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제나야, 이유가 어찌 됐든 사람에게 손을 댄 건 잘못이다. 인정이한테 가서 사과해라. 그럼 이 일은 여기서 끝내는 걸로 하자. 어떠냐?”제나는 차근수가 경후와 제나 쪽을 감쌀 줄 몰랐다.벌도 내리지 않고, 배상도 요구하지 않았다. 사과 한마디로 끝낼 수 있다면, 제나에게는 가장 나은 결론이었다.제나가 조금 억울한 건 괜찮았다. 하지만 경후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고, 경후가 무언가를 잃는 것도 원하지 않아서 고개를 끄덕였다.차근수는 만족스러운 기색을 보였다.굽힐 때 굽힐 줄 알고, 영리하게 상황을 읽을 줄 아는 여자
차근수가 그 뜻을 모를 리 없어서 바로 차민균 부부를 바라보았다.“너희 생각은 어떠냐?”차민균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젊은 사람들한테는 젊은 사람들 생각이 있겠지요. 저희가 어른이라고 해도, 결국 당사자들 선택을 존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양쪽 당사자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차민균의 말은 그럴듯했다. 하지만 태도는 분명했다. 이 일은 자신과 상관없으니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물론, 그렇게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틀린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감싸 주는 말 한마디
사람들이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제나를 좋게 보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런 자리에서 거짓 증언까지 할 사람은 없었다.차민균과 류서윤의 낯이 몹시 어두워졌다.두 사람이 잠깐 눈을 마주친 뒤, 류서윤이 입을 열었다.“제나가 먼저 잘못한 거라면, 제나가 인정이한테 사과하면 되겠네. 그래도 다 가족인데 하룻밤 넘길 원한이 뭐가 있겠어.”차민균도 말했다.“제나야, 이유가 뭐든 사람한테 손댄 건 잘못이다. 인정이한테 얼른 사과해.”박영수는 그 말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우리 인정이가 이렇게 크게 다쳤어요.
모든 사람이 주방 문 앞에 모여 있었다.인정은 깨진 그릇 조각들 사이에 쓰러져 있었다. 발과 손목, 뺨이 바닥의 파편에 베여 피가 흘렀고, 보는 사람의 가슴이 서늘해질 만큼 처참했다.“세상에, 인정아... 인정아, 이게 무슨 일이니?”중년 여자가 사람들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온몸에 상처를 입은 인정을 보자마자 여자는 울음을 터뜨리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곧이어 중년 남자도 뒤따라 들어왔다.“무슨 일이야?”두 사람은 인정의 부모였다.누군가 옆에 서 있던 제나를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봤대요. 저 사
한 번은 인정이 제나를 속여 냉동창고 안으로 들여보낸 뒤, 온도를 가장 낮게 내려 버린 적도 있었다. 제나는 하마터면 그 안에서 얼어 죽을 뻔했다.마침 지나가던 직원이 없었다면, 제나는 그대로 냉동창고에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랐다.갓 성인이 된 여자애가 그런 짓을 태연히 저질렀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등골이 서늘해졌다.바로 그 일 이후, 제나는 더는 참지 않기로 했다.제나는 인정을 호되게 혼냈다.나중에 듣기로 인정은 병원에 한 달 넘게 누워 있었다고 했다.하지만 제나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류서윤은 그 뒤로
저녁 식사가 이어지는 동안, 분위기는 내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사람들은 더 이상 대놓고 수군거리지는 않았지만, 시선은 계속 경후와 제나를 향했다.이질적이고 노골적인 적의를 감춘 눈빛들이 칼날처럼 살갗을 파고드는 듯했다. 뼈마디까지 저릴 만큼 불쾌했다.경후는 그런 시선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태연했다. 제나가 한참 동안 젓가락을 들지 않자, 경후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반찬 하나를 집어 제나의 그릇에 올려 주었다.“왜? 이것도 입에 안 맞아?”제나는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말했다.“아니.”“아니면 좀 먹어.”
세린은 급히 대본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차 한 잔 줄게.”“괜찮아.”경후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다.“잠깐 얘기만 하고 갈 거니까.”차가운 얼굴선을 따라 흐르는 무심함에, 세린의 웃음이 서서히 옅어졌다.“이번에 날 찾아온 건, 제나 씨 일 때문이겠지?”그녀는 오후에 뉴스를 보다가 눈치챘다.인터넷을 도배하던 제나 관련 기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 세린은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경후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제는 정리할 때가 됐어.”세린은 잠시 침묵하다, 조심스레
하성의 존재가 드러난 뒤부터일까... 제나의 눈에는 경후가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그는 점점 더 음울하고 예측할 수 없었고, 감정의 기복도 심해졌다.경후는 제나가 자신을 피하려는 눈빛을 똑바로 보며 낮게 말했다.“온라인에 떠도는 기사들, 다 막아뒀어.”하지만 제나는 안도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어제 경후가 내뱉었던 말이 뇌리에 선명하게 맴돌았다.‘당신이 얻은 건, 내가 두 배로 받아낼 거야.’제나는 대꾸하지 않았다.경후 역시 그녀의 침묵 따위 개의치 않은 듯 외투를 소파 위에 내던지고 곧장 다가왔다.
“당신 같은 사람이면, 어떤 여자든 원하기만 하면 쉽게 가질 수 있잖아.”제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밖에서 아무 여자나 만나든 난 상관 안 할 거야.”경후가 세린을 찾든, 다른 여자를 찾든 제나에겐 별반 다르지 않았다.그녀는 그를 통제할 수도, 이 결혼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하지만 최소한, 경후의 몸에서 풍기는 낯선 향수 냄새를 참아가며 그의 욕구를 받아낼 필요는 없었다.“내가 다른 여자를 찾아도 괜찮다?”경후가 그 말을 되뇌듯 읊조렸다.그리고 눈빛에 스치듯 짙은 그림자가 번졌다.그러더니, 그는 불현듯 제나의 옷
제나의 생활용품들은 이미 며칠 전부터 경후가 머무는 호텔 방으로 옮겨져 있었다.점심을 마친 뒤, 두 사람은 호텔을 나섰다.오랜만에 햇빛 아래 서서 마시는 바깥 공기는 제나에게 낯설 정도로 소중했다.한동안 잊고 지낸 자유의 냄새였다.차에 오르라는 경후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제나는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했다.그 순간, 경후의 차가운 목소리가 날아왔다.“왜, 아직도 덜 살았나 봐? 며칠 더 갇혀 있고 싶어?”제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과거 수많은 악플과 언론의 조롱, 극성팬들의 폭행에 시달릴 때조차 ‘지옥 같다’고 생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