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북문으로 가는 역참길은 대연의 목처럼 길고 단단했다.
경성에서 북쪽 변경까지 이어지는 길은 처음에는 넓고 평평했다. 황실의 마차와 호부의 군량 수레가 오가야 했으므로, 돌은 깊게 박혔고 길가에는 관목이 낮게 다듬어져 있었다. 그러나 하루만 더 올라가면 길은 곧 좁아졌다. 산기슭이 다가오고, 바람은 말의 갈기 사이로 칼끝처럼 스며들었다.
그 길을 아는 사람들은 북문로라 불렀고, 장부를 쓰는 사람들은 병량 제삼로라 적었다.
같은 길이었다.
누구에게는 남편과 아들을 삼키는 길이었고, 누구에게는 창고의 숫자가 줄어드는 줄이었다.
은매의 동생이 그 길 위로 옮겨졌다는 말은, 그래서 단순한 납치가 아니었다.
누군가 은매의 가족을 심가의 집안 다툼에서 나라의 길목 위로 끌어냈다. 길목 위에 오른 사람은 쉽게 사라진다. 수레는 군량 수레가 되고, 아이는 잡역 아이가 되고, 병든 여인은 약초를 캐는 촌부가 된다. 이름은 길에 떨어지고, 먼지만 남는다.
월령은 그 말을 이해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새벽이 올 때까지 서원당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은매는 잠들지 못했다. 청아가 데운 물로 손과 발을 닦아 주었지만, 몸의 떨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입가의 상처에는 약을 발랐고, 손목의 묶인 자국에는 얇은 천을 감았다. 그런데도 은매는 자꾸만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여기에도 실을 묶어 주세요."
은매가 낮게 말했다.
청아는 손에 들고 있던 약그릇을 놓칠 뻔했다.
"상처가 있는데 실을 묶으면 더 아프잖아요."
"아프면 잊지 않습니다."
은매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차분했다.
"제가 또 속으면 안 되니까요."
청아는 월령을 보았다.
월령은 잠시 은매의 손목을 바라보다가, 바느질함에서 가장 부드러운 흰 천실을 골랐다. 회색 실은 아직 찾지 못했다. 대신 흰 실을 아주 느슨하게 감았다.
"아프게 묶지는 않을 거야."
"아가씨."
"잊지 않아도 되는 방법은 아픈 것 말고도 있어."
월령은 매듭을 작게 지었다.
"네가 잊지 못할 일이라면, 나도 잊지 않을게. 그러니 네 몸에 벌을 먼저 주지 마."
은매의 눈가가 젖었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눈물이 나올 자리마저 아직 얼어 있는 듯했다.
그 곁에서 청아는 입술을 꾹 다물고 실 끝을 정리했다. 언제나 눈치 빠른 아이였지만, 오늘의 청아는 조금 다른 얼굴이었다. 단순히 겁먹은 것이 아니었다. 은매를 놓쳤다는 마음이 아이의 손끝을 더 야무지게 만들고 있었다.
사람은 때로 죄책감으로도 자란다.
월령은 그 사실이 가엾고, 고마웠다.
날이 밝자 심가의 마당은 어제와 다름없이 움직였다.
마구간에서는 말 여물에 볏짚을 섞었고, 부엌에서는 심 부인의 아침 죽에 넣을 배즙을 짰다. 행랑채 아이들은 어젯밤 등불을 오래 켠 탓에 졸린 눈을 비볐고, 늙은 문지기는 북문로에서 온 짐꾼들이 길이 질다며 투덜거린다는 말을 전했다.
평범한 말들 속에 필요한 단서가 섞여 있었다.
북문로.
짐꾼.
질어진 길.
월령은 그 말을 하나씩 마음속에 놓았다.
정무는 아침 문안 뒤에 조용히 들어왔다. 그의 옷자락에는 흙먼지가 묻어 있었고, 왼쪽 소매 끝은 조금 찢겨 있었다.
"밤새 통로를 막았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안쪽 길을 아는 사람은 심가 안에 있습니다."
월령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말로 들으니 더 차가웠다.
"누구인지 찾으셨습니까."
"아직입니다. 오래된 통로를 아는 사람은 늙은 하인 셋, 둘째 나리, 둘째 부인, 그리고..."
정무의 말이 멈췄다.
월령은 조용히 이었다.
"어머니."
"예."
"어머니는 아니에요."
"그렇습니다."
정무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 확신이 고마웠다.
월령은 창밖을 보았다. 살구나무에는 작은 열매가 아침빛을 받아 조용히 맺혀 있었다. 꽃이 지고 난 뒤의 가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열매가 자라는 일은 늘 화려함보다 조용했다.
"둘째 숙모도 통로를 아는군요."
"대장군께서 변경에 오래 계셨으니, 안채 살림을 맡은 적이 많습니다. 모를 리 없습니다."
"서윤이는요?"
정무는 이번에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어릴 때 그 길에서 숨바꼭질을 한 적이 있다 들었습니다."
월령은 눈을 감지 않았다.
서윤.
그 이름은 언제나 칼끝처럼 오지 않았다. 오히려 젖은 천처럼 손에 감겼다. 밀어내려 하면 더 단단히 붙고, 그대로 두면 차가움이 살에 스몄다.
"그 아이가 은매를 내보냈다고 보십니까."
"아가씨께서는 어찌 보십니까."
정무가 되물었다.
월령은 잠시 생각했다.
"서윤이는 아직 사람을 죽이려고 통로를 열 아이는 아니에요."
그 말이 얼마나 허약한 믿음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아이의 기억을 이용했을 수는 있어요. 어릴 때 놀던 길, 어머니가 알고 있는 길, 궁에서 내려온 말. 그런 것들이 섞이면 아이는 자기가 무엇을 넘겼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정무는 낮게 고개를 숙였다.
"그 말도 살피겠습니다."
그가 물러나려는 순간, 밖에서 작게 소란이 일었다.
청아가 문을 열었다.
"아가씨, 서윤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서윤은 대청 앞에 서 있었다.
밤을 거의 새운 얼굴이었다. 분을 얇게 올렸지만 눈 밑의 그늘을 다 가리지는 못했다. 손에는 작은 약합을 들고 있었다. 어른들이 병문안 올 때 들고 오는 모양새를 흉내 낸 듯했다.
"언니."
서윤은 공손하게 예를 갖췄다.
"어제 은매가 놀랐다고 들었어요. 제가 쓸 수 있는 연고가 있어서..."
청아의 얼굴이 굳었다.
은매는 안쪽 방에서 그 목소리를 듣고 몸을 움츠렸다.
월령은 그 모든 반응을 보았다.
서윤도 보았을 것이다.
아이의 눈동자가 아주 작게 흔들렸다. 자기가 들어오자 방 안이 굳었다는 것을, 예민한 아이가 모를 리 없었다.
"고마워."
월령은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은매가 사람을 많이 보면 놀랄 거야. 약은 내가 전해 줄게."
서윤은 약합을 내밀었다.
손끝이 떨리지 않도록 애쓰는 모습이 더 애처로웠다.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말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청아가 숨을 삼켰다.
월령은 서윤을 오래 보았다.
서윤의 말투는 어른스러웠다. 그러나 그 물음은 아이였다. 어른 흉내를 내던 껍질 아래에서, 누가 자신을 미워하는지 먼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니?"
월령은 되묻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바로 아니라 말하면 거짓이 된다.
서윤은 입술을 다물었다.
"다들 저를 피해서요."
"네가 피하고 싶은 말을 들을까 봐, 사람들이 말을 고르는 걸 수도 있어."
"그 말이 그 말 아닌가요?"
서윤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날카로워졌다.
곧 스스로 놀란 듯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서윤아."
월령은 낮게 불렀다.
"너는 아직 내게 약을 가져다줄 수 있구나."
서윤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됐어."
"왜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야."
월령은 약합을 받아 들었다.
"네가 정말 잘못한 일이 있다면, 언젠가 말해야 할 거야. 하지만 오늘 내가 묻지 않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야."
서윤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월령은 한 걸음 가까이 가지 않았다.
"네가 말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는 거야."
서윤의 눈이 젖었다.
그러나 울지 않았다.
울면 아이처럼 보일까 봐 참는 얼굴이었다.
"언니는 늘 그렇게 말해요."
"어떻게?"
"제가 더 나쁜 사람이 되지 못하게."
서윤은 약합을 놓고 물러났다.
"그래서 더 미워요."
그 말은 작았다.
작아서 더 아팠다.
월령은 붙잡지 않았다.
서윤은 돌아서서 회랑을 걸어갔다. 발걸음은 반듯했지만, 치맛자락 끝이 두 번 흔들렸다. 아직 어른의 걸음을 끝까지 흉내 내기에는 무릎이 너무 어렸다.
청아가 낮게 말했다.
"아가씨, 저 약은..."
"먼저 왕부 의원에게 보낼 거야."
"서윤 아가씨께서 독을 넣었을까요?"
월령은 약합을 내려다보았다.
"아니길 바란다."
"그러면요?"
"아니라고 믿기 위해 확인하는 거야."
그 말에 청아는 더 묻지 않았다.
그날 해질 무렵, 위지헌의 전갈이 왔다.
이번에는 종이가 아니었다.
작은 나무 패 하나였다. 북문로 역참에서 쓰는 짐패와 닮아 있었고, 한쪽 귀퉁이가 그을려 있었다. 패 뒤에는 짧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회암역.
경성에서 북쪽으로 첫 산길이 시작되는 곳.
월령은 그 두 글자를 보자마자 숨이 낮아졌다.
회암역은 군량 수레가 하루를 쉬어 가는 곳이었다. 말은 그곳에서 바뀌고, 수레는 그곳에서 다시 묶인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을 지나면 경성의 눈은 약해지고, 변경의 바람은 강해진다.
은매의 동생이 그곳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어미도 함께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둘 중 하나만.
월령은 패를 쥔 채 위지헌을 기다렸다.
그는 밤이 깊어서야 왔다.
측백나무 아래 감송향이 먼저 닿았다. 월령은 뒤돌아보지 않고도 그가 왔음을 알았다. 그 사실이 자신을 더 불안하게 했다. 익숙해지면 안 되는 것을 몸이 먼저 익히고 있었다.
"회암역이라 들었습니다."
위지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진이 놓친 수레가 그곳까지 갔다."
"놓쳤다는 말은..."
"사람은 보지 못했다."
위지헌은 바로 덧붙였다.
"하지만 네가 준 단서가 맞았다. 아이가 혀끝으로 이를 치는 소리를 들은 역졸이 있다."
월령의 손이 소매 안에서 굳었다.
"살아 있군요."
"그렇다."
"어머니는요."
위지헌의 침묵은 짧았다.
그 짧은 침묵이 답이었다.
월령은 눈을 내리깔았다.
"모릅니까."
"아직 모른다."
그는 거짓을 보태지 않았다.
"수레는 둘로 갈라졌다. 아이의 흔적은 회암역에 남았고, 병든 여인은 다른 길로 빠졌다."
"어디로요?"
"내수사 물품을 실은 수레가 같은 시각 동쪽 길을 탔다."
내수사.
황실의 사사로운 창고를 관리하는 곳. 궁의 옷감, 향, 약재, 사치품이 그 이름으로 움직였다. 겉으로는 작은 살림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궁의 손이 조정의 장부를 거치지 않고 사람과 물건을 옮기는 길이었다.
"자녕궁이군요."
월령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위지헌은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작은 바둑돌 두 개를 꺼냈다. 오늘은 판이 없었다. 그는 돌을 손바닥 위에 놓고, 하나를 월령 쪽으로 조금 밀었다.
"길이 갈라졌을 때는, 더 울리는 쪽을 쫓고 싶어진다."
"은매 동생이요."
"그래."
그는 다른 돌을 손끝으로 눌렀다.
"하지만 소리가 큰 쪽이 진짜 목적이 아닐 때가 많다. 아이는 들키기 쉬운 미끼였고, 병든 여인은 조용히 사라지기 쉽다."
"그럼 어머니를 먼저 찾아야..."
"둘 다 찾는다."
월령이 그를 보았다.
위지헌은 아주 차분했다.
"다만 오늘 밤에 둘 다 데려오기는 어렵다."
월령의 숨이 흐려졌다.
"어느 쪽을 먼저 구하실 겁니까."
그 말은 너무 잔인했다.
묻는 자신도, 답해야 하는 그도.
위지헌은 오래 침묵하지 않았다.
"아이."
월령은 눈을 감을 뻔했다.
"왜요."
"병든 여인은 궁의 수레 안에 있다면 당장 죽이지 않는다. 쓰임이 남았다는 뜻이다. 아이는 길목에서 입을 막기 쉽다."
그는 월령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말했다.
"군법으로 치면, 먼저 끊길 전령을 구하는 것이다. 본진은 위치가 드러나는 순간 다시 친다."
말은 분명했다.
잔인할 만큼 분명했다.
그런데 월령은 그 말을 알아들었다.
알아들었다는 사실이 싫었다. 자신이 어느새 사람의 목숨을 수순처럼 놓고 있다는 것이 무서웠다.
위지헌은 그 표정을 보았다.
"월령."
"예."
"사람을 수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의 목소리가 아주 낮아졌다.
"살릴 순서를 정해야 할 때도, 사람은 끝까지 사람이다."
월령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 사람은 왜,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생각을 먼저 알아차릴까.
그리고 왜, 그 생각을 꾸짖지 않고 풀어 줄까.
"정말?"
위지헌이 낮게 물었다.
월령은 멍하니 그를 보았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나."
"그런 것이 아니라..."
"으응?"
그 한 음절이 너무 가까이 내려앉았다.
월령은 숨을 놓쳤다.
위지헌은 한 걸음 가까이 있었다. 감송향이 선명했다. 마른 약재와 오래된 나무, 비가 마른 흙의 향. 그 향이 월령의 살구꽃 잔향과 부딪혀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은 그늘을 만들었다.
"믿겠습니다."
월령은 겨우 말했다.
"오늘은."
위지헌의 눈빛이 아주 희미하게 풀렸다.
"오늘이면 충분하다."
그 말은 조용했다.
"내일은 다시 물으면 된다."
월령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떠난 뒤에도 감송향은 한동안 측백나무 아래에 남았다.
그리고 다음 새벽, 회암역에서 돌아온 전갈은 한 장의 회색 실과 함께 왔다.
아이의 손목에 있던 것과 같은 매듭.
이번에는 끊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실이 묶여 있던 손은,
그곳에 없었다.
위명서는 언제나 알맞은 때에 왔다. 너무 이른 듯하지만 무례라 말하기 어려운 시각. 너무 걱정스러운 듯하지만 속셈이라 몰기 어려운 얼굴. 황자의 신분으로 장군가의 문 앞에 서 있으면서도, 오히려 자신이 낮아진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걸음. 심가의 대문 앞에는 이미 하인들이 모여 있었다. 아침 물을 뿌리던 아이는 물동이를 놓은 채 얼어 있었고, 늙은 문지기는 허리를 숙였으나 눈은 조심스럽게 위명서의 뒤쪽을 보았다. 황자의 뒤에는 호위 둘과 내관 하나뿐이었다. 많은 사람을 데려오지 않은 것이 배려처럼 보였다.월령은 그 배려가 더 무서웠다. 소문은 손이 적을수록 더 날래게 움직일 때가 있다."이른 걸음이었습니다." 위명서가 심도윤 대신 마중 나온 둘째 숙부에게 말했다. "그러나 밤새 심가 안에 흉한 말이 돌았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둘째 숙부의 얼굴이 굳었다. "전하께서 걱정해 주실 일이 아닙니다." "심가는 나라의 북문을 지킨 집입니다. 그 집 여식의 이름이 흔들리면, 백성들도 나라의 마음을 의심하겠지요."위명서는 북문이라는 말을 참 부드럽게 했다. 그 말은 늘 심가의 자랑을 어루만지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목에 걸리는 줄처럼 느껴졌다.월령은 조금 뒤에 서 있었다. 서윤은 나오지 않았다. 한씨도 방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어머니는 서원당에서 상황을 듣고, 월령에게 사람을 너무 많이 들이지 말라는 말만 전했다. 어머니의 말은 짧았지만 정확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집은 집이 아니게 된다.위명서의 시선이 월령에게 닿았다. "심 아가씨." 그는 한 걸음 물러나 예를 갖췄다. 황자가 장군가의 딸에게 보이는 지나친 예. 모르는 사람은 감동할 것이다. 아는 사람은 숨이 차가워진다.월령은 고개를 숙였다. "전하." "놀라셨겠지요." "아직 놀랄 일이 많아, 어느 것부터 놀라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말은 부드러웠다. 가시도 없었다. 그러나 위명서의 눈빛이 아주 잠깐 멈췄다. "심 아가씨께서는 가끔 아주 어린 얼굴로 어려운 말을 하십니다." "어렵게 들렸
한씨는 해가 뜰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서원당 옆 작은 방에는 따뜻한 물이 놓였고, 청아가 급히 데운 죽도 한 그릇 놓였다. 이번 죽은 타지 않았다. 청아는 그것을 세 번이나 확인하고서야 상 위에 올렸다."이번에는 바닥까지 살아 있습니다."그녀가 낮게 말했다.은호가 이불 속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제가 봐도 됩니까.""너는 이제 감별관이니?""어제 제가 맞았습니다."청아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은매가 아주 작게 웃었다.그 웃음은 눈물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웃음이었다.월령은 그 작은 소리를 마음에 담았다. 밤새 편문 앞에서 본 것들, 한씨의 무너진 얼굴, 서윤의 떨리던 손, 잘린 붓끝에 묻은 예부의 붉은 실이 아직 방 안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도 청아는 죽의 바닥을 확인했고, 은호는 그 확인을 다시 확인하려 했다.그 사소함 덕분에 아침은 겨우 아침다웠다.서윤은 한씨 곁에 앉아 있었다.어머니의 손을 잡지는 못했다. 대신 이불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붙잡고 있었다. 한씨는 그 손을 보았고, 보지 못한 사람처럼 눈을 감았다."서윤아."한씨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서윤의 어깨가 움찔했다."예, 어머니."그 말투는 여전히 조심스러웠지만, 어제와 달랐다. 어머니 마음에 들려고 꾸민 어른의 말이 아니라, 다칠까 봐 조심하는 딸의 말이었다.한씨는 오래 침묵했다."어미가 너를 아낀다."서윤의 눈가가 붉어졌다."예.""그 말로 네가 다친 것이 없어지지는 않겠지."서윤은 대답하지 못했다.한씨는 천천히 눈을 떴다. 밤새 울지 않은 눈은 오히려 더 붉었다."나는 네가 뒤에 서는 것이 싫었다. 내가 평생 그렇게 서 있었으니, 너는 앞으로 가길 바랐다."그녀의 시선이 월령을 향했다가 곧 떨어졌다."그러다 네 등을 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서윤의 손이 이불을 더 세게 쥐었다.한씨는 그 손을 보았다."어젯밤 네가 월령이를 사람이라 했지."서윤은 고개를 숙였다."예.""어미는 너도 사람이라는 걸 자꾸 잊었다."방 안이 조용
남쪽 편문은 낮에도 어두운 곳이었다.담장이 높고, 늙은 측백나무가 길게 그늘을 드리웠으며, 문 아래 돌계단에는 햇빛이 오래 머물지 못했다.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그곳의 흙은 늘 조금 눅었다. 집 안에서 버린 물이 몰래 흘러드는 자리라 했다.밤에는 그 어둠이 더 깊어졌다.등불 하나가 멀리 회랑 끝에서 흔들렸고, 편문 앞에는 사람 그림자 셋이 서 있었다.월령은 걸음을 늦췄다.위지헌의 말이 아직 귓가에 남아 있었다.뛰지 마라.혼자 앞서지 마라.그 말을 정치적 수로 이해하려 애썼지만, 몸은 그보다 먼저 기억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불안을 꾸짖는 소리가 아니라, 넘치는 물을 손바닥으로 눌러 주는 듯한 소리였다.월령은 숨을 고르게 했다.서윤은 편문 가까이에 서 있었다.잠옷 위에 급히 걸친 외투가 어깨에서 조금 흘러내려 있었다. 머리도 제대로 묶지 못했다. 어른스럽게 꾸민 얼굴이 아닌, 잠을 잃은 아이의 얼굴이었다. 그 옆에 한씨가 서 있었고, 문밖에는 검은 장옷을 뒤집어쓴 여인이 있었다.금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떨고 있었다.문밖의 여인은 고개를 숙였지만, 손은 숙이지 않았다. 손가락이 길고 마디가 굳어 있었다. 붓을 잡은 손이 아니라, 비단 끈과 열쇠를 오래 다룬 손이었다.궁녀의 손.문상궁의 사람."숙모."월령의 목소리는 낮았다.한씨의 어깨가 움찔했다.서윤은 돌아보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언니."그 한마디에 죄책감이 먼저 묻어났다.월령은 서윤을 보았다."춥겠다."서윤은 예상하지 못한 말에 입술을 달싹였다."예?""밤공기가 차. 외투를 여미렴."서윤은 손을 들어 외투를 여몄다. 손이 떨렸다.한씨가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그녀는 오늘도 단정했다. 급히 나온 사람치고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런 단정함이 오히려 더 절박해 보였다. 무너질 사람은 때로 가장 반듯하게 앉아 무너진다."큰아가씨."한씨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밤중에 여기까지 오다니, 몸이 상합니다.""숙모께서도 밤중
새벽이 오기 전의 집은 가장 솔직했다.낮에는 예법이 사람을 세우고, 밤에는 두려움이 사람을 눕힌다. 그러나 새벽 직전의 어둠에는 누구도 완전히 서 있지도 눕지도 못한다. 닫힌 문 안쪽에서는 잠든 척하는 숨이 얇아지고, 깨어 있는 등불은 심지를 낮춘 채 오래 버틴다.월령은 서원당 곁 작은 서실에 앉아 있었다.등불은 낮췄고, 탁자 위에는 서윤의 오래된 글과 허도겸이 보낸 등초, 문상궁의 먹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종이와 먹과 사람의 손. 전부 말이 없는데도, 방 안은 너무 많은 말로 가득 찬 듯했다.그녀는 위조된 글의 마지막 획을 다시 보았다.받겠다.그 끝이 유난히 무거웠다.서윤은 끝을 그렇게 누르지 않는다. 서윤의 글은 끝에 이르면 오히려 가벼워졌다. 칭찬을 기다리는 아이의 손은 마지막에서 긴장이 풀린다. 그러나 이 글은 마지막에서 힘이 들어갔다.누군가 결말을 꼭 눌러 닫은 것이다.마치 도망갈 문을 막듯이."잠을 자지 않았군."문밖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월령은 숨을 멈추었다가, 곧 자신을 꾸짖듯 천천히 내쉬었다.위지헌이었다.그가 문턱을 넘지 않은 채 서 있었다. 먹색 대창포 자락에는 새벽 안개가 아주 희미하게 묻어 있었고, 젖은 돌을 밟고 온 듯 신 끝이 어두웠다. 감송향이 서실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월령은 일어나 예를 갖췄다."왕야.""앉아 있어라."말은 낮았지만 딱딱하지 않았다.그는 곧 자신이 너무 짧게 말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덧붙였다."네가 일어서면 종이가 날린다."월령은 잠시 멈췄다.그 말이 명령인지 배려인지 구별하지 못했다.위지헌은 문턱을 넘었다.그는 탁자 가까이 오지 않았다. 가까이 오면 그녀가 숨을 더 조심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감송향은 이미 가까웠다. 월령은 그 향을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의식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먹을 보았느냐.""예.""무슨 생각을 했지."월령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자녕궁의 종이, 서윤의 글씨, 문상궁의 먹. 세 가지가
밤은 쉽게 깊어지지 않았다.심가의 안채에는 등불이 오래 남았다. 서원당 처마 아래 작은 등이 하나 켜져 있었고, 약방 쪽에도 낮은 불빛이 흔들렸다. 하인들은 평소보다 발소리를 낮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집 전체가 숨을 작게 쉬는 사람처럼 조심스러웠다.월령은 목갑 속 먹을 다시 닫았다.문상궁이 두고 간 먹과 같은 냄새.그 말 하나만으로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궁의 물건은 여러 손을 지난다. 문상궁이 들고 왔다고 해서 문상궁이 썼다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태후의 뜻이라 해도 태후가 직접 먹을 갈았을 리 없고, 위명서가 필요로 했다고 해서 그가 손끝에 먹을 묻혔을 리 없다.궁의 명은 대개 남의 손끝에 묻어 왔다.손끝은 씻기 쉽고, 명은 더 쉽게 사라졌다."언니."서윤이 아주 낮게 불렀다.월령은 고개를 돌렸다.서윤은 아직 붓함 곁에 앉아 있었다. 오래된 종이들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에 아이의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얇게 놓여 있었다. 서윤은 그것들을 다시 접지 못했다."제가 예전에 언니 글씨를 따라 쓴 걸, 아는 사람이 있었을까요.""있었겠지."월령은 거짓말하지 않았다.서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래서 월령은 말을 낮췄다."하녀가 보았을 수도 있고, 숙모께서 보셨을 수도 있고, 글씨를 가르치던 사람이 기억했을 수도 있어.""그럼 제가...""아니야."월령은 서윤의 말을 부드럽게 막았다."네가 누군가에게 칼을 준 것이 아니야. 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그것을 칼로 갈았을 뿐이야."서윤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이해한 얼굴은 아니었다.하지만 조금 덜 무너진 얼굴이었다.월령은 더 묻지 않았다.그때 청아가 조심스럽게 낮은 상 위에 찻잔을 올렸다."차는 아니고 보리물입니다.""왜 그렇게 작게 말하니.""궁에서 차가 나오면 늘 일이 생겨서요."청아는 아주 진지했다."소인은 당분간 차를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은호가 작은 이불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보리도 볶으면 검습니다."청아가 눈을 크게 떴다."그런 말
서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말을 잃은 아이의 얼굴은 이상하게 어려 보였다. 조금 전까지 찹쌀떡 접시를 들고 어른스러운 말을 고르던 입술은 이제 색을 잃었고, 속눈썹 아래 눈동자는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몰라 흔들렸다.방 안에는 눌어붙은 죽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창을 열었는데도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불에 닿은 곡식의 냄새는 사람의 옷자락보다 오래 방 안에 머문다. 궁에서 온 글 한 줄도 그랬다. 읽히고 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숨 쉬는 곳마다 얇게 달라붙었다.심월령은 기윤이 전한 말을 다시 떠올렸다.심월령은 황실의 은혜를 달게 받겠다.그 글씨가 서윤의 손과 닮았다고 했다.닮았다.같다고 못 박지 않으면서도, 다르다고도 놓아주지 않았다. 칼보다 얇은 말이었다.서윤의 손끝이 떨렸다."저는 쓰지 않았어요."목소리가 작았다."언니, 저는 정말...""알아."월령은 너무 빨리 대답하지 않으려 했다. 급한 믿음은 때로 믿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그녀는 서윤의 손을 보았다. 찹쌀가루가 아직 손톱 가장자리에 희게 끼어 있었다. 궁의 종이를 만진 손이라기보다, 부엌에서 반죽을 조금 망친 아이의 손이었다."네가 쓰지 않은 것 알아."서윤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그런데 왜 제 글씨와 닮았을까요."그 물음에는 두려움보다 더 깊은 부끄러움이 있었다.월령은 그 부끄러움을 알아보았다.서윤은 늘 남의 마음에 드는 법을 먼저 배웠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말투, 어른들이 기특하다 여기는 자세, 태후가 눈길을 줄 만한 글씨. 자기 이름을 쓰기 전에 남의 눈이 좋아하는 선을 익힌 아이였다."혹시."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제가 예전에 언니 글씨를 따라 쓴 적이 있어요."방 안이 조용해졌다.청아는 놀라 숨을 삼켰고, 은매는 은호의 어깨를 조금 더 감쌌다. 기윤은 문가에서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으나, 그 침묵도 들은 사람의 침묵이었다.월령은 서윤을 재촉하지 않았다."어릴 때요. 큰어머니께서 언니 글씨가 곱다 하셨고,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