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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2화. 병실까지 따라온 청구서

Author: 6ja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1-01 22:25:46

콰당탕-!

테이블 위의 크림 불닭 떡볶이 그릇과 기름진 불닭 소스가 와장창 엎어지며 붉은 양념이 하얀 러그와 도희의 상체 위로 무자비하게 쏟아져 내렸다.

스튜디오의 조명이 기괴하게 회전했다.

차가운 바닥에 뺨을 댄 채 헐떡이던 도희는 눈을 뜨려 했지만,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28만 시청자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마저 아득해졌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앰뷸런스의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가 파도처럼 잦아들었다.

검은 어둠이 그녀의 모든 의식을 깊은 심연 속으로 집어삼켰다.

***

코끝을 후비는 소독약 냄새와, 일정한 간격으로 고막을 두드리는 심전도 모니터의 전자음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눈을 떴다 감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야 희뿌연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머리맡에는 수액 팩이 매달려 있었고, 오른손등은 고정 테이프 주변까지 검푸르게 부어 있었다. 손을 움직이자 테이프가 피부를 잡아당겼고, 고개를 돌릴 때마다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도희는 눈을 감은 채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누웠다. 마른침이 목에 걸려 입술만 축였다.

“정신이 좀 듭니까?”

건조한 목소리가 귀 가까이 닿았다.

고개를 돌리니 흰 가운을 입은 박 교수가 차트를 펼치고 서 있었다. 간호기록을 훑던 그는 도희와 눈이 마주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무슨 말을 듣게 될지 가늠조차 안 됐다. 도희는 이불 끝을 움켜쥐었다.

“여기가…… 병원인가요? 제 방송은…….”

말라붙은 입술 사이로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박 교수는 대답 대신 차트에 끼워 둔 검사지를 앞으로 밀어냈다. 도희의 머릿속은 아직 방송 테이블에 남아 있었지만, 의사가 가리키는 숫자들은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서울대병원 집중치료실입니다. 생방송 도중 쓰러져 응급실에 온 지 12시간 됐어요. 도착 뒤에는 의식을 회복했지만, 증상이 다시 나타나는지 지켜봐야 했습니다.”

뇌 영상과 혈액검사 결과가 나란히 펼쳐졌다. 도희에게 까맣고 하얀 영상은 읽을 수 없는 암호에 불과했다. 대신 검사표 숫자 옆에 빼곡히 붙은 화살표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올해 28세죠. 검사 위험도를 쉽게 설명하자면, 혈관 나이 58세라는 경고를 들을 만한 상태입니다. 혈관에 실제 나이가 찍힌다는 뜻은 아니에요. 지금은 이 비유보다 각각의 검사 결과가 중요합니다.”

“……예? 쉰, 쉰여덟이요?”

검사표를 가까이 당겨 봐도 나이는 분명 스물여덟이었다. 그 아래 빼곡한 이상 표시들은 읽히지 않았고, 방금 들은 숫자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공복 혈당 215mg/dL, 당화혈색소 9.8%라 당뇨병 치료를 미룰 수 없습니다. 중성지방도 600mg/dL를 넘고, AST와 ALT는 정상 상한의 두세 배입니다. 간 수치가 높은 원인은 따로 확인해야 해요. 심장 검사에서는 관상동맥 협착이 의심되는 부분도 보여 추가 평가가 필요합니다. 수면 중 호흡 문제도 살펴보죠. 체중만 줄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약물치료와 여러 진료과의 추적 관찰을 병행해야 합니다.”

박 교수가 차트를 침대 난간에 툭툭 치며 도희를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목소리에는 서늘한 경고가 깔려 있었다.

“말이 어눌해지고 힘이 빠졌던 증상은 일과성 뇌허혈 발작을 의심하게 합니다. 검사에서 다른 원인도 함께 확인해야 해요. 증상이 사라졌다고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이 꼬이거나 한쪽에 힘이 빠지는 일이 생기면 지체하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세요. 이번에 돌아온 상태가 다음번에도 같을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숨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몸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계단을 서너 개만 올라도 숨이 턱에 닿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손발이 퉁퉁 부어 주먹조차 쥐기 어려웠다. 그러나 젊다는 핑계와, 280만 구독자가 쏟아내는 환호와 수억 원의 광고 수익이라는 마취에 취해 그 신호를 외면해 왔다.

“지금 같은 대식 먹방과 폭식은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언제 다시 쓰러질지, 그때도 회복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어요. 이번에 깨어났다고 위험이 끝난 게 아닙니다. 방송보다 치료를 먼저 생각하세요.”

박 교수는 처방전과 신경과·내분비내과 예약표를 함께 내밀었다. “퇴원은 추가 확인 결과를 보고 결정할 겁니다. 급격한 감량이나 탈수를 유도하는 운동은 하지 마세요. 운동을 시작하더라도 진료에서 강도와 시기를 확인한 뒤에요.” 도희는 가장 먼저 약 먹는 시각을 휴대전화에 옮겨 적었다. 방송 일정은 그 아래로 밀려났다.

도희는 침대 난간을 움켜쥐었다. 며칠 쉬었다가 방송으로 돌아가면 될 줄 알았다. 그 일정부터 버려야 한다니, 밀린 광고와 병원비가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래도 죽은 뒤의 정산을 걱정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바로 그때, 정적을 깨뜨리며 병실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윤도희! 너 제정신이야?!”

화려한 호피 무늬 코트를 걸치고 명품 백을 든 어머니 이옥순이 눈을 치뜨며 병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딸의 핏기 없는 얼굴이나 손등에 멍든 주삿바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였다.

“생방송 중에 쓰러지면 어쩌자는 거야! 지금 인터넷 커뮤니티에 먹뱉 루머 돌고, 유튜브 댓글창 난리 난 거 너 알아 몰라?! 대기업 식품 광고주 세 곳에서 당장 위약금 청구하겠다고 내용증명 보낸다 난리 났다고!”

이옥순은 도희의 침대 옆으로 다가와 협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리고 민호 오피스텔 잔금은 어떡할 건데! 오늘 오후 5시까지 잔금 3,000만원 안 넣으면 계약금 5,000만원 다 날린다고 몇 번을 말해! 네 남동생 길바닥에 나앉는 꼴 보고 싶어서 일부러 꾀병 부리고 누워 있는 거니?! 링거 뽑고 당장 퇴원해서 해명 라이브라도 켜! 휠체어 타고 눈물이라도 흘려야 동정표라도 얻을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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