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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مؤلف: 서린화
배경천은 금영의 태도가 몹시 못마땅했다. 그러나 영안후부는 본래 규율이 엄격한 집안이기에, 아무리 불만이 커도 지금은 더 말할 수 없는 배경천은 그저 냉소만 흘리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그가 나가자마자, 해수는 곧바로 문을 닫고 금영의 옷시중을 들려 했다. 하지만 금영은 그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너는 먼저 나가 있거라. 옷은 내가 알아서 갈아입을 테니.”

담담한 말투였지만, 해수는 잠시 머뭇거렸다. 어제 설림에서 돌아온 뒤로 금영이 어딘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주인의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는 법, 결국 준비해 온 옷가지들을 침상 곁에 내려놓고 조용히 물러났다.

방 안에 혼자 남자, 금영은 천천히 겉옷을 벗어냈다. 눈처럼 흰 살결 위로 퍼진 것은 온통 푸르스름한 흔적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얼굴이 미묘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회귀 전에도 그러했듯, 그녀는 여전히 어린 축에 속한 규수였고 이런 일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약에 취해 이성을 잃은 그녀가 부추긴 탓도 있겠지만, 그 냉정해 보이던 황제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금영은 애써 어제 상황을 머리에서 지우며 재빨리 옷으로 몸에 남은 흔적을 모두 가렸다.

그리고는 혹시라도 놓친 부분이 없는지 거울 속에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검은 비단처럼 윤기 나는 머릿결이 푸른 빛을 띠는 옷자락 위로 떨어뜨린 모습, 그녀는 어느 때보다 단정하고 청아했다. 어제 황제를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예법 준수에 아주 철저한 명문가 규수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겉모습일 뿐, 과거 규율과 순결을 목숨보다 중히 여겼던 그녀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녀는 이제 살아남기 위해 못할 것이 없었다. 순결, 명성, 규범이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깨부술 생각이었다. 다시는 가문의 체면 따위를 들먹이며 압박하려는 이들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었다.

금영은 거울 앞에 앉은 채 결의를 다졌다. 그렇게 잠시, 밖에서 해수가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녀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가씨, 다 준비되셨을까요?”

금영은 마지막으로 손에 들린 봉황 비녀를 잠시 쳐다보다가, 머리에 꽂았다. 태자비 자리는 더 이상 탐나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그 자리를 순순히 양보할 생각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누구보다 이 집 사람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것을 이용해 이들의 심장을 찌를 생각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조용히 물러나도 표적이 될 터, 차라리 만천하에 자신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 나았다.

고요한 방과 달리, 밖에는 매서운 눈바람이 몰아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영은 차를 한 잔 더 마신 뒤 토끼털 망토를 걸치고 천천히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배경천이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버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그녀를 발견한 배경천은 얼굴이 굳어지며 억누르던 분노를 그대로 터뜨렸다.

“배금영, 당장 나와 함께 명월에게 사과하러 가자!”

그러면서 곧바로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금영은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서며 차갑게 말할 뿐이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왜 사과를 해야 합니까?”

배경천이 냉랭하게 쏘아붙였다.

“네가 명월을 팔아넘기지 않았다면, 아버지께서 명월이 금풍대에 간 것을 어찌 알았겠느냐? 명월이는 너를 진심으로 언니로 여겨서 사실대로 말했을 텐데, 너는 그런 아이를 잔인하게 배신하지 않았느냐!”

“하, 잔인하다고요?”

금영은 피식 웃었다.

이 정도 가지고 잔인함을 운운한다면, 회귀 전에 이 집안 사람들이 그녀에게 저지른 일들은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 의문이다.

가벼운 웃음이었으나, 그녀의 표정엔 상처가 묻어나왔다. 배경천은 그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살짝 흔들렸고 잠시 숨을 고르며 말을 누그러뜨렸다.

“조… 조금 전엔 내가 말이 지나쳤다. 하지만 태자와 명월이가 만난 일을 아버지께 고한 건 분명 네가 잘못했다. 어젯밤에 그 아이가 필사를 하다가 촛대를 엎질러 손까지 데었다!”

그 말을 하며 배경천은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때, 금영에게도 비춰주던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 이제라도 가서 사과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 아이는 마음이 여리니 사과만 한다면 분명 용서해줄 것이다.”

찬바람에 실린 눈송이가 금영의 맑은 눈동자 위로 내려앉으며 녹아내렸다. 그녀는 점점 눈가가 촉촉하게 젖는 것을 느끼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찬 공기가 폐부까지 파고들자 뜨겁게 뛰던 심장은 단번에 식어 버렸다. 잠시 뜸을 들인 후, 금영은 한껏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사과를 해야 합니까?”

배경천은 자신이 이 정도로 양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물러서지 않자 다시 분노가 끌어올랐다. 하지만 일단은 불만을 누르며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

“금영아, 갑자기 없던 동생이 나타나니 불편한 건 이해한다. 하지만 네가 그동안 누렸던 모든 것들이 다 누구 덕인지 잊으면 안 된다. 명월이를 그만 괴롭히고 이제 화해하거라.”

금영은 담담히 대답했다.

“전 분명히 말했습니다. 하지만 오라버니께서 생각을 바꾸고 싶지 않으시다면, 그리하지요.”

그녀도 이제 막 회귀한 참이었고 아직 많은 것이 낯선 상황이었다. 배경천이 무슨 이유로 찰떡같이 배명월의 말을 믿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들이 어떤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든 개의치 않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정말 고집불통이구나!”

배경천은 결국 참지 못하고 분노를 터뜨렸다. 그는 더 이상 금영의 태도를 용납할 수 없었고, 다짜고짜 거칠게 금영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명월에게 반드시 사과해야 해!”

배경천은 어렸을 적부터 무예를 익혀 힘이 남달랐다. 결국 금영은 그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고, 거의 끌려가다시피 눈보라를 맞으며 배명월의 거처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자 뜻밖의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태자가 배명월의 곁에서 아주 정성스럽게 약을 발라주고 있었던 것이다. 금영과 함께 그 광경을 목격한 배경천은 자기도 모르게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모두가 배명월이 진짜 영안후부의 적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태자비 자리는 과거 조부가 직접 성지를 청해 결정된 것이었기에, 어떤 사정이 있든, 절대로 대상이 바뀔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금영의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달가울 리 없었다. 그런데 태자와 배명월이 또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또다시 영안후에게 고자질하러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혼약자도 아닌 두 사람이 지나치게 가까워 보이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적녀의 자리에 배명월이 있었다면 태자비 자리도 금영의 것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 배명월도 두 사람을 발견했다. 그녀는 황급히 손을 거두며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둘째 오라버니, 그리고 언니를 뵙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금영의 머리 위, 봉황 비녀가 꽂혀 있는 자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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أحدث فصل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962화

    다음 날.비 책봉 대례가 열리는 날이었다.비록 비 책봉 대례라고는 하나, 오늘 책봉되는 두 명의 비는 과거 금영이 입궁했을 때와 같은 성대한 대우를 받지는 못했다.조정의 대신들을 초청하지도 않았다.그저 후궁의 사람들과 몇몇 황실 종친들만 참석할 뿐이었다.물론 태자와 이황자 역시 자리했다.이황자는 요영지를 데리고 왔지만, 오히려 태자는 배명월을 데리고 입궁하지 않았다.사실 배명월이 측비로 강등된 뒤부터, 태자는 다시는 배명월을 데리고 황궁에 들지 않았다.비 책봉 대례는 정오에 거행되었다.전체 과정은 다소 간소했지만, 순조롭게 끝났다.아직 시간이 이른 탓에, 저녁이 되면 궁 안에서 가족 연회를 열어 이를 축하할 예정이었다.황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다릴 생각이 없는 듯했다.태자를 데리고 먼저 현청전으로 향해 어떤 일을 논의하러 갔다.두 사람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금영은 부자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러 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황제가 떠나자, 서 황후가 웃으며 말했다.“오늘은 두 사람에게 조금 서운한 일이겠구나.”“이 비 책봉 대례가 원 귀비가 입궁했을 때의 절반만큼도 화려하지 않으니 말이다.”금영은 서 황후를 힐끗 바라보았다.저 서 황후는 하루라도 시비를 걸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것인가.옥빈.아니, 이제는 옥비가 된 여인이 서 황후를 바라보며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신첩 같은 보잘것없는 몸은 당연히 원 귀비마마처럼 존귀하신 분과 비교할 수 없사옵니다.”“림비, 그렇지 않습니까?”림비는 옥비를 한 번 바라보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옥비께서는 참으로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계시는군요.”옥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이 림비는 정말 좋은 말과 나쁜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인가.금영은 웃으며 림비를 바라보았다.“저녁 연회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림비는 본궁의 전각에 와서 잠시 쉬다 가는 것이 어떠하겠느냐?”림비가 서둘러 답했다.“그리하겠사옵니다.”금영이 오늘 이렇게 행동한 이유는 모두에게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961화

    금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이 일은 본궁이 알았다.”“훗날 주 소의께서 대체 무엇을 보았는지 알게 된다면, 본궁이 반드시 주 소의의 억울함을 풀어 주겠다.”“그것으로 너희 자매의 정을 온전히 지켜 주도록 하마.”림 소의는 몇 번이고 감사의 말을 올린 뒤에야 소녕전을 떠났다.림 소의가 떠나고 나자, 해수는 금영을 바라보며 참지 못하고 물었다.“마마, 주 소의께서는 대체 누구에게 해를 입으신 것일까요?”“대체 누가 감히 황궁 안에서 이렇게 대놓고 궁비를 해칠 수 있단 말입니까?”“설령 궁비와 내관이 몰래 정을 통하는 것을 보았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일은 아닐 텐데요. 목숨까지 잃으실 정도라니요.”금영은 이 일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주 소의의 궁중 지위가 결코 낮은 것은 아니었다.만약 자신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이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을 보았다면, 그렇게까지 당황할 이유가 없었다.비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그저 사실을 말하면 될 일이었다.그렇다면 남는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주 소의가 목격한 사람이 감히 입에 올릴 수 없을 만큼 높은 신분의 인물이었던 것이다.그렇기에 차마 그 일을 밖으로 꺼내지 못했을 터였다.말하는 순간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결과가 두려웠을 것이다.하지만 후궁에서 비 이상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금영 자신은 당연히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그 숙비는 입궁한 뒤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으니 더더욱 가능성이 없었다.그리고 여비.여비가 그 독설로 사람을 저주하고 괴롭히는 것이라면 금영도 믿을 수 있었다.하지만 사람을 시켜 주 소의를 우물에 던져 넣었다고 한다면.금영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그렇다면 남은 사람은.현비와 서 황후뿐이었다.두 사람 모두 속내가 깊은 사람들이었다.다만 주 소의가 두 사람 중 누구의 비밀을 알게 되었는지.그리고 그 비밀이 대체 무엇이었기에 입을 막아야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그때.림 소의 역시 유광재로 돌아와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960화

    금영은 무거운 표정으로 물었다.“어찌 알았느냐?”림 소의는 입술을 살짝 깨물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그날 주 소의께서 신첩에게 만나자고 하셨기 때문이옵니다……”“신첩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주 소의께서는 몹시 다급한 얼굴로 달려오셨사옵니다. 그리고 신첩에게 자신이 무언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사옵니다……”림 소의는 그날의 일을 떠올리자 얼굴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금영이 조금 궁금한 듯 물었다.“무엇을 보았다고 하였느냐?”림 소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하지만 그 말씀을 다 하시기도 전에 주 소의께서는 이 일에 신첩이 너무 많이 알게 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셨사옵니다. 그러니 어서 돌아가라고 하셨사옵니다.”“신첩이 미처 무슨 뜻인지 깨닫기도 전에, 주 소의께서는 황급히 자리를 떠나셨사옵니다.”“그리고 다시 주 소의를 뵈었을 때에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사옵니다.”림 소의의 눈가가 붉어졌다.그렇기에 그녀는 주 소의의 일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신첩은 늘 생각하였사옵니다. 그때 신첩이 주 소의를 붙잡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하고 말입니다.”“그랬다면 주 소의께서 죽지 않으셨을까 하고…….”림 소의가 말을 이었다.금영은 그녀의 손을 잡고 조용히 위로했다.“네가 자책할 필요는 없다.”“만약 주 소의의 죽음이 정말 누군가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면, 네가 그때 그녀를 붙잡았다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오히려 너마저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이는 사실이었다.만약 주 소의가 누군가에게 입막음을 당할 만한 일을 보았다면, 림 소의가 함께 있었다고 해서 주 소의를 지킬 수 있었을 리 없었다.그저 그 우물 안에 또 한 사람의 목숨이 더해졌을 뿐일 것이다.림 소의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대체 주 소의께서는 무엇을 보셨기에 이런 화를 당하신 것인지 모르겠사옵니다.”금영 역시 알고 싶었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하지만 지금 림 소의의 표정을 보면 분명했다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959화

    이 모함의 계책은 당연히 실패로 돌아갔다.이런 상황에서 태자의 잘못을 따질 수도 없었다.이황자는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소자가 부주의하였사옵니다. 다행히 형님께서 구해 주셨습니다.”황제는 태자를 바라보았다.그의 표정은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형제를 아끼는 마음을 지녔으니 훌륭하구나.”두 사람은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말을 탈 마음은 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황제와 금영은 따로 걸었다.황제는 금영의 손을 잡은 채 조용히 물었다.“금영이는 방금 일을 어찌 보느냐?”금영은 황제가 요즘 들어 부쩍 자신에게 조정의 일과 황자들 사이의 일까지 묻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만큼 자신을 더욱 믿고 있다는 뜻이었다.금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태자전하께서는 본래 경솔한 분이 아니시옵니다. 조금 전 이황자전하와 부딪힌 것도 일부러 그러신 것은 아닐 것이옵니다.”황제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너는 참 태자를 감싸는구나.”금영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폐하께서 물으신 것이 아니옵니까. 게다가 폐하께서도 태자전하께서 억울하시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 아니옵니까?”황제는 오히려 차분한 목소리로 칭찬했다.“태자는 요즘 확실히 많이 안정되었구나. 짐도 새삼 다시 보게 될 정도다.”“이제야 태자라는 자리에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구나.”황제가 태자를 만족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금영은 살며시 눈을 내리깔았다.마음속 감정을 감추기 위해서였다.황제는 태자를 믿고 있었다.태자가 훗날 황위에 오르기를 바라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절대로 태자가 다음 황제가 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태자가 아무리 훌륭하게 해낸다 해도.서 황후 같은 독한 여인을 어머니로 둔 사람이 어찌 티 하나 없는 태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서 황후가 저지른 모든 일이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이었던가.모두 태자를 위한 일이 아니었던가.태자가 황제가 된다면 서 황후는 자연히 태후가 될 것이다.그뿐만이 아니었다.태자가 금영에게 품고 있는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958화

    마장과 황궁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서쪽의 작은 쪽문으로 나가기만 하면 바로 닿는 곳이었다.마장에 도착하자.황제는 금영을 바라보며 물었다.“금영아, 말 타고 싶으냐?”금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본래 말을 탈 줄 알았다.그녀의 조부는 용맹하기로 이름난 영안후였으니 말이다.다만 지난 봄에는 회임한 몸이라 말을 타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없었다.유일하게 한 번, 황제가 직접 그녀를 말에 태우고 잠시 거닐었던 것이 전부였다.그런 황제가 이렇게 말하니 금영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당연했다.태자와 이황자는 이미 각자 탈 말을 골라 둔 상태였다.금영은 마장 안의 말들을 천천히 살펴보다가, 비교적 온순해 보이는 말 한 마리를 골랐다.예전의 그녀라면 거침없이 말을 몰고 다니던 제멋대로인 아씨와 다름없었다.하지만 지금은 신분도 달라졌고, 마음가짐 역시 예전과 같지는 않았다.금영과 황제가 말을 타고 나서자, 그쪽에서는 태자와 이황자가 먼저 말을 달려 나갔다.두 사람이 속도를 늦추었을 때, 문득 이황자가 비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형님, 보십시오. 부황과 원 귀비마마께서는 정말 금실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태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황자를 바라보았다.“네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이황자는 웃으며 말했다.“제가 무슨 말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그저 형님께 감탄하고 있을 뿐입니다.”“부황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마음에 둔 사람도 내어드리고, 외조부까지 직접 찌르셨으니 말입니다.”“방자하구나.”태자가 차갑게 말했다.“아, 맞다. 형님께서도 들어 두시면 좋을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이황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요즘 밖에서는 이런 말도 돌고 있더군요.”“원 귀비마마께서 선화전에서 규율을 배우시던 때부터 이미 부황과 연이 있었다고 말입니다.”이황자가 이런 말을 꺼낸 것은 요영지의 말을 듣고 떠올린 것이었다.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그저 태자의 마음을 몇 마디 찔러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말 한마디로 사람의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957화

    현비가 대체 어떻게 가르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예전에는 그토록 오만하고 제멋대로 굴던 요영지가 어느새 제법 얌전하고 현숙한 분위기까지 풍기고 있었다.금영 역시 어화원에서 현비와 마주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금영이 먼저 미소를 띠고 예를 올렸다.“현 언니.”현비도 곧 답례했다.“금영 동생.”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사이, 이황자도 한마디 했다.“원 귀비마마.”요영지는 옆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황자가 힘을 주어 요영지를 한 번 잡아당기자, 그제야 요영지는 속에 든 내키지 않는 마음을 억누르고 입을 열었다.“원 귀비마마.”금영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이황자전하와 이황자비께서는 그리 예를 차리지 않으셔도 되옵니다.”그러고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예전에 본궁과 이황자비가 선화전에서 함께 예법을 배운 적도 있지 않사옵니까. 함께 배운 인연이 있는데, 이제 와 이리 부르는 소리를 들으니 본궁도 영 익숙하지가 않사옵니다.”요영지는 이를 악물었다.속으로는 벌써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좋은 것은 다 차지해 놓고 이제 와 생색은 다 내는구나!’마침 서봉전에서 나온 태자도 어화원에 이르렀다.금영과 현비가 함께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태자는 별다른 생각도 하지 않고 곧장 이쪽으로 걸어왔다.그러다 가까이 다가온 뒤에야 자신의 행동을 의식했는지 표정을 가다듬었다.태자는 이황자를 바라보며 말했다.“둘째 아우, 봄볕이 이리 좋은데 나와 함께 마장에 가서 말을 타지 않겠느냐?”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태자가 이황자를 찾아온 것 같았다.그렇게 둘러대면 딱히 어색할 것도 없었다.이황자가 문득 웃었다.“형님께서 오늘은 참 운치가 있으시군요.”그러고는 은근히 비꼬듯 한마디를 덧붙였다.“오늘 조정에서 대의를 위해 친족까지 쳐내시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감탄했사옵니다.”태자는 금영의 시선이 자신의 몸을 스쳐 지나간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온몸에 밴 분위기는 여전히 온화하고 단정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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