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수영장의 온도는 늘 미지근했다.
락스 냄새가 밴 공기와 끊임없이 철퍽이는 물소리.
권지혁의 십 대는 그 단조로운 소음 속에 잠겨 있었다.물속에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시끄러운 것들이 단번에 지워졌다.
숨을 참는 동안 들리는 건 제 심장박동뿐이었다. 지혁은 그 서늘한 고요가 좋았다.중학교 2학년, 그 시끄러운 여자애가 제 궤도에 침입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야, 너 수영 진짜 잘한다!”
체육관 구석에서 홀로 흙이 묻은 신발 끈을 묶고 있던 지혁에게 다짜고짜 말을 걸어온 것은 이주아였다.
낯가림이 심하고 무뚝뚝하던 소년의 세계에서 주아는 지나치게 선명했다.남들은 무서워하는 지혁의 서늘한 눈빛에도 주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주아는 매일 방과 후 수영장 관중석 맨 앞줄에 턱을 괸 채 앉아 지혁의 훈련을 구경했다.수영모를 눌러쓰고
“생각 중이잖아.”“소개팅 자리에서도 그렇게 오래 생각하게?”“야, 그때는 네가 아니니까…….”말이 끊겼다. 지혁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에 머물렀다가 다시 올라왔다.“피하고 싶으면 피해.”농담기가 전혀 없는 말이었다.“지금 네가 고개 돌리면 여기서 끝낼게.”지혁은 제발 피하지 말아 달라고, 15년 동안 쌓아 올린 이 비겁한 경계를 제발 네 손으로 부수어 달라고, 속으로 몇 번이고 절규했다. 주아의 떨리는 숨결이 지혁의 입술 가장자리에 스칠 때마다 이성의 끈이 한 가닥씩 끊어져 나갔다.마침내 주아가 고개를 들었다.“안 피할게.”지혁의 턱이 아주 조금 굳었다.“무슨 뜻인지 알고 말해.”“알아.”이번에는 주아가 먼저 거리를 줄였다. 크지 않은 움직임이었지만 충분한 대답이었다.지혁의 입술이 닿았다. 처음은 확인에 가까웠다. 짧게 닿았다가 떨어진 입술이 다시 내려오기 전까지, 지혁은 주아의 표정을 살폈다. 주아는 눈을 뜬 채 그를 보고 있었다. 주아가 잡힌 손을 빼는 대신 지혁의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두 번째 입맞춤은 전혀 달랐다. 지혁은 자신이 참아온 것을 실수처럼 조금 흘려보냈다. 다른 손으로 주아의 뺨을 빈틈없이 감싸 쥐고, 입술을 느리게 겹쳐 물었다.친한 친구의 체온이라고 부르기에는 낯설고, 처음 겪는 키스라고 하기에는 이상할 만큼 익숙했다. 주아가 숨을 고르려 고개를 움직이자 지혁은 바로 숨 쉴 틈을 내줬다.“괜찮아?”거칠어진 건 목소리뿐이었다. 손은 여전히 주아가 벗어날 수 있을 만큼 느슨했다. 주아는 답하는 대신 잡힌 손을 놓지 않았다. 지혁의 시선이 제 입술을 스치는 것을 보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그 허락에
15년 동안 주아의 곁에 가장 가까운 남자로 존재해 왔던 영광의 시간이, 오늘 밤 저 낯선 남자의 정중한 에스코트 한 번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갈증이 치솟았다. 주아의 손을 잡고 싶다. 주아의 목덜미를 끌어당겨 입을 맞추고 싶다. 15년 동안 머릿속으로만 수만 번 넘게 반복해 왔던 욕망들이 마침내 고개를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하아.”지혁은 핸들을 가볍게 내리치며 마른 침을 삼켰다. 차 내부의 창문을 완전히 내리자 차가운 봄바람이 밀려왔지만, 가슴속의 갈증은 오히려 더 깊어질 뿐이었다.지혁은 주아가 식당 문을 열고 다시 걸어 나오는 순간까지, 그 자리에 시동을 건 채 하염없이 정차해 있었다.***그날 밤 10시가 넘은 시간, 집에 돌아온 주아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지혁의 인내심의 마지막 가닥을 끊어놓았다.“손도 잡았어.”마우스를 쥔 지혁의 손등 위로 힘줄이 거칠게 솟구쳤다. 화면 속 회원 일정표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주아의 작은 손을 최민석이 쥐고 걷는 장면이 끊임없이 겹치며 지혁의 속을 짓이기고 있었다.“그게 제대로 잡은 것 같아?”“손잡기에 제대로가 어디 있어.”“있어. 와 봐.”지혁은 소파 빈 자리를 탁탁 두드리며 주아를 옆자리로 불러 앉혔다.주아가 어색한 걸음으로 걸어와 지혁의 옆에 앉는 순간, 두 사람의 무릎 사이에는 손 하나 들어갈 틈조차 없이 밀착되었다. 정장 셔츠 아래로 느껴지는 지혁의 뜨거운 체온과 묵직한 호흡이 주아의 쇄골 위로 여과 없이 떨어졌다.“손 줘.”주아가 오른손을 내밀자 지혁은 바로 잡지 않았다.“네가 싫으면 여기서 끝내.”“갑자기 뭘 그렇게 진지하게 말해
소개팅 당일 토요일 오후였다. 지혁은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주아에게 다가갔다. 주아는 소파 위에 옷 세 벌을 펼쳐놓고 고민하고 있었다.“골라 줘.”지혁은 소파 등받이에 한 팔을 얹고 옷을 살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연한 청록색 원피스였다. 단정하면서도 주아의 맑은 피부 톤을 가장 잘 살려줄 수 있는 옷. 동시에, 다른 남자에게 보여주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다워 제 방구석에만 숨겨두고 싶은 옷이기도 했다.“이게 제일 너 같아.”“나 같다는 게 뭔데.”“깔끔한데 재미없진 않은 거.”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온 주아를 마주했을 때, 지혁은 순간 말을 잃었다.가녀린 쇄골 라인이 단정하게 드러나고, 무릎 아래까지 부드럽게 흐르는 청록색 치맛자락. 평소 목이 늘어난 단체 티셔츠만 입고 제 집안을 활보하던 ‘여사친’ 이주아가 아니라, 한 명의 아름다운 ‘여성’이 거실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이상해?”“아니.”“그럼 왜 그렇게 봐.”“잘 어울려서.”짧은 대답 뒤에 시선이 너무 오래 머물렀다. 정장 재킷을 걸치는 지혁의 손끝이 어딘지 모르게 굳어 있었다.“야, 이것 좀 해 줘.”주아가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쓸어 넘기며 얇은 목걸이를 내밀었다.지혁은 침을 삼키며 주아의 뒤로 다가섰다. 거울 속에 두 사람이 겹쳤다. 지혁의 큰 체구 아래로 주아의 작은 어깨가 꼭 맞게 가려져 있었다.목걸이 고리를 잠그기 위해 손가락을 뻗었을 때, 지혁의 거친 손가락 끝이 주아의 목덜미 아래 부드럽고 따뜻한 피부에 가볍게 스쳤다. 주아의 어깨가 움찔하며 굳어지는 것이 지혁의 손가락 끝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가만있어.”“
주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깨 수술은 마쳤지만, 다시는 선수로서 이전의 기량을 회복할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진 상태였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 모든 것을 바쳐온 수영이 끝났다는 선고였다.지혁은 병원 침대 위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찾아오는 감독과 동료들에게 가라고 손짓만 했다. 세상을 향해 날을 세우고 침묵 속에 처박힌 지혁의 곁을 묵묵히 지킨 건 주아뿐이었다.“너 안 바쁘냐? 내 병실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제발 네 갈 길 가라.”“나 엄청 바쁘거든? 매일 야근에 기획서 까이느라 머리 터질 것 같아. 근데 너 여기서 이 난리 피우는 거 감시하러 오는 거야, 인마.”주아는 지혁이 침묵하면 더 오래 곁에 앉아 있었고, 그가 성질을 부려도 말없이 물건들을 주워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주말도 없이 8개월 동안 지혁의 병실을 지키며, 주아는 지혁의 다친 어깨에 얼음주머니를 대주고 굳은 어깨 근육을 제 작은 손으로 꾹꾹 눌러주었다.어느 깊은 밤, 주아가 보조 침대에 엎드려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때였다. 지혁은 타들어 가는 오른쪽 어깨를 간신히 움직여 침대 밑에 놓인 낡은 수영 가방을 끌어당겼다.지퍼를 열자 가방 앞주머니 구석에서 먼지와 동전 틈에 섞여 있던 낡은 파란 실팔찌가 만져졌다. 손금 사이에 스치는 거친 실의 감촉을 느끼며, 지혁은 소리 없이 숨을 삼켰다.‘아직 내 손끝에 물기가 남아 있을 때, 내가 이 아이 곁에 영원한 친구로라도 서 있으려면…… 나는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야 한다.’지혁에게 주아는 단순한 친구가 아니었다. 수영이라는 삶의 유일한 빛을 잃고 끝없는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던 스물두 살의 소년을 수면 위로 억지로 끌어올려 숨을 쉬게 만든 구원자였다.주아가 챙겨주는 사소한 밥 한 끼의 온기, 그녀가 흘리는 시시콜콜한 일
수영장의 온도는 늘 미지근했다.락스 냄새가 밴 공기와 끊임없이 철퍽이는 물소리. 권지혁의 십 대는 그 단조로운 소음 속에 잠겨 있었다.물속에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시끄러운 것들이 단번에 지워졌다. 숨을 참는 동안 들리는 건 제 심장박동뿐이었다. 지혁은 그 서늘한 고요가 좋았다.중학교 2학년, 그 시끄러운 여자애가 제 궤도에 침입하기 전까지는 그랬다.“야, 너 수영 진짜 잘한다!”체육관 구석에서 홀로 흙이 묻은 신발 끈을 묶고 있던 지혁에게 다짜고짜 말을 걸어온 것은 이주아였다. 낯가림이 심하고 무뚝뚝하던 소년의 세계에서 주아는 지나치게 선명했다.남들은 무서워하는 지혁의 서늘한 눈빛에도 주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주아는 매일 방과 후 수영장 관중석 맨 앞줄에 턱을 괸 채 앉아 지혁의 훈련을 구경했다.수영모를 눌러쓰고 수영복 한 장만 걸친 채 숨을 헐떡이는 지혁을 보며 주아는 잘도 웃었다.“야, 너 수영복 진짜 작아 보인다. 엉덩이 안 껴?”“……대회용이야, 바보야.”귀가 벌개져서 물속으로 다시 뛰어드는 소년을 보며 주아는 관중석을 뛰어다녔다. 소년에게 수영 레인 너머의 다른 것을 보게 만든 첫 번째 균열이었다.고등학교 1학년, 첫 전국대회를 앞둔 여름날이었다. 경기장에 함께 갈 수 없게 된 주아는 지혁을 찾아와 엉성한 실팔찌를 내밀었다.문구점에서 산 파란 실과 구슬로 서툰 솜씨로 꼰 물건이었다. 자세히 보니 가운데 하얀 플라스틱 구슬 하나가 한 칸 툭 튀어나와 있었다.지혁은 제 손바닥 위에 놓인 엉성한 실뭉치를 내려다보았다.“이게 뭔데.”“부적이야, 부적. 너 또 혼자 덜덜 떨면서 속 썩이고 있을까 봐 만들었지.”“유치하게 이런 걸 왜 차고
고등학교 1학년, 지혁의 첫 전국대회를 앞두고 주아가 문구점 실과 구슬로 엉성하게 만든 물건이었다. 물속에서는 방해된다며 그의 수영 가방 안쪽에 직접 넣어 줬다.“이걸 케이스에 넣어 뒀네.”“더 해질까 봐.”“이제 갖고 있는 거 숨길 생각도 없고?”“숨긴 적은 없어. 네가 잊었지.”주아는 케이스를 받아 들었다. 1년 전 자신이 낡은 수영 가방 앞주머니에 다시 넣어 둔 팔찌였다.“그때 네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버리면 절교라고 했지.”“그다음.”오래된 대화가 뒤늦게 돌아왔다.가방에 팔찌를 넣어 준 주아는 오래 갖고 있으라며 당연하다는 듯 덧붙였다.친구는 평생 가는 거니까.“기억나.”“나는 그 말 듣고 고백 못 했어.”“왜?”“평생 친구로만 있으라는 말인 줄 알았으니까.”“내가 언제 ‘만’이라고 했어.”“열여섯 살한테 그걸 구분하라고?”주아가 웃자 지혁도 따라 웃었다. 그러고는 주아 손에 있던 케이스를 닫아 옆자리에 내려놓았다.“주아야.”웃음기가 사라진 목소리에 주아는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지혁이 운동 가방의 다른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화려한 장식도, 준비된 음악도 없었다. 물 위로 희게 부서지는 조명 아래 지혁이 주아 앞에 섰다.“네가 1년 뒤에 얘기하라고 했잖아. 하루도 안 당겼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