مشاركة

제5화

مؤلف: 김희랑
그녀는 진열대 옆에 서서 장바구니에 온갖 종류의 빵을 담고 있었다. 인스턴트 빵을 사면서도 뒷면의 성분표를 꼼꼼히 확인하며 방부제가 적은 빵을 고르는 모습이었다.

예전에는 다른 여자들처럼 긴 웨이브 머리에 큐빅 박힌 네일아트까지 관리도 잘 받더니 지금은 하얗고 고운 목덜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제대로 손질하지 않은 머리는 푸석할 따름이었고 검은 뿔테 안경이 생기 어린 눈동자를 다 가렸다.

누군가에게서 걸려 온 영상 통화를 받자마자 그녀는 재채기를 했다. 상대방이 뭐라고 했는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말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가족에게 훈계를 듣는 듯한 모습이었다.

성지민은 정말 오랜만에 이런 표정들을 보게 됐다.

아주 오래전, 그녀가 임신했을 때 발이 심하게 부었었는데도 몰래 외출했다가 그에게 들킬 때면 싸늘한 얼굴을 마주하고 꼭 저런 표정을 지었었지. 그러고는 애교 조로 속삭이는 김도아였다.

“지민아, 내가 잘못했어. 다음에 또 몰래 나가면 그땐 나 때려. 제발 이렇게 외면하진 말라고, 응? 지민아, 지민아...”

김도아는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면 꽤 끈질긴 편이었다. 상대가 화가 다 풀릴 때까지 계속 곁을 맴돌며 마음을 녹이는 타입이었다.

그때의 성지민도 실은 자신이 어디까지가 찐 분노이고 어디부터 연기인지 구별이 안 되었다.

다만 그를 달래려는 김도아의 마음만큼은 백 퍼 진심이었다.

성지민은 기억이 시작될 때부터 스스로에게 ‘정을 끊고 사랑을 버리라’라는 첫 번째 과제를 주입했다. 그는 과거에 얽매인 사람이 아니었고 자신이 했던 일에 절대 후회하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심장 어딘가 무뎌진 신경이 움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바늘에 찔린 것처럼 따끔거렸다.

그는 시선을 거두고 눈가에 깃든 날카로운 기세를 모조리 숨겼다.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저 여자를 외면해버렸다.

계산할 때, 김도아는 진열대 옆의 껌을 보더니 겸사겸사 한 통 집었다. 오늘은 비가 계속 내려서 차를 가져오지 않았다. 그녀는 봉투를 들고 우산을 쓴 채 지하철역 방향으로 걸어갔다.

주경찬과의 영상 통화는 아직 끊지 않았다. 그는 매우 바빴고 대화 소리가 뒤섞여 시끄러웠다.

“전화 끊고 일 봐, 경찬 씨.”

김도아가 마지못해 말했다.

“괜찮아. 별로 안 바빠.”

주변엔 온통 외국인뿐이라 주경찬이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

“너 집에 도착하면 끊을게.”

“이제 곧 지하철 타야 해. 끊어 이만.”

그녀는 더 이상 주경찬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영상 통화를 끊었다.

주경찬은 음성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3초간의 침묵 끝에 마지못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집에 도착하면 꼭 문자 보내 줘, 도아야.]

김도아는 잘 안다. 집에 가서 문자를 보내지 않으면 오늘 밤 이 남자는 열두 번도 더 전화를 걸어올 것이다.

주경찬은 그녀가 이 세상에서 만난 가장 좋은 사람이다. 자상하고 세심한 배려에 그녀는 다시 한번 사랑할 용기를 얻었다.

그녀는 이 남자에게 너무 고맙고 또 그를 엄청 신뢰했다.

“김 교수님!”

지하철역 입구에 다다랐을 때, 서른 살 정도의 중년 남자가 빠르게 걸어오더니 빙긋 웃었다. 꽤나 순박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김 교수님 맞으시죠? 그럴 줄 알았어요. 의사 가운을 안 입으시니 미처 못 알아봤다니까요.”

김도아는 이 남자가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그는 바로 골절된 산모 환자의 보호자였다.

“혹시 병원으로 돌아가시는 길인가요? 저 좀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아내한테 줄 물건을 샀는데 우산을 놓고 왔어요.”

남자는 한진에 와서 노가다 일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매우 우직하고 순박했다. 그는 김도아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이에 김도아가 무심코 경계를 일으키며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남자는 멈칫하며 민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악의가 없다고 말하려는 찰나, 김도아가 대뜸 우산을 내밀었다.

“가져가세요.”

지하철역까지는 불과 50미터 거리였다. 그녀는 그대로 비를 맞으며 걸어갔다.

“에이, 이러시면 제가 어떻게... 교수님 비 맞게 할 순 없죠.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남자는 진심 어린 태도로 말하며 우산을 펼쳐 그녀의 걸음을 따라잡았다. 우산을 반쯤 씌워주려고까지 했다.

“비 오는 날에 이렇게 맞고 가면 감기 걸리세요.”

“괜찮아요. 지하철역까지 거의 다 왔어요.”

“그래도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마침 아내 상태도 좀 여쭤보고 싶어서...”

김도아는 간단하게 몇 마디 전하며 당부했다.

“아내분은 고위험 산모라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예요. 절대 소홀히 하지 마시고 세심하게 잘 보살펴 주셔야 합니다.”

“저도 충분히 잘해주려고 노력하는데 종일 시답잖은 일로 시비만 거네요!”

남자가 투덜거렸다.

“애 낳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우리 엄마는 저 낳을 때 아무런 불평도 안 했는데. 마누라는 하루에 삶은 계란 몇 개씩이나 먹어치우고 툭하면 울고불고 난리에요. 진짜 보고만 있어도 짜증 난다니까요.”

남자는 곁눈질로 김도아의 차분한 옆모습을 힐끔 쳐다봤다.

“교수님처럼 온화한 성격의 여자였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녀는 늘 심플한 옷차림이었다.

검은색 외투에 다리 라인을 보정해주는 스키니 진으로 꼼꼼하게 가렸건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이 밤은 자꾸 엉큼한 마음을 품게 했다.

“교수님, 사실 아까 다 들었어요. 남편분이 집에 안 온 지 꽤 됐다면서요?”

그의 시선이 김도아의 새하얀 목덜미에 고정됐다. 순간 아드레날린이 치솟으며 흑심을 품게 되었다.

“일도 바쁘시고 돌봐주는 사람 없이 혼자 사느라 많이 외롭죠? 이참에 우리 둘이 잠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어때요?”

김도아가 걸음을 멈추고 그를 쳐다봤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댁 아내분이 열흘 뒤에 출산 예정일이시죠?”

“그냥 잠깐 즐기는 건데요 뭘. 우리 둘이 비밀만 잘 지키면 아무도 몰라요.”

남자는 마음이 찔렸지만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는 교수님이 다 알고 계신 줄 알았는데... 며칠 동안 제가 보내 드린 과일도 다 드셨잖아요. 저한테 호감이 있는 거 아니었나요?”

김도아의 평소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간파했다고 생각한 남자는 그녀의 힘을 무시하며 팔을 덥석 잡고 숲으로 끌고 가려 했다.

가슴 속에서 역겨움이 치밀어 오르자 김도아는 손에 쥔 봉투를 번쩍 들어서 남자의 머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남자는 비틀거리더니 장대비 속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봉투 속의 통 우유는 묵직하고 무거워서 돌덩이처럼 남자의 머리를 강타했다.

다만 그녀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굵은 빗방울이 사방으로 튀었고 남자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아픔에 신음하며 머리를 감싸고 살려달라고 빌었다.

바로 그 순간...

주변의 비가 멎은 듯했다. 김도아가 거친 숨을 고르며 동작을 멈췄고 눈앞에서 빗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고개를 들자 성지민이 우산을 들고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아우라는 늘 냉철함 속에 서늘한 위협을 머금고 있었는데 지금은 마치 태산처럼 고요했다. 그저 우두커니 서서 그녀를 위해 우산을 받치고 있을 뿐이었다

김도아는 그를 무시한 채 온 힘을 다해 남자를 두 번 더 후려친 후에야 손을 놓았다.

“나 그거 입에도 안 댔어요!”

그녀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차분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접수대 간호사들에게 줘서 길고양이나 먹여주라고 했거든요!”

성지민의 경호원이 남자를 끌고 간 후, 주위가 고요한 정적에 잠겼다.

김도아는 막 숨을 고르고 바닥에 떨어진 봉투를 주우려고 허리를 굽혔다.

이때 성지민이 먼저 몸을 숙여 물건을 줍더니 손에 쥔 검은색 가죽 장갑으로 진흙과 빗물을 닦아낸 후에야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김도아는 잠시 멈췄다가 물건을 받아 들었다.

“고마워.”

성지민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손이 닿았던 부분을 다시 한번 꼼꼼히 닦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김도아는 덤덤한 표정으로 봉투를 닦은 후 다시 챙겨 들고 앞으로 걸어갔다.

“비가 많이 와서 지하철은 이미 운행 중단했어.”

성지민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내가 데려다줄게.”

“괜찮아.”

“도아야.”

또다시 그 익숙한 말투, 왠지 모르게 거부할 수 없는 말투가 그녀의 귀에 박혔다.

김도아는 돌아서서 어둠 속에서 성지민과 눈을 마주쳤다.

“네 차 타면 그렇게 안전할까? 방금 처맞은 저 남자는 한밤중에 흑심 품고 들이대다가 봉변을 당했지. 그러는 넌? 뭐 설마 한밤중에 나타나서 위기에 처한 날 구해주려는 수작이야? 그러고는 또 차에 태우려고?”

그녀는 맑은 눈동자로 성지민의 속마음을 훤히 꿰뚫어 볼 기세였다.

그리고 그 눈가엔 은은한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뭐지? 잘나신 성 대표님께서도 나 같은 절름발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건가?”
استمر في قراءة هذا الكتاب مجانا
امسح الكود لتنزيل التطبيق

أحدث فصل

  • 그 후회는 치명적   제30화

    성연우는 그녀의 휘어진 눈웃음을 바라보며, 옆에 늘어뜨린 손을 살짝 움켜쥐었다.김도아는 소매를 걷고 뒷좌석에서 손가방을 꺼냈다.가방 너머로 철제 도시락을 만져 보았다.막 만들었을 때는 따뜻했지만, 기다린 시간이 길어 조금 식어 있었다.“돼지족발은 집에 가서 데워서 먹어.”연우는 조심스럽게 받아 안고, 숨을 고르며 말했다.“괜찮아요.”“데워 먹어야 해. 안 그러면 속이 불편해.”김도아는 코트 자락을 모아 그의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옷 잘 잡고, 돌아갈 땐 뛰지 말고. 옆구리 결릴 수 있어.”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김도아가 차에 타려는데 그가 갑자기 조용히 물었다.“이거... 어떻게 데워요?”김도아는 멈춰 섰다.“집에 있는 아줌마한테 부탁해. 너는 불 만지지 말고.”“지금 집에 아무도 없어요. 저 혼자예요.”바로 그때, 그의 배에서 때아닌 꼬르륵 소리가 났다.연우는 민망한 듯 입을 다물고 얼굴을 돌렸다.김도아는 잠시 말이 없었다.그는 한참을 고민한 듯하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말했다.“이모가 데워 주실 수 있어요?”....불이 오르고, 향이 퍼졌다.간장 족발의 냄새가 주방을 가득 채우는 동안 성연우는 김도아의 옆에 서 있었다.실내 온도가 갑자기 올라가 얼굴이 붉어져 양 볼에는 마치 홍조처럼 붉은 기가 돌았다.연우는 밥그릇을 들고, 다 데워지기도 전에 김도아가 집어 준, 충분히 익은 족발 한 점을 먼저 먹었다.기름진 음식은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며, 은미란이 그의 식단을 매우 엄격히 관리했기에 평소 이런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하지만 막상 먹어 보니 정말 맛있었다.“오늘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어?”김도아가 물었다.연우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그가 밥을 먹는 모습은, 그야말로 ‘허겁지겁’이라는 단어에 딱 어울렸다.김도아는 무력하게 입꼬리를 올렸다.이 아이가 평소 어떤 생활을 하는지 짐작조차 어려웠다.‘성지민은 아이 밥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 건가?’김도아는 족발을 두 점 더 떠서 아이의 그릇에 올려놓고

  • 그 후회는 치명적   제29화

    김효린의 항공편은 지연되어, 예정 시간보다 삼십 분 늦게 착륙했다.시중에서 아직 구하기도 힘든 최신형 LV 트렌치코트에, 굽 있는 가죽 부츠, 웨이브 진 긴 머리...캐리어를 끌고 나타난 그녀는 진한 눈썹과 붉은 입술로 화사하게 빛났다.“엄마, 연우야.”그녀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막 김씨 집안으로 돌아왔을 당시만 해도, 일반 운동화에 보풀 난 니트, 조거 팬츠 차림이었다. 김씨 집 정원 관리인이 그녀를 일하러 온 도우미로 착각해 분무기를 들라고 했을 정도였다.하지만 지금의 김효린은 돈으로 가꾸어지고, 교육과 지식으로 다듬어져, 분위기와 외형 모두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돌아올 때마다 매번 더 정제되고 세련되어졌다.은미란은 그녀의 깔끔하고 당당한 차림새를 보며 만족한 눈빛으로 웃었다.“효린아.”김효린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은미란이 미소 지으며 설명했다.“지민이는 갑자기 회의가 생겼어. 이따가 바로 본가로 가서 보자꾸나.”김효린은 눈에 스친 옅은 실망을 거두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앞으로 나아가 은미란을 안았다.“엄마, 오랜만이에요.”은미란은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해외에 있으면서 게을리 굴진 않았지? 공부는 제대로 했고? 금융 지식은 놓치면 안 돼.”“걱정하지 마세요. 열심히 공부했어요.”김효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연우를 안으며 다정하게 말했다.“연우야, 나 보고 싶었어?”속눈썹이 긴 성연우는 말이 없을 때면 얌전하고 고분고분해 보였다.아이가 아무 반응이 없자, 김효린의 미소는 눈에 띄게 잠시 굳었지만 이내 손을 잡았다.“너 줄 선물 정말 많이 사 왔어. 같이 가서 볼까?”그날 식사 자리에서 연우는 거의 먹지 않았다.식탁 위에는 양식이 대부분이었다. 양식을 즐겨 먹는 김효린이 여러 가지를 잔뜩 사 왔기 때문이었다.성연우는 입맛이 없기도 했고, 또 정말로 그런 음식을 먹고 싶지 않았다.성지민 역시 공적인 일에 묶여 제때

  • 그 후회는 치명적   제28화

    박서윤은 완전히 얼떨떨한 얼굴이었다.“네? 누군데요? 무슨 일이에요?”양한성 부원장은 그녀의 태연한 모습을 보고 더 걱정스러워졌다.“최근에 누구한테 미움 살 만한 일 없었는지 잘 생각해 봐요. 직접 찾아와 경고까지 했어요. 조 선생님이 입 무거운 사람이라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박 선생님이 병원에서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니겠어요. 박 원장님은 또 어떡하고요.”박서윤은 어리둥절한 채 나갔다가, 어리둥절하게 돌아왔다.“무슨 일이예요?”김도아가 그녀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박서윤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저 아무래도 누군가를 건드린 것 같아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 얌전히 살아야겠어요.”김도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네?”...집으로 돌아온 은미란은 아까 자신에게 사과하던 그 여자의 얼굴을 떠올렸다.“그 사람이 박서윤이야?”“네.”얼굴은 제법 순해 보였다.하지만 그뿐이었다.“어젯밤 지민이 만난 사람이 그 여자라고?”비서는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어제뿐만 아니라, 지난번 학술 세미나나 최근 연우 도련님이 이 병원에서 진료받은 것도 전부 그분과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은미란은 김효린의 귀국 소식을 듣고 전날 밤늦게 성지민에게 여러 차례 전화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그녀가 직접 별장으로 갔을 때 그곳에는 연우만 있고 성지민은 없었다.성지민의 모든 일정은 효성 그룹과 관련돼 있어 은미란에게는 투명했다.술자리까지 포함해 전부 알고 있었지만 그날 밤의 다른 일정은 알지 못했다.사람을 시켜 조사한 끝에, 그의 차가 낯선 일반 주택가에 주차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그곳은 처음이 아니었다.얼마 전에도 그 렉서스의 위치가 그곳에서 포착된 적이 있었다.비서가 따라갔을 때 한 여자가 웃으며 성지민과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떠나자 곧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효린이 곧 돌아와. 이 시기에 지민이 다른 여자에게 얽히는 건 원치 않아.”은미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 아이도 그다지 영악해 보이진 않더군. 지민도 잠깐의

  • 그 후회는 치명적   제27화

    그날 김도아는 연달아 세 건의 수술을 집도했다.수술실에서 나왔을 때는 온몸이 마비된 것처럼 느껴졌다.가볍게 숨을 고르고 사무실로 돌아온 그녀는 책상 위에 배달 음식이 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박서윤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누가 보낸 건지 맞혀 봐요.”김도아가 웃으며 말했다.“그 표정이면 얼굴에 주경찬이라고 써 붙인 거나 다름없는데요?”“형부한테 감사 인사 전해줘요.”박서윤이 혀를 찼다.“옛것이 가야 새것이 오는 법이죠. 어떤 사람이 전남편 후보로 탈락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라니까요...”마침 복도를 지나던 은미란이 사무실 안의 소리를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요즘 의사들은 다 이렇게 시끄러운가?”박서윤은 누군가가 자신을 핀잔하는 걸 듣고 멈칫하며 고개를 내밀어 밖을 보았다.고개를 기울이는 순간, 문밖에 서 있던 귀부인과 정면으로 마주쳤다.박서윤은 민망하게 헛기침을 했다.“죄송합니다...”다시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입을 가린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저 방금 목소리 많이 컸나요?”자리에 앉아 있던 김도아는 모니터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그녀는 그 여인의 뒷모습과 옆에 선 비서의 얼굴을 보았다.잠시 침묵하던 김도아는 시선을 거두고 배달 음식을 풀었다.박서윤이 좋아하는 것부터 건네주고, 주경찬에게 사진도 몇 장 보내주었다.최근 두 사람은 시차와 일정 탓에 실시간으로 연락하기가 어려웠다.잠깐 대화하기조차 쉽지 않았다.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은 은미란은 옆 정형외과 진료실로 들어갔다.진료를 맡은 의사는 비교적 젊어 보이는 남자였다.“여긴 다른 의사는 없어요?”조승현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제 경력이 부족하다고 느끼시면 내일 오전에 다시 오세요. 내일은 김 교수님께서 진료하거든요.”“혹시 박씨 성인 의사는 없나요?”은미란은 가방을 들고 천천히 자리에 앉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 여자의 평판은 어떤가요?”조승현은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다시 그녀를 보았다.“예약이나 연락처가 있으시면 직접 찾으시는 게

  • 그 후회는 치명적   제26화

    깊은 밤, 김도아는 자신의 볼보를 몰고 집 아래에 도착했다.얼굴을 때리는 찬바람에 그녀는 외투를 여미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문을 열려는 순간, 묘한 위화감을 느낀 김도아는 열쇠를 꽂으려던 손을 멈췄다.복도 불이 꺼져 있어 그녀는 손을 내리며 가볍게 기침했다.불이 ‘탁’ 하고 켜졌다.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자신이 예민해진 거라 여겼다.하지만 코끝에는 분명한 담배 냄새가 감돌았다.아주 옅지만 분명한 담배 냄새, 그것은 계단 쪽에서 나는 냄새였다.김도아는 집 안으로 들어가 재빨리 문을 닫았다.잠시 후,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그녀는 도어뷰로 확인한 뒤 문을 열었다.“세상에... 교수님, 방금 교수님 집 아래에서 누구 봤는지 알아요?”박서윤이 훠궈 재료를 들고 급히 들어왔다.김도아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귀신.”“귀신보다 더 싫어요! 성지민을 봤다니까요! 게다가 인사까지 해야 했어요. 이제 전 그 사람을 완전 쓰레기라고 생각해서 똑바로 보지도 못하겠어요. 교수님 찾으러 온 거죠? 괜찮아요?”“괜찮아요. 전 별일 없어요.”김도아는 담담히 창밖을 바라보다가 멀어지는 익숙한 차를 보고 시선을 거뒀다.그녀는 성지민이 요즘 왜 이상한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자꾸 그녀를 신경 쓰고, 그녀가 도움을 청하길 기다리고, 심지어 귀신에 홀린 듯 이곳에 나타난 것, 그리고 이혼을 원치 않는다는 그 이상한 말까지...이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아주 분명히 알고 있었다.성지민이 과거에 얼마나 그녀를 혐오했는지, 김효린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그러니 지금 그의 행동은 그저 소유욕에서 비롯된 것이다.한때 지배했고, 속였던 사람이 더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자 오랫동안 받들어졌던 성 대표님께서 느끼는 상실감이었다.남자의 정복욕이 이런 행동을 하게 만든 것뿐이니 전혀 놀랄 일도 아니었다.하지만 그녀는 그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도록 가만히 두지는 않을 생각이었다.그날 밤, 진수빈

  • 그 후회는 치명적   제25화

    “도련님, 대표님께서 돌아오셨어요. 내려와서 식사하세요.”가정부가 문을 두드리자 성연우는 일기장을 옆 책장에 밀어 넣었다.“네.”계단 난간을 잡고 내려가다 모퉁이를 돌자 막 돌아온 성지민의 모습이 보였다.그는 얌전히 말했다.“아빠, 오셨어요?”성지민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벗은 외투를 가정부에게 건넸다.검은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자 날카로운 팔 선이 드러났다. 성연우는 그에게서 술 냄새를 맡았다.게다가 은은한 향수 냄새까지 섞여 있었다.아버지는 향수를 싫어했다.하지만 가끔 향수 냄새가 묻어 있을 때가 있었다.구도영 삼촌은 많은 여자가 아버지에게 다가오려 하기 때문이라고 그에게 말해준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동안 성연우는 아버지 곁에서 특별한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그 사람만... 빼고.성연우는 국을 한 그릇 떠서 그의 앞에 놓았다.“아빠, 국 좀 드시고 술 깨세요.”일어서려는 순간, 손목의 스마트 워치 화면이 켜지며 ‘도아’에게서 새 메시지가 도착했다.성지민의 시선이 아이에게로 향했다.성연우는 순간 찔려 손을 움츠렸다.“오늘 주하람이 사과하러 왔어요. 보호자가 제 카톡을 추가해서...”“성연우.”성지민이 말을 끊었다.“내가 듣고 싶은 게 그게 아니라는 건 알잖아.”연우는 숨을 죽이고 오래 침묵하다가 말했다.“저는 그냥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었을 뿐이에요.”그는 그저, 자신의 엄마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싶었을 뿐이었다.“용서 확인서를 쓴 것도 그 이유겠지.”성지민은 낮고 담담한 목소리로 아들의 행동을 짚었다.“그 여자가 너에게 고마워하게 만들어 더 가까워지려고.”성연우는 고개를 몇 번 저었다.“아니에요.”그는 말했다.“전 그분이 힘들어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어요.”그녀가 병원에서 쓰러졌을 때 매우 괴로워 보였다.아마 그 주하람 때문이었을 것이다.그는 생각했다. 자신이 문제 삼지 않는다면 그녀는 덜 바쁠 것이고, 그렇게 힘들지도 않을 거라고....그날 밤, 성지민은 서재에만 세 시간이나 머물렀

فصول أخرى
استكشاف وقراءة روايات جيدة مجانية
الوصول المجاني إلى عدد كبير من الروايات الجيدة على تطبيق GoodNovel. تنزيل الكتب التي تحبها وقراءتها كلما وأينما أردت
اقرأ الكتب مجانا في التطبيق
امسح الكود للقراءة على التطبيق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