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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작가: 다섯
문서현은 이대로 자신의 처소에서 경조부로 가 문도진과 남남이 될 날만 기다리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날 밤 그녀는 누군가에게 이끌려 서재로 가게 되었다.

흔들리는 촛불 아래.

문희주가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다분히 도발적인 기색이 역력했다.

문서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경계하는 눈빛으로 문희주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자신을 이곳까지 끌고 왔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의문은 금세 풀렸다.

문희주가 사뿐사뿐 걸어와 문서현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턱을 치켜든 채 오만한 시선으로 문서현을 내려다보았다.

"문서현. 내가 남편과 자식을 버렸던들 어쩌겠어? 배도진과 배은우는 여전히 나 하나만 바라보는데."

문희주가 비아냥거렸다.

"네가 온갖 애를 써서 선평후부 안주인 자리를 훔쳐냈어도, 결국 그 사람들의 마음은 얻지 못할 운명이야. 나중에 쫓겨나서 망신당하느니, 차라리 일찌감치 네 발로 나가는 게 낫지 않겠어?"

"그때가 되면, 문씨 가문에서도 소박맞은 널 절대 받아주지 않을걸."

문희주의 입꼬리가 길게 찢어졌다.

"네가 갈 수 있는 길이라곤 강물에 몸을 던져 죽는 것뿐일 텐데 말이야."

빛을 등진 문희주의 이목구비는 짙은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문서현의 눈에는 그녀의 두 눈에 서린 지독한 독기가 똑똑히 보이는 듯했다.

문서현은 고개를 들어 문희주를 마주 보았다.

돌연 뼛속 깊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뒷방에 갇혀 살기 싫다며 도망쳤던 문희주가, 어째서 저토록 안달을 내며 자신을 선평후부에서 내쫓으려 하는 것인지. 심지어 매번 배도진의 손을 빌려 자신을 죽이지 못해 안달인지 말이다.

문서현의 의문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문희주가 다시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답을 내놓았다.

"어릴 때부터 넌 단 한 번도 날 이긴 적이 없잖아. 난 적출이고 넌 서출이니까."

"난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았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시집가고 싶으면 가고, 천하를 유람하고 싶으면 유람하고,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와도 그 누구도 날 탓하지 않아. 반면에 넌, 그저 내가 버린 쓰레기나 주워 가질 주제밖에 안 되지."

"하지만 아무리 내가 버린 쓰레기라도, 네년한테 거저 주기는 싫단 말이야!"

그 말을 들은 문서현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가슴속에 지독한 무력감이 번져갔다.

지난 스무 해를 되돌아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문씨 가문에 있을 때도, 그녀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었다. 심지어 옷조차 문희주가 입다 버린 것들만 골라 입어야 했다.

이후 선평후부로 시집오면서 새로운 시작이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배도진과 배은우 역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문득 정말 평생을 문희주의 그림자 밑에서 살아온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거야."

문서현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 네 것은 전부 네 것이고, 내 것은 오직 내 것일 뿐이야."

머지않아, 배도진과 배은우는 그녀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남남이 될 터였다.

하지만 문희주는 그 말을 도발로 받아들인 듯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하더니, 문서현의 손목을 확 낚아챘다.

"이 지경이 되고도 어디서 뻗대고 난리야? 좋아, 그 사람들의 마음이 온통 나로 가득하다는 걸 못 믿겠다면, 오늘 내가 특별히 적선하는 셈 치고 똑똑히 보여주지."

문희주가 독기 어린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문서현, 네가 심장 깊은 곳에 품고 오 년이나 사랑했던 남자와 아이는, 널 털끝만큼도 신경 쓰지 않아! 어떤 상황이 오든, 그 사람들은 영원히 나만 선택할 거라고!"

문서현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바로 그때.

문희주가 잰걸음으로 책상 앞으로 다가가더니, 촛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곁에 늘어진 장막과 서화 쪽으로 불꽃을 들이밀었다.

문서현의 동공이 무섭게 수축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두 눈을 뜬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낼름거리는 불길이 거침없는 기세로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이내 붉은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매캐하고 짙은 연기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문서현은 무의식중에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문희주가 그녀를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때, 서재 밖에서 하인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람 살려! 불이야!"

짙은 연기에 질식해 시야가 점차 흐려졌다.

구조를 요청하는 비명마저 잦아들 무렵.

쾅!

굉음과 함께 서재의 굳게 닫힌 문이 부서지듯 열렸다.

크고 작은 두 개의 그림자가 불길을 뚫고 뛰어들었다.

다급하게 부르짖는 외침이 문서현의 귓가에 내리꽂혔다.

"희주야!"

"어머니!"

그 순간, 구석에서 문희주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진아, 은우야! 나 여기 있어, 살려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배도진과 배은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곳으로 뛰어갔다.

이윽고 그들은 눈물범벅이 된 문희주를 품에 안고 곧장 서재 밖을 향해 몸을 돌렸다.

분명 문서현 역시 바로 그 곁에 있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두 사람을 동시에 구해낼 수도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두 부자는, 그 누구도 곁에 있는 문서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문희주의 방해가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문서현 스스로 밖을 향해 빠져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밖을 향해 막 뛰어나가려 했다.

파지직!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 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결국 불길을 견디지 못한 나무 대들보가 거센 불꽃을 머금은 채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도망치려 일어서던 문서현의 몸 위로 무자비하게 떨어져 내렸다!

쿵!

그녀의 몸이 앞으로 곤두박질쳤다.

등판을 짓누르는 끔찍한 열기와 통증에 문서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쿨럭!"

입에서 붉은 선혈이 터져 나왔다.

숨을 쉴 때마다 뼛속을 쑤시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마치 수백 개의 불타는 바늘이 뼈와 살을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굵은 땀방울이 쉴 새 없이 맺혔다.

가슴이 찢어질 듯 격렬하게 오르내렸지만, 그녀는 감히 단 한순간도 지체할 수 없었다.

문서현은 고통을 악물고 참으며 밖을 향해 기어갔다.

가까스로 불구덩이를 빠져나왔을 때.

배도진의 품에 기대어 가련하게 흐느끼는 문희주의 모습이 탁해진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전 그저... 오늘 새로 얻은 그림이 있어 좋은 마음으로 서현이를 불러 함께 감상하려 했을 뿐이에요."

문희주가 흐느꼈다.

"그런데 서현이가 갑자기 그림을 빼앗더니, 제가 모아둔 서화와 고서들을 전부 불태워버렸어요. 심지어 불을 질러 저까지 죽이려고..."

배도진의 싸늘한 눈빛과 마주친 그 찰나.

문서현은 불현듯 이 상황이 너무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해명할 의욕조차 사그라들었다.

어차피 그의 마음속에는 진작부터 정답이 정해져 있었을 테니까.

아무리 피를 토하며 억울함을 호소한들, 그는 절대 믿지 않을 테니까.

"문서현은 질투에 눈이 멀어 서재에 불을 질렀고, 하마터면 큰 재앙을 일으킬 뻔했다! 그러니 이 마당에서 사흘 동안 무릎을 꿇어 반성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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