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대답이 없었다.
무겁기만 했다.
그의 집 안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잠깐 멈칫했다.
넓고 깔끔한 거실. 간결하지만 하나하나 값이 나가는 가구들.
조명이 꺼진 채로도 어딘지 단단하고 정돈된 느낌.
이 남자가 사는 공간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저기 소파에 뉘면 되겠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그를 소파 쪽으로 이끌었다.
겨우겨우 데려가 몸을 기울이는 순간—
그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나도 함께 쏠렸다.
쿵.
그의 몸 위로 내가 넘어지고 말았다.
심장이 쿵쾅 뛰었다.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려는데, 그의 팔이 갑자기 내 허리를 감쌌다.
"가지 마…"
낮고 잠긴 목소리였다.
술에 절어 있으면서도, 어딘지 간절한.
"이대로… 이대로 잠깐만 있어줘."
'이봐요! 나 지금 남자라고요!'
나는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려 했다.
그런데 허리를 두른 팔에 오히려 힘이 더 실렸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제발… 나 혼자 있기 싫어."
그 목소리에 나는 순간 굳어버렸다.
카메라 앞에서 능청스럽게 웃고, 어디서든 중심을 잃지 않던 그 남자가 아니었다.
지금 내 품에 기대어 있는 건, 그냥 지치고 외로운 사람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최대한 이성을 붙잡았다.
"저… 저 유혁입니다. 탐정이요. 이솔 씨 불러드릴까요?"
"아니."
단호했다.
"너. 너 이대로 있어."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러더니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초점이 흐린 눈이 나를 향했다.
가늘게 떠진 눈꺼풀 사이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간절해서—나는 숨을 참았다.
그의 손이 천천히 올라왔다.
내 뺨을 가만히 쓸었다.
"채령… 가지 마. 제발."
그 순간, 두근거리던 심장이 뚝— 멈추는 것 같았다.
채령?
나는 굳어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차갑게, 현실이 돌아왔다.
그렇지.
그렇지, 그렇지.
이 남자.
수많은 여자를 울렸다는 소문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지금 내 얼굴을 보면서 다른 여자 이름을 부르고 있잖아.
채령이 누군지는 몰라도—이 남자한테 나는 그냥, 마침 옆에 있었던 사람일 뿐이었다.
나는 표정이 싸늘하게 굳는 걸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이봐요, 차우석 씨. 많이 취하신 것 같으니까 저는—"
그런데 그가 내 팔을 낚아챘다.
"—!"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의 한 손이 내 허리를 감싸고—
그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었다.
욱.
이건 뭐야.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밀어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이 남자는 취했고, 나를 다른 여자로 착각하고 있고, 나는 탐정이고, 지금 이 상황은 말도 안 되고—
그런데도.
그의 키스가 깊어지는 순간, 나는 그만 힘이 빠지고 말았다.
깊고 애절한 키스였다.
간절함이 담긴,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한.
어딘지 슬프기까지 한.
나는 눈을 감았다.
짧은 순간이었는데, 아주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슴 한가운데가 아릿하게 저렸다.
그렇게 한참이 흘렀다.
이윽고 우석이 기절하듯 눈을 감았다.
나를 감싼 팔에서 힘이 빠졌다.
그리고 그 입술에서, 아주 낮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채령… 채령 가지 마. 절대… 내 곁에 있어. 나와 영원히…"
나는 한참 그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그 자리를 나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복도가 차가웠다.
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벽에 등을 기댔다.
그의 입술의 온도가 아직 내 입술에 남아 있었다.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손등으로 입술을 문질렀다.
"안 돼. 송희우, 정신 차려."
혼잣말이 복도에 퍼졌다.
"나를 전혀 기억도 못 하는 저 차우석을 잊으라고. 지금 당장."
그런데 쉽지 않았다.
그게 더 문제였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그의 목소리가 귓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채령 가지 마.'
나는 눈을 감았다.
내겐 감정에 흔들릴 여유 따윈 없다.
아버지는 사업 실패 후
50억이 넘는 빚을 남긴 채 과로로 돌아가셨다.
그 빚은 고스란히 나와 남동생에게 넘어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채권자들로 부터 전화가 왔고, 막 로펌에 발을 들인 막내 변호사였던 나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그러다 만난 게 전직 형사 출신인 채 사장이었다.
촬영 두 달째, 어느덧 이곳 생활에도 제법 익숙해져 있었다.작은 단역이었지만, 감독은 종종 내게 짧은 장면들을 더 맡겼다.대사가 한두 줄씩 늘어날 때마다, 나는 신기하게도 떨림보다 설렘이 더 커졌다.그날 아침, 나는 숙소에서 휴대폰을 확인하다가 낯선 발신자의 메일을 발견했다.[대한변호사협회] 징계위원회 심의 결과 통지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떨리는 손으로 메일을 열었다.내용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귀하의 행위는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있으나, 업무 수행 과정에서 의뢰인에게 실질적 피해를 끼친 정황이 확인되지 않고, 오히려 다수의 선행 사례가 인정됨에 따라— 자격 정지 대신 '견책' 처분으로 종결합니다."견책.자격 정지도, 취소도 아니었다.나는 몇 번이고 그 문장을 다시 확인했다.믿기지 않았다.거실에서 대본을 보던 우석이, 내 표정을 보고 다가왔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나는 말없이 휴대폰을 내밀었다.우석이 화면을 읽어 내려가더니, 곧 환하게 웃었다."희우야, 이거— 됐다는 거잖아!""네, 자격 유지된대요.""진짜
첫 촬영을 앞둔 전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서도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대본은 고작 세 줄짜리 단역이었다.그런데 그 세 줄을, 벌써 백 번은 넘게 읽은 것 같았다."이곳에 처음 왔을 때, 저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런데 지금은— 뭔가 달라진 게 느껴져요."단순한 대사인데도, 어떤 표정으로, 어떤 속도로 말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거울 앞에 서서 몇 번이나 연습을 해봤지만, 매번 다르게 들렸다."자, 오늘은 그만."우석이 방으로 들어와, 대본을 살며시 뺏듯이 가져갔다."아직 연습 더 해야 하는데.""이 이상 하면 오히려 다 외워버린 것처럼 어색해져. 내가 겪어봐서 알아."그가 침대에 걸터앉으며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나는 못 이기는 척 그 옆에 앉았다."떨려요?""완전요. 우석 씨는 데뷔할 때 안 떨렸어요?""떨렸지. 첫 촬영 때, 대사를 세 번이나 틀렸어. 그것도 딱 한 마디짜리였는데.""진짜요?""응. '이거 받아' 이 대사 하나를 세 번 NG 냈어. 감독님이 한숨 쉬시는데, 그게 그렇게 무섭더라고. 게다가 그날 스태프들이 다 쳐다보고 있어서, 얼굴이 화끈거려서 죽는 줄 알았어."그 이야기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우석 씨
며칠째 촬영장에 놀러 다니다 보니, 스태프들과도 제법 안면을 텄다.그날은, 우석의 상대역인 신인 배우가 유독 힘들어하는 날이었다."컷! 다시 갑시다. 감정이 안 살아요."감독이 답답한 듯 이마를 짚었다.신인 배우가 몇 번이고 같은 장면을 반복했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쉬는 시간, 그 배우가 대본을 손에 쥔 채 그늘에 앉아 한숨을 쉬는 게 보였다."많이 힘드시죠."내가 다가가 물었다."아, 네... 이 장면이 왜 이렇게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어떤 장면인데요?"배우가 대본을 보여줬다.이별을 앞둔 연인이 서로에게 화를 내다가, 결국 눈물을 터뜨리는 장면이었다."이 상황이, 화가 나는 건지 슬픈 건지 헷갈려서요."나는 잠시 대본을 들여다봤다."제 생각엔— 화를 내는 게 먼저가 아니라, 슬픔을 감추려고 화를 내는 걸로 접근하면 어떨까요? 진짜 감정은 슬픔인데, 그걸 들키기 싫어서 화로 포장하는 거죠.""아...""한번 해볼래요? 제가 상대역 대사 읽어드릴게요."배우가 반색하며 대본을 건넸다.나는 즉흥적으로 감정을 잡고, 대사를 읽기 시작했다.배우가 그 흐름을 따라오며, 조금씩 감정이 살아나는 게 느껴졌다.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배우의 눈
비행기가 착륙하고, 후덥지근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덥죠?"우석이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내 손을 잡았다."네, 그래도— 좋아요. 새로운 곳이라 그런지 설레요."숙소는 바닷가 근처, 작은 리조트였다.방에 짐을 풀자마자, 우석이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봐봐."창밖으로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에, 나는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우와...""마음에 들어?""네, 완전요."우석이 뒤에서 내 어깨를 감싸며, 함께 바다를 바라봤다."내일부터는 촬영 때문에 정신없을 텐데, 오늘은— 온전히 너랑 있는 날이야."그 말과 함께, 그가 목덜미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간지러워요.""그래서 더 하고 싶어지는데."능청스러운 그 말에, 나는 웃으며 그를 살짝 밀어냈다.저녁엔 근처 해변 식당에서 현지 음식을 먹었다.낯선 향신료 냄새가 나는 요리를 앞에 두고, 우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매울까 봐 걱정했는데, 괜찮아?"한 입 먹어보니, 예상보다 훨씬 맛있었다."완전 맛있어요! 이거 봐요, 이것도 먹어봐요."
강원도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 우석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희우야,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어디를요?""동남아. 촬영지."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저는— 촬영에 방해만 될 텐데요.""방해라니. 나는 오히려, 너 없이 혼자 6개월을 버틸 자신이 없어."우석이 핸들을 잡은 채로 나를 흘끗 봤다."게다가 지금 한국에서, 너도 너무 힘들잖아. 사무실도, 변호사 자격 문제도— 당분간은 좀 떨어져서 숨 돌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어."그 말에,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그런데 사무실은 어떡하고요. 미선 씨도 있고, 진행 중인 사건들도 있는데.""미선 씨한테 당분간 맡기고, 급한 사건은 다른 변호사한테 인계하면 안 될까? 6개월 정도— 잠깐 숨 돌리는 셈 치고."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사실, 요즘 사무실에 나가는 것도 점점 힘겨워지고 있었다.어딜 가나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붙었고, 의뢰인들도 하나둘 눈치를 보며 발길을 끊었다."...변호사 자격 징계위원회는 어떡해요?""그건 국내에 있든 없든, 위원회 일정대로 진행될 거야. 오히려 잠깐 자리를 비우는 게, 여론이 가라앉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어."일리 있는 말이었다.
새벽 버스에 몸을 실었다.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서울의 불빛들을, 나는 멍하니 바라봤다.이렇게 도망치듯 떠나는 게, 벌써 몇 번째인지.그런데 이번엔, 정말 마지막이어야 했다.우석이 해외에서 마음 편히 활동할 수 있도록, 나는 여기서— 그와 완전히 분리된 삶을 시작해야 했다.버스가 강원도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아려왔다.6년 전, 이곳에서 시작된 인연이었다.그런데 이제 그 인연을, 이곳에서 끝내려 하고 있었다.채사장이 알려준 사무실은, 예전 시설 근처의 작은 상가 건물이었다.버스에서 내려 걷는데,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렸다.우석의 이름이 화면 가득 떴다.받을 수 없었다.받으면, 분명 마음이 흔들릴 거였다.나는 휴대폰을 가방 깊숙이 넣고, 발걸음을 재촉했다.사무실 앞에 도착해, 은퇴를 앞둔 변호사와 인사를 나눴다."이렇게 갑자기 오실 줄 몰랐네요. 채사장님한테 얘기는 들었습니다.""잘 부탁드립니다."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마음이 텅 빈 것 같았다.새로운 시작이라는 게, 이렇게 공허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계약서에 서명을 하려는데, 손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