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황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네가 어찌 왔느냐?”서 황후가 대답했다.“신첩은 금영을 찾아온 지도 여러 날이 지났다는 생각이 들어 문병하러 왔사옵니다. 그날 독벌이 금영을 해치지는 못했으나, 크게 놀라지는 않았을까 염려되었사옵니다.”서 황후는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회임한 몸은 아무래도 더욱 귀히 보살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황제가 보는 앞이었기에 서 황후는 어질고 너그러운 황후인 양 행세했다.“더구나 폐하께서는 수많은 국사를 돌보시느라 미처 세심하게 살피지 못하는 부분도 있으실 것이옵니다. 신첩이 금영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마련해 주려 하옵니다.”황제는 서 황후의 태도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황후가 마음을 썼구나.”금영도 뒤이어 말했다.“신첩, 황후마마의 염려에 감사드리옵니다.”황제는 이미 아침을 마친 뒤였고, 이제 조회에 들어야 했다.황제는 서 황후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당부했다.“황후는 이곳에 오래 머물지 마라.”서 황후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염려하지 마시옵소서, 폐하. 신첩은 그저 금영에게 몇 마디 당부할 말이 있어 왔을 뿐이옵니다. 말을 마치는 대로 돌아가겠사옵니다.”하지만 서 황후의 속은 전혀 평온하지 않았다.황후인 자신이 후궁 안에서조차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곳이 생기다니.황제가 저 천한 것을 갈수록 더욱 총애하고 있다는 뜻이었다.황제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서 황후가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금영아, 아직 본궁에게 말하지 않았구나. 부족하거나 필요한 것은 없느냐?”금영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황후마마, 폐하께서는 이미 떠나셨으니 더는 이처럼 거짓으로 선의를 베푸실 필요가 없사옵니다. 말씀해 보시지요.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사옵니까?”서 황후는 얼굴에 띠고 있던 미소를 거두었다.“배금영, 독벌 사건에 네가 손을 썼다는 것을 본궁이 모를 줄 아느냐?”금영이 웃음을 터뜨렸다.“황후마마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신첩은 참으로 알아듣기 어렵사옵니다
황제는 태자와 이야기를 마친 뒤 금영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금영은 황제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마중 나가 그의 곁에 멈추어 섰다.황제는 묵옥반지를 낀 손가락을 들어 바람에 흩어진 금영의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며 나직이 말했다.“천천히 다니거라.”마침 이쪽으로 걸어오던 배명월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속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원한이 솟구쳤다.어찌하여 배금영은 황제에게 이토록 다정한 대접을 받는데, 태자전하는 자신에게 마음이 식어 버렸단 말인가?배명월은 황제에게 예를 올렸지만, 황제는 곁눈질조차 주지 않았다.배명월은 민망한 기색으로 태자에게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전하.”배명월은 눈물을 글썽이며 태자를 바라보았다.태자가 자신을 조금이라도 가엾게 여겨 주기를 바랐다.그러나 조금 전 황제에게 경고를 받은 태자는 배명월의 그런 모습을 보자 속이 더욱 답답해졌다.태자가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그 가련한 척하는 태도부터 거두어라! 지금 네 모습을 보거라. 어디에 태자비다운 체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느냐?”흡사 기루의 여인과도 같은 행색이었다.태자는 마지막 말까지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배명월의 체면을 조금이나마 지켜 주려는 뜻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체면까지 깎아내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황제는 금영의 앞을 빈틈없이 가로막아 태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했다.황제가 방향을 바꾸었을 때에는 태자가 탄 가마가 이미 멀어진 뒤였다.금영은 이 일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일국의 황제인 사람이 이토록 유치하게 굴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서 황후는 서봉전에서 여러 날을 꼬박 요양한 뒤에야 독벌에 쏘인 얼굴이 조금씩 나아졌다.하지만 그렇게 회복하고도 얼굴에는 손톱만 한 검붉은 자국이 몇 군데 남아 있었다.서 황후는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곁에서는 환옥이 서 황후의 얼굴에 분을 바르고 있었다.분을 한 겹 바른 정도로는 검붉은 자국을 가릴 수 없었다.서 황후의 얼굴이 어
금영은 말을 마치자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그 모습을 본 배명월이 황급히 뒤따라왔다.몇 걸음 걷던 금영은 우뚝 멈춰 서서 배명월을 돌아보며 차갑게 물었다.“배명월, 무엇 하러 본궁을 따라오는가?”배명월은 금영을 노려보며 싸늘하게 물었다.“배금영, 네 짓이지? 네가 손을 썼기 때문에 태자전하께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것 아니야?”금영이 배명월을 바라보며 냉소했다.“배명월, 본궁을 따라온 것이 고작 이 말을 하기 위해서인가?”배명월은 금영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폐하께서 네가 태자를 해치려 했다는 사실을 아시게 되어도, 지금처럼 너를 총애하실지 궁금하구나.”금영이 배명월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꾸짖었다.“내가 태자를 해치려 했다고? 본궁이 대체 어떻게 태자를 해쳤다는 것이냐? 설마 본궁이 태자에게 겉옷을 벗으라고 시키기라도 했다는 말인가?”금영은 자신이 꿀연꽃조림에 손을 썼다는 사실을 제 입으로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금영은 입가에 웃음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기색을 띠며 말했다.“생각할수록 우습구나. 너는 독벌에 쏘여 얼굴이 돼지머리처럼 퉁퉁 부었는데도, 태자전하께서는 너부터 지켜 주지 않으셨지. 속이 몹시 질투로 타들어 갔겠구나?”배명월은 금영의 말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금영은 다시 배명월을 바라보며 비웃듯 말을 이었다.“예전에는 온갖 수를 다 써서 본궁에게서 태자비의 자리를 빼앗아 갔지. 그렇게 태자비가 된 지도 벌써 반년인데, 그 자리에 앉아 살아 보니 맛이 어떠한가?”배명월은 금영이 노골적으로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배명월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배금영, 네가 언제까지고 의기양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 네가 정말 황실의 후사를 낳는다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어? 이 강산은 끝내 태자의 것이 될 것이고, 황후의 자리도 결국 내 것이 될 거야!”금영은 눈앞의 배명월을 바라보며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광경이라도 본 듯했다.배명월은 정말 앞으로도 태자가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
다행히 금영은 지난 일로 황제를 난처하게 할 생각이 없었다.이미 입궁한 이상 황제의 과거까지 모두 없던 일로 만들라고 할 수는 없었다.이 후궁들은 금영이 나타나기 전부터 황제의 곁을 지켜 온 이들이었다.이제 와 지난 일을 두고 괜한 질투를 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더구나 금영의 마음에는 딱히 질투도 없었다.금영이 말했다.“괜찮사옵니다, 폐하. 폐하께서 신첩의 지난 일을 두고 신첩을 탓하지 않으셨는데, 신첩이 어찌 안 첩여의 일로 폐하께 투정을 부리겠사옵니까?”금영은 황제가 앞으로 자신만을 바라보기를 바란다는 생각조차 감히 해 본 적이 없었다.그런데 황제의 지난 일을 따져 보았자 스스로 마음만 불편해질 뿐이었다.금영이 이토록 얌전하고 사리에 밝게 나오자 황제의 마음속 죄책감은 더욱 깊어졌다.죄책감이 커질수록 황제는 금영에게 더 잘해 주고 싶었다.황제가 나직이 말했다.“금영아, 짐과 함께 좀 걷자꾸나.”금영은 고개를 끄덕였다.황제는 금영의 손을 잡아 일으킨 뒤 조양전을 나섰다.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어화원을 천천히 거닐었다.*그 시각 배명월은 아직 서 황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오늘은 어마마마께서 빈틈없이 대비해 주신 덕분이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배명월은 눈물을 글썽이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서 황후가 차갑게 말했다.“본궁이 너를 도우려 그런 줄 아느냐? 모두 태자를 위해서였다!”배명월이 아무리 못마땅해도 지금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는 안 되었다.변경은 물론 대량 전체가 배명월이 황후가 될 운명을 타고났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배명월에게 변고가 생긴다면 태자의 지위마저 불안하다고 세상에 알리는 꼴이 될 터였다.더구나 배명월에게 일이 생기면 서 황후에게까지 불똥이 튈 수 있었다.서 황후가 싸늘하게 말을 이었다.“이번에는 본궁이 너를 감싸 주었다. 하지만 다음에도 이처럼 어리석게 군다면, 폐하께서 너를 용서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본궁 역시 더는 너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서 황후가 보기에 이번
황제는 금영의 말을 듣고 서 황후를 바라보았다.“이번에 황후와 태자가 가장 크게 다쳤는데, 황후는 이 일을 어찌 생각하느냐?”서 황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이번 일은 스스로 든 돌로 제 발등을 찍은 꼴이었다.서 황후는 이 억울함을 아무 말 없이 삼킬 수밖에 없었다.금영이 자신들의 계책을 미리 알아차린 뒤 그 틈을 이용해 일을 키웠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정작 금영에게 아무 짓도 할 수 없었다.금영은 이득을 모두 챙기고도 선심을 쓰는 척하고 있었다.서 황후로서는 속이 터질 만큼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었다.서 황후는 이를 악물고 아뢰었다.“신첩도 원비의 말이 지당하다고 생각하옵니다.”황제가 손을 내저었다.“그렇다면 모두 물러가라.”말을 마친 황제는 금영을 향해 손짓했다.“금영아, 짐의 곁으로 오너라.”그제야 사람들은 황제가 말한 모두에 금영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서 황후는 사람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안빈도 전각을 나서려던 그때, 황제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안빈.”안빈은 순간 멈칫하더니 황급히 몸을 돌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폐하, 또 무슨 분부가 있으시옵니까?”황제가 옅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오늘부로 너를 첩여로 강등하겠다.”막 전각을 나서려던 서 황후는 그 말을 듣고 다시 몸을 돌렸다.“폐하, 안빈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사옵니까?”황제가 담담하게 대답했다.“태자가 이토록 크게 다쳤는데도 온몸에 흰옷을 입고 왔으니, 보기만 해도 불길하지 않으냐?”겉으로는 태자를 걱정하고 서 황후를 배려하는 말처럼 들렸다.하지만 서 황후는 황제가 안빈을 벌한 까닭이 흰옷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오늘 흰옷을 입은 사람이 배금영이었다면 황제가 어찌 책망했겠는가?안빈이 죄를 얻은 진짜 까닭은 서 황후의 지시를 받고 이번 일을 배금영의 소행으로 몰아가려 했기 때문이었다.안빈이 오늘 흰옷을 입지 않았더라도, 황제는 그녀가 어느 발부터 전각 밖으로 내디뎠다는 이유라도 붙
서 황후와 금영과 달리, 현비는 황제가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그 말을 들은 금영은 속으로 냉소했다.철저히 조사한다는 말은 쉽지만, 이처럼 음지에서 벌어진 일을 어찌 그리 쉽게 밝혀낼 수 있겠는가?정말 모든 일을 손쉽게 밝혀낼 수 있다면, 이 후궁에는 손이 깨끗한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터였다.황제는 현비가 이번 일이 금영과 무관하다고 말하자, 현비를 바라보는 눈빛도 한결 누그러뜨렸다.“현비의 말이 옳다. 이번 일은 원비와 무관하다.”황제는 의미심장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다시 누군가 원비를 헐뜯는 말이 짐의 귀에 들어온다면, 결코 가벼이 넘기지 않겠다!”황제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짐은 이미 사람을 보내 지난 이틀 동안 어화원을 드나든 자들을 조사하게 했다. 누가 독벌을 황궁 안으로 들여왔는지 곧 밝혀질 것이다.”그 말을 들은 배명월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배명월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아바마마, 그 독벌들은 어쩌면 궁 밖에서 날아들었을 수도 있사옵니다.”금영은 배명월을 흘끗 바라보았다.황제가 배명월에게 시선을 돌렸다.“그 많은 독벌이 궁 밖에서 한꺼번에 날아들어 사람들을 쏘았다는 말이냐?”배명월은 마음이 다급해졌다.그녀는 어제 목함 하나를 받쳐 들고 입궁했다.황제가 입궁한 사람들을 철저히 조사한다면, 배명월이 들고 온 목함도 필시 의심을 살 터였다.바로 그때 손복안이 밖에서 들어와 아뢰었다.“폐하, 지난 이틀 동안 황궁을 드나든 자들을 모두 조사하였사옵니다.”손복안이 말을 이었다.“내관과 궁비는 황궁을 드나들 때마다 몸수색을 받으니, 몰래 물건을 들여오는 것은 불가능하옵니다. 다만 한 사람이 있사옵니다.”배명월의 가슴이 바짝 조여 왔다.“태자비마마께서 어제 목함 하나를 받쳐 들고 입궁하셨으나, 궁인들은 그 안을 살피지 않았사옵니다.”손복안이 계속 아뢰었다.그때 서 황후가 입을 열었다.“배명월이 어제 목함을 들고 입궁한 것은 사실이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궁 밖에서 가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