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그러면 그 사람들은 저랑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그 돈의 행방을 알아내려는 거네요?”“맞아. 지금으로선 조윤서일 가능성이 가장 커. 어머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제가 언제 아버지를 보러 오는지는 배윤제만 알아요. 심지어 제가 몇 시에 오는지도 다 알고요.”조윤서와 배윤제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예전에 배윤제가 상처받은 척했던 것도 전부 연기였던 셈이다.배윤호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무슨 생각해?”강하율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는 배윤제만 떠올려도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아무것도 아니에요.”“다른 사람 때문에 네가 힘들어할 필요는 없어. 우리 예상이 맞다면 위증을 시킨 사람도 조윤서일 가능성이 커. 그쪽으로 파고들면 돼.”“네.”강하율은 머리가 지끈거려서 관자놀이를 주물렀다.그러자 배윤호가 손을 들어 그녀의 미간을 부드럽게 눌렀다.“조급해하지 마.”“알겠어요.”그때 안혜슬에게서 전화가 왔다.“엄마가 나한테 연락해서 아빠가 복권에 당첨됐다고 했어.”“잠깐. 뭔가 이상한데? 당첨된 사실을 너희 엄마한테 얘기했다고?”강하율이 의아해했다.“우리 엄마뿐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다 알아. 우리 아빠가 절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얼른 돌아가야겠어.”“그래. 우리도 당장 그쪽으로 갈게. 절대 흥분해서 실수하지 마.”강하율은 그렇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배윤호는 이미 양승아에게 시동을 걸라고 지시해 둔 상태였다.강하율이 물었다.“저랑 같이 가는 거 시간 낭비 아니에요?”“나 오늘 쉬는 날이야. 여자 친구랑 같이 있을 시간 정도는 낼 수 있어.”배윤호는 여자 친구라고 하면서 강하율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봤고 강하율은 얼굴이 빨개졌다. 진지한 얼굴로 저런 말을 하니 더 당황스러웠다.가는 길에 배윤호는 나해준에게 상황을 알렸다.강하율이 서둘러 말했다.“두 사람은 절대 모습을 드러내면 안 돼요. 그 사람들이 두 분 옷차림이나 나해준 씨가 혜슬이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면 아예 혜슬이를 나해준 씨에게 팔아버리려
강하율은 흥분해서 배윤호의 손을 꽉 잡았다.“우리에게 뭘 알려주려고 한 거죠?”“병실 안에 듣는 귀가 있다는 거.”배윤호가 솔직하게 말했다.“그러면 당장 가서 제거해야죠!”강하율은 아버지가 걱정돼 당장이라도 차에서 내려 병실로 달려가고 싶었다.배윤호가 그녀를 붙잡았다.“우리는 가면 안 돼. 우리 대신 간 사람이 있어.”그가 말을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뛰어나왔다.“배윤호 대표님, 말씀하신 대로 다 확인해 봤는데 도청기가 있었습니다.”의사가 사진을 보여줬다. 강진철의 침대 옆 수납장 근처에 작은 검은 점 하나가 있었다.바로 제거하면 상대가 눈치챌 수 있어서 일단은 사진만 찍어둔 상태였다.의사가 말했다.“매일 아침 직원이 청소하러 가는데 그때 설치된 것 같습니다.”수납장을 닦으면서 뒷부분에 슬쩍 붙이면 눈치채기 어려운 위치였다.그런데 직원이 강진철을 진짜 미친 사람으로 생각했는지 은근히 허술하게 설치한 듯했다.강하율이 물었다.“그럼... 우리 아버지가 미치지 않았다는 뜻인가요?”배윤호는 단정 짓지 않았다.“적어도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인 거지.”그는 그렇게 대답한 뒤 의사에게 계속 관찰하되 절대 상대를 자극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강하율은 병실 쪽을 올려다봤다.“아버지가 일부러 연기를 했다면... 무려 10년이나 연기를 한 거잖아요. 왜 그런 걸까요?”“하율아, 너는 그때 겨우 열네 살이었어. 그러니까 그런 상황을 감당할 수가 없지. 미친 척 연기한 건 아마 살아남기 위해서였을 거야. 그래야 조사할 기회라도 있으니까.”배윤호가 분석했다.강하율은 당장 그 비서의 가족을 찾아가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배윤호가 말을 이었다.“당시 사건 기록을 다시 확인해 봤는데 그 목격자라는 사람은 그 비서의 친척이었어. 마침 그 비서의 집 근처에서 살았고.”“맞아요. 그 사람은 볼일이 있어서 비서의 집에 갔다가 상황을 목격했다고 했어요. 비서가 급히 밖으로 뛰어나가서 따라가 봤는데 비서
안혜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미친 거 아니야? 꿈도 꾸지 마. 본인은 능력이 안 되니까 여동생을 팔아먹겠다고?”“우리만 그런 거 아니야. 다른 집도 다 그래. 딸을 결혼시켜서 받은 돈으로 아들 결혼시키는 건 당연한 거라고.”“꺼져.”안혜슬은 전화를 끊고 나서도 분노 때문에 몸이 계속 떨렸다.그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죄송해요.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나해준은 자리를 떠나는 그녀를 끝까지 바라보았다.강하율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늘 이래요. 혜슬이가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바로 결혼시키겠다고 협박해요. 예전에 제가 혜슬이를 돕고 싶어서 두 번 정도 돈을 준 적이 있는데 그 뒤로 점점 더 큰 액수를 요구하더라고요. 혜슬이 엄마는 그냥 울기만 하고요. 그래서 그 뒤로는 줄 수가 없었어요.”나해준이 말했다.“내가 최대한 빨리 처리할게.”“네? 잠깐만요.”강하율이 그를 말려고 했다.“도와주려고 그러는 건 알지만... 저는 혜슬이가 진심이 될까 봐 걱정돼요. 저는 혜슬이가 마지막에 혹시라도...”“내가 혜슬이를 갖고 놀려고 하는 것 같아?”“그게 아니라 액수가 너무 크면 혜슬이가 부담스러워할 거예요. 나해준 씨도 혜슬이가 돈을 갚으려고 나해준 씨를 만나주는 것보다는 정말 나해준 씨를 좋아해서 만나기를 바랄 거잖아요.”“강하율, 혜슬이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이야. 설령 빚 때문에 나랑 만나게 된다고 해도 혜슬이 성격에 절대 손해를 보지는 않을 거야.”나해준은 가볍게 웃었다.그 말을 듣고 강하율은 잠시 멈칫했다.듣고 보니 안혜슬의 성격이라면 절대 어디 가서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강하율은 고개를 끄덕였다.“죄송해요. 제가 섣부르게 판단했네요.”“걱정하지 마. 나도 선은 지킬 거니까. 지금은 어떻게 혜슬이 가족들을 상대할지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사실 10억이 아니라 1억만 있어도 혜슬이 아빠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굴 거예요.”강하율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강하율과 배윤호가 음식을 들고 나왔을 때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다 됐어요. 와서 앉아요.”네 사람은 웃고 떠들며 자리에 앉았고, 앉자마자 또 이야기를 이어갔다.강하율이 물었다.“얘기 다 끝났어?”안혜슬은 숨기지 않고 방금 결정한 내용을 전부 얘기한 뒤 한마디 덧붙였다.“사실 그동안 몰래 이천만 원 정도 모았거든. 그러니까 그냥 내 돈으로 하면 될 것 같아.”강하율이 말했다.“혜슬아, 네 마음은 알겠는데... 그 정도로는 부족해. 너희 아빠한테 그 정도 돈이 없을 것 같아? 그걸로는 자신한테 헌신하는 너희 엄마를 버릴 생각이 들지 않을 거야.”배윤호가 낮게 말했다.“사람은 자기가 상상했던 그 이상의 돈을 손에 쥐어야 남들이 어떻게 돈을 쓰는 지를 배우게 돼요. 그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여자를 갈아치우는 거죠.”배윤호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한마디 보탰다.“나는 이미 충분히 돈이 많으니까 다른 여자는 관심 없어.”민성운은 하마터면 먹던 음식을 토할 뻔했다.“둘 다 진짜 뻔뻔하네.”나해준이 말했다.“할 거면 크게 하자.”나해준이 그런 얘기를 하자 안혜슬은 순간 넋이 나갔다.“어떻게요? 돈이 너무 많이 들면 저 못 갚아요.”“앞으로 천천히 갚으면 되지.”나해준이 능구렁이처럼 싱긋 웃었다.“그러면 얼마로 하려고요?”5천만 원쯤이면 죽어라 일해서 어떻게든 갚을 수 있었다. 엄마랑 같이 그 거지 같은 집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말이다.“10억.”“네?”안혜슬이 소리를 질렀다.“10억은 제가 평생 일해도 못 갚는 돈이에요. 절대 안 돼요. 못 해요.”나해준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매우 논리적으로 말했다.“만약 혜운대에 합격한다면 연봉을 꽤 많이 받을 수 있을 거야. 네가 앞으로 10억도 못 벌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네.”안혜슬이 말을 이어갔다.“교수님, 교수님 기준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가진 게 없는 사람이에요. 대학 등록금도 몇 년 동안 일해서 겨우 모았어요. 졸업하면 인턴으로 시작할 텐데 요
강하율은 웃음을 터뜨렸다....안혜슬은 세 사람에게 차를 따라주다가 차가 떨어지자 대신 물을 따라주었다.민성운이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며 웃었다.“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 아니에요?”안혜슬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그래요?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줄 알았는데. 있으면 그냥 얘기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안 도와주면 내가 도와줄 테니까.”민성운이 눈을 찡긋했다.안혜슬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예쁘장한 남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그녀는 호텔에서 별의별 사람을 다 봤고, 예쁘게 생긴 남자 둘이서 방에 들어가는 장면도 본 적이 있었다.나해준이 컵을 내려놓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양승아가 거들었다.“그냥 편하게 얘기해도 돼요. 다들 궁금해하는 것 같은데.”결국 안혜슬은 집안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고 양승아는 웃으며 말했다.“오빠분이 참 대단하시네요. 1억짜리 차를 아무렇지 않게 요구하는 걸 보면 말이죠.”민성운이 말했다.“그런 사람은 칼 한 번 들이대면 바로 얌전해지는데.”두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문제만 얘기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안혜슬의 엄마였다.나해준이 말했다.“어머니가 그 집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거지? 사실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긴 해.”안혜슬이 곧바로 그를 바라봤다.“무슨 방법이요?”“어머니의 사고방식을 따라서 생각해 봐. 너희 어머니는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 또는 누군가에게 부려지는 것에 익숙해.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들이 더 이상 너희 어머니가 필요 없다고 한다면 너희 어머니는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할 거야.”“그 말은... 아빠랑 오빠가 엄마를 버리게 만들라는 거예요?”그 말을 하고 나서 안혜슬 자신도 놀란 듯했다.민성운이 말했다.“우리 카지노에 오는 도박꾼들이 가장 먼저 버리는 게 뭔지 알아요? 바로 자기 아내예요.”안혜슬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혹시 우리 아빠랑 오빠를 도박에 빠지게 하려는 건 아니죠?”안혜슬은 두 사람이 죽도록 싫었으나 적어도
김지현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가끔은 안혜슬이 도와줘서 잠깐 정신을 차릴 때가 있어도 그것이 익숙하지 않아 결국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고 만다.김지현이 힘들게 산다는 사실은 누구든 보아낼 수 있었다.그녀는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본인이 그걸 거부했다.안혜슬은 엄마의 손을 붙잡았다.“엄마, 오빠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엄마도 알잖아요. 오빠가 무슨 수로 1억짜리 차를 타고 다녀요?”김지현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남자는 결혼하면 다 나아져. 다 잘될 거야.”“그런데 그걸 왜 제가 감당해야 하냐고요. 엄마는 저도 엄마처럼 살았으면 좋겠어요?”안혜슬이 되묻자 김지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사실 김지현은 다 알면서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이었다.안혜슬은 가방 안에서 돈을 조금 꺼내 엄마한테 쥐여줬다.“엄마, 곧 겨울인데 왜 아직도 이런 옷을 입고 다녀요? 이건 하나도 안 따뜻하잖아요. 얼른 가서 새 옷 사 입어요. 그리고 아빠랑 오빠한테 제가 돈을 줬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마세요.”김지현은 안혜슬이 쥐여준 돈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다.김지현은 두 자식 모두 사랑하면서 매번 안혜슬만 희생시켰다.강하율이 나섰다.“이모, 이제 돌아가세요. 그냥 혜슬이도 돈이 없다고 하시면 돼요.”김지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상상했던 것처럼 끈질기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안혜슬은 완전히 지쳐버렸다.강하율은 김지현이 떠난 것을 확인한 뒤 안혜슬을 차에 태웠다.안혜슬은 배윤호에게 인사할 기력조차 없어 그저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배윤호가 말했다.“혜슬 씨 어머니는 자신의 과거를 마주할 용기가 없는 거예요. 혜슬 씨가 옳다는 걸 인정한다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자신이 틀린 선택을 해왔다는 걸 인정해야 하니까요. 사실은 더 잘 살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걸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일일 거예요.”즉 자신의 지난 삶을 부정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었다.안혜슬이 한숨을 쉬었다.“매번 똑같아요. 오늘도 돌아가면 제가 준 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