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알고 계십니까?”
엘로이즈의 질문이 지하 복도에 낮게 울렸다.
카시안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데미안이 아이들을 승강구 쪽으로 옮기는 동안에도 그의 시선은 엘로이즈의 손안에 감춰진 은패에 머물렀다.
가장 어린아이가 외투 자락을 놓치자 그는 말없이 몸을 낮춰 다시 여며 주었다. 그러나 엘로이즈에게는 단 한 걸음도 다가오지 않았다.
“안다.”
마침내 떨어진 대답은 짧았다.
엘로이즈의 손가락이 은패 모서리를 파고들었다.
“설명하십시오.”
“그 표식은 아스트라 결계의 적합도 분류에 쓰인다. 숫자는 이름이 아니라 공명 수치다.”
“여든일곱이면요?”
카시안의 턱이 굳었다.
“결계에 투입할 수 있는 수준이다.”
밤이 거의 끝나갈 무렵, 카시안은 황후궁의 부름을 받았다.베아트리체는 잠옷 위에 얇은 외투만 걸친 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새벽에 아들을 불러낸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평온한 얼굴이었다.“황태자궁의 비상 통행증이 사라졌다지.”카시안은 맞은편에 앉지 않았다.“아직 공식 보고를 올리지 않았습니다.”“궁 안에서 마차를 쫓고 아이 여섯을 빼냈는데, 모르는 편이 이상하지 않겠니?”여섯.북문 수비대조차 마차 안의 인원은 알지 못했다. 지하까지 내려간 사람은 자신과 데미안, 엘로이즈뿐이었다.카시안은 찻잔 옆의 빈자리를 바라보았다.평소라면 황후의 뒤에 서 있어야 할 시종장 모르텐이 보이지 않았다.“모르텐은 어디 있습니까?”“신전 기도회에 보냈다. 요즘 궁 안에 불길한 일이 많아서.”너무 매끄러운 대답이었다.지금 모르텐을 죄인으로 몰면 베아트리체는 흔적부터 지울 것이다. 카시안은 의심을 드러내지 않았다.“비상 통행증은 제가 회수하겠습니다.”“그보다 먼저 처리할 일이 있다.”베아트리체가 찻잔을 내려놓았다.“에버하르트 영애와의 약혼 발표를 예정대로 진행해라. 가능하다면 사흘 앞당기는 편이 좋겠구나.”카시안의 눈빛이 식었다.“이유를 묻겠습니다.”“그 아이가 신전 일에 뛰어들었다는 소문이 퍼지기 전에 황실 사람으로 묶어 두어야 한다. 약혼녀가 된 뒤라면 오늘 밤의 행동도 황태자의 명령으로 덮을 수 있어.”황실 사람으로 묶는다.전생의 자신도 같은 논리를 내세웠다. 보호한다는 이유로 에버하르트의 인장과 창고, 사람과 선택을 하나씩 황실에 귀속시켰다.그 끝에서 엘로이즈는 황후의 흰 수의만 입고 남았다.“발표는 미룹니다.”베아트리체의 눈썹이 가늘게 움직였다.“엘로이즈가 원했니?”“제가 결정했습니다.”“그 아이의 거절을 받아들이겠다는 말로 들리는구나.”카시안은 품속 조건서의 모서리를 눌렀다.전하께서 없는 미래입니다.“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빼앗지 않겠다는 뜻입니다.”“다른 가문이 그 자리를 차지해도?”상상만으로도 속이 타들어 갔다.
아이들이 승강구 위로 올라간 뒤에도 엘로이즈는 지하를 떠나지 않았다.카시안은 모르텐의 서명 약자가 드러난 밀랍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보다 오래된 피로가 묻어났다.마치 이미 한 번 실패한 사람처럼.“전하께서 아는 것을 전부 말씀하십시오.”“여기서?”“장소가 문제입니까, 제가 듣는 것이 문제입니까?”엘로이즈는 방금 해독한 밀랍판을 뒤집어 낡은 제단 위에 올렸다. 뒷면의 검은 밀랍은 아직 매끈했다.카시안이 품에서 짧은 단검을 꺼냈다.“무엇부터 새기지?”“확인한 사실과 추측을 나누세요.”단검 끝이 밀랍판 한가운데에 깊은 선을 그었다.“전하께서는 판단을 사실처럼 말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구분하겠습니다.”왼쪽에는 확인된 사실을 짧게 새겼다.실종 아동의 성표.대신전 지하의 빈 침상.공명 수치를 표시한 은패.사라진 비상 통행증.모르텐의 서명 약자.오른쪽에는 아직 증명되지 않은 추측이 놓였다.신전과 황후궁의 결탁.아이들을 이용한 결계 유지.황궁 내부의 추가 협력자.카시안은 마지막 줄 아래에 하나를 더 새겼다.다음 선별일, 건국제 전야.엘로이즈의 시선이 멎었다.전생에서 두 번째 대규모 실종이 일어난 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선별 일정이 정해지기도 전이었다.“이것은 사실입니까, 추측입니까?”단검 끝이 밀랍 위에서 멈췄다.“사실이다.”“어디에서 확인했죠?”침묵이 내려앉
“알고 계십니까?”엘로이즈의 질문이 지하 복도에 낮게 울렸다.카시안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데미안이 아이들을 승강구 쪽으로 옮기는 동안에도 그의 시선은 엘로이즈의 손안에 감춰진 은패에 머물렀다.가장 어린아이가 외투 자락을 놓치자 그는 말없이 몸을 낮춰 다시 여며 주었다. 그러나 엘로이즈에게는 단 한 걸음도 다가오지 않았다.“안다.”마침내 떨어진 대답은 짧았다.엘로이즈의 손가락이 은패 모서리를 파고들었다.“설명하십시오.”“그 표식은 아스트라 결계의 적합도 분류에 쓰인다. 숫자는 이름이 아니라 공명 수치다.”“여든일곱이면요?”카시안의 턱이 굳었다.“결계에 투입할 수 있는 수준이다.”투입.사람이 아니라 연료를 말하는 듯한 단어였다.엘로이즈는 세탁 수레 안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약효가 덜 풀린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붙든 채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결계를 유지하려고 아이들을 데려간다는 뜻입니까?”“정확한 의식 방식까지는 모른다.”“하지만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겠지요.”카시안은 부정하지 않았다.그 침묵 위로 처형장의 북소리가 겹쳐 들렸다. 전생에도 그는 이렇게 필요한 진실만 골라 쥐고 있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만큼만 그녀에게 허락했다.“언제부터 아셨습니까?”“사흘 전, 대신전 지하의 폐쇄 구역을 확인했다.”“어떻게 그곳을 찾았죠?”카시안의 눈이
서쪽 폐예배당은 불이 꺼진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하지만 돌계단 아래에는 갓 부서진 짚과 젖은 바퀴 자국이 남아 있었다. 돌아오지 않은 세탁 수레가 이곳으로 들어온 것은 분명했다.카시안이 손을 들자 황실 기사들이 정문 양쪽에 붙었다.“문을 부순다.”“열지 마세요.”엘로이즈의 말에 그의 검이 문고리 앞에서 멎었다.그녀는 문턱에 무릎을 굽혔다. 녹슨 경첩 아래에서 머리카락보다 가는 구리선이 돌 틈으로 이어지고 있었다.“문이 열리면 지하에 신호가 갑니다.”데미안이 낮게 숨을 삼켰다.“기습을 알아차리면 수로로 달아나겠군요.”카시안은 이유를 더 묻지 않았다. 곧바로 기사들을 물렸다.전생의 그는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부터 부정했다. 지금의 그는 엘로이즈가 멈추라 하자 멈췄다.그 변화가 안도보다 경계심을 먼저 불러왔다.“다른 입구를 알고 있나?”“제단 뒤에 헌물 승강구가 있을 겁니다. 에버하르트가에서 이 예배당 보수용 목재를 댔어요.”현재의 자신도 알 수 있는 지식이었다.엘로이즈가 설명을 덧붙이자 카시안의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 그는 의심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길을 정해.”예배당 뒤편의 무너진 담을 돌아가자 돌벽 아래 작은 철문이 나타났다. 안에는 포도주 통과 곡물 자루를 지하로 내리던 낡은 승강기가 있었다.본래 무거운 술통을 견디도록 만든 장치였지만, 세 사람이 올라서자 썩은 밧줄이 끊어질 듯 떨렸다. 발판이 한쪽으로 기울 때마다 어둠 아래에서 쇳소리가 울렸다.카시안이 팔을 뻗었지만 엘로이즈는 난간을 직접 붙잡았다.
“궁 안에서 사라졌다고?”카시안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데미안은 고개를 숙였다.“북문을 통과해 중앙대로로 들어선 것까지는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초소에는 도착하지 않았습니다.”엘로이즈는 곧장 북문 안쪽으로 향했다.마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길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진흙 자국이 남아 있었다. 성 밖에서 묻혀 온 흙이었다. 두 쌍의 바퀴 흔적은 중앙대로를 벗어나 오른편 가축 검역 창고로 꺾여 있었다.“여기까지는 분명하군요.”카시안이 창고 문을 열게 했다.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바닥은 잿물로 씻은 듯 젖어 있었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창고로 들어온 바퀴 자국은 한가운데에서 흔적도 없이 끊겼다.데미안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밖으로 나간 흔적이 없습니다.”“없어진 게 아니라 지운 겁니다.”엘로이즈는 젖은 바닥에 무릎을 굽혔다.배수로 쇠창살 사이에 검은 칠 조각과 잘린 가죽끈이 끼어 있었다. 마차를 감쌌던 검은 덮개와 장식을 급히 벗겨 낸 흔적이었다.그녀는 창고 반대편을 살폈다. 세탁물을 말리는 나무틀 뒤로 벽과 미세하게 색이 다른 직선이 보였다.엘로이즈가 틀을 밀어 내자 넓은 이중문이 드러났다.문 너머에는 황궁 세탁소로 이어지는 작업장이 있었다. 바닥에는 막 마르기 시작한 세 줄의 바퀴 자국이 나란히 뻗어 있었다.“마차가 사라진 게 아니에요.”엘로이즈가 손끝에 묻은 검은 칠을 닦아 냈다.“아이들만 다른 수레로 갈아탄 겁니다.”검은 덮개와 문장을 떼고 회색 천을 씌우면 평범한 세탁 수레처럼 보인다. 아이 여섯을
“그렇다.”카시안의 대답에 엘로이즈의 손끝이 굳었다.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하지만 내가 발급한 것은 아니다.”“전하의 통행증인데, 전하가 발급하지 않았다.”“믿으라고 하지 않겠다.”처형대에서도 그는 자신이 본 증거를 진실이라 확신했다. 그 확신이 그녀의 목을 잘랐다.“이번에도 전하의 말만 믿으라는 뜻으로 들립니다.”카시안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러나 변명하지 않았다.그는 품에서 검은 지휘패를 꺼내 데미안에게 던졌다.“북문 출입 장부를 봉인해. 오늘 밤 기록에는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하고, 당직자 전원을 남겨 둬.”“아이들을 실은 마차는요?”“궁 안으로 들어갔다면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다. 소란 없이 찾아.”데미안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카시안이 엘로이즈를 돌아보았다.“네가 직접 확인해라.”“무엇을 말입니까?”“통행증의 인영과 발급 번호, 북문 기록까지. 내가 숨겼다고 생각한다면 전부 살펴.”전생의 그는 언제나 결론만 통보했다. 자신이 판단했으니 그녀는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여겼다.엘로이즈는 그 변화에 안도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친절은 때로 노골적인 적의보다 위험했다.“조건이 있습니다.”“말해.”“제 사람을 따로 심문하지 마세요. 제가 확인하지 않은 명령으로 공작가의 운송인을 움직여서도 안 됩니다.”“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