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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이별 준비

Author: 연월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3 13:05:40

호정이 방 밖을 다닐 수 있게 되자, 시경은 오히려 말수가 줄었다.

앵두 철이 저물어 가던 오후였다. 마루 끝에 나란히 앉은 호정이 앵두 씨를 멀리 뱉으며 말했다.

"숙부님, 요즘 소녀 얼굴만 보시고 아무 말씀도 안 하십니다. 소녀 얼굴에 무엇이 묻었습니까."

"아니다."

"그럼 어디가 아프시어요?"

"아니다."

"그럼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호정이 고개를 갸웃하자 시경은 한참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나더러 성균관에 들어가라 하셨다."

호정의 손이 멈췄다. 앵두 하나가 손바닥에서 굴러 떨어졌다.

"성균관이요?"

"그래. 재에서 지내야 하니, 이 집을 떠나게 된다. 한 달에 두 번 겨우 이틀만 집에 올 수 있다고 하는 구나."

"언제 가시는데요?"

"이달 말이다."

마당에 바람이 지나가며 앵두나무 잎이 서걱거렸다. 호정은 입술을 꼭 다물고 있다가 갑자기 환하게 웃었다.

"숙부님께서 성균관 유생이 되시다니, 소녀는 자랑스럽습니다."

그 웃음이 너무 밝아서 시경은 가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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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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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담
스트레스가 많으시군요. 제가 꼬이지 않도록 시경이와 호정이 잘 보살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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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ifer
이렇게 이별하면 ㅠ 인연이 또 꼬이게되는건 아닐까요? 스트레스가 많은 요즘이라 평온하고 잘흘러가는 소설 읽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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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쌓인 나무 그늘에 웅크리고 있던 덕쇠는 입김을 손으로 막았다. 서고 창호지에 등잔 불빛이 번져 있었다. 그 위로 두 사람의 그림자가 겹쳐 보였다. 키 큰 그림자가 몸을 숙여 작은 그림자의 어깨에 무언가를 둘러 주었다."흠... 역시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닌게로군."덕쇠가 침을 삼켰다. 겨우 그것뿐이었으나 어둠 속에서는 무엇이든 크게 보이는 법이었다. 덕쇠는 눈 위에 발자국이 남지 않도록 조심하며 뒷걸음질로 물러났다.같은 시각, 호직의 사랑채 곁방에서는 희도가 서책을 펼쳐 놓고 한 줄도 읽지 못하고 있었다. 내년 봄 생원시를 앞두고 달포가 넘도록 방에 틀어박혀 지낸 터였다. 창밖으로 눈송이가 날리는 것을 보고서야 붓을 놓았다."첫눈이군.""눈? 벌써 시간이 이리 흘렀군!!"희도는 마당으로 나가 눈을 한 줌 뭉쳤다. 호직이 팔짱을 끼고 문설주에 기댔다."서고에 호정이 있을 게다.""왜 내게 그걸 말하나.""네 얼굴에 쓰여 있으니까. 혼담 소식은 들었지?""들었네. 나는 벗일세. 그저 눈이 오니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을 뿐이야."희도는 쟁반에 눈토끼를 만들어 얹었다. 눈은 남천 열매로, 입은 마른 솔잎으로 했다. 귀가 짝짝이가 되자 한참 고쳐 보다가 포기했다.서고 문 앞에서 희도는 숨을 한 번 골랐다. 나직한 기침 소리를 내었다."호정 낭자, 계십니까. 희도입니다."안에서 호정이 놀라 시경을 쳐다보았다. 시경은 두루마기를 어깨에서 걷어 제 팔에 걸치며 짧게 말했다."들어오시오."문이 열리고 어깨에 눈을 얹은 희도가 들어섰다. 얼굴은 해쓱했으나 눈빛은 맑았다."숙부님도 계셨군요. 방해가 된 것은 아닌지요?""괜찮네. 오랜만이군."희도가 쟁반을 호정 앞에 내려놓았다. 호정의 눈이 둥글어졌다."눈토끼입니까? 참 곱습니다. 도련님이 만드셨어요?""서툴러서 귀가 짝짝이입니다. 고향 안주에서는 첫눈이 오면 아이들이 이것부터 만들었지요.""안주의 눈은 이곳보다 많이 오나요?""발목까지 쌓이는 날이 열흘은 이상이 됩니다. 언젠가 낭자

  • 금기   98화. 눈 오는 날의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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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기   97화. 언문

    말미를 받아 돌아온 시경이 서고에 들어서자 호정이 책상 앞에서 종이 한 장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서고 안에는 화로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어 바깥의 찬바람이 거짓말인 듯 따뜻하고 아늑했다. 시경이 조용히 호정의 곁에 앉았다."무엇을 그리 보느냐.""숙부님! 수연 언니가 빌려준 것입니다."호정이 책을 들어 보였다. 구불구불한 글씨가 빼곡히 적힌 언문 시를 필사한 얇은 책이었다. 수연이 아끼는 것이라며 선뜻 내주었다고 했다."언니와 보암 언니는 이 시를 읽으며 이 구절이 좋다, 저 구절이 곱다 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는 한 글자도 읽지 못해 곁에서 구경만 하려니 서운한 마음이 조금 들었습니다."호정이 입을 삐쭉이자 볼이 통통하게 올라갔다. 시경은 웃음이 터질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서운하긴. 한문이 훨씬 어려운 글인데.""그러니 더 억울합니다. 어려운 글은 읽는데 쉬운 글은 모르니까요."시경이 소매를 걷고 호정 맞은편에 앉았다."그럼 배우겠느냐.""가르쳐 주시겠습니까?"호정의 눈이 반짝이며 시경을 바라보았다. 시경은 말없이 먹을 갈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소리가 서고 안을 채웠다. 화로의 숯이 따닥 소리를 내며 튀었다."이것이 가, 이것이 나. 소리 나는 대로 쓰면 되는 글이다. 천천히 따라 해 보아라."시경이 새 종이에 먹 묻힌 붓을 놀려 자음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 호정이 붓을 쥐고 따라 쓰자 첫 줄이 삐뚤빼뚤하게 번졌다."모양이 이상합니다.""처음엔 다 그렇다. 붓을 이렇게 쥐어 보아라."시경은 호정의 손을 잡을 뻔하다가 멈칫하고, 제 붓으로 허공에 획을 그어 보였다. 호정이 그 흉내를 내자 이번에는 제법 곧은 선이 나왔다.그런데 호정이 모음의 방향을 자꾸 헷갈렸다. 한번은 연습 삼아 호 자를 쓰다가 모음을 뒤집어 후가 되어 버렸다. 시경이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이대로면 네 이름이 후정이 되겠구나.""숙부님! 놀리지 마시어요."호정이 붓대로 시경의 소매를 가볍게 쳤다."알았다, 알았어. 원래 이 글은 말할 때 입

  • 금기   96화. 조용한 방패

    그날 밤, 시경은 호정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서야 후원 정자로 나갔다. 청운이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다가와 섰다."도련님, 알아냈습니다."청운은 숯막에서 본 일을 낱낱이 고했다. 사랑채 문간 하인 덕쇠가 봉선과 밤마다 만나고 있다는 것, 덕쇠가 안에서 오간 말을 봉선에게 전달하였다는 것, 그리고 봉선이 말끝마다 육보정을 아가씨라 부르며 뜻을 이루면 덕쇠를 속량시켜 주겠다고 약조했다는 것까지. 그리고 봉선이 아직 시경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몸을 숨기고 있다는 것 까지 다 전했다."도련님이 대감마님 앞에서 혼인하지 않겠다 하신 말씀도 그날 밤 바로 그 놈이 알렸던 것 같습니다."시경의 눈빛이 서늘하게 그늘이 졌다."봉선이 육보정의 사람이었구나. 처음부터 이 집을 엿보라고 심어 놓은 것이다.""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덕쇠를 잡아 족칠 수도 있습니다.""그리하면 어찌 되겠느냐. 육보정을 잡을 기회를 잡을 수 없어. 잡은 패는 감춰야지."청운이 잠시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지금은 어떠한 증거도 없으니 소용이 없겠습니다. 혹여 단오의 일도...""아마도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알기로 조현 그자가 육보정의 사촌 오라비거든. 그리고 지금은 증거가 없다. 섣불리 건드리면 이쪽이 도리어 모함하는 꼴이 된다."시경이 주먹을 쥐었다. 달빛이 연못 안에 흔들리고 있었다."덕쇠는 모른 척 두어라. 대신 사랑채와 안채에서 오가는 말에는 앞으로 더 조심하도록 일러 두어야 겠다. 청아에게도 호정 곁에 오는 서찰과 낯선 사람을 눈여겨보라고 해라. 일단 꼬리가 잡히도록 해야겠구나.""아가씨께 직접 말씀하시지 않으시구요?""말하지 않겠다. 그 아이가 아직은 모르는게 나아. 아니 그냥 끝까지 몰랐으면 한다. 조용히 보호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이구나."시경은 한숨을 내쉬었다."지금은 호정의 곁을 한시도 비우지 않는 수밖에 없다. 내가 집에 없으니 너와 청아가 잘 살피도록 해라. 수연이도...""예, 도련님."청운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시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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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에서 돌아온 호정은 저녁을 거의 먹지 않은 채 상을 물렸다. 방에 앉아 불을 켜 놓고 책을 보고는 있었으나 그저 눈만 두었을 뿐이었다. 육보정과의 만남 이후 계속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머물러 있었다. ‘가시는 편이 모두에게 좋지 않겠습니까.’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호정은 일어나 어머니의 방문 앞에 섰다."어머니, 소녀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수틀을 내려놓은 어머니가 딸의 얼굴을 보고 옆자리를 내주었다."연회가 힘들었던 게냐. 안색이 좋지 않구나."호정이 어머니의 팔에 기댔다. 잠시 머뭇거리던 호정이 슬며시 말을 꺼냈다."궁에서 육보정이라는 분을 만났습니다. 우의정 댁 따님이요. 숙부님과 정혼하신 그 분이요."어머니의 눈이 조금 커지며 호정을 내려다보았다. 호정은 어머니의 치마를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그분이 제게 청나라 혼담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좋은 혼처이니 가는 편이 좋겠다고, 어떻게 아는지는 말씀하지 않으셨어요.""그 규수가 어찌 그 일을 안단 말이냐.""저도 모르겠어요. 저도 얼마전에 알았는데... 다만..."호정이 입술을 꾹 물었다. 숙부에 관한 협박은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말하면 숙부가 또 할아버님 앞에 불려가실 것이었다."저는 청나라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곳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떠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더구나 부모님과 오라버니가 이곳에 계신데 멀리까지 가면 너무 외로울 것 같아요… 장위 오라버니는 분명 좋은 분입니다. 저에게 정말 잘해 주시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 때문에 마음 상하시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구요. 마음이 혼란스럽습니다."어머니가 한숨을 쉬며 딸의 손을 감싸 쥐었다."네 마음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구나. 걱정 마라. 아직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다. 할아버님도 네 뜻을 헤아려 주실 게다.""예, 어머니.""허나 육 낭자가 어찌 그런 말을 했는지는 마음에 걸리는구나. 도련님의 정혼자라지만 네게 그런 말을 할 까닭이 없지 않으냐. 하면 안되기도

  • 금기   94화. 가시는 편이 모두에게 좋지 않겠습니까

    중전이 연회를 연다는 소식은 며칠 만에 도성 안 양반가에 퍼졌다. 청나라로 떠나게 될 이윤서를 위로하기 위해 대신들의 여식을 불러 모으겠다는 것이었다.속사정을 아는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보내려던 것은 중전의 소생이었으나, 서림군의 딸이 대신 길을 떠나게 되었다. 중전은 가엽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고, 궁 밖에 어진 중전의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초청 명단에는 영의정 댁의 수연과 호정의 이름이 있었고, 평안 대군의 여식인 보암도 초대받았다. 한편 우의정 댁도 예외는 아니었다. 상중이라 사양하려 했으나 중전이 직접 청하니 수수한 차림을 한 육보정도 연회에 참석했다.후원 누각 앞에는 늦국화가 가득 피어 있었다. 호정은 수연과 나란히 앉아 낯선 규수들의 인사를 받았다. 윤서는 상석 가까이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이제는 어엿한 일국의 공주였다. 호정과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중전이 윤서의 손을 잡고 한참 덕담을 건넸다. 이어 수연은 어느 대감 댁 부인에게 불려 가 이런저런 질문을 받았다. 혼처를 보려는 눈길이라는 것을 알아챈 수연의 귓불이 붉어졌다.호정은 혼자 국화 곁으로 걸어가 숨을 돌렸다. 그때 등 뒤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오랜만이에요, 호정 낭자."연회에 참석한 것 치고는 수수한 옷차림을 한 여인이 서 있었다. 단정하고 눈매가 서늘했다. 호정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예전에 시경을 찾겠다며 안채까지 들이닥쳤던 우의정 댁 규수였다."안녕하셨어요."호정의 심장이 한 번 쿵 하고 울렸다. 시경의 정혼자였다. 호정은 침착하게 인사를 올렸다. 그때의 당당하고 날 선 말투는 간 데 없이, 오늘 보정의 목소리는 놀랄 만큼 부드러웠다."그간 잘 지냈나요. 도련님께서 조카를 어찌나 아끼시는지 소문은 많이 들었어요. 제가 질투가 날 정도였지요."보정이 소리 없이 웃었다. 호정은 그 웃음 속에 칼날이 숨은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청나라에서 오래 사셨는데, 이번에 청나라에서 오신 장씨 가문에서 혼담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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