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루미나르 대신전은 정오가 되기도 전에 면담을 받아들였다.
세라피나는 대성당이 아니라 동쪽의 작은 기도실에서 엘로이즈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화도, 수행 사제도 없었다.
“황후궁 장부를 보셨군요.”
인사보다 먼저 나온 말이었다.
엘로이즈는 봉투에서 필사본 한 장만 꺼냈다.
“74, 81, 87. 무슨 뜻입니까?”
세라피나는 숫자를 내려다봤다.
부정하지 않았다.
“공명도입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엘로이즈가 다음 줄을 짚었다.
“왜 황후궁의 구호비에 붙어 있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대신전이 지원을 요청했으니까요.”
“어떤 지원을요?”
엘로이즈는 보조 공명소의 위치보다 먼저 폐기 기록을 요구했다.“어디 있었는지보다 왜 실패했는지가 중요합니다.”관리 사제는 난색을 보였다.“유지 기록 열람 범위를 벗어납니다.”“그럼 이 방식이 정말 실패했는지도 확인할 수 없겠군요.”엘로이즈가 열람증을 내려놓았다.“‘비효율적이었다’는 신전의 결론만 믿으라는 뜻이니까.”침묵 끝에 세라피나가 말했다.“폐기 심의록까지 열어 주세요.”관리 사제가 놀라 돌아봤다.“성녀님, 거기에는 사고 기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알아요.”“대신전의 책임 문제도—”“그래서 봐야죠.”세라피나는 엘로이즈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틀렸다는 증거만 찾으라고 한 것도 아니니까.”잠시 후 두꺼운 회색 장부 하나가 탁자에 놓였다.삼십칠 년 전.열두 보조 공명소 마지막 동시 가동 시험.엘로이즈는 첫 장부터 숫자를 따라갔다.공명소 열둘.참여자 마흔여덟 명.중앙 제물 없음.결계 출력 91퍼센트.그녀의 손이 멈췄다.“91퍼센트.”현재 결계의 정상 유지선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처음 두 시간 동안은 그랬습니다.”세라피나가 말했다.엘로이즈는 다음 장을 넘겼다.제3 공명소 출력 저하.제7 공명소 지연.제11 공명소 참여
세라피나는 엘로이즈가 기도실을 떠나기 직전 한 가지를 더 내놓았다.“방법을 찾겠다면, 적어도 무엇을 바꾸려는지는 알아야겠죠.”그녀가 건넨 것은 대신전 지하 기록고의 임시 열람증이었다.허용 범위는 아스트라 결계의 유지 기록.최근 십 년간의 제물 명단은 제외.성물 제작법도 제외.핵심 의식문 역시 제외되어 있었다.엘로이즈는 열람증을 내려다봤다.“이 정도로 뭘 찾으라는 겁니까?”“제가 허락할 수 있는 한계예요.”“성녀께서도 결국 신전 사람이군요.”“그래서 제가 틀렸다는 증거를 찾으려는 사람에게 신전의 문을 열어 주고 있잖아요.”엘로이즈는 더 말하지 않았다.그 정도면 충분했다.지하 기록고에는 오래된 양피지 냄새와 축축한 돌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결계 유지 기록은 숫자로 가득했다.공명률.신성력 소모량.정화 범위.보강 주기.엘로이즈는 신학자가 아니었다.대신 숫자의 흐름을 읽었다.현재 방식은 단순했다.중앙의 강한 공명체 하나에 부담을 집중한다.공명도가 높을수록 효율이 오른다.87이라면 기존 여러 명의 부담을 한 사람에게 몰아도 결계가 유지된다.그래서 신전은 그것을 ‘개선’이라 불렀다.엘로이즈는 다음 장을 넘겼다.오 년.십 년.이십 년.기록을 거꾸로 올라갔다.그러다 건국 초기 보수 기록에서 낯선 항목을 발견했다.〈외곽 보조 공명소 제7기 출력 감소.〉그녀의 손이 멈췄
루미나르 대신전은 정오가 되기도 전에 면담을 받아들였다.세라피나는 대성당이 아니라 동쪽의 작은 기도실에서 엘로이즈를 기다리고 있었다.성화도, 수행 사제도 없었다.“황후궁 장부를 보셨군요.”인사보다 먼저 나온 말이었다.엘로이즈는 봉투에서 필사본 한 장만 꺼냈다.“74, 81, 87. 무슨 뜻입니까?”세라피나는 숫자를 내려다봤다.부정하지 않았다.“공명도입니다.”“그건 알고 있습니다.”엘로이즈가 다음 줄을 짚었다.“왜 황후궁의 구호비에 붙어 있죠?”잠시 침묵이 흘렀다.“대신전이 지원을 요청했으니까요.”“어떤 지원을요?”“살아 있게 만드는 지원입니다.”엘로이즈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세라피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공명도가 높은 아이들은 대부분 가난한 지역에서 발견됩니다. 굶거나, 치료받지 못하거나, 겨울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그래서 살렸습니까?”“결계가 그 아이들을 필요로 할 가능성이 있다면, 최소한 그때까지는 살아 있어야 하니까요.”“그때까지.”엘로이즈가 낮게 되뇌었다.구호가 아니었다.선별될 가능성이 있는 아이가 죽지 않도록 유지하는 비용.제물이 필요한 날까지 굶어 죽지 않게 먹이고, 병들어 사라지지 않게 치료하는 돈.도축 전까지 가축이 상하지 않도록 먹이는 사료값과 무엇이 다른가.아이들을 돌본 뒤
다음 날 아침, 봉인된 원본 장부가 독립 감사실에서 다시 열렸다.엘로이즈는 붉은 밀랍이 잘려 나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어젯밤 이후 카시안을 만나지 않았다.확인하러 가지도 않았다.그가 정말 황태자궁에 있었는지, 사람을 몰래 보내지는 않았는지 조사하지도 않았다.그 사실이 뒤늦게 마음에 걸렸다.나는 확인하지 않았다.그런데도 약속을 지켰다고 믿었다.엘로이즈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믿는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편안했다.그래서 더 위험했다.“영애?”감사관의 목소리에 그녀가 시선을 들었다.“시작하시죠.”황후궁 자선 장부는 예상보다 깨끗했다.고아원 식량비.빈민가 치료비.겨울 의복 구입비.신전 예배소 보수비.베아트리체가 바보일 리 없었다.자신의 이름이 남는 장부에 범죄를 적어 둘 사람도 아니었다.엘로이즈는 금액보다 기록 방식을 살폈다.철재가 반출된 날도 마찬가지였다.〈외곽 예배소 긴급 보수.〉그 아래에 오후 다섯 시의 승인.이미 밝혀낸 것뿐이었다.감사관이 한숨을 내쉬었다.“이것만으로 황후 폐하의 사전 개입을 입증하기는 어렵겠습니다.”“알고 있습니다.”엘로이즈는 장부를 덮지 않았다.한 장.두 장.세 장.지난 삼 년의 기록을 거꾸로 훑었다.그러다 손가락이 멈췄다.금액도, 날짜도 아니었다.기록 맨 끝.서기관이 보통 검수 표시를 적는 좁은 여백에 작은 숫자가 있었다.
황후궁 기록실의 봉인은 자정에 시작됐다.엘로이즈는 중립 감사관 둘과 공증관, 에버하르트의 호위 넷만 데리고 들어갔다.카시안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황태자궁에는 통보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감사관의 질문에 엘로이즈가 대답했다.“전하께서는 감사 기록에 접근할 권한이 없습니다.”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그리고 그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그래도 기록실로 오는 동안 엘로이즈는 두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검은 제복은 보이지 않았다.그 사실이 당연해야 하는데도 묘하게 낯설었다.기록실 안쪽에서 원본 승인 장부가 발견됐다.오후 다섯 시.베아트리체의 승인 인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공증관이 봉인 끈을 꺼낸 순간이었다.쨍그랑!복도 끝 창문이 깨졌다.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자 셋이 들이닥쳤다.첫 번째가 호위를 향해 달려들었고, 두 번째는 작은 유리병을 바닥에 내던졌다.기름 냄새가 번졌다.“불부터 막으세요!”호위 둘이 젖은 모포를 펼쳤다. 불붙은 심지가 바닥에 닿기 직전 모포 아래로 사라졌다.세 번째 침입자는 사람을 노리지 않았다.곧장 가장 안쪽 서가로 달려갔다.원본 장부가 있던 자리였다.엘로이즈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지금입니다.”서가 뒤에서 에버하르트의 호위 둘이 튀어나왔다.침입자가 방향을 틀었지만 늦었다. 무릎이 꺾였고 팔이 등 뒤로 비틀렸다.그가 노린 장부는 가짜였다.진짜 원본은 이미 공증관의 발밑 철제 상자 안에 들어가 있었다.두 번째
황후궁은 조사 명령서가 발부된 지 세 시간 만에 모르텐을 해임했다.이유는 자선 물자의 독단적 전용과 허위 보고.엘로이즈가 감사실에 도착했을 때, 모르텐은 이미 시종장 문장을 반납한 뒤였다. 베아트리체의 서명까지 찍힌 해임서가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황후 폐하께서 직접 제출하셨습니다.”감사관이 말했다.“모르텐이 승인 범위를 벗어나 철재를 반출했다고 인정했습니다.”너무 빨랐다.잘못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잘라 낼 부분을 먼저 정한 것이다.모르텐은 고개를 숙였다.“모두 제 판단이었습니다.”“제4수문에 들어간 사슬도요?”“그 용도까지는 몰랐습니다. 대신전에서 긴급 보수용 철재를 요청했고, 통행을 위해 황태자 전하의 비상 통행증을 신청했습니다.”거짓말치고는 지나치게 잘 짜여 있었다.신전이 요청했다.모르텐이 운송했다.카시안은 서류만 승인했다.베아트리체는 몰랐다.황후에게 닿는 선만 끊겨 있었다.감사관이 부속 서류를 내밀었다.대신전 시설 보강 요청서.황후궁 물자 전용 승인서.남운하 임시 적치장 반입 확인서.서류만 보면 천사백 킬로그램의 철재는 제4수문이 아니라 대신전 외곽 예배소로 보내진 것이었다.“따라서 수문 사슬과 동일한 철재라는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베아트리체의 대리인이 말했다.“황태자 전하의 관리 소홀과 모르텐의 월권은 처벌하면 될 일입니다.”카시안은 감사 대상자석에서 침묵했다.엘로이즈가 마지막 장에서 손을 멈췄다.남운하 임시 적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