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쏟아져 내리는 사람들 사이로 언뜻 이태처럼 보이는 남자가 스쳐 지나갔다. 시아는 이를 악물고 그를 뒤쫓아 달려 나갔다.“이태 씨!”손까지 흔들며 자신을 보라고 방방 뛰어도 남자는 돌아보지 않았다. 시아가 숨이 턱까지 차올라 자리에 멈춰 서서 남자를 본 순간, 그의 옆모습은 이태가 아니었다. 허탈함에 근처 벤치로 가 앉았다.‘애도 아닌데 거기서 기다리고 있겠지.’시아가 터덜터덜 쓸려왔던 길을 걸어서 다시 올라갔다. 시아가 지키고 있던 벤치의 가방들이 사라져 있었다. 당황한 그녀가 근처로 가 벤치 밑을 살피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헛웃음을 삼켰다.허리에 손을 얹고 일행이 갈 만한 곳을 생각했다. 지금쯤 슬슬 무언가 먹고 싶지 않을까 싶어서 발걸음을 식당가로 옮겼다. 생각보다 거리가 길어서 다리가 아파왔다. 사람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며 신경 쓰다 보니 금방 지쳤다. 벤치로 가서 다시 앉아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미아보호소로 가야겠다.’시아는 방송을 해서 불러내야겠다 싶어서 미아보호소를 찾기 시작했다. 이 나이에 미아가 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터덜거리며 걷고 있는 시아를 누군가 뒤에서 껴안았다.“대리님!”도윤이었다. 땀이 범벅이 된 그가 숨을 몰아쉬며 시아를 안고 있었다. 시아가 반가워서 환하게 미소 지으며 도윤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걱정했잖아요!”도윤은 약간 화가 난 것 같기도 했고, 안도한 것 같기도 했다. 그는 곧장 핸드폰으로 어딘가 전화를 걸고는 근처에 자리 잡아 시아를 앉혔다.멀리서 이태가 뛰어오고 있었다. 굉장히 흐트러진 모습으로 다급함을 머금은 얼굴이 시아의 마음 한구석에서 왠지 모를 흐뭇함을 피어오르게 만들었다.“시아 씨!”그의 얼굴과 머리카락도 다 땀에 젖어 헉헉거리고 있었다. 곧이어 주여와 예리가 나타났다. 모두가 시아를 걱정하면서도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시아가 퍼레이드에 휘말려서 그런 거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모두가 입을 모아 시아에게 걱정했다고 투덜댔다.오랜만에 피어난 몽글한 감정에 시아가 고개를
시아의 몸이 휘청이자 도윤이 재빨리 예리를 벽에 붙여 놓고 시아의 허리를 잡아채었다.“대리님! 위험해요!”도윤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린 시아가 멍하니 이태를 쳐다보고 있었다. 예리가 입술을 물며 스케이트를 자연스럽게 타고 시아에게 다가왔다.“신 대리님 괜찮아예?”시아가 정신을 차리고 예리를 쳐다보았다.“한 과장님? 못 타신다면서요?”예리가 배시시 웃었다. 도윤이 허탈해서 헛웃음을 흘렸다. 뒤에서 엉거주춤 일어난 이태와 주여가 도윤에게 다가왔다. 이태가 시아의 몸을 훑으며 다친 곳이 없는지 살폈다. 정작 이태의 엉덩이에는 얼음 조각이 붙어 있었다. 시아가 웃으며 이태의 엉덩이를 털어주었다.“신시아!”이태가 화들짝 놀라서 시아의 손을 잡아채었다.“제가 하겠습니다.”“그리고 이제 제 손 잡고 타십시오. 위험합니다.”그가 무심하게 엉덩이를 털어내 버리고 시아의 손을 잡고 링크장을 돌기 시작했다. 예리가 입을 삐죽거리면서 도윤을 주여에게 보냈다. 주여가 엉거주춤 도윤의 손을 잡고 미안해하고 있었다.“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되네? 데이트 방해해서 미안해.”도윤이 웃으며 주여에게 말했다.“과장님, 잘하고 싶어서 잘 안 되는 거예요. 몸에 힘을 빼세요. 잘하고 싶은 마음을 조금만 버려봐요.”주여가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윤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잘하고 싶은 마음…”주여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도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뭐든 잘해야 되는 것도, 착해져야 하는 것도, 다 조금 덜어도 되는 걸까?”도윤이 의외의 말에 잠시 멈칫 몸을 굳혔다. 주여에게 어느 정도 강박이 있다는 것은 조금은 느끼고 있었다. 그걸 본인도 알고 있었다는 것은 의외였다. 도윤의 고개가 작게 끄덕여졌다.주여가 무언가 후련한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도윤의 손을 잡고 힘차게 발을 굴렀다. 아까와는 다르게 자신감 있는 발걸음이었다. 스케이트 날이 얼음을 가르며 가볍게 미끄러져 앞으로 나아갔다. 도윤이 주여를 잡아주며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멀
다음 날 회사로 출근한 예리가 시아에게 도윤에 대한 질문을 폭탄으로 쏟아내었다. 시아는 생각보다 도윤의 취향을 몰라서 난감했다. 예리가 일부러 안 알려주는 거냐며 세모난 눈으로 시아를 쳐다보았다. 정말 억울한 시아가 울상을 하고선 예리를 쳐다보았다.“진짜 잘 몰라요. 도윤이가 워낙 잘 맞춰주다 보니까.”언제나 그랬다. 새삼 시아가 도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는 무언가 요구한 적이 없었다. 그저 시아가 울면 받아주고, 웃으면 웃어주고, 장난쳐주고, 언제나 시아의 곁에서 그녀를 지켜주는 수호천사 같은 존재였다. 그에게는 항상 고마웠던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하여튼 지금처럼 하면 무서워서 도망갈걸요? 좀 표현을 좀 덜어봐요!”이건 진심을 담아서 하는 말이었다. 예리는 너무 직구였다. 예리가 표현을 덜라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도윤에게 문자를 하고 있었다.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모르겠다. 시아가 고개를 흔들며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도윤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다음 주 주말에 한파라 놀이기구는 힘들고 아이스링크장 괜찮아요?’스케이트를 잘 타는 시아로서는 대환영할 일이었다. 시아가 다시 예리에게 스케이트를 탈 줄 아느냐고 물었다. 예리가 탈 줄 모른다고 하자 도윤에게 배우라며 아이스링크장으로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손도 잡고 여차하면 품에 안길 수도 있는 좋은 공간이었다. 예리의 눈이 맹수의 그것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시아가 오싹한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예리 과장님도 좋대.’답장을 한 시아가 기지개를 펴며 탕비실에 들어가는 이태를 보고 쪼르르 따라 들어갔다.“부장님. 도윤 씨가 아이스링크장으로 간대요. 스케이트 탈 줄 알아요?”“못하는 것 없습니다.”풉. 그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시아가 작게 웃었다. 진짜 이 남자가 못하는 것은 요리밖에 없을까? 시아가 문득 궁금해졌다. 어쩐지 못하는 걸 찾아서 놀리고 싶은 충동에 이태에게 천천히 다가갔다.“못하는 거 진짜 없어요?”이태가 먼 곳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없습니다.”시아가
모두가 모두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시아가 차분하게 손가락으로 주여를 가리켰다.“김 과장님이 라이어예요!”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주여가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다.“아니에요. 제 생각엔 도윤 씨가 라이어예요!”도윤이 제시어를 떠올리며 도리질을 쳤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예리를 가리켰다. 모두가 한 표를 받은 상황에서 이태와 예리만 남았다. 예리가 주여를 가리켰다. 이태는 예리를 가리켰다. 2대 2로 동점이 되었다. 주여가 손가락 방향을 바꾸어 예리를 가리켰다.“한 과장님이 라이어네요!”예리가 낭패의 표정을 지었다.“정답 맞추시면 저희가 술 먹을 수 있어요, 라이어님.”도윤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예리가 씨익 웃으며 도윤을 바라봤다. 당당한 표정으로 그녀가 내뱉은 말은.“섹스!”일동 경악에 물들었다. 모두가 키스로 알고 한 말인데 예리 혼자만 섹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말은 도윤을 지목하고 있었다. 도윤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려왔다.“틀렸습니다.”이태가 사무적으로 말하며 예리의 잔을 채웠다.“예? 지는 거의 확신했는데예.”‘어디가!’예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술을 한 잔 마시며 모두를 둘러봤다.“그럼 정답이 뭡니꺼?”“키스예요, 한 과장님.”제시어를 적은 시아가 한숨 섞인 말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게 그거 아니냐며 예리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어디가!’다음 종이컵에 든 쪽지를 우르르 쏟아내었다. 예리부터 다시 시작되었다.“쪼매납니더.”시아가 말했다.“음, 그냥 그래요. 저는.”이태가 시아를 보며 말했다.“사랑스럽습니다.”주여와 도윤이 마지막으로 말했다.“귀여워요.”“쓰다듬어줄 겁니다.”모두들 한마음으로 신시아를 지목했다. 당황한 시아가 이태를 쳐다보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태가 빙긋 웃어 보였다.“어… 나… 난가? 신시아?”일동은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가 곧 크게 웃기 시작했다. 이태가 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맞는 말입니다.”나머지 사람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시아가 부끄러워
밖으로 나선 세 사람은 찬 바람을 맞으며 근처를 잠시 걸었다. 예리가 주여에게 눈을 흘기며 자연스럽게 도윤의 팔짱을 끼고 편의점으로 향했다.“아이스크림 사갈래예?”도윤은 항상 술을 먹은 시아에게 사다 주었던 아이스크림이 떠올랐다. 도윤은 웃으며 그들과 함께 편의점으로 걸어 들어갔다. 주여가 딱딱한 하드를 하나 집어 들었다. 도윤이 시아에게 줄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고르며 주여에게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김 과장님은 딱딱한 걸 좋아하시나 봐요?”“얼음같이 시원하잖아.”주여가 웃으며 말했다. 예리도 도윤이 잡아 든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었다. 볼수록 닮은 취향에 도윤이 신기해서 예리를 한 번 더 쳐다보았다. 권이태 거는 아무거나 집어 든 도윤이 계산대로 향했다. 주여가 나서서 계산을 했다. 도윤이 주여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과장님이라 사는 거예요?”“응. 내 부하 직원은 내가 챙겨야지.”그 말에 예리가 발끈했다.“저도 과장인데예?”“길 알려주셨으니까 제가 사야죠.”예리가 입을 삐죽였다. 말은 또 왜 이렇게 잘해가지고, 왜 이렇게 착해빠져가지고 할 말도 없게 만드는 거냐. 예리가 투덜대며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까서 도윤의 입으로 가져다 대었다. 도윤이 잠시 고개를 뒤로 젖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으며 한 입 베어 먹었다. 예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스크림을 가져가 먹기 시작했다.“여기 새 거 드세요!”도윤이 놀라 예리를 말려보지만 이미 늦었다. 한 입 맛있게 냠하고 먹은 예리가 눈꼬리를 휘며 도윤에게 말했다.“이거 간접키스입니더.”도윤의 얼굴이 붉어지며 주여의 눈치를 보았다. 주여도 놀란 듯했으나 덤덤하게 하드의 봉지를 까서 입에 넣었다. 도윤의 걸음이 빨라졌다. 아이스크림이 녹기 전에 시아에게 가져다주고 싶었다.현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안에서 시아와 이태가 재빨리 떨어져서 입을 닦았다. 도윤이 밝은 얼굴로 시아에게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시아가 기뻐하며 도윤의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었다.“내가 소프트 아이스
예리는 2층으로 올라가 도윤에게서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도윤 씨. 그렇게 부담스럽습니꺼?”도윤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아니 그 정도는 아닙니다.”“그럼 다음 주 주말에 서울 가면 데이트 해줍니꺼?”예리가 단도직입적으로 도윤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도윤이 당황하며 어버버거리자 예리가 못을 박고 1층으로 내려가 버렸다.“다음 주 토요일에 봐예.”도윤은 예리의 거침없는 직진에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어떻게 하루만 보고 데이트 신청을 할 수가 있지? 도윤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들어찼다. 그러나 정작 예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흥얼거리며 내려오다가 부장과 신 대리가 꼭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정색을 했다.“와, 그러고 있는데예?”시아가 얼른 이태를 안은 팔을 풀며 예리에게 대답했다.“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호호호.”예리가 다시 시아의 맞은편에 가서 소주를 한 잔 따르며 도윤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데이트는 어디를 선호하는지 따위의 것이었다. 정작 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언제나 저를 위해 맞춰주던 도윤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투성이였다.“저한테 물어보셔야죠.”도윤이 2층에서 내려오며 능글맞게 대답했다. 생각을 정리했는지 표정이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예리 과장님 롯데월드 가봤어요? 놀이공원 가보실래요?”도윤이 뜻밖의 제의를 했다. 예리의 눈이 커지며 곧 초승달처럼 휘었다.“지는 다 좋아예!”도윤이 시아를 보며 말했다.“신 대리님도 오실 거죠?”예리의 찌푸려진 얼굴에 시아가 대답을 주저했다. 이태가 얼른 나서서 안 간다고 미리 선수를 쳐버렸다. 도윤이 풀 죽은 강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여럿이 가야 재밌는데...”그 말을 들은 예리가 눈에 살기를 띠며 시아에게 말했다.“신 대리님 표는 지가 살게예.”“형은 안 와도 돼.”이태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도윤에게 딱밤을 한 대 날렸다. 이마를 부여잡은 도윤이 시아를 쳐다보며 원망의 눈빛을 날렸다. 시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