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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Author: 서린화
황제는 생각을 정리하고 물었다.

“그래서 황후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

아무리 그렇다고 혼인을 파기해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법, 서 황후는 애써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추후에 그 아이가 몸을 좀 회복하게 되면, 궁으로 불러 궁중 의규를 먼저 익히게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래야 훗날 태자비의 책임도 잘 감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녀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고, 황제는 허락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당부했다.

“그래도 너무 엄하게 대하진 마시게.”

서 황후가 웃으며 답했다.

“염려 마세요, 폐하. 장차 태자비가 될 아이인데, 아껴줘도 모자랄 판에 엄히 대할 리가 있겠습니까?”

말을 마친 서 황후는 눈썹을 살짝 내렸다.

서 황후가 보기에도 황제의 태도는 분명 평소와 달랐다.

금영과 깊은 인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자주 얼굴을 마주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황제는 그 아이에게 유독 너그러웠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다른 이였다면 혐오했을 행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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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93화

    서 황후는 그사이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애처로운 표정까지 더해지니, 억울한 누명을 쓴 가련한 여인처럼 보이기도 했다.황제의 시선이 서 황후를 스쳐 지나가다가 잠시 멈칫했다.그 모습을 본 금영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황제를 바라보았다.황제가 서 황후를 폐위할 생각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 황후를 모함하는 것까지 용납하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아무리 그래도 황제의 마음 한구석에는 서 황후와 오랜 세월 부부로 지낸 정이 남아 있지 않겠는가?이제 서 황후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황제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금영이 이토록 걱정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금영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여비에게 무슨 사정이 있든, 두약해의 유서를 위조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이상했다.그토록 중요한 유서가 너무도 손쉽게 나타나지 않았던가?게다가 여비는 그 유서를 어디서 찾아냈는지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았었다!이제 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대충 짐작이 갔다.여비는 서 황후라면 이를 갈 만큼 증오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서 황후가 죽은 아이의 원혼을 쫓겠다며 의식까지 치르려 하자, 끝내 분노를 참지 못했던 모양이었다.어떻게든 서 황후를 무너뜨리고 싶었던 것이다.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작정으로 말이다.그래서 그 유서까지 위조한 것이겠지.사실 여비가 끝까지 비밀만 지킬 수 있었다면, 유서가 위조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서 황후 같은 인간을 상대하는데 굳이 정정당당할 필요도 없었다!무슨 수를 쓰든 성공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그런데 문제는 여비에게 있었다.대체 무슨 바람이 든 것인지!느닷없이 제 발로 나서서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고 있지 않은가!이제 모든 일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황제가 아무리 서 황후를 싫어한다 해도, 이번 일이 드러난 이상 무언가 수상하다고 여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바로 그때였다.태후가 입을 열었다.“이번 일로 황후의 결백은 밝혀졌습니다만, 감히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92화

    황제는 말끝마다 어마마마라 부르고, 자신을 소자라 낮추어 칭했다.듣는 사람들에게는 태후를 극진히 공경하는 말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말 속에 담긴 거절의 뜻이었다.다시는 입에 올리지 말라느니, 듣고 싶지 않다느니 하는 말들 말이다.황제는 이미 태후의 말을 반박하며 경고까지 하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해도 태후만큼은 그 뜻을 똑똑히 알아들었다.황제는 선황제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좀처럼 대놓고 화를 내지 않았고, 무슨 일을 하든 상대의 체면을 세워 주려 했다.하지만 그 호의를 알아보지 못하고 끝까지 선을 넘는다면, 황제가 마지막 남은 체면마저 거두어들이는 순간 누구도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물론 눈앞의 황제는 선황제가 아니라 태후 자신의 아들이었다.그럼에도 지난날의 기억이 떠오르자 태후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자식이 크면 어미 뜻대로 되지 않는다더니, 그 말이 꼭 맞군요. 이제 황제의 일에는 본인도 더는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간섭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겠지요.”태후는 다시 말을 이었다.“황제도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는 마십시오. 그저 나이가 들어서인지, 어린 황제를 데리고 남들에게 온갖 구박을 받던 시절이 자꾸 떠올라서 그럽니다.”“본인은 그저 황제의 후궁이 아무 탈 없이 평온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그 말을 들은 서 황후가 태후를 위로하듯 말했다.“모두 신첩이 불효한 탓이옵니다. 어마마마께서 이 연세에도 폐하와 신첩의 일로 심려하시게 만들었으니 말이옵니다.”“후궁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것도 신첩의 불찰이옵니다.”태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그게 어찌 자네 잘못이겠는가? 남이 자네를 해치려 드는 것까지 자네 탓일 수는 없지 않은가.”금영은 두 사람이 무슨 뜻으로 저런 말을 주고받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그러나 아무것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앉아 있었다.괜히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화를 냈다가는 서 황후만 더욱 신이 날 게 뻔했다.게다가 지금 금영에게는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91화

    서 황후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며 호소했다.“폐하, 요즘 들어 폐하께서 신첩을 믿지 않으신다는 건 알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일만큼은 정말 신첩과 아무런 관계가 없사옵니다!”황제의 굳은 표정을 살피던 현 귀비가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폐하, 여비의 말대로 그 서신이 위조된 것이라면, 이를 위조한 자는 분명 솜씨가 뛰어난 사람일 것이옵니다. 실제로 누군가 여비를 위해 서신을 위조해 준 것인지 조사해 보시는 게 어떻겠사옵니까?”잠시 침묵하던 여비가 입을 열었다.“신첩을 위해 서신을 위조해 준 자는 도성 안에 있사옵니다. 다만 그자는 서신이 어디에 쓰일지는 전혀 몰랐사오니, 부디 폐하께서 목숨만은 살려 주시옵소서.”황제가 차갑게 명했다.“위명, 가서 조사해라!”여비는 더는 숨길 생각이 없는 듯했다. 서신을 위조하는 데 은자를 얼마나 썼는지, 그자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까지 낱낱이 털어놓았다.위명은 명을 받고 곧장 떠났다.현 귀비는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나직이 아뢰었다.“폐하, 위 총령이 다녀오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터이니, 앉아서 기다리시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황제는 대꾸하지 않았으나 딱히 반대하는 기색도 없었다.이에 현 귀비가 서둘러 궁인들에게 명했다.“뭣들 하고 있느냐? 어서 의자를 가져오너라!”잠시 후 의자들이 들어와 가지런히 놓였다.현 귀비는 곁에 있던 금영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금영 동생도 앉아서 기다리게.”금영은 이미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켜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그래도 일단 자리에 앉았다.황제와 태후는 상석에 자리했고, 서 황후는 금영과 현 귀비의 맞은편에 앉았다.현 귀비는 이런 일에도 빈틈이 없었다. 다른 비빈들에게도 모두 자리를 마련해 주었는데, 의자 대신 작은 걸상이 놓였다.그래도 계속 서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비빈들은 현 귀비를 바라보며 저마다 감사한 기색을 드러냈다.현 귀비는 차까지 내오게 했다.그렇게 모두가 자리에 앉은 가운데, 대전 한가운데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90화

    모두의 시선이 여비에게 쏠렸다.여비는 다시 한번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신첩은 기꺼이 벌을 받겠사옵니다! 부디 폐하께서 죄를 물어 주시옵소서!”황제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희미하게 꿈틀거렸다.“여비! 자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여비는 두 눈이 붉게 충혈된 채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신첩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모든 잘못은 신첩에게 있사옵니다. 신첩이 황후마마께 누명을 씌워서는 안 되었사옵니다……”그때 태후가 말을 끊고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여비! 황후를 고발하는 일은 장난이 아니다. 어제는 그 많은 증거까지 내놓고서는 오늘 와서 모두 모함이었다고 하는구나. 그렇다면 어디 한번 말해 보거라. 대체 어떻게 황후를 모함했다는 것이냐?”금영은 그제야 확실히 알아차렸다.태후는 여비의 입으로 어제의 모든 일을 뒤집게 만들려는 것이었다.그렇게 서 황후의 혐의를 완전히 벗겨 주려는 속셈이었다.여비가 막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금영이 나직이 불렀다.“여비!”그 한마디에는 분명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정말 서 황후를 모함한 것으로 일이 굳어 버린다면 여비에게 기다리고 있는 결말이 결코 좋을 리 없었다.태후가 금영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러느냐? 원 귀비는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이냐?”황제가 태후를 바라보며 짧게 불렀다.“어마마마!”황제가 이토록 금영을 감싸고 나서자 태후도 더는 금영을 몰아붙이지 않았다.대신 싸늘한 시선을 여비에게 돌렸다.“여비, 말해 보거라. 대체 어떻게 황후를 모함했다는 것이냐?”그제야 여비가 입을 열었다.“두약해가 남겼다는 유서는 거짓이옵니다.”여비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덧붙였다.“신첩이 위조한 것이옵니다.”“위조했다고?”태후가 눈을 가늘게 뜨고 여비를 바라보았다.여비가 계속 말했다.“신첩이 두약해가 남긴 처방전을 구해 그 위의 글씨를 살펴본 뒤, 그의 필체를 흉내 내어 유서를 만들었사옵니다.”태후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되물었다.“그러니 그 유서도 거짓이고, 거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89화

    하지만 자리에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었다.황제가 여비를 상당히 너그럽게 봐주고 있다는 것을.다른 사람이 감히 서 황후를 함부로 고발했다면 결코 이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황제는 태후와 서 황후를 바라보며 말했다.“이 일은 여기서 끝내시지요. 짐이 이미 여비에게 벌을 내렸으니 어마마마께서는 더는 여비를 곤란하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황후도 더는 여비를 몰아붙이지 말게.”태후는 굳은 얼굴로 황제를 바라보았다.“황제, 본인이 언제 여비를 곤란하게 한 적이 있습니까?”태후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더구나 여비가 본인까지 이리 오라 청했고, 죄를 자백하겠다 하지 않았습니까. 우선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그제야 여비가 황제 일행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신첩의 죄가 실로 무겁사옵니다! 폐하께도, 태후마마께도, 무엇보다 황후마마께 면목이 없사옵니다!”“폐하께서는 늘 신첩을 아껴 주셨고, 태후마마께서도 친어머니처럼 자애롭게 대해 주셨사옵니다. 황후마마께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신첩을 친자매처럼 대해 주셨사옵니다. 그런데 신첩이 한순간 판단이 흐려져 남의 이간질에 휘둘렸고, 구년 전 일로 황후마마를 오해하고 말았사옵니다.”여비는 말을 잇는 것조차 힘겨운 듯했다.금영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여비를 바라보았다.여비에게 남들에게 밝힐 수 없는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다.제 목숨을 지키기 위해 이제 와 물러선다 해도 금영은 이해해 줄 생각이었다.그런데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서 황후에게 면죄부라도 쥐여 주려는 것인가?서 황후는 여비의 아이를 죽게 만든 사람이었다!그런데 이제 와 그 원수조차 갚지 않겠다는 것인가?여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저마다 달라졌다.서 황후는 비교적 태연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눈빛에는 이미 감출 수 없는 기쁨이 어려 있었다.반면 현 귀비는 미간을 살짝 좁힌 채 생각에 잠긴 듯했다.물론 금영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문 채 침묵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88화

    금영은 자운을 바라보며 물었다.“여비가 대체 어찌하려는 것이냐?”자운은 눈시울을 붉힌 채 입을 열었다.“분명 죄를 인정하시려는……”자운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여비가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쳤다.“자운아! 입 다물어라! 네가 아직도 본궁을 주인으로 여긴다면 함부로 입 놀리지 마라!”결국 자운은 금영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어쩌면 자운 자신도 제 마마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듯했다.그저 어렴풋이 불길한 예감이 들어 금영이 여비를 막아 주길 바랐던 것뿐인지도 몰랐다.하지만 여비의 태도가 이토록 단호하니 자운도 더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예……”자운이 더는 입을 열지 않자 금영은 다급한 얼굴로 여비를 바라보았다.“여비! 대체 무슨 사정이 있기에 말조차 못 하는 것인가?”여비는 금영을 바라볼 뿐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눈빛도 평온하기만 했다.누군가에게 협박을 받은 듯한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폐하께서 납시오! 태후마마께서 납시오! 황후마마께서 납시오!”밖에서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그 소리를 들은 여비가 금영에게 시선을 돌렸다.그제야 여비의 눈빛에 변화가 일었다.복잡한 감정 속에 옅은 미안함까지 어려 있었다.“원 귀비마마, 송구하옵니다.”금영은 그렇지 않아도 마음 한구석에 불길한 예감이 들던 참이었다.그런데 여비의 말까지 듣고 나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여비는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바로 그때였다.황제와 태후, 서 황후 세 사람이 협방전에 들어섰다.그들이 채 자리를 잡기도 전이었다.현 귀비와 림비, 옥비에 이어 위 첩여와 몇몇 낮은 품계의 비빈들까지 함께 들어왔다.현 귀비는 전각에 들어서자 곧바로 황제를 향해 예를 올렸다.“신첩은 마침 다른 비빈들과 함께 금영 동생을 문안하러 가던 참이었사옵니다. 그런데 금영 동생이 협방전에 있다는 말을 듣고 이리로 와 보았사온데……”현 귀비가 말을 잇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폐하와 태후마마, 황후마마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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