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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47화

Author: 유진
예전에도 그랬다.

누군가는 칼을 쥐고 있었고 그녀는 도마 위에 올려진 채 저항할 힘도 선택할 권리도 없이 운명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짓눌려야 했다.

그런데 오늘도...

또다시 그렇게 당해야 하는 걸까.

이경빈의 한마디로 이 아이를 잃어야만 하는 걸까.

이렇게 강제로 모욕적으로.

마취과 의사가 주사기를 들고 다가오는 순간 탁유미는 미친 듯이 몸을 비틀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팔을 뻗어 자신을 누르고 있던 간호사 하나를 거칠게 밀쳐냈고 손은 그대로 수술대 옆에 놓인 트레이를 더듬었다.

그리고... 차가운 금속의 감촉.

탁유미는 수술용 메스를 움켜쥐었다.

그녀가 칼을 휘두르자 의사와 간호사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잠시나마 자유로워진 탁유미는 칼자루를 두 손으로 꼭 쥐었다.

마치 그것이 뱃속 아이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것처럼.

그런데 그때 이경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미야... 소용없어. 오늘 널 여기 데려온 순간부터 난 이미 각오했어. 네가 나를 감옥에 보내든 날 죽이든... 이 수술은 반드시 해야 해.”

탁유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를 노려봤다.

“왜... 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날 다시 미워하게 만들 생각이야?”

탁유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동안 그녀는 정말 애써왔다.

이경빈을 향한 증오를 조금씩 또 조금씩 지워내려고.

그런데 오늘 이경빈은 그 모든 걸 단숨에 무너뜨리고 있었다.

곧 이경빈의 얼굴에는 씁쓸한 기색이 스쳤다.

미움...

그는 알고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아이를 지우려 하면 탁유미가 자신을 어떻게 보게 될지.

그리고 탁유미가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자신을 증오하게 되리라는 걸.

그럼에도...

“그럼 날 미워해. 난 오늘 돌아갈 길을 끊었어. 널 데리고 운전했을 때부터

이미 각오했어.”

“네가 평생 나를 미워해도 좋다고...”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이경빈의 눈빛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대신... 넌 살아 있어야 해.”

“이경빈... 너...”

탁유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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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탁유미는 갑자기 냉소를 흘렸다.“시한폭탄? 너.... 방금 우리 애를... 폭탄이라고 했어?”그러나 이경빈은 단호하게 입을 다문 채 그저 탁유미의 팔을 붙잡고 그녀를 병원 안쪽으로 끌고 갈 뿐이었다.“놔!”“이경빈! 손 놓으라고!”탁유미는 온 힘을 다해 몸부림쳤고 팔을 비틀고 뒤로 물러나며 도망치려 했지만 이경빈의 손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았고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마치 철근처럼 그녀의 팔을 옥죄고 있었다.순간 다급해진 탁유미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숙였다.그리고...이경빈의 손을 세게 물었다.“윽...”순간 이경빈의 미간이 세게 찌푸려졌고 곁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이 대표님! 손이..!”사람들이 황급히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 했지만 그 순간 이경빈이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건드리지 마세요.”그 한마디에 주위는 그대로 얼어붙었다.그리고 이경빈은 탁유미를 내려다보며 목소리를 가라앉혔다.“오늘 여기서 네가 내 손을 물어뜯어도... 그 아이는 지울 거야.”“유미야... 난 네 목숨을 걸고 그런 가능성에 도박을 할 수 없어.”그 말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고 그것은 지독할 만큼 솔직한 공포였다.특히 한지영의 출산 과정을 본 이후로는 더 그랬다.간신히 의식을 되찾은 사람.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 돌아온 사람.그건 기적이었지만 그 기적의 대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이경빈은 애초에 그런 ‘혹시’에 인생을 맡기는 사람이 아니었다.그 신비한 소년이 누군가를 살렸다고 해서 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리란 보장은 없었다.게다가... 그 기적이 일어난 이유조차 결국은 ‘아이’ 때문이었다.한편 탁유미는 눈에 보일 만큼 몸을 떨고 있었다.입안에는 진득한 피 맛이 번졌고 그녀가 물고 있던 이경빈의 손에서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러나 탁유미는 이를 악물고 더 세게 물었다.하지만 입안 가득 퍼지는 피비린내에도 이경빈은 끝내 손을 놓지 않았다.“왜...”탁유미가 마침내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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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을 나선 뒤 이경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럼에도... 결국 이 아이 낳겠다는 거지?”탁유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고개를 끄덕였다.“응.”“정말 더는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오면...그땐 그냥 나랑 이 아이 운명이 거기까지였다고 생각하려고.”“내가 이 아이 엄마가 될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그 말에 이경빈의 얼굴이 굳어졌다.“유미야, 너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하는 거지?”“진짜 그렇게까지 가면 네 간이 지금처럼 버텨줄 거라고 생각해?”“얼마나 망가질지 회복은 될지... 아무도 장담 못 해.”“알아.”탁유미는 담담하게 말했다.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배를 내려다봤다.“그래도 난 마음의 준비는 했어.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한 번쯤은 걸어보고 싶어.”하지만 이경빈은 그 ‘한 번’을 함께 걸을 수가 없었다.“넌 왜 그렇게...”“왜 그렇게까지 네 몸을 걸고 살아?”그 말에 탁유미는 고개를 들었다.“아니. 난 나 자신을 소중히 여겨. 그래서 더 분명해. 내가 지금 뭘 원하는지.”“오늘 의사 말도 들었잖아. 완전히 불가능한 임신은 아니라고. 위험하긴 하지만 최소한 7개월 전까지는 큰 문제는 없고... 7개월만 넘겨도 아이는 살 확률이 충분하다고.”“그리고... 요즘 의료 수준이 예전이랑 같아? 무조건 포기해야 할 상황은 아니잖아.”탁유미의 말에 이경빈은 입술을 꽉 다물었고 곧 입매가 완전히 굳어 있었다.“결국... 무슨 말을 해도 넌 중절할 생각 없다는 거네.”“응.”탁유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결국 이경빈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곧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차는 조용히 병원을 벗어났고 탁유미는 긴장이 풀렸는지 조수석에 앉자마자 스르르 잠이 들었다.하편 운전석에 앉은 이경빈은 곁눈질로 잠든 그녀를 바라보다가 순간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얼마나 지났을까.탁유미가 갑자기 눈을 떴고 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나... 얼마나 잤어...”그런데 중얼거리듯 말하던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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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나중에 이현이가 커서요...”한지영은 일부러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아빠 왜 그랬냐고 원망하고 화내고 심지어 때리면... 그건 연신 씨 몫이죠. 자기 아내 살리겠다고 딸을 팔아넘긴 아빠니까요.”순간 백연신은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농담이에요.”그 모습에 한지영은 장난스럽게 웃더니 곧바로 말을 이었다.“연신 씨, 난 연신 씨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탓할 생각도 없어요. 그리고... 절대 떠날 생각도 없고요.”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따뜻했다.“알아요. 연신 씨가 한 선택이 전부 나 때문이었다는 거.”백연신은 가슴이 찡해나더니 말없이 그저 그녀를 바라봤다.우씨 가문의 그 아이와 약속을 한 뒤로 그는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한지영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늘 불안했다.그런데 그녀는 지금 이렇게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다만...”그때 한지영이 말을 이었다.“이현이는 나중에 조금 삐질 수도 있겠죠. 아빠가 자기 인생을 마음대로 정해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잠시 숨을 고른 뒤 그녀는 곧 웃으며 말했다.“그런데 그때는요. 연신 씨 혼자 맞지 말고... 나랑 같이 맞아요. 같이 욕먹고 같이 혼나고. 아빠만 나쁜 사람 되게 안 둘게요.”그 말에 백연신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코끝이 시큰해지더니 결국 고개를 떨궜다.이 여자는 늘 자기도 모르는 사이 백연신의 마음을 건드렸다.“그래... 그럼 우리 그렇게 하자.”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지영은 백연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먼저 입을 맞췄다.“연신 씨,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좋은 일이든 힘든 일이든 전부 같이 가요.”곧 백연신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감쌌다.이제 막 깨어난 그녀의 몸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더 깊게 더 간절하게 끌어안았을 것이다.백연신은 그녀를 그렇게까지 사랑하고 있었으니까.그때 우씨 가문의 아이가 만약 딸이 아니라 한지영의 생명 대신 다른 무엇을 요구했더라도...아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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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백연신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둘만 있을 때라면 상관없었겠지만 지금은 탁유미와 이경빈이 함께 있는 자리였으니괜히 더 의식이 됐고 그렇다고 한지영의 손을 바로 밀어낼 수도 없었다.“그만해...”백연신은 결국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친구들도 있잖아.”한지영은 못마땅한 얼굴로 잠시 더 버티다 결국 손을 거뒀다.그러고는 탁유미와 이경빈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유진이 오늘 오전에 왔다 갔어요. 제가 의식 없었을 때 두 분이 많이 도와주셨다고 들었어요.”“지금 몸은 좀 어때요?”탁유미가 먼저 물었다.“일단은 괜찮대요. 기본 검사에서는 문제없고 정밀 검사는 몸이 좀 더 회복되면 하자고 했어요.”그러다 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탁유미의 배로 내려갔다.“유미 언니는요?”한지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전에 말했던 협진은... 받았어요?”“내일요.”탁유미의 짧은 대답에 한지영은 더 묻지 않았다.결과는 내일이 되어야 알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잠시 더 이야기를 나눈 뒤 한지영의 얼굴에 피로가 묻어나자 탁유미가 눈치채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오늘은 이만 갈게요. 지영 씨도 이제 무리하면 안 돼요.”그러자 이경빈도 함께 일어섰고 병원을 나선 뒤 이경빈은 차로 탁유미를 분식집 앞까지 데려다줬다.“내일 협진 있잖아. 내가 데리러 올게.”탁유미는 대답 대신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그러나 이경빈은 그 침묵이 ‘알았어’라는 뜻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내일이면 산부인과 전문병원 쪽에서 공식적인 판단이 내려질 것이다.만약 위험도가 너무 높다고 나와도... 그런데도 그녀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때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할까.차는 분식집 앞에 멈춰 있었고 이경빈은 한동안 시동도 끄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날 밤.한지영의 부모가 돌아간 뒤 병실은 다시 고요해졌다.한지영은 잠들어 있는 딸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백연신을 불렀다.“연신 씨.”순간 백연신의 몸이 미세하게 굳었다.“유진이한테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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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우리도 몰라. 사실 그 아이를 찾으려고 깊이 파봤는데 거의 S 시를 통째로 뒤졌는데도 흔적이 없었어.”임유진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현이 상태가 위중하다는 가짜 기사를 냈어. 출생 직후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그리고 그제야 그 아이가 나타나더라.”한지영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딘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그렇구나... 난 직접 얼굴 보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지나가 버리다니.”잠시 후 그녀는 옅 웃으며 덧붙였다.“어쩌면... 다시는 못 만날 수도 있겠네.”“아니야.”임유진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단호했다.한지영은 의아한 눈빛으로 친구를 바라봤고 옆에서 한지영 부모 역시 조용히 임유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임유진은 잠깐 시선을 백이현에게로 옮겼다.막 우유를 먹고 잠든 아기는 이해영의 품에서 작게 숨을 고르며 자고 있었고 병상 옆에서는 백연신이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그게 말이지...”임유진은 머쓱한 듯 웃었다.“그 아이랑 백연신 씨 사이에 약속이 하나 생겼거든.”“약속?”한지영의 눈이 동그래졌다.“응. 그 아이가 말했어. 이현이가 자라서 결혼할 나이가 되면 자기가 데려가겠다고.”임유진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표현을 골랐다.“그래서... 아마 다시 보게 될 거야.”“잠깐만.”한지영은 완전히 얼어붙은 얼굴로 물었다.“설마... 그게 진짜 약속이야?”“응. 꽤 진지했어.”임유진은 급히 덧붙였다.“오해할까 봐 말해두는데 백연신 씨가 원해서 한 게 아니야. 그때는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어.”그리고 임유진은 그날 밤 있었던 일을 차분히 설명했다.대표님이라 불린 신비한 소년과 우씨 가문이라는 이름 그리고 강씨 가문과 이씨 가문까지 얽힐 뻔했던 대치 상황.그리고 결국...“연신 씨가 이현이를 안고 무릎을 꿇었어.”그 한마디에 병실 공기가 달라졌고 한지영의 눈가가 순식간에 젖어 들었다.백연신은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던 사람이었다.그런데 자기 때문에 자기를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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