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제나의 출신이 낮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차씨 가문과 비교하면 격차가 너무 컸다.설령 뒤에 하씨 가문이 버티고 있다고 해도 차씨 가문 앞에서는 충분하지 않았다.그 시기 경후는 회사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빴고, 경후와 제나는 거의 만나지 못했다.그래서 제나는 날마다 류서윤에게 불려갔다. 명목은 그럴듯했다. 예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실제로는 예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거의 없었다. 류서윤은 오히려 제나를 데리고 수많은 연회와 사교 자리에 참석했다.처음에 제나는 류서윤이 자신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는 줄 알았다
제나는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자 안에 단정하고 아름다운 재벌가 사모님 몇 명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제나는 발걸음을 옮겨 정자 안으로 들어갔다.아름다운 사모님들은 제나를 보자마자 웃음과 이야기를 뚝 멈췄다. 모두가 까다로운 눈길로 제나를 훑어보았다.그중 류서윤이 입을 열었다.“네가 하제나야?”제나는 류서윤을 바라보았다.“네, 제가 하제나입니다. 혹시 사모님께서는...”류서윤은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아직도 고운 태가 남아 있는 표정 위로 은근한 오만함이 떠올랐다.“나는 경후 엄
이 집 안에는 지하실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소빈은 대체 어쩌다 발각된 것일까?차민균 부부가 채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경후는 이미 소빈 앞으로 걸어가 있었다.“다들 광장에 모여 있는데, 어디로 가려던 거지?”소빈은 바들바들 떨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당황한 기색을 도저히 숨기지 못했다.“저... 저는...”경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말해.”그런 시선에 눌린 소빈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소빈은 도움을 청하듯 차민균 부부 쪽을 바라보았다.경후는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
밤공기는 먹물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쾅!저택의 대문이 소리와 함께 거칠게 들이받혀 열렸다.저택의 보안 요원들이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들이닥친 사람들에게 제압당했다.경후는 준혁을 한 번 바라본 뒤 담담하게 지시했다.“이 집안사람들 전부 한곳에 모아. 빨리 움직여.”준혁은 경후의 뜻을 곧바로 알아들었다. 상대가 낌새를 눈치채고 몰래 지하 통로나 다른 길로 제나를 빼돌리면 일이 더 복잡해질 것이다.경후가 데려온 사람들은 모두 정예 요원이었다. 하나같이 눈치가 빠르고 움직임이 민첩했으며,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망설임 없이
“경후 씨랑 같이 떠나는 거, 받아들일게. 나 바다 좋아하잖아. 우리 바다가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살자.”“내 손에 채운 사슬, 풀어주면 안 돼? 우리 집은 내가 직접 설계하고 싶어.”“이 설계도는 어때? 경후 씨 보기엔 더 고칠 데 있어?”“...”그때, 제나는 참 그럴듯하게 굴었다.그 시절 제나는 줄곧 경후와 함께할 아름다운 미래를 그려냈다.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어떤 집에서 지낼지, 어떤 나날을 보낼지 끊임없이 이야기했다.경후는 제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어느새 미래의 장면을 떠올리기 시작했다.경
“맞아.”소빈이 고개를 끄덕였다.“경후 도련님이 사람들을 시켜 저택 전체를 뒤졌는데도 하제나 씨를 못 찾았잖아. 그러면 당연히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겠지.”“그 두 분은 나를 죽이려는 거야?”“그럴 생각은 있어. 다만 아직 망설이는 중이야. 지금은 그 두 분도 경후 도련님과의 관계를 너무 틀어지게 하고 싶진 않아.”“만약 들키기라도 하면, 경후 도련님 성격상 최악의 경우 인연을 끊겠지. 그보다 더 심한 일을 저지를 수 있을지, 그건 아무도 모르고.”제나의 미간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무언가 말하려던 제나는 알 수 없는
경후는 제나를 바라보다가, 얼굴이 굳어 있는 걸 발견하고 눈빛에 짧은 놀라움이 스쳤다.“어젯밤 내내 간호한 대가예요.”목소리에는 아직 쉰 기운이 남아 있었다.조각처럼 각진 얼굴선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차갑고 거리감 있는 인상이었다.“안 받아요.”제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또렷하게 말했다.“앞으로는 저한테 돈 보내지 마세요.”경후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돈이 싫어요? 그럼 뭘 원하죠?”“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경후는 미간을 좁혔다.“말해도 돼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최대한 맞출게요.”처음
“알아.”경후의 표정은 담담했다.“걱정 마. 내가 알아서 정리할게.”제나는 경후의 얼굴에서 단 한 점의 후회도 읽어낼 수 없었다.가슴 한가운데가 꽉 막힌 듯 답답해졌다. 이를 악물고, 제나는 경후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알잖아. 내가 그런 조건을 내건 이유는 네가 알아서 물러나길 바랐기 때문이야. 차경후, 우리는 이미 끝났어. 그러니까 더 이상 나한테 집착하지 마.”그 말에 경후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다.그는 제나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았다.“왜 갑자기 헤어지자는 거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괜찮았잖아.”제나
그 질문에 대해 경후의 반응은 냉담했다.“모르겠어.”제나는 깊이 생각한 끝에 던진 질문도 아니었다.머릿속이 복잡한 와중에 그저 떠오른 생각을 입 밖에 낸 것뿐이었다.경후는 서대하라는 인물을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었다.그런 상황에서 누가 서대하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경후 역시 알 리 없었다....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은주는 자동차가 멀어지는 방향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후미등의 불빛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은주는 시선을 떼지 않았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미가 결국 입을 열었다.“그렇게 보내기 싫었으면, 아까
제나는 가방에서 계약서 한 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사과의 뜻으로 계약금의 두 배를 배상할 생각입니다.”계약금의 두 배를 보상하는 건, 이 업계에서는 통상적인 절차였다.다만 제나가 운영하는 작업실은 고급 맞춤 제작을 주로 다루는 곳이었고, 고객층 또한 재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만만치 않은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함부로 적을 만들 수 없는 구조였다.연주에게서 들은 바로는 이 서대하라는 고객은 유독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민정과 함께 치수를 재러 갔을 당시에도, 말과 행동에서 은근히 선을 넘으려는 기색이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