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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
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
Penulis: 서한월

제1화

Penulis: 서한월
W시, 1월 15일.

깊은 겨울밤, 굵은 눈송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거리에 벌써 소복이 쌓인 흰 눈은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의 발에 밟혀 진창처럼 더럽게 변해가고 있었다.

도로 한편에는 남색 아우디가 조용히 서 있었다.

소유하는 눈처럼 새하얀 롱패딩 차림으로 꽃집에서 산 장미꽃다발을 안고 차 쪽으로 걸어가면서 남편 오승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유하와 승현의 결혼 8주년 기념일이다.

유하는 일을 서둘러 끝내고, 남편과 단둘이 식탁에 앉아 촛불을 켜고 조용히 저녁을 먹고 싶었다.

함께 버텨낸 7년을 기념하고, 여덟 번째 해를 함께 시작하고 싶었다.

첫 번째 통화 시도는 실패.

두 번째, 세 번째 통화도 역시 승현은 받지 않았다.

한참 동안 기다린 뒤에야,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유하의 얼굴에서 천천히 미소가 사라졌다. 그래도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오늘 우리... 밖에서 저녁 먹기로 했잖아요. 장소는...”

[업무 중이야. 바빠.]

더 말할 틈도 없이,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유하는 핸드폰을 꼭 쥔 채, 하얀 입김을 뿜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세찬 눈바람에 한기가 스미자 옷깃을 여미고 몸을 한 번 떨었다.

장미의 붉은 꽃봉오리가 눈 속에서 유독 쓸쓸해 보였다.

‘이 사람...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이나 할까?’

‘우리 분명히 약속했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매번, 아무렇지 않게 미루고, 무시하고...’

‘저녁 한 끼 같이 먹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유하의 눈에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저 갑작스럽게 깊은 피로감이 밀려왔다.

그녀는 눈을 가만히 감았다가 다시 떴다.

떨리는 손끝으로 다시 연락처를 눌렀다.

이번엔 아들 오준서의 번호였다.

남편과 오랜만에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시어머니께 부탁해 준서를 본가로 보냈지만.

로맨틱한 저녁 식사 자리가 무산된 이상, 아이를 데리러 가야 했다.

...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레스토랑 한편.

고급스러운 분위기 속에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자 한 명과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마주 앉아 있었다.

아이는 새로 받은 게임기를 품에 안고 정신없이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테이블 위 핸드폰 화면이 반짝이며 ‘엄마’라는 이름이 떴지만, 준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하연우가 슬쩍 고개를 기울였다.

화사한 복숭앗빛 눈매가 부드럽게 휘더니, 손끝으로 전화를 받아 조용히 무음으로 전환한 뒤, 핸드폰 화면이 보이지 않게 식탁에 엎어놓았다.

그녀는 아이를 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준서야, 이모가 사준 게임기 마음에 들어?”

그 시각, 전화가 연결된 유하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숨이 멎는 듯한 충격에 잠시 말을 잃었다.

그다음으로 밀려온 것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싸늘한 냉기였다.

하연우였다.

승현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첫사랑이었던 여자.

‘하연우... 분명 박사 과정을 위해 해외에 있을 텐데...’

‘어떻게, 왜 지금, 준서와 함께 있는 거지?’

‘설마... 돌아왔어? 그리고... 왜 하필 준서랑 같이 있는 건데?’

...

레스토랑 안.

게임기에서 겨우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든 준서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연우 이모가 최고예요. 고마워요, 이모!”

연우는 붉은 입술을 부드럽게 올리며 물었다.

“이상하네? 집에서도 게임기 안 사줘?”

‘MB그룹 같은 대기업의 후계자라면, 이런 게임기 정도는 몇십 개도 살 수 있을 텐데...’

‘게임기를 넘어, 게임 회사를 통째로 사는 것도 가능할 텐데...’

준서는 뺨을 부풀리며 뾰로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에요. 아빠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다 괜찮다고 했는데... 맨날 엄마가 뭐든 다 간섭하고, 어쩌고저쩌고 잔소리만 해요.”

“게임도 정해진 시간 지나면 꼭 뺏어가요. 진짜 짜증 나요. 게임을 하게 해 주는 연우 이모가 엄마보다 훨씬 좋아요.”

연우는 살짝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투는 여전히 따뜻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엄마는 네 눈 나빠질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잖아. 엄마가 들으면 속상하실 거야.”

“에이, 엄마는 속 안상해요.”

준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게임에 몰입하며 무심히 중얼거렸다.

“우리 엄마는 성격 되게 좋아요. 난 한 번도 엄마가 화내는 거 본 적 없어요.”

연우는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테이블 위 음식으로 옮겼다.

잠시 고민하듯 쳐다보다가, 젓가락을 들어 매콤한 깐풍기를 하나 집어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는 준서 입에 살짝 넣어주었다.

“이모가 기억하기론... 준서 엄마가 매운 요리 잘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모도 매운 거 진짜 좋아하거든.”

준서는 눈을 반짝이며 입안의 고기를 오물오물 씹었다. 입가에 해사한 미소가 번졌다.

“맞아요! 우리 엄마 매운 요리 진짜 잘해요. 밖에서 파는 거보다 훨씬 맛있어요. 아빠도 나도 엄청나게 좋아해요. 연우 이모도 좋아하면, 나중에 우리 집 놀러 오면 엄마가 해줄 거예요!”

연우는 눈가에 웃음을 머금고, 일부러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정말 그래도 돼?”

준서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나도 아빠도 연우 이모 좋아하니까, 당연히 우리 집에 와도 돼요.”

“그럼... 준서는 연우 이모를 정말 정말 좋아하는 거네?”

연우는 장난기 어린 손끝으로 준서의 말랑한 뺨을 콕 찔렀다.

준서는 그 손가락에 살짝 얼굴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엄마도 연우 이모처럼만 해주면 좋을 텐데... 엄마는 맨날 간섭하고, 잔소리하니까 너무 피곤해요...”

‘이런 말을, 꼭 이렇게까지 직접 말하다니...’

연우는 속으로 조용히 웃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한 점 흐트러지지 않은 표정으로, 입술 끝에 여유로운 미소만 걸려 있었다.

...

몰아치는 찬바람 속, 흩날리는 눈송이가 세상을 집어삼키듯 퍼지고 있었다.

유하는 산 위의 소나무처럼 굵은 눈발 속에 홀로 서 있었다.

눈은 그녀의 눈썹 위와 머리카락 위에 하얗게 쌓이기 시작했다. 핸드폰 너머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에 유하의 눈가는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매운 음식이 맛있다니... 그 말이 왜 이렇게 뼈에 사무치게 박히는 걸까?’

남편과 아들이 매운 걸 좋아해서 유하는 짬짬이 시간을 내어 유명 셰프에게 요리를 배웠다.

그녀는 주말이면 꼭 정성껏 식탁을 차렸고, 요리 솜씨는 누구와도 견줄 만하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지금 준서의 한마디에, 가슴 한가운데가 쿡쿡 쑤셨다.

‘내가 그렇게 애지중지 기른 아들이 단 한마디 말로 날 귀찮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네.’

‘7년을 품에서 키웠는데... 돌아온 말이 ‘엄마는 잔소리 심해서 싫어, 연우 이모가 더 좋다’... 정말,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유하는 전화기를 끊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다.

하지만 손가락이 조심스레 통화 종료 버튼 위를 스치려던 그때, 낯설고도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미안, 방금 좀 일이 있어서...]

순간, 차갑게 굳어 있던 여자의 손끝이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다.

이 남자 목소리의 주인공은... 승현이었다.

유하는 심장이 조여드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터져 나오는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이게 당신이 말한 ‘바쁜 일’이야?’

‘결혼 7주년 되는 날, 아내는 눈 속에 서 있는데...’

‘당신은 첫사랑과 밥을 먹고 있었구나.’

‘게다가... 내 아들까지 함께.’

전화는 어느새 뚝 끊겨 있었다.

남겨진 건, 하얗게 내려앉은 침묵과 눈발뿐.

유하는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 허탈한 웃음을 웃었다.

그 웃음 끝에, 붉게 충혈된 눈가엔 눈물방울이 맺혔다.

그러고는 품에 안고 있던 커다란 장미꽃다발을 차디찬 눈밭 위로 거칠게 내던졌다.

툭-

꽃은 바닥에 부딪히며 터졌고, 유하는 발로 꽃다발을 힘주어 밟았다.

장밋빛 꽃잎이 짓이겨져 눈 위에 흩어졌다. 하얀 세상 속, 붉은 파편들은 마치 터진 핏방울처럼 선명하고 잔인하게 번졌다.

유하는 느리게 차에 올라탔다.

차 안의 히터가 꽁꽁 얼었던 몸을 서서히 녹여주었지만, 얼어붙은 마음까지는 데우지 못했다.

‘사랑했던 날들, 믿었던 순간들...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지?’

창밖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유하는 알고 있었다.

승현이 자신과 결혼한 이유가 사랑이 아니라는 걸.

그날 밤의 혼란, 그리고 예기치 않은 임신, 시어머니의 강한 압박.

결혼은 결국 책임과 체면을 위한 선택일 뿐이었다.

승현은 유하를 사랑하지 않았다.

어쩌면 미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믿었다. 자신과 연우 사이, 아름다웠던 인연을 유하가 끊어버렸다고.

그리고 유하는 비열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워했고, 피했고, 차갑게 거리를 두었다.

‘그땐... 정말 몰랐어. 그 사람이 내게 이렇게 차가울 줄은...’

그때의 유하는, 너무도 어렸다.

달빛처럼 찬란한 사람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고, 그 눈부심에 취해 그저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었던 마음이 전부였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닿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사람한테 잘하면... 조용히, 얌전히 곁을 지키면...’

‘언젠가는 나에게 마음을 줄 거라고 믿었어. 내가 잘하면 괜찮을 거라고.’

그렇게 믿으며 달려온 시간.

하지만 유하의 손에 받아 든 건... 복수처럼 차가운 침묵뿐이었다.

7년간의 결혼 생활은.

말 대신 건네진 건, 복수처럼 쌓여가는 냉담한 침묵과 외면.

그 차가움은 아들에게도 전염되어, 준서 역시 점점 유하를 밀어냈다.

준서는 엄마를 싫어했고, 거부했다.

이 집에서의 유하는... 그저 투명 인간 같은 ‘도구’에 불과했다.

아무도 유하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았고, 누구도 유하를 ‘가족’으로 보지 않았다.

존재감 없는 아내,

감정 없는 엄마,

불필요한 존재.

이제야 유하는 깨달았다. 승현의 마음은... 아무리 데워도 녹지 않는 얼음이라는 걸.

이제... 끝내야 할 때다.

...

차량 전조등의 따스한 노란빛이 유하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었다.

곧게 뻗은 콧대와 작고 단정한 입매, 그리고 차가운 공기에 살짝 언 벚꽃 빛 코끝이 돋보였다.

유하는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이며, 고리대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변호사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시간을 잡아서 이혼 상담과 재산 정리에 대한 논의를 위해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결단을 내린 이 순간, 유하의 손끝은... 누구보다 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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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실 안.그중 앞서 들어온 남자는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았다.‘잘생겼다... 정말...’강렬한 눈매와 여유로운 기세, 치명적인 분위기를 두르고 들어선 남자를 보자 주연의 시선이 절로 따라붙었다.‘사진보다 훨씬... 훨씬 멋있잖아. 이게 오승현 실물이라니? 이건 반칙이야...’눈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던 주연은 문이 쿵 닫히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황급히 일어나서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살짝 머리를 넘기며 귀 옆 머리칼을 정리한 주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오, 오 대표님... 안녕하세요.”주연은 이곳에 오기 전 오승현의 사진을 이미 수십 번 봐 두었다.하지만 현실의 오승현은 사진과 달리 너무도 압도적인 비주얼이었다.‘저런 남자가 소유하 남편이라니...’‘그 여자는 도대체 뭘 한 게 있다고 이런 남편을 얻은 거야?’질투가 치밀었지만, 고개를 다시 든 주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목소리를 낮췄다.“유하 언니가 좀 너무하셨어요. 아직 제대로 말도 안 나눴는데 친동생한테 유리 주전자까지 던지고...” “그래도 전 괜찮아요. 유민 씨가 깨면 잘 타이를게요. 가족끼리는 원래 이런저런 일 다 있는 거잖아요.”그 말에 승현이 씩 웃었다.그리고 주연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본 뒤 아주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근데 왜 아직도 서 있어?”주연은 잠시 머리를 만지던 손을 멈췄다.‘네...?’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승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들었는데... 임신하셨다면서?”그 말에 주연은 잠깐 멈칫했지만,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하,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임신했다고 뻥 치는 게 아닌데...’‘이 오승현의 실물이 이렇게 잘생긴 줄 알았으면 진작 방향을 바꿨을 텐데.’하지만 곧바로 마음을 고쳐먹었다.‘괜찮아, 나도 충분히 예쁘니까. 소유하 같은 여자가 옆에 있어 봤자... 남자는 결국 새로운 자극에 약한 법이야.’‘게다가... 소유민이 병원에 있는 김에 이 집에 머무를 기회만 생기면... 분명히 틈이 생길

  • 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   제95화

    “아빠!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현관 쪽.준서는 정장을 입은 체격 좋은 남자 두 명에게 양쪽 겨드랑이를 붙잡힌 채, 버둥거리며 울부짖었다.“진짜 잘못했어요, 다음부턴 꼭 할게요! 한 번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증조할아버지 댁엔 가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요, 아빠! 아빠!! 아아아!”작은 몸이 허공에 매달려 팔과 다리를 마구 휘젓지만 곧 완전히 제압당했다.계단 위.승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그 눈빛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이미 두 번째 기회였어. 지키지 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이게 우리 집안의 규칙이야.”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엔 철저한 단호함과 냉혹함이 서려 있었다.준서는 눈이 뒤집혔다. 그제야 뭔가를 직감한 듯 머릿속을 번쩍 스치며 외쳤다.“엄마! 엄마 볼래요!! 나 엄마 안 보면 안 가요! 엄마아아!!”“데려가.”승현이 차갑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우리 할아버님께 안부 전해드려.”“네, 대표님.”경호원은 대답과 동시에 준서를 질질 끌 듯이 데리고 나갔다.준서의 비명과 울음은 현관문 너머로 길게 이어졌고, 이내 무겁게 닫히는 차 문 소리에 소리는 단절됐다.검은 차 한 대가 서서히 저택을 빠져나갔다.뒤편.태건이 조용히 서 있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본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어르신께 이미 상황 보고는 들어갔습니다. 도련님께선 이번엔 큰 벌을 받으실 것 같은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승현은 가볍게 웃었다.“요즘 준서가 좀 날뛰잖아. 이참에 제대로 배워야지.”그 말에 태건은 더 묻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였다.응접실을 정리하고 돌아온 윤해월도 눈가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방심해서 사모님을 저런 사람들과 단둘이 있게 해버렸습니다...”승현은 손을 저어 그 말을 막았다.“됐어요. 당분간은 병원에 보양식이나 자주 보내세요. 기력 회복에 집중할 수 있게.”짧게 지시를 마친 승현은 겉옷을 챙겨 나섰다.차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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