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이 자료가 회사 밖으로 나간 경위부터 설명하시죠.”도진이 배정표를 가리켰다. 호텔 임원은 실무자가 예약 문의에 참고하라고 보낸 것뿐이라고 했다. 감사 담당자는 그 답변을 적고 다음 문서를 띄웠다.베일원은 그 표에 호텔의 확정 안내처럼 보이는 문구를 붙여 고객에게 보냈다. 일부 항목에는 내부에서 정식으로 승인하지 않은 금액이 적혀 있었다. 회사 업무 계정에서 보낸 메일도 남아 있었다.그중 한 메일에는 수수료 3억 원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임원은 정식으로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협의 중인 조건이었다고 주장했다. 감사 담당자는 실제 지급 여부와 승인 주체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그렇다면 검토 자료를 내십시오. 정상적인 수수료였다면 왜 정식 계약안에서 빠져 있는지부터요.”도진이 묻자 임원은 다음 답을 쉽게 잇지 못했다. 날짜가 다른 첨부파일을 다시 열어보는 동안 참석자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저건 제 지시가 아닙니다.”“그 말씀도 확인하겠습니다. 관련 자료 삭제나 수정 없이 제출해주십시오.”감사 담당자의 설명이 끝나자 도진은 해당 업무를 다른 책임자에게 임시 배정하는 안을 올렸다. 금품 수수 의혹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감사 담당자는 추가 자료를 요청한 상태라고 답했다. 임원은 아직 제출하지 않은 자료가 무엇인지 묻다가, 자기 이름이 적힌 목록을 받아 들었다.한 이사가 의자를 당겼다.“결국 태강도 사기를 쳤다는 걸 인정하자는 겁니까?”“확인한 잘못을 숨기지 말자는 겁니다. 책임 범위는 법무 검토와 조사에 따라 정리해야겠죠. 그동안 결혼식 날짜는 지나갑니다.”도진이 피해 일정표를 펼쳤다. 이번 주말 6건이 먼저 보였다.“이 고객들에게 판결
이수진은 청첩장을 접지 않고 손에 든 채 로비로 들어왔다. 이미 먼저 온 사람들이 안내 데스크 앞에 모여 있었다. 호텔 이름이 찍힌 계약서는 같았지만 날짜와 받은 설명은 제각각이었다.“우리는 잔금까지 냈어요. 그럼 예약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대행사 도장만 찍혀 있다고 호텔은 자기들 일이 아니래요.”은채가 상담 번호를 나눠주다가 서연을 봤다. 서연은 2층 회의실을 열고, 예정된 고객과 오늘 찾아온 사람의 대기 공간부터 나눴다. 보안 담당자는 출입구를 막는 대신 통로를 확보했다.수진은 의자에 앉고도 청첩장을 놓지 못했다.“아버지가 친척들한테 직접 돌리셨어요. 이제 또 전화해서 오지 말라고 해야 하나요?”서연은 그녀가 건넨 종이를 봤다. 이번 주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그랜드 태강 호텔이라고 적혀 있었다.“호텔에서 받은 답변도 가져오셨어요?”“이 문자요.”화면에는 예약 내역을 확인할 수 없다는 안내가 떠 있었다. 서연은 계약서에 적힌 확인번호와 문자의 담당 부서를 함께 적었다.“먼저 이 번호가 어디서 나온 건지 확인하겠습니다. 오늘 여기서 가능한 날짜와 비용도 설명드릴게요.”“가능하다고 해놓고 마지막에 더 내라는 거면 못 해요. 정말 돈이 없어요.”“그 부분까지 보시고 결정하셔야 해요. 지금 급하다고 먼저 서명받지는 않겠습니다.”옆에 있던 수진의 신랑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저희가 가져올 서류가 더 있나요?”“이미 낸 돈을 확인할 자료가 필요합니다. 휴대전화에 있으면 사본으로 주셔도 되고요. 비밀번호 같은 건 알려주실 필요 없어요.”
월요일 회의에서 은채는 예쁜 사진보다 장비 고장 기록을 먼저 띄웠다. 어느 시점에 알게 됐고 누구에게 알렸는지, 당일에는 무엇을 바꿨는지 정리한 내용이었다.“다음에는 대체 장비 확인을 더 일찍 하겠습니다. 신랑 신부님이 밤늦게 답을 주셔야 했던 건 불편하셨을 거예요.”지수는 그 아래에 교대 인력과 추가 운송비를 붙였다. 서연이 물었다.“처음 견적과 달라진 비용은 회사에서 부담하는 거지?”“네. 고객께 동의받은 범위를 넘어 청구하지 않습니다.”“그럼 성과 보고에도 같이 남겨. 사진만 보면 원래부터 그렇게 계획한 줄 알겠어.”은채는 수첩에 적었다. 잘한 일만 보고해야 하는 자리였다면 고장 사실부터 꺼내기 어려웠을 것이다.서연은 준비했던 수석 디렉터 직무 확인서를 건넸다. 은채의 팀장 역할을 없애고 새 자리를 즉석에서 더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 담당과 현장 총괄 범위를 정리한 문서였다. 늘어난 책임에 맞춰 보수도 조정했다.“은채 씨 이름으로 끝낸 현장이라는 걸 남기고 싶어. 대신 이제 더 큰 문제도 혼자 다 하라는 뜻은 아니야.”“네. 사고 나면 바로 전화할게요.”직원들이 웃으며 박수를 쳤다. 지수는 운현당부터 이번 예식까지 외부 제작자와 기술 담당자가 맡은 일도 함께 적었다. 사내 두 본부만으로 모든 것을 해냈다는 보고는 남기지 않았다.회의가 끝난 뒤 서연과 지수는 비워진 테이블에 남았다. 지수가 아직 진행 중인 지분 검토 서류를 꺼내며 물었다.“이 부분은 제가 따로 자문받은 의견을 보내도 되죠?”“당연하지. 불편하면 여기 있는 사람 말만 듣지 말고.”서연은 일정표에 검토 회의를 따로 넣었다. 현장이 잘됐다
다은에게서 답장이 왔을 때 은채는 기술 담당자와 대체 장비를 확인하고 있었다.[진동이 없어도 식은 할 수 있어요. 어떤 점이 달라지는지 알려주세요.]은채는 화면을 두 번 읽었다. 자신이 신부보다 더 그 장치에 매달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조명과 수어 통역은 예정대로입니다. 익숙한 장비를 빌릴 수 있는지 확인 중인데, 아침 점검을 통과하지 못하면 쓰지 않을게요. 도착하시면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기술자는 앞서 시연 때 썼던 대여 장비가 남아 있는 업체를 찾았다. 갤러리 전체 바닥을 울리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별도로 놓는 작은 장치로 같은 구간을 구성할 수 있다고 했다. 설치와 검사는 그들이 맡았다.은채는 수량보다 반입 시각을 물었다. 기술자는 아침 담당자와 함께 장비를 인수하겠다고 했다. 오전 점검을 마치지 못하면 진동 연출을 빼기로 하고, 은채는 그 시각을 신랑 신부에게도 보냈다.지수는 교대 인력을 보내고 은채에게 잠깐 앉으라고 했다. 은채가 괜찮다고 하자 다시 물었다.“지금 쉬어야 아침에 고객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어요. 혼자 밤새우는 게 목표는 아니잖아요.”은채는 물을 마시며 진행표를 다시 읽었다. 장치 이름을 지워도 두 사람이 만나고 서약하는 순서는 남아 있었다.***오전 8시 30분, 다은과 태현이 도착했다. 담당자는 점검을 마친 대체 장비를 보여줬다. 다은은 웨딩 슈즈를 신고 사용해본 뒤 평소 신던 신발로도 한 번 더 서봤다.통역사가 그녀의 말을 전했다.“입장할 때는 안 쓰고, 둘이 서약하기 전에 잠깐 느껴보고 싶어요. 걸으면서 맞추려니까 신경이 쓰여요.”은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게 구한 장비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신부가 원한 구간으로 위치를 옮기고 통로는 비웠다.태현은 다은에게 입장 수신호를
은채는 스케치북에 묻은 먼지를 털고 다은에게 돌려줬다. 고모가 이어 말하려 하자 손바닥을 들어 잠깐 멈춰달라고 했다.“신부님께도 지금 말씀하신 내용을 알려드릴게요.”“집안 이야기예요. 직원은 빠져요.”“이 방에서는 두 분이 상담을 받고 계십니다. 한 분만 빼고 진행하지는 않겠습니다.”태현이 휴대전화에 방금 들은 말을 적었다. 다은은 화면을 읽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태현이 괜찮느냐고 손을 움직이자, 다은은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은채가 태블릿을 가까이 놓았다.[저희 결혼 비용은 저희가 모은 돈으로 냅니다. 고모님께 부담을 부탁드리지 않았어요.]태현이 그 문장을 그대로 읽었다. 다은이 적은 말에 자기 화를 더하지 않았다.고모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다.“부모 대신 신경 써주는 사람한테 그렇게 말하니?”“신경 써주시는 건 고맙지만, 다은이를 짐처럼 말씀하시는 건 싫어요. 오늘은 돌아가주세요.”태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을 열었다. 고모가 다시 탁자 쪽으로 손을 뻗자 은채가 서류를 거뒀다. 복도에서 상황을 들은 지수도 들어왔다.“다른 고객 상담이 진행 중입니다. 계속 소리를 높이시면 여기서 상담을 끝내겠습니다.”고모는 은채를 향해 한 발 다가섰다가 지수와 마주쳤다. 뒤에 있던 친척이 팔을 잡았다. 보안 담당자가 문 앞에 서자 더 버티지 않았다.사람들이 나간 뒤에도 다은의 손은 스케치북 모서리에 머물렀다. 은채는 괜찮다는 위로를 길게 쓰지 않고, 오늘 상담을 계속할지 쉬었다 갈지 물었다.다은은 물을 마신 뒤 다시 화면을 당겼다.[식장에는 마음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주세요. 사과하러 와도 제가 만나겠다고 할
은채는 상담실 의자를 조금 돌려놓았다. 맞은편 사람의 얼굴과 손이 잘 보이는지 직접 앉아 확인했다. 오늘 만날 윤다은은 사전 연락에서 문자로 대화하는 편이 편하다고 했다.박태현은 과수원에서 입던 점퍼를 접어 의자에 걸었다. 다은은 준비해온 스케치북을 펼치고 태블릿 화면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은채가 첫 문장을 적었다.[안녕하세요. 오늘 담당할 최은채입니다. 제가 말을 빨리 하면 바로 멈춰주세요. 이 화면에 함께 적으면서 상담할게요.]다은이 웃으며 손을 움직였다. 태현이 짧게 통역하려다 다은이 적는 것을 기다렸다.[사진보다 실제로 어떻게 진행하는지 알고 싶어요. 예산은 1,500만 원입니다.]태현이 준비한 메모도 같은 금액이었다. 희망한 예식일은 2주 뒤 토요일이었다. 충남 예산의 사과 과수원에서 일하는 그는 두 달 동안 상담했던 곳들을 이야기했다.“예산이 안 맞는 곳도 있었고요. 어떤 곳은 진행을 못 따라오면 곤란하다고 하더라고요.”은채는 그 말을 다은에게도 글로 옮겼다. 두 사람 모두 아는 사연이라고 해서 신부를 빼놓고 신랑에게만 설명을 들을 수는 없었다.다은은 스케치북을 한 장 넘겼다. 문 앞에서 신랑과 나란히 들어가는 그림이 있었다. 손님들이 원형으로 앉은 사진도 붙어 있었다.[저는 입장 순서를 몰라서 걱정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이 제 대신 태현 씨만 보면서 말할까 봐 그게 싫어요.]은채가 고개를 들었다. 자신도 조금 전 태현에게만 질문하려 했었다.[알려주셔서 고마워요. 두 분께 각각 확인하겠습니다. 통역이 필요한 순서는 전문 통역사 일정도 같이 알아볼게요.]다은은 본식에 수어 통역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객 중 수어를 쓰는 친구도 있었고, 부모님에게도 서약 내용을 제대로 전하고 싶었다.은채는 예산표 첫머리에 그 항목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