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마음을 흔드는 리듬 정자에서 돌아오는 내내 아익사의 심장은 여전히 요동쳤다. 몇 걸음을 걸을 때마다 다시 한번 저택 2층 발코니를 돌아보았다. 흰 커튼은 여전히 늦은 오후 바람에 살포시 흔들릴 뿐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움직이는 그림자 하나 없이, 높은 창들만이 석양의 황금빛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착각이었을지도 몰라..." 그녀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그렇게 납득시키려 할수록, 본능은 그 설명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 섬광은 너무나 생생했다. 너무나 짧았고, 정확히 자신이 엘리오와 마주 서 있을 때 나타났다. 살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이유 없이 솟아오르는 본능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경고라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한 번 이상 그 본능을 믿음으로써 목숨을 구해 왔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자신이 본 것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아익사는 침을 삼키며 생각이 꼬리를 무는 것을 억지로 멈췄다. 정말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면, 아무 일 없었던 듯 행동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당황하는 모습이 오히려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시선을 끌게 될 뿐이었다. "괜찮아?" 엘리오가 조용히 물었다. 아익사는 생각에서 깨어나 억지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네." 또 하나의 거짓말이었다. 엘리오는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의 시선이 너무 오래 머무르는 탓에 아익사는 자신이 애써 감춰 온 모든 불안이 들통나는 듯했다. 언제나 그렇듯 엘리오는 그녀를 다그치지 않았다. 그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의 옆에서 걸음을 이어 나갔다. 침묵이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왔다. 아무도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돌길 위에 발자국 소리만이 울려 퍼졌고, 늦은 오후의 바람은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저택 안으로 돌아가면 이 불편한 느낌이 사라지리라 아익사는 바랐다. 하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 그러나 그 섬광의 기억은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눈을 감을
요구 없는 따뜻함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아익사는 숨을 참았다. 무의식적으로 손가락 끝이 드레스 자락을 꽉 움켜쥐어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살아남으려는 본능이 먼저 작동했다. 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지만 엘리오의 뒤에 숨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옆에 나란히 섰다. 페르난도가 그 봉투를 거의 발견할 뻔했던 그날 밤 이후, 아익사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언제나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을 리는 없다.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엘리오가 옆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 작은 변화를 알아채고는 입가가 살짝 올라갈 뻔했다. "무서워할 거 없어." 그가 조용히 말했다. "무섭지 않아요." 대답은 생각보다 빨리 튀어나왔다. 여전히 가슴은 두근거렸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다시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그림자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야옹..." 길고양이 한 마리가 정원 길을 가로질러 달려가 장미 덤불 뒤로 사라졌다.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아익사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설마..." "나도 그럴 줄 알았어." 엘리오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정자에 감돌던 긴장이 조금은 풀렸다. "정말 예민해진 건가 봐요." "예민해진 게 아니야." 엘리오가 차분하게 말했다. "그저 버티고 있을 뿐이지." 그 단순한 말에 아익사의 옅은 미소가 사라졌다. 엘리오 말이 맞았다. 그녀는 그저 버티고 있었다. 카스텔로 저택의 모든 발걸음이 유리 조각 위를 걷는 듯 위태로웠다. 작은 실수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끝장날 수 있었다. "너는 예전이랑 똑같구나." 엘리오의 목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끊었다. "무슨 뜻이에요?" "언제나 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잖아." 아익사는 부드럽게 숨을 내쉬었다.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을 뿐이에요. 요즘 부쩍 입맛이 없어서요." 엘리
잘못된 선택 엘리오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아익사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은 너무나 깊었고, 마치 그녀가 마음을 지키기 위해 애써 쌓아 올린 모든 벽을 꿰뚫어 보려는 듯했다.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늦은 오후의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와 정자 주변의 나뭇잎과 꽃잎을 흔들었다. 침묵은 오히려 더욱 답답하게 다가왔다. "잠깐만 이야기만 나누려고요." 마침내 아익사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변명으로 위장한 간절함에 가까웠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는데, 엘리오를 설득하려는 듯했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다독이려는 것이었다. "그래. 잠깐만." 그 말은 아주 단순했다. 하지만 아익사에게 그 말은 생각보다 훨씬 무겁게 다가왔다. 그녀는 엘리오를 멀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곁에 있을 때마다 찾아오는 편안함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었다. 자신과의 약속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단지 옛 친구일 뿐인 그에게서 위안을 구하지 말자고. 그저 과거의 일부로 남겨두자고. 하지만 날이 갈수록 한 가지 사실은 점점 더 부정하기 어려워졌다. 카스텔로 저택에서 그녀를 조금씩 갉아먹는 외로움과 압박 속에서, 엘리오는 언제나 그녀가 숨을 쉬기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만들어 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었다. 둘 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아는 어른이었다. 남편이 집에 없는 틈을 타 이렇게 정원의 외진 곳에 둘만 서 있는 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설명할 수 없는 의심만 살 일이라는 것도. 하지만 그날 오후... 둘 다 먼저 자리를 뜨려 하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일 수도, 너무 오랫동안 삼켜 온 외로움 때문일 수도, 아니면... 진심으로 들어줄 사람이 그리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점심은 먹었어?" 엘리오가 아주 평범한 질문으로 침묵을 깼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묻어난 배려는 너무나
정자에서의 만남 그날 아침은 숨이 막힐 듯한 침묵 속에 흘러갔다. 크림색 봉투를 아무도 떠올릴 수 없는 곳에 숨긴 뒤, 아익사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문을 안에서 잠갔다. 카스텔로 저택에 발을 들인 이래 처음으로, 자신의 화장실에 놓인 모든 보석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을 손에 넣은 기분이 들었다. 정보. 카스텔로 가문의 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는 무언가. 그녀는 봉투를 다시 꺼내보지 않았다. 대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뒤, 깊은 숨을 여러 번 내쉬었다. 어제 밤 페르난도에게 들키기 직전 눈에 비친 모든 세부 사항을 되새기려 애썼다. 그 사진들. 발레리아. 페르난도의 표정. 그가 처음으로 완전히 통제를 잃었던 순간의 눈빛. 장면을 머릿속에 되새길수록 한 가지 결론이 선명해졌다. 발레리아는 단순히 페르난도의 옛 여자가 아니었다. 만약 그저 옛 연인에 불과했다면 페르난도가 이토록 격렬하게 반응할 리 없었다. 자신이 평생 지켜온 평온을 흔들려서라도 그 봉투를 되찾으려 했을 리도 없었다. 오래전 추억으로 남을 일에 치우치기에는 그의 반응은 너무나 과했다. "아직 내가 모르는 게 있나 봐. 혹시 발레리아가 말한 게 사실일까? 페르난도가 트라우마를 극복할 유일한 방법이 과거로 돌아가는 거라면? 이 계약 결혼이 끝나면... 그는 정말 발레리아에게 돌아갈 생각인 걸까?" 아익사는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한 가지를 알고 있었다. 호기심은 가장 치명적인 덫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단 한 번의 잘못된 행동으로 페르난도는 자신이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될 비밀을 발견했음을 눈치챌 것이다. 그래서 아익사는 이 정보를 철저히 숨기기로 결심했다. 때로는... 무기를 섣불리 쓰는 것보다 잘 간직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 이 결심은 마음을 조금은 편안하게 해주었다. 아익사는 일어나 침대를 정리하고 커튼을 활짝 열었다. 아침 햇살이 방 안 가득 퍼져나가며 넓은 뒷마당을 밝혔다. 작은 새들이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고, 정원사들
먼 곳에서 온 소식 오늘은 행운이, 어쩌면 그녀가 억지로 자신의 뜻에 따르게 한 운명이, 아익사를 구해주었다. 페르난도가 더 다가와 그녀의 등 뒤에 숨긴 봉투를 빼앗기 전에, 아익사의 몸은 마침내 한계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녀는 무력한 희생자로 쓰러지고 싶지 않았다. 의식이 흐려지기 직전 마지막 순간, 아익사는 일부러 계산한 방향으로 몸을 기울여, 봉투가 잠옷 주름 사이에 끼어 들어가게 한 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몸을 맡겼다. 다음 날 아침, 천천히 눈을 떴을 때 강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는 자신의 침실 큰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왼손등에는 링거 바늘이 아직 꽂혀 있었다. 아익사는 자신의 상태를 생각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시선은 재빨리 방 안을 훑었다. 손가락으로 자신이 깔려 있던 이불 주름 아래 숨겨진 딱딱한 종이를 만졌을 때, 차갑고 옅은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페르난도는 그의 교만과 꼼꼼함 뒤에, 정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고 말았다. 비밀은 여전히 그녀의 손에 있었다. 그날 오후, 아익사는 의사가 퇴원 허가를 내리기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흔들림 없는 손으로 망설임 없이 직접 링거 바늘을 뽑았다. 손등에서 피 한 방울이 솟았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휴지로 닦아낸 뒤, 어제 밤 어쩔 수 없이 떠나온 전장인 도서관을 향해 꼿꼿이 걸어갔다. 이 결혼이 필요 없었다면, 그녀는 결코 이 숨 막히는 계약 속에 이토록 깊이 잠기지 않았을 것이다. 발레리아라는 여자에 대한 질투에 목이 막히고, 언제나 완벽한 몸 상태를 유지하라는 요구에 시달리며, 마치 자신이 페르난도의 후계자를 낳기 위한 건강한 그릇에 불과한 것처럼 대받는 삶. 그녀는 이 모든 것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익사는 이 모든 일이 끝나면, 페르난도에게 걸었던 기대를 조금씩 지워나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도서관의 대리석 바닥은 어제 밤의 격렬한 다툼이 없었던 것처럼
작은 균열 비밀은 언제나 치밀하게 계획된 거짓말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모든 것이 인증된 종이 위에 서명한 차가운 거래에서 시작된다. 삶 하나가 명문가의 성씨와 끝없는 부와 맞바뀌고, 사랑은 중요하게 여겨지지도 않는 상품이 되어버린다. 페르난도의 이유는 언제나 논리적이고 절대적이며, 타협의 여지를 조금도 주지 않았다. "네가 나에게 후계자를 낳아주기까지는 시간 문제일 뿐이야, 아익사. 아이가 태어나면 우리의 계약은 끝나고, 너는 받을 모든 보상금을 챙겨 자유롭게 떠나면 된다." 그 말은 아익사가 이 화려한 저택에 처음 발을 들인 날부터 기억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예전에는 너무나 선명했던 경계가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논리가 감정에 밀려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제 그 균열이 두 사람의 사업적 결혼이라는 기반 자체를 무너뜨릴 위기에 처했다. 그날 아침, 아익사는 저택 도서관에 앉아 두꺼운 고전 소설 한 권을 무릎 위에 펼쳐놓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천장까지 닿는 높은 창문을 통과해 들어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 알갱이들을 밝히고 있었는데, 마치 이 황금빛 새장 속에서 허비하는 시간을 조용히 상징하는 듯했다. 거의 십오 분 동안 그녀는 단 한 페이지도 넘기지 못했다. 시선은 누렇게 변해가는 종이 위의 검은 글자들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정신은 딴 곳에 머물러 있었다. 몸은 힘이 빠져 있었고, 관자놀이에는 밤잠을 설친 탓인지, 끊임없이 그녀의 건강을 갉아먹는 압박 탓인지 둔한 통증이 욱신거렸다. 생각은 어젯밤 뒷정원에서 엘리오와 나눈 비밀스러운 대화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날 밤의 차가운 기운이 아직도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다. "페르난도 같은 남자가 너를 곁에 두고 아낄 거라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한 거야. 그러니 마음속에 자라나기 시작한 기대는 버려. 네가 임신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모든 게 끝이야, 아익사," 엘리오는 그날 밤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마음을 베어낼 만큼 날카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