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똑똑.
“올라오시면 됩니다.”
문 너머로 들린 비서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김다온은 짧게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네, 비서님. 알겠습니다.”
문을 열자, 넓은 회장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유리창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도심과 그 앞에 서 있는 한 남자.
이다정의 아버지, 이회장이었다.
그는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
마치 김다온이 들어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문 닫게.”
김다온은 아무 말 없이 문을 닫았다.
찰칵—
이회장은 그제야 몸을 돌렸다.
손에는 태블릿 하나가 들려 있었다.
“출근 첫날은 어땠나.”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래.”
이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태블릿 화면을 넘겼다.
“다정이가 자네 번호를 저장했더군.”
김다온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업무상 필요한 절차입니다.”
“절차.”
이회장은 그 단어를 되뇌었다.
그리고 낮게 웃었다.
“그날 밤 이후, 내 딸은 잠을 설친다.”
김다온의 손가락이 눈에 띄지 않게 굳었다.
“자네 때문은 아니네.”
이회장은 곧바로 덧붙였다.
마치 미리 준비해둔 문장처럼.
“하지만 자네가
그 밤의 중심에 있었던 건 사실이지.”
이회장은 창가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김다온 씨.”
이번엔, 이름 뒤에 호칭이 붙었다.
“내 딸은 내가 지켜온 전부다.”
김다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말은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명확히 하겠네.”
이회장이 돌아섰다.
눈빛이 이전보다 훨씬 차가워져 있었다.
“자네는 기사다. 운전하고, 지키고, 필요 이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그는 한 박자 쉬었다.
“감정은— 더더욱 허락되지 않아.”
김다온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건 회장님께서 정하실 영역이 아닙니다.”
공기가 멎었다.
비서가 문 밖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만큼.
이회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라고 했나.”
김다온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저는 맡은 일을 합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잠시 후—
이회장은 웃었다. 이번엔 분명한 웃음이었다.
“좋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선을 끝까지 지켜보게.”
비서는 나를 따로 불렀다.
회장실에서 몇 걸음 떨어진 작은 응접실.
문이 닫히자, 공기가 달라졌다.
업무용 미소가 사라진 얼굴이었다.
“김다온 씨, 자세한 업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나는 등을 곧게 세운 채 서 있었다.
비서는 서류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다정 씨를 경호해주시면 됩니다.”
짧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직 구체적인 배후나 목적은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비서의 목소리는 낮아졌다.
“다만 현재, 저희 회장님과
그의 딸, 이다정 전무님이
동시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순간, 내 머릿속에 비 오는 고속도로가 스쳤다.
차선을 바꾸던 순간. 뒤에서 붙던 검은 차량.
흉기를 들고 달려들던 남자의 눈.
우연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온 씨의 역할은.”
비서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분명하게 말했다.
“공식 직함은 운전기사입니다.”
“그러나 실제 업무는— 전담 경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무님께는 알리지 않는 조건입니다.”
그 말에, 이번엔 내가 잠시 침묵했다.
“이다정 전무님은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야 합니다.”
비서는 덧붙였다.
“회장님의 뜻입니다.”
회장님의 뜻. 그 말은 곧 명령이었다.
“업무 범위는?”
“출퇴근, 외부 일정, 사적인 이동 전부.”
“위험 요소 판단은 김다온 씨 재량에 맡기겠습니다.”
책임을 던지는 말이었다. 그리고 신뢰를 가장한 족쇄.
“단 하나.”
비서의 시선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감정 개입은 절대 금지입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같은 말을, 조금 전 회장실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비서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다정 전무님은 지켜야 할 대상이지 이해해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문이 열렸다.
나는 복도를 걸어 나왔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생각했다.
지키기만 하라는 일은, 가장 위험한 임무라는 걸.
한편, 전무실.
이다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펜 끝으로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똑. 똑.
“황비서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들어와.”
문이 열리며 들어온 인물은 비서 명찰을 달고 있었지만,
이다정에게는 오래된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복도 밖 발소리가 멈췄다.정확했다.망설임도 없었다.사람을 찾는 발소리가 아니라,이미 위치를 알고 들어온 발소리였다.김다온의 손이 이다정의 손을 잡은 채 멈췄다.단단했다.놓치지 않겠다는 힘.이다정은 그 손을 내려다보지 않았다.대신 문 쪽을 봤다.정유리가 낮게 숨을 삼켰다.“몇 명.”서하진이 짧게 답했다.“넷.”한 박자.“앞 둘은 진입.”“뒤 둘은 회수.”좋아.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열렸다.구두 굽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또각.또각.또각.비상등만 켜진 복도 끝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검은 코트.정리된 실루엣.그리고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이상한 얼굴.김다온의 시선이 아주 짧게 굳었다.정말로 짧게.하지만 이다정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좋아.이 사람.진짜구나.여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기획조정실 문 앞까지 그대로 걸어왔다.
조명이 꺼진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는 추궁의 흐름이었다. 오세현이 무너지고, 강문혁이 눌리고, 윤정훈이 버려진 쪽이었다. 그런데 어둠이 내려앉는 순간 판의 중심이 이동했다. 누군가가 이 타이밍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걸 연출할 수 있다는 건, 이 층의 전력과 출입을 건드릴 수 있는 쪽이라는 뜻이었다.짝.박수 소리가 또 한 번 울렸다.천천히.여유롭게.사람을 놀라게 하려는 박수가 아니었다. 이미 다 보고 있었고, 이제 들어오겠다는 신호였다.정유리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뒤.”김다온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암전 속에서도 망설임이 없었다. 강문혁을 더 깊게 벽으로 눌러 고정한 채, 몸을 틀어 이다정 앞을 가렸다. 시야를 막는 게 아니라, 각도를 먼저 먹었다. 어디서 들어오든, 먼저 자신을 보게 되는 위치였다.좋아.이게 익숙해져버렸다는 게 제일 위험하다.이다정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숨을 아주 천천히
대표실 안 공기가 완전히 멎었다.윤정훈의 마지막 말이방 안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회의록 작성한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이다정은 웃지 않았다.대신아주 천천히 윤정훈을 봤다.좋아.이제야 진짜 문서 쓴 손이 나온다.김다온은 말이 없었다.하지만 시선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이제 윤정훈은자르거나 밀어붙일 대상이 아니라입 열리기 직전의 증거였다.이다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름.”짧다.윤정훈의 입이 잠깐 다물렸다.
표실 문이 열렸다.윤정훈은 급하지 않게 들어왔다. 검은 정장. 흐트러짐 없는 넥타이. 손에는 얇은 서류 파일 하나. 얼굴은 지나치게 단정했다. 방금 자기 이름이 침투자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처럼.좋아.저 표정이면 두 가지다.진짜 모르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밀고 들어오는 거다.근데 지금은 후자다.이다정은 앉지 않았다. 회의 테이블 끝에 기대 선 채 윤정훈을 봤다. 김다온은 한 발 옆, 조금 앞에 섰다. 정유리는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지만 손은 이미 녹화 버튼 위였다. 그리고 벽 쪽. 김다온에게 제압된 남자는 입을 다문 채 바닥 가까이에 눌린 상태였다.윤정훈 시선이 그 남자에게 닿았다.정말 짧게.좋아.모르는 얼굴은 아니네.그 짧은 흔들림 하나면 충분했다.“대표님.”
대표실 문손잡이가 아주 천천히 돌아갔다.철컥.아주 작은 소리였는데, 방 안 공기가 한순간에 식었다.김다온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반 걸음.아니.거의 동시에.김다온의 몸이 이다정 앞을 막았다.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사람처럼.좋아.이 정도면 설명 필요 없다.누가 들어오든, 먼저 저 사람을 지나야 한다는 뜻이다.이다정은 숨을 죽이지 않았다.그럴 필요 없었다.시선만 문에 고정했다.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틈.
정적.방 안 공기가 순간적으로 식었다.좋아.그것까지 봤네.그럼저쪽은 이미내 약점이 아니라김다온을 흔들 지
창고 안은 아직 총 냄새가 남아 있었다.금속 냄새.깨진 유리.짧게 끊긴 숨들.이다정은 송민철 앞에 섰다.바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남자.입가에는 피.눈은 아직 살아 있었다.
주차장은 늦은 밤 특유의 냄새로 가득했다. 식어가는 엔진 열기. 눅눅한 콘크리트. 멀리서 한 번씩 울리는 차단기 소리.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천장 조명 몇 개가 간헐적으로 깜빡였고, 그 아래로 긴 그림자만 바닥에 눕고 있었다.이다정은 차에서 내린 뒤 잠시 걸음을 늦췄다.오늘 하루가 길었다.
“예은아, 왜?”“또 뭐 말하려고?”이다정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황예은은 문을 닫자마자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딸깍.“이다정.”예은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기사 뭐야.”그 말에 이다정의 펜 끝이 잠깐 멈췄다.“아침에 봤는데.”예은은 일부러 천천히 말을 끌었다.“너무 잘생겼는데?”이다정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그거 말하려고 들어왔어?”“지금 회사야.”그러자 예은이 어깨를 으쓱했다.“회사 이전에—”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이다정 책상 모서리에 엉덩이를 걸쳤다.“우리 초등학교 때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