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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Author: 서린화
금영은 그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봉황이 새겨진 비녀를 살짝 고쳐 쥐었다. 그 비녀는 선대 영안후가 금영을 위해 사혼 교지를 받아낼 때, 황후가 내려준 것으로 태자비의 신분을 상징하는 신물(信物: 상징적 물건)이었다. 또한 회귀 전, 그녀가 스스로를 해치는 데 사용했던 물건이기도 했다.

태자는 금영을 본 순간, 잠시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모두가 금영을 태자비라 여겼고,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런 금영의 앞에서 다른 여인과 가까이 있는 모습을 보이게 되니,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스쳤다.

그러나 그는 태자였다. 그는 짧은 동요를 누른 뒤, 곧 평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긴 어쩐 일이냐? 설마 나 때문에 온 것이냐?”

이 말과 함께 태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설명하는 말투에는 엷은 짜증이 섞여 있었다.

“명월이가 손을 다쳤다고 들어 잠시 들렀을 뿐이다. 괜한 생각하지 말거라.”

금영이 입을 열었다.

“괜한 염려이십니다. 전 아무 생각도 안 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제 의지로 온 것이 아닙니다. 둘째 오라버니께서 강제로 끌고 오신 겁니다.”

금영은 분명하게 말했다. 괜히 태자 때문에 이곳에 온 것처럼 오해받는 피곤한 상황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금영의 말에 배경천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금영을 데리고 이곳에 온 원래 목적이 떠오르자, 그는 곧바로 재촉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명월에게 사과하지 않을 셈이냐!”

금영은 배경천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이미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잘못한 게 없으니, 사과할 일도 없습니다.”

“아직도 인정 못하는 것이냐? 네가 아니었으면 명월이가 이렇게까지 다칠 일이 없었을 것 아니냐!”

배경천이 성급하게 따져 물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로 벌을 받다가 촛대를 엎질렀는데, 왜 그 책임을 저에게 돌리는 것입니까?”

금영은 기가 막혀 헛웃음을 흘렸다.

“네 탓이 아니면, 누구 탓이란 말이냐! 네가 일러바치지만 않았어도, 아버지께서 이 일을 알았겠느냐!”

“둘째 오라버니, 저 때문에 언니와 다투지 마세요. 저로 인해 두 분의 사이가 안 좋아지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아요.”

배명월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배경천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제 잘못이 맞습니다. 태자 전하와 언니가 먼저 약속을 잡은 줄도 모르고 금풍대에 가자고 졸랐으니까요. 제가 경솔해서 언니의 마음을 상하게 했어요. 그러니 제가 사과해야 마땅하죠. 죄송해요, 언니. 몰라서 그런 것이니,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

그 말과 함께 배명월은 갑자기 금영을 향해 몸을 숙였다. 그녀의 태도는 지극히 진지하고 공손했다.

그 장면을 본 금영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배명월에게 사과를 요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녀린 배명월이 허리를 굽히며 사과하는 모습에 방 안에 있던 사람 모두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특히 배경천은 노골적으로 금영을 향해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배금영! 정말 오라비로서 너무 너에게 실망이다!”

배경천이 분노에 차 외쳤다.

태자 또한 배명월을 부축한 다음, 심기 불편한 얼굴로 금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명월은 잘못한 것이 없다. 정말 잘못을 했다면,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너에게 상처 준 나일 것이다.”

그리고는 차갑게 덧붙였다.

“불만이 있으면 나에게 말하거라. 괜히 명월을 몰아붙이지 말고.”

금영은 차가운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한때 모두 깊이 존경하며 사랑했던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피를 나눈, 같이 자란 오라비였고, 또 다른 이는 어린 시절부터 마음을 나누며 혼인을 약조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마치 그동안 함께해왔던 세월이 없었던 듯 금영을 몰아세우며 한 목소리로 배명월을 두둔하고 있었다.

금영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이들에게 한순간이라도 기대를 품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말이다.

금영이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할 말은 그게 다입니까?”

이어 담담하게 덧붙였다.

“아직 남아 있더라도, 자중해주십시오. 더는 듣고 싶지 않으니.”

그 말만 남기고 금영은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멈춰라! 누가 가도 된다고 했느냐!”

바로 그때, 배경천이 호통치며 그녀를 막았고, 금영은 냉소를 띠며 돌아보았다.

“제 몸에 붙은 다리로 제가 걷는 것도 허락이 필요합니까?”

배경천은 얼굴을 굳힌 채 말했다.

“명월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오늘 이곳을 나갈 생각은 하지 말거라!”

하지만 금영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 저도 말을 분명히 하겠습니다. 계속 저를 몰아붙이신다면, 오늘 저 아이가 태자와 사사로이 만났다는 이야기까지 아버지 귀에 들어가게 될 겁니다.”

“너!”

배경천은 분노로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둘째 오라버니께서 저를 고자질쟁이로 몰아붙였으니, 고자질쟁이답게 행동하려는 것뿐입니다.”

금영은 냉혹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뒤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배경천과는 언성을 높여 다툴 수 있었지만, 태자와는 더 이상 한마디도 나누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영이 떠나자, 배명월의 눈가가 붉어졌다.

“둘째 오라버니, 언니가 정말로… 또 아버지께 가서 고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 있느냐.”

배경천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배명월은 다시 태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태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걱정하거라. 말은 매서워도 속은 여린 사람이다. 정말로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태자의 마음속에도 미묘한 불확실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 년 반 만에 다시 본 금영은 예전보다 훨씬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과 배명월이 조금 가까워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질투를 품고 앙금 갚음한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옳지 않았다. 장차 태자비가 될 사람이 그렇게 속 좁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그와 배명월 사이는 깨끗했다. 그는 그저 어린 시절 고생이 많았던 배명월을 가엾게 여겼을 뿐이었다.

금영은 배명월의 처소를 나선 뒤, 눈보라 속을 걸어갔다. 하지만 어쩐지 눈보라보다 자신의 마음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한편, 서봉전(栖凤殿).

서 황후는 굳은 얼굴로 자신의 최측근인 궁녀 환옥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마마, 어젯밤 폐하께서 위명을 보내 내무부에 명하시어 면설원(眠雪院)을 정리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어제 폐하께서 한 여인을 취하셨는데, 그 여인을 들이기 위한 준비인 듯하옵니다.”

환옥의 말에 서 황후가 물었다.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냈느냐?”

환옥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모릅니다.”

“언제, 어디서 들인 여인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냐?”

서 황후가 다시 물었다.

환옥은 긴장한 듯 목소리를 낮췄다.

“예… 그건…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서 황후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

“이것도 모르고, 저것도 모르면서, 너희를 대체 왜 있는 것이냐!”

그는 여색을 밝히는 황제는 아니었다. 후궁 또한 모두 정식 간택을 거쳐 들여온 이들이었고, 규례를 벗어나 함부로 여인을 들인 적이 없었다.

서 황후는 오랫동안 봉인(凤印: 황후를 상징하는 봉황이 새겨진 인장)을 쥐고 후궁의 모든 일을 손바닥 보듯 관리해 왔었는데, 황제가 그녀의 통제 밖에 있는 여인을 들이는 일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서 황후는 직감했다. 이 일은 결코 단순하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황제로 하여금 규례를 깨게 만든 여인이라면, 결코 평범할 리 없었다.

그 생각에 이르자, 서 황후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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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월이 간절한 표정으로 금영의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두 사람의 차이는 더욱 극명해졌고, 영안후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점점 마음속에서 의구심을 느꼈다.최근 들어 금영이 보이는 행보를 떠올리며, 과연 태자비의 자리에 앉히는 것이 영안후부에 득이 될지, 아니면 실이 될지 알 수 없다는 불안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불안은 차라리 금영보다는 밖에서 자란 배명월이 태자비에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전에는 단 한 번도 품어 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 영안후조차도 자신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아무리 그래도 금영은 십여 년 넘게 곁에서 키운 딸이었다.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는 곧 스스로를 설득했다.흠천감에서는 영안후부의 핏줄 가운데 황후의 운명을 타고난 여식이 있을 것이라 말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금영일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배명월이 그 예언의 주인공일 가능성이 더 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비록 어릴 적 사건으로 곁에서 키우지는 못했으나, 배명월은 이 집안의 적통 혈통을 타고난 아이였고, 반면 금영은 달랐다. 그저 영안후부 노부인을 모시던 시비의 딸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런 핏줄이 이토록 고귀한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영안후는 배명월을 또렷이 바라보았다. 한편 배명월은 이번에는 대상을 바꾸어 금영을 부드럽게 달래듯 말했다.“언니, 아버지께서도 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걱정하셨어요. 그래서 지금 더 노하신 거예요. 얼른 아버지께 사과드리시지요. 그러면 금방 용서해 주실 거예요.”하지만 금영은 배명월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영안후만을 바라보았다.“아버지께서는 정말 제가 꾀병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무시당한 배명월은 가늘게 손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금영의 태도가 몹시 불만스러웠다. 도무지 왜 금영이 자신을 이토록 무시하며 오만하게 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영안후가 냉정하게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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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안후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명월이의 옷이 젖지 않았다고 해서, 네 오라비가 일부러 그런 말을 했다고 여길 수는 없는 법이다. 네 오라비가 설마 너를 모함하기라도 했다는 것이냐?”송정희 또한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못마땅한 기색으로 옆에서 거들었다.“금영아, 어떻게 그렇게 매정한 말을 할 수가 있니? 평소 네 둘째 오라비가 얼마나 너를 아꼈는지,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네가 누군가와 다툴 때마다 늘 네 오라비가 도와주지 않았느냐? 서왕의 세자와 있었던 일만 해도 그렇고, 가을에 네 옥패가 물에 빠졌을 때도 그렇고, 다 네 오라비가 나서 해결해 주지 않았느냐?”“게다가 네가 고열에 시달렸을 때도 밤낮으로 곁을 지키며 간병했던 이도 네 오라비였다. 이 모든 일이 있고도 정녕 네 오라비가 너를 모함하려 들었다고 생각하느냐? 네 오라비는 자신이 다치는 한이 있어도 절대 너에게 그런 짓을 저지를 리 없다.”송정희는 몹시 가슴 아픈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거기까지 들은 금영은 자기도 모르게 배경천을 바라보았다. 송정희가 한 말이 사실이었고,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 배경천은 한때 누구도 부럽지 않을 좋은 오라비였지만, 이제 그녀가 알고 있던 배경천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금영이 영안후부의 적녀 자리를 잃은 순간 모든 것이 변했다.금영은 영안후부 적녀의 자리나 태자비 자리 따위에 연연한 적이 없었다. 그런 것은 얼마든지 배명월에게 줄 수 있었지만, 단 한 가지, 혈육으로서 그동안 쌓아 왔던 정만큼은 변하지 않기를 바랐다.금영은 다시 송정희를 바라보았다.십여 년 동안 친모로 여기며 따랐던, 누구보다 온화하고 세심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은 겉으로만 안타까워할 뿐 실제로는 배명월을 두둔하며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있었다.금영이 이내 차갑게 입을 열었다.“둘째 오라버니께서 일부러 저를 모함한 것이라 단정 짓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눈으로 본 것이 늘 진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그리고는 영안후를 똑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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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안후는 이 상황이 몹시 난처한 듯 이마를 짚었다. 출신을 떠나 금영은 분명 그의 딸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아버지 또한 임종 직전, 그녀를 잘 돌보라고 당부까지 했었는데 말이다.영안후이라고 해서 금영을 일부러 박대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회양에서 돌아온 지 겨우 사흘, 그 짧은 시간 동안 금영이 벌인 일만 해도 이미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영안후는 더욱 실망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마음먹었다.“금영아, 그동안 네가 저지른 일들을 보아라. 명월이가 얼마나 억울하겠느냐. 그런데도 너를 두둔해 주고 있지 않느냐. 그리고 네 어머니가 언제 네가 친딸이 아니라고 홀대한 적이 있느냐?”영안후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우리는 너를 적녀와 다름없이 입히고 먹였고, 궁에서 교육해 줄 스승까지 구해 주었다. 그동안 우리가 너에게 어떻게 해 왔는데… 이리도 마음이 좁으냐. 왜 자꾸 동생을 괴롭혀 네 어머니를 상심하게 만드는 것이냐?”그러자 금영이 그를 보며 물었다.“아버지께서도 제가 동생을 괴롭혔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연회 때 명월이가 너에게 차를 따르려 할 때, 네가 일부러 찻잔을 엎지른 것을 네 오라비가 직접 목격했다고 하지 않느냐! 이래도 시치미를 뗄 것이냐?”영안후의 목소리는 매우 단호했다.금영은 웃음을 흘렸다.“오라버니가 봤다고 하면, 그게 곧 사실이 됩니까? 그렇다면 저도 제가 본 것을 말씀드리지요. 오라버니께서 춘홍루(春红楼)에 드나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그냥 드나드는 것이 아니라, 연인까지 두고 계시더군요?”그 말을 듣자 배경천은 분노한 얼굴로 금영을 노려보며 소리쳤다.“배금영! 어디서 감히 헛소리를 지껄여!”하지만 금영은 오히려 비웃듯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오라버니가 본 것은 진실이고, 제가 본 것은 거짓입니까? 참으로 편리한 사고방식이시네요.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계시겠지요.”영혼의 상태로 떠돌던 시절, 금영은 분명히 보았다. 배경천이 춘홍루의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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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금영이 배경천의 뺨을 후려친 것이었다. 배경천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네, 네가 감히 나를 때려?”금영은 눈썹을 치켜올린 채 배경천을 보며 말했다.“맞을 짓을 했으니까요. 그러게 왜 다짜고짜 여인의 방에 쳐들어옵니까? 당연히 변태일 줄 알았지, 누가 오라버니일 거라고 예상했겠어요? 뺨이 아니라 칼에 찔렸어도 자업자득이었을 겁니다.”금영은 조금도 봐주지 않고 매섭게 몰아붙였다.배경천은 숨이 턱하고 막힐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른듯, 곧장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금영은 조금도 겁먹지 않고 오히려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왜요? 저에게 손이라도 대시겠어요? 어디 한 번 때려 보세요. 하지만… 이 일이 밖에 알려지면 누가 더 곤란해질까요?”금영의 눈동자에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 만약 정말 자신에게 손을 댄다면, 함부로 여인의 방에 들이닥친 그의 만행도 온 세상에 까발려질 각오를 하라는 뜻을 분명히 전하고 있었다.배경천은 들고 있던 손을 움켜쥐었다가, 결국은 힘없이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목소리에는 여전히 적대감이 가득 담긴 상태였다.“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너를 보자고 하셔서 직접 데리러 온 것뿐이다!”이 말과 함께 그는 또다시 금영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금영은 한 발 빨리 그의 손길을 피하며 냉정하게 말했다.“제가 알아서 가겠습니다.”배경천까지 보낸 이상, 직접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래, 도대체 무슨 속셈들인지 직접 확인해 주지.’그렇게 두 사람은 안채로 향했고, 배경천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 상석에 앉아 영안후와 송정희에게 말했다.“아버지, 어머니, 배금영을 데려왔습니다.”그리고는 덧붙였다.“배금영은 명월을 괴롭힌 것도 모자라 아프다는 핑계로 부름조차 거부했습니다. 반드시 엄히 벌하셔야 합니다.”뒤이어 금영이 안으로 들어섰다.몸은 여전히 아팠지만 평소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어차피 불쌍한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해서 이들이 자신을 봐줄 리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26화

    “오늘, 폐하께서 오셨을 때, 모두가 예를 올렸는데… 그 아이만 폐하가 먼저 말을 걸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더구나. 저렇게 조급하게 눈에 띄고 싶어하는 것을 보니, 하루라도 빨리 혼약식을 올리고 싶은 게 분명해.”서 황후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조씨가 맞장구를 쳤다.“마마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배금영은 어려서부터 예의와 규범을 익혀 온 아이입니다. 황제를 뵈었을 때 예를 올려야 한다는 걸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오늘 일은 분명한 고의였습니다.”환옥이 차 한 잔을 들고 와 부드럽게 말했다.“마마, 차를 한 모금 드시고 노기를 가라앉히시옵소서.”서 황후는 찻잔을 받아 단숨에 마셨고, 그제야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라앉은 듯했다.그녀는 얼굴을 굳힌 채 말을 이었다.“이번에는 효도를 핑계로 혼인 이야기를 넘길 수 있었겠지만, 이런 식이라면 오래가지 못할 테야.”조씨는 그 말에 서 황후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물었다.“그럼, 마마께서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서 황후는 낮고 단호하게 말했다.“그 아이가 영영 태자에게 시집갈 수 없도록 만들어야겠지. 그리고… 모든 일이 배금영의 자업자득인 것처럼 보여야 한다. 태자가 피해자라는 인식이 남도록 말이다.”절대로 배금영의 출신이 문제가 되어 태자가 먼저 저버렸다는 비난이 나오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건 결코 보위에 오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황후의 운명을 타고난 이는 절대로 서녀인 배금영이 아닌 배명월일 터였다.무엇보다 겨우 서녀 따위와 혼인해서는 영안후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터였다.만에 하나 배명월이 이황자와 혼인을 하게 된다면, 그 뒤에 닥칠 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비록 태자의 자리가 그리 쉽게 바뀔 일은 없겠지만, 예로부터 순탄하게 보위에 앉은 황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즉위하는 날까지 생길 수 있는 변수는 모두 예방해야 했다.서 황후는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보위에 오르는 것은 자신의 아들이어야 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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