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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금리승소
호위무사에게 끌려 나가던 순간, 나는 하지언이 울먹이면서도 단호하게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다.

“소녀는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저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결코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궁궐 정문 밖에서는 궁인들이 경사를 알리는 종을 천천히 울리고 있었다.

조정 대신들은 마침 궁을 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인 진원군 하태석은 사람들에게 겹겹이 둘러싸인 채 사람들의 아첨과 축하를 듣고 있었다.

“대감, 감축드립니다! 듣자 하니 세자 저하께서 대감댁 규수를 지극히 연모하시어, 이승에 있는 한 결코 첩을 들이지 않겠다 하셨다지요.”

“이토록 큰 총애를 받으시니, 대감께서는 참으로 복이 많으십니다.”

그러나 기쁨으로 가득했던 아버지의 얼굴은 무릎을 꿇고 있는 나를 발견한 순간 돌처럼 굳어졌다.

곧 아버지는 굳은 얼굴로 내 앞을 가로막고 서서 대신들을 하나하나 돌려보냈다.

그리고 화를 애써 억누르며 내 어깨의 혈을 풀어주었다.

“남경아,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 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벌써 아흔아홉 번이나 울렸거늘, 설마 세자빈이 바뀐 것이냐?”

아버지를 본 순간, 지난 생과 이번 생에서 억눌렀던 설움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대로 아버지의 품으로 뛰어들면서 목 놓아 울었다.

“아버지, 지언이가 세자 저하께 시집가려고 제가 여빈족 족장과 사통했다고 모함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거칠게 밀쳤을 때도 내 눈에는 우스울 정도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벌을 받았으면 얌전히 무릎이나 꿇고 있거라.”

나는 멍하니 아버지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돌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문득 전생에서 하지언에게 화친혼을 명하는 어명이 내려졌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아버지는 마치 10년은 늙어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아버지의 마음속 딸은 오직 하지언 하나뿐인 것 같았다.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그리움과 설움을 끝내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벌을 받을 시간이 다 지나고 나서야, 나는 떨리는 두 다리를 이끌고 한 걸음씩 내디디며 집으로 돌아갔다.

육조거리에는 채색 등이 가득 걸려 경사스러운 분위기가 넘쳐났다.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내가 장차 세자빈이 될 거라며 축하하던 나인들은, 이제 나를 마치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대했다.

“아씨께서는 오늘 밤 안으로 행궁으로 거처를 옮기셔야 해요.”

“지언 아씨와 세자 저하의 경사스러운 일에 액운이 들지 않도록 말이에요.”

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유모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남겨 주신 물건을 모조리 챙겨 달라고 했다.

“유모, 이제 내게는 유모밖에 없어.”

오늘부터는 아버지마저 잃었다.

어찌 되었든 궁 안에서 죽는 것보다는 화친을 가는 편이 나았다.

미리 준비햐소 윤경을 나선 뒤 닥쳐올 그 습격만 피한다면, 어떻게든 유모와 함께 살아남을 방도를 찾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짐을 막 다 꾸렸을 때 하지언이 사람들을 거느리고 들이닥쳤다.

“한낱 서출 주제에 우리 하씨 집안의 금은보화까지 가져가려는 거야?”

유모는 본능적으로 나를 등 뒤로 감쌌다.

그러나 하지언은 머리에 꽂고 있던 비녀를 뽑아 유모의 얼굴을 사정없이 찔렀다.

순식간에 유모의 얼굴에서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봐라, 물건을 훔친 이 늙은 계집을 몽둥이로 때려죽여라!”

나는 찢어질 듯 두 눈을 부릅떴다.

그 비녀는 어머니께서 손수 나를 위해 마련해 주신 혼례 장신구였다.

“하지언, 네가 감히!”

그러나 내가 치켜든 손을 아버지가 거칠게 쳐냈다.

곧이어 아버지의 손바닥이 내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하지언은 한술 더 떠 응석을 부리듯 뒤에 있던 사람을 끌어냈다.

“저하께서 한번 시비를 가려 주세요. 저희의 경사로운 일이 있기에, 저는 언니에게 좋은 기운을 나눠서 시집보내려고 하였습니다.”

“허나 언니의 천한 계집종이 제 혼수를 훔쳐 가려 했습니다.”

이백헌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 마디를 내뱉었다.

“장을 쳐서 죽여라.”

가슴이 아려오면서 나는 황급히 몸을 낮추고 무릎을 꿇었다.

가늘고 연약한 목을 치켜들고 말했다.

“소녀가 세자 저하께 자비를 청합니다. 유모와 이 물건들은 어머니께서 소녀에게 남겨 주신 유일한 유품입니다.”

나는 이백헌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거듭 머리를 조아렸다.

전생에서 하씨 집안의 백명이 족히 넘는 식솔을 지키기 위해서, 이백헌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이 자세야말로 이백헌의 보호 본능을 가장 쉽게 일으키는 자세이기도 했다.

확실히 이백헌의 눈에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기색이 스쳤다.

“방금 뭐라 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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