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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작가: 화유2
last update 게시일: 2026-03-09 11:47:44

운전석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전화 끊지 마십시오.”

아버지가 아니라, 그가 말했다.

낮지만 또렷한 목소리였다.

“지금은—

제가 운전하고 있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아버지가 말했다.

“지금 위치 말해주십시오, 기사님.”

숨이 거칠었다.

“돈은… 부르는 대로 다 드리겠습니다.”

이다정은 눈을 깜빡였다.

아버지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거래가 아니라 부탁이었다. 잠시 후 남자가 입을 열었다.

“어르신.”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무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차를 내리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스피커 너머에서 숨이 거칠게 새어 나왔다.

“뭐라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갈라졌다.

“당신 지금 누구한테 훈계하는 겁니까.

그 차는 당장 세워요. 내 딸을—”

“지금 차를 세우면.”

남자가 말을 끊었다. 처음이었다.

누군가 아버지 말을 중간에 자른 건.

“뒤 차량과의 거리가 사라집니다.”

짧고 정확했다.

“지금 속도와 차선이 그나마 가장 안전합니다.”

이다정은 운전석을 올려다봤다. 남자는 여전히 앞만 보고 있었다.

시선은 전방. 손은 핸들을 정확히 잡고 있었다.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전문가 흉내 내지 마십시오.”

아버지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당신 신원부터—”

“확인하셔도 됩니다.”

짧은 대답.

“다만 그 전에,

따님을 집까지 보내드리겠습니다.”

차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이다정은 깨달았다.

이 남자는 돈 때문도 아니고, 명령 때문도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이다정을 자신의 책임 안에 두고 있었다.

아버지가 이를 악물었다.

“좋습니다.”

낮은 목소리.

“하지만 한 가지라도 틀리면—”

“그땐.”

남자가 숨을 한번 고르며 말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때였다.

차체가 갑자기 옆으로 크게 흔들렸다.

“—!”

안전벨트가 이다정의 몸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차가 갓길 쪽으로 밀리듯 멈춰 섰다.

남자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세요.”

정확한 손놀림으로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겼다.

시동은 끄지 않았다. 뒤쪽 차량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비 속에서 남자 하나가 뛰어내렸다.

손에는 흉기.

이다정의 숨이 멎었다. 그 순간.

운전석의 남자가 처음으로 고개를 약간 돌렸다.

차 안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이 정확히 이다정을 향했다.

차분하게 말했다.

“다정 씨.”

그리고 아주 짧게 덧붙였다.

“지금부터는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십시오.”

처음이었다.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른 건.

“문 잠그고, 고개 숙이세요.

무슨 소리가 나도 나오지 마십시오.”

이다정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잠기는 소리가 또각 울렸다.

그다음은 차 밖의 일.

빗소리 사이로, 짧은 마찰음. 거친 숨.

그리고 생각보다 빠른 정적.

이다정은 손잡이를 붙든 채, 숨을 참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운전석 문이 다시 열렸다.

김다온이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돌아왔다.

셔츠 소매에 빗물이 조금 묻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차를 다시 도로로 올렸다.

“…끝난 건가요?”

이다정의 목소리는 잘게 떨렸다.

“네.”

짧은 대답.

그는 병원 방향으로 차를 틀었다.

내비게이션을 켜지도 않았다.

“경찰은요?”

“이미 오고 있습니다.”

이다정은 더 묻지 않았다.

묻는 순간, 이 밤이 설명으로 변해버릴 것 같아서.

응급실 앞에 차가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김다온은 시동을 끄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오늘 일은—

잊으셔야 합니다.”

이다정은 그를 올려다봤다.

“그럼 기사님은요?”

잠시의 정적.

“저는.”

그는 백미러로 그녀를 한 번 바라봤다.

딱, 한 번.

“대리기사일 뿐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응급실의 흰 불빛 아래에서 이다정은 담요를 덮은 채 침대에 앉아 있었다.

몸에는 큰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손끝의 떨림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때, 병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다정아!”

아버지였다, 이다정은 고개를 들었다.

늘 단정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지금은 처음 보는 모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몸은 괜찮아?”

그는 다가와 딸의 어깨를 붙잡았다.

힘이 들어간 손길이었다.

“네, 아빠.”

이다정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했다.

“근데… 무슨 일이에요?”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을 훑어보았다.

병실 밖, 복도, 창문 이미 경호 인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제야 이다정은 알았다.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걸.

아버지는 낮게 말했다.

“오늘 네 차를 들이받은 놈,

이미 잡혔다.”

이다정의 눈이 커졌다.

“잡혔다고요?”

“흉기 소지.

그리고— 목적은 너였다.”

그 말에, 심장이 한 번 크게 내려앉았다.

“왜요…?”

이다정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췄다.

딸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버지의 것과 사업가의 것이 겹쳐졌다.

“회사 일이다.”

이다정은 그제야 이해했다.

자신이 ‘딸’이기 이전에 이름 있는 집안의 사람이라는 걸.

“그럼… 오늘 운전해주신 분은요?”

이다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대리기사 말이냐.”

“네.”

“아직 신원 확인 중이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낮게 덧붙였다.

“정상적인 대리기사는 아니다.”

이다정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상하게도, 안도보다 먼저 드는 감정이었다.

“그 사람—”

이다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다정아.

오늘 밤 일은 여기까지다.”

그는 딸의 손을 꼭 잡았다.

“앞으로는 내가 붙인 기사만 타.

알겠지?”

이다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다른 얼굴이 떠올랐다.

비 오는 밤, 아무 설명 없이 운전대를 잡고

흉기를 든 남자를 가볍게 제압하던

이름 모를 대리기사.

아버지는 이미 그를 찾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번엔 우연이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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