이었다.제호 카지노, 대붕분타, 청영분타… 삼죽문의 이천 제자까지 모두 왕종서의 휘하로 들어가 봉황국 최강 세력이 되었다!“왕 문주님께서 어쩐 일로, 어서 오세요! 제가 문 앞까지 모시러 갔어야 했는데, 아이고, 죄송합니다!”황종우는 겁에 질린 채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말했다.“문주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이 건물 좀 전에 계약 체결되었어요. 광고도 내릴 참이었는데….”그의 말을 들은 왕종서는 속으로 코웃음 쳤다. “누구한테 임대했어? 광고를 내리지 않았다는 건 아직 체결 전이라는 뜻이잖아! 누구한테 임대했던, 내게 넘겨!”황종우는 자리에 얼어붙은 채 울상지었다.평생 만날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봉황국 넘버 원투를 하루 만에 만나버렸다. 심지어 자신의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건물을 노리고 있었다. 좀 전까지 운이 좋다며 속으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문주님, 제발… 노여움을 풀어주세요!”
드디어 왕종서가 기다리던 배상 얘기가 나왔다. 그는 속으로 만족하며 계속해서 연기를 이어갔다.“그깟 60억, 내가 없을 것 같으냐? 황종우, 이 건물은 내가 점찍었다고 고해에게 전해라! 내가 3년 임대료로 30억이 아니라, 100억을 주마!”‘100억, 100억이라니!’그 말을 들은 황종우는 벼락 맞은 듯 강력한 흥분에 휩싸였다. 12억이었던 것이 30억이 되었고, 30억이 100억이 되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왕종서한테서 100억을 받게 된다면, 배상으로 60억을 낸다고 해도 40억이 남는 꼴이었다. 고해한테서 받았던 30억보다 10억이나 더 오른 셈이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비록 이렇게 되면 고해한테서 미움받을 수 있겠지만, 모든 원인을 왕종소에게 돌리면 그것도 해결이었다. 그 뒤에 둘이 치고받고 싸우던 알 바가 아니었다.“알겠습니다, 문주님! 제가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건물을 문주님께 임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황종우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적 같은 일이 오늘 연달아 두 번이나 일어나다니, 이런 기회 놓치는 건 바보나 할 짓이었다! “100억 맞죠? 제가 당장 가서 사람을 시켜 계약서를 만들어오라고 할게요. 거기, 너….”“번거롭게 그럴 필요 없어!”왕종서가 손을 내저으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계약서가 필요해? 나 누구인지 잊었어? 아니면, 날 못 믿는 거야?”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밖에 세워져 있는 차를 향해 냉랭하게 소리쳤다.“일단 계약금으로 50억 보내줘. 고해와 상황을 마무리하면, 다시 인수하러 온다!”그러자 그 즉시 차에서 한 덩치가 내려 성큼성큼 황종우 앞에 다가와 이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해 쪽이 처리되면, 내게 연락해. 바로 사람 보낼 테니까!”하늘로 날듯한 기분에 휩싸인 황종우와 달리 왕종서는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염구준이 원했던 대로, 덫은 놓아졌다.“만약 날 실망하게 한다면… 이 건물과 네 머리는 내가 가져간다!”이 말을 끝으로 왕종서는 부하
전화 너머로도 느껴지는 위협에 황종우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그는 원래 이 건물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박 빚에 빠져 전 재산을 탕진하고 지금은 계좌에 겨우 4억이 전부였다. 여기에 고해가 지불한 30억에 왕종서가 준 50억을 더하면, 84억이 현 잔액이었다. 그런데 계약을 해지하려면 총 6억이 모자랐다. “고 선생님, 저 돈 있어요!”황종우가 침착한 목소리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좀 전에 삼죽문 왕 문주님께서 100억에 무조건 이 사무실을 임대하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승낙했어요. 고 선생님께 너무 죄송하지만, 저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대신 90억을 한 번에 드리진 못해도 84억은 바로 드릴 수 있어요. 나머지 6억은 왕 문주님이 잔금을 치르면 바로 보내드릴게요!”이 모든 것은 황종우의 욕심이 불러일으킨 화였다. 그가 염구준의 심기를 거스르지만 않았어도, 일은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업자득, 고해는 속으로 황종우를 욕하며 콧방귀를 뀌었다.“흥!”그리고는 차갑게 쏘아붙였다.“왕종서가 끼어든 거면 너도 어쩔 수 없었을 테니, 일단은 넘어가 주도록 하지. 대신 지금 가지고 있는 84억은 바로 보내. 그리고 남은 6억도 30분 안에는 내 계좌에 찍혀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알지?”그 말을 들은 황종우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허공에다 대고 연신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지체 없이 통화를 마무리하며 계좌에 있는 돈 84억을 곧바로 고해에게 이체했다. 이제 그의 계좌엔 나머지 자투리 돈 2천만 원이 전부였다.그리고 이어서 다급히 왕종서에게 연락을 넣었다. “왕 문주님, 제가 간신히 고해 선생님과 계약을 파기했어요. 이제 잔금 보내주셔도 돼요!”고해와 상황을 마무리했다는 얘기를 들은 왕종서는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건물 임대는 취소하도록 하겠다!”그는 애써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삼키며 차갑게 목소리를 내리깔았다.“우리가 언제 정식으로 계약한 적 있어? 설령 계약했다고 한들 어쩔 건데? 내
30분 이내에 고해에게 돈을 갚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몰랐다. 정말 잘못했다가 목숨이 날아갈 판이었다. 황종우는 다급해졌다.“맞다. 손씨 그룹! 손씨 그룹이 있었어!”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점점 더 초조해지며 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마지막 구명줄이 되어줄 손씨 그룹이 남아있었다! 원래 금액대로 임대해 주겠다고 한다면, 분명 그들도 거절할 수 없을 터! 12억을 받아 고해에게 6억을 갚으면 적어도 4억은 남는다! 돈이 적어진 건 안타깝지만, 적어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지 않는가?황종우는 곧바로 실행으로 옮기기로 했다.“임 이사님!”그는 곧바로 임명성에게 전화를 걸어 너그러운 척 말했다.“다시 생각해 봤는데, 역시 사람은 돈보다는 신용이죠! 20억은 안 된다고 해도 3년에 12억은 너무 적어요. 서로 양보해, 중간 가격인 16억으로 하시죠!”16억이라는 얘기를 들은 임명성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모든 것이 좀 전에 염구준이 말해준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황종우는 선심 쓰는 듯 말했지만, 임명성은 그의 목소리에 초조함을 읽었다. “대표님.”임명성이 핸드폰을 한 손으로 막으며 뒷좌석을 향해 공손히 물었다.“황종우가 16억을 불렀는데, 어떻게….”염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 지었다. 그는 이미 고해한테서 상황 전달을 받은 상태였다. 지금 황종우가 고해에게 빚진 금액이 6억인 이상, 그들이 불러야 할 금액도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 황종우는 거절할 수 없을 터였다.“고해 씨, 제법이네.”염구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고해는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성과를 가져다주었다.“이사님, 가격 더 낮추세요. 무조건 6억까진 내릴 수 있을 테니까, 망설이지 마시고 저 믿고 밀어붙이세요. 황종우는 반드시 받아들이게 될 거예요.”6억이면 처음 황종우가 제안한 금액의 절반이었다. 이번엔 임명성뿐만 아니라 손가을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손가을은 이미 옆에서 염구준이 고해에게 문자를 보
그 얘기를 들은 황종우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뻔했다. 3억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 건물은 위치만 좋은 게 아니라, 업무에 필요한 모든 편의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입주한다면 정말 딱 몸만 와도 업무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만약 돈이 급한 게 아니었다면 1년에 4억이 아니라 6억도 받을 수 있는 건물이었다. 그런데 무려 3억을, 1년도 아니고 3년 치 임대료로 내놓겠다니, 황종우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이건 평균 1년에 1억 받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꿈도 야무지네! 어림없어!“임 이사님, 이건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하지만 일단 지금은 목숨이 더 급했기에 황종우는 애써 분노를 참으며 말을 이었다.“그럼 제가 한발 양보할 테니, 처음 약속했던 대로 3년에 12억, 더 깎지 말고 시원하게 가시죠!”황종우가 한발 물러서자, 임명성은 더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염구준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곧 목적에 도달할 것 같다는 신호를 보냈다.“황 사장님, 염 부장님과 손 대표님에게 논의를 드렸는데 6억, 정말 그 이상으로는 어렵다고 하네요.”6억이라니, 고해에게 빚을 갚고 나면 황종우는 한 푼도 남을 게 없었다.“6억은 정말 안 돼요!”그는 고개를 뻣뻣이 들며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정말 빈털터리가 될 신세였다.“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정도가 있어야지, 이건 제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있는 금액이 아니네요… 저, 이사장님?”그런데 황종우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전화가 끊어졌다.“손씨 그룹, 염구준, 손가을, 임명성!”황종우는 절망적인 상황에 절규하듯 바닥에 엎드렸다. 그는 처음 임명성이 제안했던 금액을 받아들이지 않고 욕심부렸던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때 받아들였다면 적어도 일이 이 지경이 되는 일을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아무리 후회해도 늦은 법, 황종우는 지금 당장 6억이 없으면 목숨을 잃을 판이었다.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전화를 들어 임명성에게 연락했다.“이사님… 아니, 형님!”잠
염구준은 그날 곧바로 황종우와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사흘이 채 지나지도 않아 해외 직원들이 봉황국에 입주해 바로 업무에 돌입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손가을 씨, 정말 죄송하네요. 화련상조회에 얘기 전해 들었어요.”손씨 그룹 해외사업부가 정식으로 출범하던 날, 앨리스가 미안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전화했다.“제가 생각이 짧아서 오해가 생기게 만든 것 같아요. 염 선생님께도 꼭 제 사과를 전달해 주세요. 대신 이번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화련상조회에 열리는 비즈니스 연회에 초대할게요. 염 선생님과 함께 참석해서 꼭 자리를 빛내 주길 바라요! 분명 봉황국에 정착하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비즈니스 연회라는 말을 들은 손가을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염구준을 돌아봤다. 가야 하나,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하나…. 그녀는 아직도 그날 오정형이 얼마나 무례하게 굴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만약 회사 규모가 밝혀지지 않더라면, 오정형이 막판에 공손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손가을은 화련상조회가 달갑지 않았지만, 앨리스가 먼저 초대를 하니, 고민이 됐다.“낯선 곳에서 정착하려면 인맥이 중요하지. 연회에 참석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염구준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여유롭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앨리스도 도와주려고 애쓰는 것 같은데, 우리도 체면은 세워줘야지. 저녁에 연회에 같이 가자!”그 말을 들은 손가을은 입술을 깨물었다. 여자는 여자를 잘 알았다. 앨리스는 유독 염구준의 이름이 나오면 친절해졌다. 게다가 물심양면으로 경쟁자 그룹을 지원해 주기까지, 정말 손씨 그룹만 보고 이런 호의를 베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오샤나지 그룹은 손씨 그룹이 없어도 이미 충분히 국내외로 잘 나가는 회사였다. 아무리 요즘 손씨 그룹이 잘 나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의 지원은 지나쳤다. 손가을은 자연스레 염구준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앨리스가 진짜로 노리는 건 어쩌면 그룹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염구준일지도 모른다는 강력한 예감이 들었다.“무슨
”최근 용하국에 들어와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다던데, 심지어 서북광업도 인수했다면서요?”“저희도 가서 인사 좀 드리고 올까요? 언제 또 협력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잖아요.”손가을와 염구준이 연회장에 들어서자,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1년 만에 손씨 그룹은 남들이 평생을 거쳐서도 이루지 못할 업적들을 이루었다. 특히 신주그룹을 인수한 뒤, 손씨 그룹은 빠르게 규모를 확장하며 의료 미용 업계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손가을의 명성도 빠르게 치솟았다. 모두 그녀의 미모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청해 제일 미녀라는 소문이 괜히 난 것이 아님을 오늘 증명되었다. 모두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손씨 그룹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연회가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 어느새 8시 30분경이 되었다.“진 도련님, 사람들 모두 도착했다고 합니다.”진서호와 앨리스는 한참 따로 마련된 객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오정형이 갑자기 문을 두드리며 나타났다.“손씨 그룹 손가을 대표님도 연회장으로 들어오셨답니다!”청해 제일 미녀, 손가을!진서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는 오정형에게 가보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앨리스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앨리스 씨가 말씀하신 분도 도착한 모양이네요. 얼마나 아름다울지 기대되네요. 앨리스 씨랑 견줄만한 미녀라, 우리도 이제 가볼까요?”진서호가 앨리스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하지만 앨리스는 그의 잔당에 맞춰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진서호와 함께 연회장에 나타나게 된다면, 공개적으로 둘이 한편임을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앨리스의 목적은 진씨 가문의 몰락이었다. 오늘 진서호는 반드시 염구준의 미움을 사야 하는데, 함께 있을 수는 없었다.“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잠시 뒤에 뵐게요.”앨리스가 손에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내려다 놓으며 진서호를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먼저 가세요, 진서호 씨.”그 말을 들은 진서호는 조금 실망했지만, 충분히 그녀의 입장을 이해했
그건 바로 염구준을 다른 여자한테 빼앗겼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훌륭한 남자가 임자가 있는 것도 모자라 아이까지 있을 수가 있지? 손가을을 떠올린 앨리스는 속에서 질투심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 자리를 대신하고 싶었다.염구준과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있다면 오샤나지 그룹도 분명 엄청난 성장할 수 있을 텐데!한편, 진서호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화련상조회에 가입하려면 최소 몇십억 보증금과 수많은 서류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은 최소 반년,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고도 안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화련상조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진서호를 찾아 뇌물을 주곤 했다. 그런데 손씨 그룹은 보증금은 고사하고 오정형과 트러블까지 일으켰다. 아무리 오정형이 잘못했더라도 명색이 화련상조회의 관리자였다. 그런데 이런 면박을 주다니, 벌써 거기서부터 진서호는 손씨 그룹에 적대감을 품게 되었다. 거기에 앨리스의 물심양면 태도까지, 그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손씨 그룹이라…. 하!”진서호는 질투심과 분노가 가득한 얼굴로 빠르게 연회장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청해시의 최고 미녀라고 불리는 손씨 그룹의 대표 손가을에 대한 호기심도 일었다.하지만 그 누가 되었든, 그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화련상조회에 가입할 수 없을 것이다!그러는 사이, 연회장. 손가을은 수많은 유명인사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는 이미 크고 작은 연회장들을 많이 참석해 봤기에 거침없이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하지만 얘기를 나누는 중에도 틈틈이 염구준에게 시선을 보내며 애정을 드러냈다. 오늘날 그녀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 모두 그의 덕분이었기 때문이다.염구준을 바라보는 손가을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부드러웠다. 염구준이 없었다면 손씨 그룹은 쉽사리 장애물들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한 번도 손가을을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다. 그의 힘이 없었다면 손씨 그룹은 글로벌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
염구준을 향해 날아오는 것은 엄청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금강 방망이 한 개 뿐이었다. 기운의 량으로 보아 세 명의 힘이 전부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베르 일행이 전력을 건 최후의 일격이었다.쾅!한 자루의 검과 한 개의 방망이가 충돌하며 눈부신 불꽃을 일으켰다.폭발적인 에너지가 주변에 퍼져나가며 양측은 잠시 균형을 이루었다.세 사람의 실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막았다! 얼른 보트 준비해, 후퇴한다!”베르의 창백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루카와 슈카 역시 서로 부축하며 일어섰다.이미 힘이 고갈된 지라 그들의 얼굴엔 혈색도 없었고, 기운조차 미약했다.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였다.“하압!”염구준은 팔에 힘을 주어 금강 방망이를 밀어내려 했지만, 방망이가 꼼짝도 하지 않는 걸 발견했다. 이 전법은 오묘했다. 상대방이 시전하고 조종하지 않아도 타겟을 쫓아 움직이는 것처럼 홀로 움직였으니까 말이다.이대로라면, 몸이 먼저 나가떨어질 판이었다.베르는 떠나기 전에 염구준을 보며 독한 말을 남겼다.“염구준, 자만하지 마라. 스텔라성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 돌아가서 강자들을 전부 불러와 널 죽여주지.”“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얼음처럼 차가운 염구준의 목소리에 모두가 몸을 살짝 떨었다.이미 흑풍의 사태로 배운 바가 있었기 때문에 염구준은 적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흥, 말은 누구나 하지. 하지만 나중에 지키지 못하면, 네 얼굴에 침 뱉는 꼴이 될 걸?”베르는 비웃으며 염구준의 말을 맘 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자신의 필살기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염구준은 검을 쥔 양손을 살짝 옆으로 움직이며, 손을 놓았다.우웅!그러자 구자검은 더 이상 금강 방망이와 대치하지 않고, 잔상을 남기며 쏜살같이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같은 시각에 금강 방망이 역시 미친 듯한 속도로 염구준의 왼쪽 가슴을 향해 돌진했다.이건 자신의 목숨으로 적의 목숨을 바꾸는 방식이었다.꽈악!염구준
“염 선생님, 저희가 가서 막을까요?”노신기는 갈등하며 조심스레 물었다.비록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염구준 덕분에 얻은 것이 많았기에 돕고 싶어서였다.“아니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염구준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대형 방패를 계속 내리쳤다.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노신기 일행의 실력으로는 개입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염구준은 잘 알고 있었다. 가봤자 죽을 게 분명하다는 것도 말이다.한편, 전장의 중심에 선 세 사람은 자신들이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있으며, 살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죽을 각오로 덤벼!”쾅!베르의 눈엔 살기가 가득했다. 손에 쥔 대형 방패는 마침내 한계에 도달하며 산산이 부서졌다.그의 피로 물든 두 손에는 어느새 짧은 단검이 들려 있었고, 그는 그것으로 염구준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하지만 날카로운 칼날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얕은 두 줄의 상처뿐, 역시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다.일반적인 공격은 염구준에게 통하지 않았다. 과거, 염구준이 육체의 한계를 돌파한 리아성전의 전주를 쓰러뜨린 것도 필살기와 정제된 진기 덕분이었었다. 심지어 한 번에 쓰러뜨린 것도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싸웠었다.육체가 극한으로 강해진 상대를 쉽게 이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염구준은 베르를 걷어차 밀어낸 뒤, 곧바로 루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세 명을 상대할 때 가장 확실한 방식은, 하나씩 쓰러뜨리는 것이었다.“젠장!”염구준이 갑자기 타겟을 바꿀 줄 몰랐던 루카는 급히 막아섰지만 한 칼에 밀려났고 이어진 두 번째 공격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강자들의 승부는 한 수, 한 수가 치명상이라 조금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베르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하고 이를 악물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삼절진을 쓰자!”두 형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베르 뒤로 이동한 뒤, 손을 그의 등에 얹었다.이 필살기에 승패가
베르 세 사람을 포함해 이 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조차 염구준이 쓰는 게 무슨 전술인줄 몰라 어리둥절해졌다.방어를 완전히 포기하고 정면으로 달려드는 행위는 자살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건방지긴!”“내가 막을 테니 너희는 죽을 힘을 다해 공격해!”이에 베르의 일그러진 얼굴에는 약간의 기쁨이 섞였다. 그는 달려오는 염구준을 보며 포효하듯이 명령을 내렸다. 해저에서의 전투 경험에 의하면, 그는 자신이 특별히 제작한 대형 방패로 염구준의 공격을 최소 서른 번은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쾅!그러나 시작에 불과한 염구준의 첫 공격에 베르는 몇 걸음이나 밀려났고, 방패엔 반 치 정도 깊이의 칼자국이 선명히 새겨졌다.이 방패는 염구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베르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거라 다른 것보다 더욱 단단하고 두꺼웠다.텅텅!루카와 슈카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동시에 염구준의 옆구리를 향해 칼을 박아넣었다.손목에 힘을 잔뜩 실은 터라 염구준의 호체진기를 가뿐히 뚫었지만 몸에는 옅은 상처밖에 내지 못했다.아무리 힘을 더 실어도, 더 깊숙이 찌를 수가 없었다.“육체의 극한까지 도달했다고?”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은 일제히 감탄을 내뱉었다.두 명의 최강 반보천인의 공격을 오직 맨몸으로 버텼다는 것부터 염구준의 육체가 이미 극한까지 도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쾅! 쾅!염구준은 루카 형제의 공격을 거의 무시한 채, 계속해서 베르에게 맹공을 퍼부었다.공격이 계속 되면서 방패에는 칼자국이 점점 더 많아졌고, 베르도 연달아 밀려났다. 이 엄청난 충격력에 그의 손바닥은 결국 찢어져 버렸고,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공격 안 해? 밥 안 먹었어?”베르는 체내의 기혈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방패를 들고 소리쳤다.그제야 그는 그가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 했음을 깨달았다.‘방패가 30번의 공격을 버틴다고 해도 내가 버티지 못해.’염구준의 몸이 반보천인의 극한에 다다른 이후, 방어력 뿐만 아니라 힘도 강해져서 전보다 공격이
모두가 향유고래의 위를 보고 눈이 커졌다.기뻐하는 사람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사람과 고래가 마음을 합쳐 수많은 고난을 뚫고 마침내 위험천만한 해저 심연에서 빠져나온 거다.그 과정의 험난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노신기는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는 듯,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염 선생님, 돌아가시지 않으셨군요?”말을 내뱉은 후, 그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미 말을 마친 후라 뭐라고 바꿀 수도 없었다. “어... 네, 살아있긴 합니다.”염구준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냈다.솔직히, 좀 웃긴 질문이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완전히 멀쩡한 염구준을 본 베르는 숨이 턱 막혔다.“염구준, 너...”깊고 깊은 바다 밑에서 화산 폭발과 함께 대지진이 일어난 상황에, 잠수 장비도 없다는 건 그냥 죽음을 의미했다.하지만 염구준은 그 위기 속에서 향유고래를 몰아 드라마처럼 살아 돌아왔다.베르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진정해, 나이도 있는데 괜히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와서 그 자리에서 죽으면 곤란하잖아.”염구준은 베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로 열받아서 죽어버리길 바라는 눈치였다.서로 죽이려 드는 사이끼리 예의는 사치일 뿐이었다.“흥! 바다 밑에선 겨우 살아남았을지 몰라도, 여기선 끝이다.”“루카, 슈카! 저 녀석을 죽여라!”베르는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염구준을 가리켰다.휙휙.하지만 그 두 형제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빠르게 몸을 뒤로 빼며 보트를 밟고 전함 위로 훌쩍 올라가 버렸다.“부성주님, 저 녀석은 강하니 부성주님께서 직접 나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입에 발린 소리로 한껏 띄워주니 베르도 그들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셋이 하나를 상대하는 상황임에도 정작 그의 마음속엔 불안감만이 가득했다.염구준의 강함이,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염구준은 검을 들고 베르를 향해 겨누었다.“이제 끝을 보자.”이제 거의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으니, 갚을 원한은 갚고, 끝낼 일은 끝낼 때였다.“
비록 인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베르 일행이 드디어 수면 위로 올라왔다.여러 가문을 합쳐서 겨우 20명이 살아서 돌아오고 나머지는 심해에서 전사했다.신비한 생물체가 공격하는 바람에 또 한 번 참담한 손해를 보았다.“빨리 출발해!”베르는 선박에 올라오자마자 부하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지금 그의 안색은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정예병들을 잃고 강력한 조력자 세라까지 잃었는데, 고작 가짜 옥패를 찾다가 죽을 뻔했다.“출발해. 바다 화산이 곧 폭발할 거야!”“우리도 스텔라성이 복수하기 전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다른 가문에서도 각자 선박과 잠수함을 타고 먼 곳으로 향했다.바다 밑의 움직임이 너무 커서 그들도 휘말릴까 봐 너무 무서웠다.지금 해수면에 남은 사람은 노신기와 아타의 선박뿐이었다.그들은 염구준이 살아서 돌아오길 기다렸다.저런 인간들도 살아서 돌아오는데 대단한 실력을 가진 염구준은 무조건 살아서 돌아올 거라 굳게 믿었다.“문주님, 소용돌이가 나타났어요.”선박에서 누군가 소리를 쳤다.“소용돌이?”모두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소용돌이가 점점 거세게 번지는데 이러다 선박 세 척까지 삼켜버릴 것 같았다.또 위기가 닥치자 그들은 안절부절하지 못했다.“아타 장로님, 저기…!”노신기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뒷말을 흘렸다.솔직히 그도 염구준이 살아서 돌아오길 기다리고 싶지만 이러다가 백 명의 부하들이 전부 죽을까 봐 걱정되었다.“일단 철수하고 소용돌이가 사라지면 보트로 찾으러 오죠.”아타도 급속하게 퍼지는 소용돌이를 보고 일단 명령을 내렸다.해수면이 올라오면서 작은 섬들을 완전히 삼키고, 멀지 않은 곳에서 소용돌이가 미친듯이 주변을 삼켜 버리기에 이러다 정말 전멸할 것 같았다.노신기가 베르에게 다가가 나지막하게 물었다.“염 선생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하하하, 당연히 내가 죽였지!”베르는 바다에 쩌렁쩌렁 울리도록 웃으면서 빌어먹을 허영심 때문에 또 허풍을 떨었다.당시 현장은 난장판이라 제대로 본 사람은 얼마되지 않
밖에서 보면, 절벽이 곧 무너질 것처럼 거세게 흔들렸다.게다가 바닥에서 진흙과 모래가 일면서 시야까지 가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어느 방향인지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하하하, 염구준이 동굴에 묻혔으면 틀림없이 죽었을 거야.”이미 추동 장치로 수십 미터 올라간 베르가 유난히 신나게 웃고 있었다.염구준이 이곳에서 뼈가 부서지고 연기처럼 사라지길 바랬다.촤아아!그런데 기뻐한 지 10초도 되지 않아, 한 그림자가 혼탁한 바닷물을 뚫고 나타난 것이었다.염구준이 아니면 누구일까?“흥, 추동 장치도 없는데 수천 미터나 되는 심해에서 어떻게 올라오나 보자.”베르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더니 더는 염구준을 상관하지 않고 위로 올라갔다.동굴 밖으로 나온 염구준은 마치 지옥에 온 것 같았다.검붉은 암장이 소용돌이치고 모래벌레들이 꿈틀거리며 사방을 헤엄치고 대왕 오징어도 균열을 뚫고 심연으로 빠져나왔다.이곳의 기괴한 생물체들도 도망치느라 인간을 봐도 공격하지 않았다.염구준은 동굴 밖에 나와서도 바다의 화산이 폭발하는 위기에 처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지금 잠수 장비와 추동 장치는 없고 산소통만 남는데 몇 숨만 쉬면 바닥날 것 같았다.갑작스러운 변고로 아래로 흡수하는 암류가 사라져서 올라가기 쉬웠지만 그래도 시간이 한참이나 필요했다.어쩌면 해수면으로 올라가기 전에 암장에 삼키거나 익사해 죽을 것 같았다.‘방법이 있어.’문뜩 좋은 방법이 생각난 그는 빠른 속도로 심해 모래벌레의 둥지로 향했다.그곳에 죽은 무술인들의 잠수 장비를 찾아볼 생각이었다.슈우웅!얼마 가지 못하고 지면이 점점 격렬하게 움직이며 대량의 암장이 사방으로 흘러나왔다.바다의 화산이 제대로 폭발한 것이다.분화점에서 가장 가까운 모래벌레 둥지는 순식간에 암장이 덮쳐버렸다.“뭐야. 나랑 해보자는 거야?”왠지 모든 불리한 요소들이 전부 염구준을 향하는 것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심해에서 알 수 없는 에너지에 의해 놀아나다가 죽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방금 전에 심해 눈물의 덕
신비한 생물체는 춤을 추듯 물속을 떠다니더니 공의 명령을 받았는지 우르르 몰려서 베르 일행을 공격했다.“공격을 멈추지 마세요!”두통이 밀려온 베르는 명령을 내리고 곧장 동굴로 도망쳤다.일부 무술인들도 그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각자 도망치기에 바빴다.생물의 정체와 아직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기에 일단 도망치는 것이었다.“살려줘요!”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세라는 베르가 도망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데려가길 바랐다.그런데 본인만 챙기느라 누구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일단 한 걸음만 뒤처져도 바로 죽기 때문에 누구를 도울 여력이 없었다.“아악!”운이 나쁜 무술인들은 대량의 생물체에 공격당해 비명을 지르다 백골이 되어버렸다.그리고 몸에 한두 마리씩 들어간 무술인들은 경련을 일으키다 바로 기절했다.기괴한 생물체는 공격력은 약하지만 일단 몸에 닿으면 방어할 틈도 없이 살해했다.곧 도망친 사람들은 살아남고 늦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전부 죽어버렸다.지금 심해에 염구준이 혼자 남았으니, 반투명한 생물체들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조금만 더!”염구준은 천천히 흐르는 심해의 눈물을 초조하게 바라보면서 여러 번이나 검기를 휘둘러 생물체를 제거했다.아무리 극한 반보천인이라고 해도 이름도 모르는 생물과 억지로 맞서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감당하지 못하면 백골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니까.슈슈슝!신비한 생물체가 죽는 족족 살아 있는 생물체들이 계속 헤엄치며 다가왔다.염구준이 검을 휘둘러 죽일 때마다 더 많은 생물들이 나타나는 것 같았다.마치 그의 피와 살을 모조리 먹어 치울 기세였다.그래도 염구준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검을 휘둘러 자신을 보호했다.그때 일부 생물체는 그가 방심한 틈을 타서 몸으로 스며들었다.“이것들이 정말 끈질기네.”염구준은 체내의 불 원소의 힘으로 몸 겉면에 황금색 화염을 형성했다.심해에서 불 원소의 힘은 압박을 받아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생물체를 제거하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치지직!그에게 접근한 생물체는 엄청
베르는 동시에 방어한다면 염구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하나씩 파괴되는 것을 보고 괴성을 질렀다.“아아아악!”염구준의 검은 여전히 날카롭게 베르의 방어벽까지 쉽게 깨 부셨다.갑자기 대량의 에너지를 사용했더니 구자검이 전처럼 날카롭게 움직이지 않았다.“반격!”이때다 싶어 베르는 다섯 명과 함께 기운을 끌어올려 반격에 나섰다.쿵!맹렬한 공격으로 쌍방은 각자 뒤로 물러서고 그 충격으로 수중에 회오리바람을 만들어 동굴이 심하게 흔들렸다.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미처 방어벽으로 막지 못해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잠수 장비가 깨지고 심해의 수압에 경련을 일으키다 익사했다.그 장면을 본 일부 무술인들은 괜히 끼어들다 죽을까 봐 한참 뒤로 물러섰다.돌기둥에 돌아온 염구준은 아직도 심해의 눈물이 흐르는 것을 발견했다.이렇게 귀한 물건을 낭비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의 산소통을 빼앗아 검으로 자르고는 거기에 담기 시작했다.심해의 눈물이 워낙 밀도가 강해서 산소통의 물이 알아서 흘러나왔다.그때 전체 동굴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아아악!”또 갑작스럽게 닥친 변고에 다들 주변을 경계했다.베르의 표정은 가관이었다.눈앞의 강적도 죽이지 못했는데 또 알 수 없는 위험이 닥쳐서 미치고 팔짝 뛸 것만 같았다.“불꽃으로 비춰!”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몇몇 불꽃이 위를 비추었다.대부분 부하들은 가방에 보물을 하나라도 더 쑤셔 넣으려고 전등이나 불꽃을 만드는 장비를 전부 던졌다.불꽃이 이동할 때마다 주변을 비추었는데 위험한 생물체는 보이지 않았다.대신 아무런 상처도 없는 죽은 시체가 모두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그것을 본 순간 불길한 느낌이 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적의 정체를 모르니 아무리 힘이 있어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응?”염구준도 수상한 기운을 느끼다 갑자기 누군가 숨통이 끊어지는 것을 감지했다.죽은 모습은 전에 보물을 찾으러 왔던 무술인들의 시체와 증상이 똑같았다.‘엄청난 생명이 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