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보고서는 얇았다.
이상할 정도로.
이다정의 아버지, 이회장은
서류를 넘기다 말고 손을 멈췄다.
종이 몇 장.
운전 경력 몇 줄.
그리고—
길게 비어 있는 공백.
“이게 전부인가.”
낮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회의실 안 공기가 동시에 조여들었다.
“네, 회장님.”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주민등록, 병역, 면허 기록까지는 정상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추적이 어렵습니다.”
이회장은 서류 맨 위를 다시 보았다.
김다온.
스물아홉.
최근 1년, 무직.
“대리기사로 등록된 건 언제지.”
“3개월 전입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이회장은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탁.
탁.
일정한 리듬.
생각이 정리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흉기를 든 남자를 제압했다.”
보고서 중간에 끼워진 사진 한 장.
빗속에서 찍힌 흐릿한 CCTV 캡처였다.
검은 셔츠의 남자.
고개를 숙인 채, 상대의 손목을 꺾고 있었다.
단순한 몸싸움이 아니었다.
각도가 정확했다.
힘을 쓰는 방식도.
“경찰 쪽 반응은.”
“과잉 진압 소지는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익숙하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익숙하다.
이회장은 그 단어를 천천히 굴렸다.
훈련된 사람에게만 붙는 말이었다.
“군 경력은?”
“기록상 없습니다.”
“기록상.”
이회장은 서류를 덮었다.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병실 창가에 앉아 있던 이다정.
아무 말 없이 밖을 보던 표정.
놀란 얼굴도, 울먹이는 얼굴도 아니었다.
단지—
어딘가를 오래 생각하는 얼굴.
“다정이는.”
“기사 이야기를 한 번 물었습니다.”
이회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이상은?”
“없습니다.”
없을 리가 없었다.
목숨을 구해준 남자를
사람이 그렇게 쉽게 잊을 리 없었다.
이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찾아.”
짧은 한마디였다.
“대리기사든 뭐든 상관없다.
그날 밤, 내 딸 차를 운전한 남자—
김다온을 데려와.”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떤 용도로—”
“확인부터 한다.”
이회장은 창밖을 바라봤다.
회장실 아래로 도시의 불빛이 흘러가고 있었다.
“위험한 남자인지.”
잠시 후,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니면—
쓸 수 있는 남자인지.”
그 순간
이회장은 아직 몰랐다.
그 선택이
딸의 인생뿐 아니라
자신의 통제 밖까지 흔들게 될 거라는 걸.
그리고 몇 시간 뒤—
김다온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회장 저택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리기사 김다온입니다.”
서재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회장은 안경을 쓴 채 서류를 보고 있었다.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일부러였다.
“왔는가.”
“왔습니다.”
목소리는 낮았다.
과하게 공손하지도 않았다.
이회장은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잠시 앉게.”
김다온은 의자를 당겨 앉았다.
등받이에 기대지 않았다.
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였다.
이회장은 서류를 한 장 넘겼다.
“이름.”
“김다온입니다.”
“나이.”
“스물아홉입니다.”
“직업.”
짧은 공백.
“현재는 대리기사 일하고 있습니다.”
이회장의 펜이 멈췄다.
“대리기사였지.”
“네.”
“그날 밤.”
이회장이 안경 너머로 그를 올려다봤다.
“내 딸 차를 운전한 이유가 있나.”
김다온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호출이 들어왔습니다.”
“그뿐인가.”
“그뿐입니다.”
이회장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흉기를 든 남자를 제압했더군.”
김다온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대리기사가 감당할 상황은 아니었지.”
이회장은 사진 한 장을 책상 위로 밀어냈다.
“이건.”
김다온은 사진을 보지 않았다.
이미 기억하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군에서 배운 적 있나.”
“없습니다.”
“기록엔 그렇지.”
이회장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이제 본론이었다.
“김다온 씨.”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에게
내 딸을 맡기지 않는다.”
김다온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말했다.
“그럼, 맡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서재의 공기가 순간 멈췄다.
이회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거절하는 건가.”
“선택은 회장님께 있습니다.”
김다온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
“다만 그날 밤,
저는 맡겨진 일을 했을 뿐입니다.”
변명이 아니었다.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이회장은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웃었다.
“재미있군.”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래서 더 위험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다온 씨.”
이번에는 분명한 호칭이었다.
“내 딸의 전속 기사 자리를 제안하지.”
김다온의 시선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아주 잠깐.
그리고 말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이회장의 눈빛이 번뜩였다.
“말해보게.”
“업무 범위는—
운전과 안전까지만입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회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안경을 다시 쓰며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비서를 통해 전달하지.”
김다온은 더 묻지 않았다.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각도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실례했습니다.”
서재 문을 나서는 순간
문 안과 밖의 공기가 달라졌다.
문이 닫혔다.
김다온은 복도를 몇 걸음 걷다 멈췄다.
창밖으로 저택의 정원이 내려다보였다.
잠깐, 시선을 내렸다.
‘아버지…’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말.
제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무도 듣지 못할 문장이
가슴 속에서만 낮게 울렸다.
김다온은 다시 발을 옮겼다.
복도 밖 발소리가 멈췄다.정확했다.망설임도 없었다.사람을 찾는 발소리가 아니라,이미 위치를 알고 들어온 발소리였다.김다온의 손이 이다정의 손을 잡은 채 멈췄다.단단했다.놓치지 않겠다는 힘.이다정은 그 손을 내려다보지 않았다.대신 문 쪽을 봤다.정유리가 낮게 숨을 삼켰다.“몇 명.”서하진이 짧게 답했다.“넷.”한 박자.“앞 둘은 진입.”“뒤 둘은 회수.”좋아.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열렸다.구두 굽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또각.또각.또각.비상등만 켜진 복도 끝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검은 코트.정리된 실루엣.그리고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이상한 얼굴.김다온의 시선이 아주 짧게 굳었다.정말로 짧게.하지만 이다정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좋아.이 사람.진짜구나.여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기획조정실 문 앞까지 그대로 걸어왔다.
조명이 꺼진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는 추궁의 흐름이었다. 오세현이 무너지고, 강문혁이 눌리고, 윤정훈이 버려진 쪽이었다. 그런데 어둠이 내려앉는 순간 판의 중심이 이동했다. 누군가가 이 타이밍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걸 연출할 수 있다는 건, 이 층의 전력과 출입을 건드릴 수 있는 쪽이라는 뜻이었다.짝.박수 소리가 또 한 번 울렸다.천천히.여유롭게.사람을 놀라게 하려는 박수가 아니었다. 이미 다 보고 있었고, 이제 들어오겠다는 신호였다.정유리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뒤.”김다온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암전 속에서도 망설임이 없었다. 강문혁을 더 깊게 벽으로 눌러 고정한 채, 몸을 틀어 이다정 앞을 가렸다. 시야를 막는 게 아니라, 각도를 먼저 먹었다. 어디서 들어오든, 먼저 자신을 보게 되는 위치였다.좋아.이게 익숙해져버렸다는 게 제일 위험하다.이다정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숨을 아주 천천히
대표실 안 공기가 완전히 멎었다.윤정훈의 마지막 말이방 안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회의록 작성한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이다정은 웃지 않았다.대신아주 천천히 윤정훈을 봤다.좋아.이제야 진짜 문서 쓴 손이 나온다.김다온은 말이 없었다.하지만 시선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이제 윤정훈은자르거나 밀어붙일 대상이 아니라입 열리기 직전의 증거였다.이다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름.”짧다.윤정훈의 입이 잠깐 다물렸다.
표실 문이 열렸다.윤정훈은 급하지 않게 들어왔다. 검은 정장. 흐트러짐 없는 넥타이. 손에는 얇은 서류 파일 하나. 얼굴은 지나치게 단정했다. 방금 자기 이름이 침투자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처럼.좋아.저 표정이면 두 가지다.진짜 모르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밀고 들어오는 거다.근데 지금은 후자다.이다정은 앉지 않았다. 회의 테이블 끝에 기대 선 채 윤정훈을 봤다. 김다온은 한 발 옆, 조금 앞에 섰다. 정유리는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지만 손은 이미 녹화 버튼 위였다. 그리고 벽 쪽. 김다온에게 제압된 남자는 입을 다문 채 바닥 가까이에 눌린 상태였다.윤정훈 시선이 그 남자에게 닿았다.정말 짧게.좋아.모르는 얼굴은 아니네.그 짧은 흔들림 하나면 충분했다.“대표님.”
대표실 문손잡이가 아주 천천히 돌아갔다.철컥.아주 작은 소리였는데, 방 안 공기가 한순간에 식었다.김다온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반 걸음.아니.거의 동시에.김다온의 몸이 이다정 앞을 막았다.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사람처럼.좋아.이 정도면 설명 필요 없다.누가 들어오든, 먼저 저 사람을 지나야 한다는 뜻이다.이다정은 숨을 죽이지 않았다.그럴 필요 없었다.시선만 문에 고정했다.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틈.
운전석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전화 끊지 마십시오.”아버지가 아니라, 그가 말했다.낮지만 또렷한 목소리였다.“지금은—제가 운전하고 있습니다.”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아버지가 말했다.“지금 위치 말해주십시오, 기사님.”숨이 거칠었다.“돈은… 부르는 대로 다 드리겠습니다.”이다정은 눈을 깜빡였다.아버지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거래가 아니라 부탁이었다. 잠시 후 남자가 입을 열었다.“어르신.”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무례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상하게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
비는 길게 내리고 있었다.밤공기를 적시는 빗방울이 건물 입구 캐노피를 두드렸다.톡, 톡, 톡. 일정한 박자가 귀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이다정은 그 아래 서 있었다.검은 원피스 자락이 무릎에 붙어 있었고, 젖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뺨에 달라붙어 있었다.손에는 휴대폰. 화면에는 대리 호출 앱이 켜진 채였다.술이 꽤 올랐다.머리는 살짝 어지러웠지만, 정신이 아주 흐린 건 아니었다.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왜 이렇게 오래 걸려?’입술을 살짝 깨물며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대기 중.주변에는 이미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정적.방 안 공기가 순간적으로 식었다.좋아.그것까지 봤네.그럼저쪽은 이미내 약점이 아니라김다온을 흔들 지
창고 안은 아직 총 냄새가 남아 있었다.금속 냄새.깨진 유리.짧게 끊긴 숨들.이다정은 송민철 앞에 섰다.바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남자.입가에는 피.눈은 아직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