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아마 약재인 듯싶습니다.”소 대장은 한참을 더 살펴본 뒤에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소항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약재를 찾아와서 무엇에 쓰려는 걸까?”소 대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저들 중에 딱히 다친 사람은 없지 않았습니다.”“뇌경을 지날 때 호랑이를 잡지 않았느냐. 그때 상처라도 입은 것일까?”“그건 소인도 알 길이 없습니다. 소인이 갔을 때는 이미 그들이 뇌경의 죽음의 구역을 벗어난 뒤였으니까요.”소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소 대장을 바라보며 약간의 의구심이 섞인 눈초리로 덧붙였다. “계속해서 예의주시하도록 해라.”“예, 대인. 명심하고 지켜보겠습니다.”“물러가거라.”“예.”소 대장이 물러간 뒤 소항이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을 때, 두 남녀는 아까의 애틋함은 조금 지운 채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객주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소항은 그 모습을 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소 장군의 눈을 피하려는 속셈이리라.'과연 정이 깊은 연인들이로군.'한편, 소우연과 용강한이 이층으로 올라올 때 소 대장이 마치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그들 앞을 막아섰다. 그는 두 사람에게 정중히 읍하며 용강한의 손에 들린 약초를 보고는 짐짓 놀란 척 물었다.“어이쿠, 이것은 무엇입니까?”“약초니라.”용강한이 짧게 답했다.“이 대인께서 약초를 다 아십니까?”용강한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소우연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니라… 수미가 의술을 조금 안다.”소 대장은 무척 놀란 표정으로 소우연을 쳐다보았다. “부인께서 의술을 하실 줄 아십니까! 이 약재들은 대체 어디에 쓰는 것입니까?”“흉터를 없애는 데 쓰는 것이네.”“흉터요?”소 대장은 허허 웃으며 되물었다. “혹시 일행 중에 다친 분이라도 계신 것입니까? 계주부에 도착하면 관저의 의원에게 보이도록 조처하겠습니다.”“그리 큰 상처는 아니니 의원까지 부를 필요는 없다. 우리끼리 약초를 좀 쓰면 될 일이야.”소우연이 고마움을 담아 한마디 거들었다. 소 대장은 고개를 끄덕
“아마 소 대장이 돌아가 보고를 마쳤을 터이니, 우리도 이제 약초를 좀 챙겨서 돌아가야겠구나.”용강한의 말에 소우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약초라니요? 무슨 약초를 찾는단 말인가요?”“흉터를 없애는 약이다. 특히 거머리에게 피를 빨린 뒤에 남는 자국에 듣는 것들 위주로 말이다.”말을 마친 용강한이 소매를 걷어 올리자, 그의 백옥같이 하얀 팔이 드러났다. 그 팔에 남은 선명한 흉터를 본 소우연은 깜짝 놀라 눈을 커다랗게 떴다. “대체 언제 생긴 상처예요? 겨울에는 거머리가 활동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요?”“작정하고 찾으면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는 법이지.”소우연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 그때 일부러 상처를 낸 건가요?”“음.”“대체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거예요?”용강한은 아스라이 저무는 하늘가로 시선을 던지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내 마음속에 다 계산이 있으니, 지금은 다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해해 주면 안되겠느냐.”소우연은 못 말리겠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앞날을 내다보는 사부님의 식견이야 익히 알지만, 제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일을 꾸미다니.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약초를 찾아서 상처를 치료하겠다는 뜻인가요?”“그렇지.”“누가 치료하는데요? 오라버니 스스로 할 건가요, 아니면 제가?”용강한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다. “듣기로 소항은 기개가 남다른 사내라더구나. 그의 부인이 용모를 잃었음에도 변치 않는 애정을 쏟는 사랑꾼이라 하니, 부인의 상처를 돌볼 사람은 아무래도 여인인 네가 적임자일 듯싶구나.”소우연이 제 코끝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그럼 제가 하면 되겠네요.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움직이면 의심을 사지 않을까요?”“그럴 리 있겠느냐. 네 친가는 전조의 어의를 지낸 집안이고 대대로 의술을 이어온 가문인데, 네가 의술을 펼치는 것이 무엇이 이상하겠느냐?”소우연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긴,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그럼 제가 서방님의 상처를 정성
소우연은 한참 동안 용강한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역시나 벅차오르는 감동이었다.“어찌 그리 나를 보느냐?”용강한이 묻자 소우연이 대답했다. “오라버니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요.”“허?”용강한은 자신이 대체 어디가 그리 좋은지 모르겠다는 듯 짐짓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가 그리 좋다는 것이냐?”“어디랄 것도 없이 전부 다요. 저에게도 잘해주시고, 제 아이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잖아요.”심지어 그는 이육진에게조차 무척 호의적이었다. 용강한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며 물었다. “연아, 내게 감동하였느냐?”소우연이 웃으며 확답을 피하자, 용강한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영이와 천이, 그리고 진이까지 모두 네 아이들 아니냐. 내 눈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 자식들이나 다름없었다.”소우연은 짐짓 입술을 내밀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오라버니에게 아이를 더 낳아주지 못한 게 참 아쉽네요.”용강한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웃음이 번졌다. “그럼 지금이라도 하나 더 낳아보는 건 어떻겠느냐?”“……”소우연은 할 말을 잃었다. 내 나이가 몇인데 지금 아이를 낳으란 말인가. 자칫하면 '늙은 조개가 진주를 품었다'는 비웃음이나 사기 딱 좋은 일이었다.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던 용강한은 이내 픽 웃음을 터뜨리며 다정하게 그녀의 뺨을 꼬집었다. “농담이다.”“아주 안 될 것도 없죠.”소우연이 불쑥 대답했다. 용강한을 위해 아이를 낳는 것이 결코 못 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하지만 이 문제는 오라버니가 폐하와 먼저 상의하셔야 해요.”“……”이번엔 용강한의 말문이 막혔다.“어때요?”소우연이 고개를 까딱이며 묻자, 용강한은 허탈한 듯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좋아요. 제 몸이 아직 튼튼해서 낳을 수 있을 때 서두르셔야 해요.”“그래, 그러마.”용강한은 그녀의 말을 하나하나 받아주었다. 하지만 그가
주익선은 수건을 받아 들고는, 고생하는 이진을 진심으로 아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항은 딱히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만약 주익선이 이토록 여인에게 빠져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면, 도리어 의심을 품었을 터였다.만찬이 끝난 후.이육진은 일부러 소항을 붙잡고 담소를 더 나누었고, 용강한은 먼저 작별을 고하며 자리를 떴다. 소우연과 이진, 주익선 역시 적당한 핑계를 대고 그 뒤를 따랐다.사람들이 방을 나가자, 소 대장은 말없이 그들의 뒤를 밟았다. 그는 소우연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거리를 두고 추격하기 시작했다.비교적 번화하고 진창인 거리를 가로지른 뒤, 소 대장은 소우연이 만두 가게 옆 작은 길로 접어드는 것을 포착했다. 그 가게 뒤편으로는 울창한 숲이 이어져 있었다.소 대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 부인은 제 남편을 찾아가는 것이 분명하군!'소 대인의 추측은 역시나 정확했다. 여인 하나가 저 강인한 두 남자를 묶어두고 있으니,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두 사람 모두 소 대인의 수하로 부릴 수 있을 터였다.소 대장은 계속해서 거리를 좁혔다. 마침내 소우연과 용강한이 서로를 껴안는 장면을 목격한 그는, 한동안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그제야 자리를 떴다.영남 일대의 겨울은 세밑이 다가왔음에도 숲속에 여전히 푸른 기운이 가득했다. 소우연은 용강한의 품에 안긴 채 나직이 물었다.“아직 안 갔나요?”용강한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소우연이 먼저 안겨 오는데, 그가 어찌 쉽게 놓아주고 싶겠는가.“아직이다.”잠시 말을 멈춘 그가 짐짓 진지하게 물었다. “우리가 너무 밋밋한 것 같구나? 그러다간 절절한 소꿉친구 사이를 의심받을지도 모르겠구나.”“이보다 더 어떻게 격렬해야 하는데요?”벌써 한참이나 안고 있는데 말이다.용강한은 그녀를 살짝 밀어내더니 소우연의 붉은 입술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엔 진심 어린 탐구심이 서려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헤어졌다 다시 만난 사이니, 응당
소 대장이 호쾌하게 웃으며 주익선을 향해 포권을 해 보였다. “오늘 대인들께서 이리 즐거워하시니, 우리도 사력을 다해 비무를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소항도 거들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좋겠구나. 실력을 숨기지 말고 붙어보거라.”주익선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었으나 속으로는 냉소했다. 비무는 무슨.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다. 일행의 무공 수로를 파악해 자신들이 정말 쓸 만한 인재인지 시험해 보려는 의도가 명백했다.주익선은 포권을 하며 소 대장을 향해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저도 전력을 다할 터이니, 소 대장께서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주익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내의 공기가 순식간에 팽팽하게 얼어붙었다. 소 대장의 눈에 날카로운 광채가 스쳤다. 그는 긴 말 대신 주먹을 맞대어 보이며 낮게 읊조렸다. “시원시원해서 좋군요. 자, 들어 오십시오!”두 사람은 동시에 세 걸음씩 뒤로 물러나 각자의 기세를 잡았다. 소 대장은 허리를 낮추고 기마자세를 취하며 양주먹을 앞뒤로 두었다. 공격과 수비가 모두 용이한 자태에서 형체 없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주익선은 서두르지 않고 소매를 걷어붙인 채, 소 대장과 똑같은 동작을 취하며 산처럼 요지부동의 자세를 유지했다.그 모습에 소 대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기합을 내질렀다. “받으시지요!”발밑의 목판 바닥이 굉음을 낼 정도로 강하게 땅을 박찬 소 대장이 굶주린 호랑이처럼 달려들었다. 그의 주먹이 주익선의 안면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들었다. 주익선의 눈동자는 맑고 고요했다. 주먹이 코끝 한 치 앞까지 다가왔을 때야 그는 전광석화처럼 몸을 비틀어 피함과 동시에 소 대장의 발등을 강하게 짓밟았다.“윽!”소 대장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허공을 가른 자신의 주먹을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이 사내가 어떻게 피했는지, 또 어느 틈에 자신의 발을 밟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수로를 파악하려 했건만, 주익선의 무공은 스승이 누구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
“허허, 저희 대인께서 직접 나서셨으니 소 장군께서도 응낙할 수밖에요. 보름 뒤에 정말 사람을 돌려보내는지 지켜보시지요.”“알겠네, 알겠어.”용강한은 소 대장이 건네준 옷을 받아 들었다. “고맙네.”소 대장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새 옷에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 죄수복은 이제 던져버리시지요. 이곳에 죄수란 없습니다. 여기서 죄를 짓지 않는 한 말입니다.”“그렇군. 일러주어 고맙네.”소 대장은 만족스러운 듯 자리를 떴다. 용강한은 손에 든 옷을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아까 하인이 미리 따뜻한 물을 가져다주더라니. 그는 상운 무늬가 새겨진 백의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백의와는 참으로 인연이 깊었다.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소 대장은 먼저 용강한을 청한 뒤, 이어 이육진과 소우연, 그리고 주익선과 이진 등을 객방으로 안내해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진우정 일행은 아갑과 아을이 호위병들과 함께 대당에서 대접하도록 조치했다.“소 대인을 뵙습니다.”소우연, 이육진, 용강한, 주익선, 이진 일행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소항을 향해 포권을 하며 예를 갖췄다.“모두 예우를 갖추실 것 없습니다. 어서 자리에 앉으시지요.”“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대인.”소항은 자신을 깍듯이 대하는 이들의 태도를 보며 속으로 무척 흡족해했다. 이들이 본래 풍기던 범상치 않은 기세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모두가 자리에 앉자 이육진과 용강한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용강한은 짐짓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이육진은 대놓고 그를 노려보며 비아냥거렸다.“과연, 시운이 따르나봅니다. 이 대인은 이곳 영남에 와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시니 말입니다.”용강한이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과찬이십니다. 덕분에 운 좋게 여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지 않소이까.”말을 마친 용강한이 소항을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물론, 소 대인 같은 영웅을 만난 것이 제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입니다.”“이리 된 거,
아달은 떨리는 손으로 품속을 더듬어 무언가를 꺼냈다.“도련님… 이 부적은 연희 아씨께서 늘 꽂고 다니시던 백옥 도화 비녀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부적은… 반드시 천왕전하의 것이 틀림없습니다!”경장명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그는 아달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달빛만이 마당을 비추고 있었고, 피투성이로 얻어맞은 아달의 얼굴과 그의 손에 덜덜 떨리며 들린 부적, 그리고 감겨 있는 머리카락이 어렴풋이 드러났다.“무슨… 소리냐?”아달은 그제야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토해냈다.“이 부적에 감긴 머리카락은 아씨 비녀에서
황제가 남녀평등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방의 관학에서는 여전히 여학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심지어 일부 지방에서는 여학사를 들이는 조건으로 얻은 자원을 몰래 남학사들에게 사용하기도 했다.상주서를 읽던 이천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아무래도 올해 가을에 열릴 향시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았다.남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과거 시험을 목표로 학문을 갈고 닦았는데 이와 반대로 여인들은 대부분 이제 막 공부를 제대로 시작한 사람이 많았다.때문에 남자들의 승산이 클 수밖에 없다.이 중에서 유일하게 승산이
이영이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오라버니, 누군가를 희생양 삼으려 하시는 거군요.”“네.”“심국공부에서 올린 상소문은 보셨습니까?” 이천이 다시 물었다.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예상한 대로였습니다. 그 자들이 여인을 마음껏 뛰어놀게 놔둘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 눈에는 여인은 그저 종족을 이어가는 도구일 뿐이지요.”“백 년, 천 년이 흘러도, 누가 조상 운운하며 따질 리 있겠습니까.”이천은 옅은 미소를 머금고 찻잔을 들어 한 모금 삼킨 뒤, 수레 옆 발을 젖혀 번화한 장터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이 이치를 끝내
심연희도 마다하지 않고 발그레한 얼굴로 다과를 하나 들고는 입에 넣자마자 감탄했다.“저하 오라버니께서 드시는 간식은 참 맛있습니다.”이천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조금 전에 보고 있던 책을 다시 손에 들었다.이에 심연희가 다시 말을 걸었다.“혹시 궐에서 보내온 간식입니까?”“그렇소.”“역시, 그래서 맛이 다른 거였습니다. 맛이 아주 특별합니다.”심연희는 이천이 책을 읽든 말든, 책이 머릿속에 들어올 수 있든 말든, 헤헤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저하 오라버니, 앞으로 간식 먹으러 가주 찾아와도 되겠습니까?”“유언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