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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작가님이 많이 신경 쓰이는 편이라서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7 08:48:59

“그런 날 원고가 은근히 잘 나가죠.  대신 작가님 몸은 좀 축날 것 같긴 하지만요.”

나는 그 말이 이상하게 좋았다.

내 글의 리듬을 아는 사람, 

내가 어떤 날 어떤 식으로 글을 쓰는지 짐작해내는 사람. 

그건 단순히 일 잘하는 대표와는 다른 종류의 친밀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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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친 쇼핑몰   89. 별로 맛없는 쪽

    답장이 오기 전까지 강도윤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천천히 다시 건물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그는 걸음이 빠르지 않은지, 내가 햇빛을 너무 정면으로 받고 있지는 않은지 같은 것만 아주 자연스럽게 챙겼다.건물 앞에 다 왔을 때,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나는 이번엔 바로 확인하지 않았다.그게 지금 내게 필요한 예의 같았다.강도윤은 그런 내 태도를 봤는지, 아주 잠깐 시선을 두었다가 말했다.“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시죠. 나머지는 제가 정리해서 보내드릴게요.”나는 고개를 들었다.“대표님이 더 바빠지잖아요.”“괜찮습니다.”그는 아주 담백하게 웃었다.“작가님이 너무 많이 신경 쓰는 건 싫다고 했잖아요.”나는 그 말을 듣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강도윤은 마지막까지 사람을 이렇게 현실 안에서 붙잡는다. 내가 너무 흔들리는 쪽으로 가지 않도록, 적당한 선에서 잡아주는 사람. 그러니까 더 위험하다.“감사해요.”내가 아주 조용히 말하자, 그는 잠깐 나를 보다가 말했다.“다음엔 감사보다, 그냥 편하게 부탁하셔도 됩니다.”그리고 아주 짧게 덧붙였다.“저는 그쪽이 더 좋습니다.”심장이 다시 한 번 조용히 흔들렸다.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강도윤이 먼저 돌아서 걸어갔다.나는 그 뒷모습을 잠깐 보다가, 결국 핸드폰을 꺼냈다.도화준의 답장은 짧았다.‘다행이네요. 저는 지금 별로 맛없는 점심 중입니다.’나는 그 문장을 읽고, 그 자리에서 아주 오래 움직이지 못했다.낮의 남자는 나를 배부르게 하고, 밤의 남자는 자기 쪽이 별로 맛없는 시간이라고 말한다.이건 정말…누가 더 좋은 사람이냐의 문제가 아니라,누가 더 오래 남는 문장이냐의 문제 같았다.그리고 지금 내 안에는 그 둘의 문장이 동시에 남아 있었다.‘다행이네요. 저는 지금 별로 맛없는 점심 중입니다.’도화준의 답장을 읽는 순간, 나는 걸음을 멈췄다.출판사 건물 앞 인도 위였다.사람들은

  • 남친 쇼핑몰   88. 작가님이 많이 신경 쓰이는 편이라서

    “그런 날 원고가 은근히 잘 나가죠. 대신 작가님 몸은 좀 축날 것 같긴 하지만요.”나는 그 말이 이상하게 좋았다.내 글의 리듬을 아는 사람,내가 어떤 날 어떤 식으로 글을 쓰는지 짐작해내는 사람.그건 단순히 일 잘하는 대표와는 다른 종류의 친밀감이었다.“대표님은 원래 다 이렇게 챙겨요?”내가 묻자, 강도윤은 잠깐 나를 보다가 웃었다.“아무래도 다는 아닙니다.”그 말은 꽤 느리게 떨어졌다.나는 괜히 포크 끝으로 파스타 면만 한 번 더 돌렸다.방금 문장은 아주 분명하게 들렸다.&ls

  • 남친 쇼핑몰   87. 거짓말이시네요, 그 한 줄의 잔향

    나는 괜히 고개를 숙인 채 웃었다.요즘 내 주변의 남자들은 왜 다들 저렇게 내 상태를 쉽게 읽는지 모르겠다.아니, 정확히는 읽는 방식이 다르다.도화준은 표정과 말끝의 온도를 읽고,강도윤은 생활감과 템포를 읽는다.누가 더 위험한지 단정할 수 없어서 더 피곤하다.우리는 건물에서 두 블록쯤 떨어진 파스타집으로 들어갔다.통유리창이 넓고, 내부는 생각보다 조용했다.점심 시간이 조금 지난 뒤라 손님이 많지 않았고,햇빛이 테이블 위로 길게 들어와 있었다.강도윤은 자연스럽게 창가 쪽 자리를 골랐고,의자를 빼서 내가 먼저 앉도록 했다.이런 동작 하나하나가 너무 몸에 배어 있어서,오히

  • 남친 쇼핑몰   86. 낮의 식탁 위에서

    화면 위에 떠 있는 이름. ‘도화준’정말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힌다.강도윤은 버튼을 누른 뒤, 내가 핸드폰을 보는 걸 알아차렸는지잠깐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정면을 봤다.굳이 묻지 않는 그 배려가 오히려 더 크게 느껴졌다.나는 결국 메시지를 열었다.‘잘 주무셨습니까.’그 문장을 읽는 순간, 입술 안쪽을 아주 살짝 깨물었다.아무렇지 않은 척 보내는 안부. 그런데 그 안에 어제의 밤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나는 몇 초 동안 답장을 치지 못했다.바로 앞에는 강도윤이 서 있었고, 화면 안에는 도화준이 있었다.낮과 밤이 동시에 나를 보고 있는 기분.

  • 남친 쇼핑몰   85. 사소한 것을 기억하는 두 사람의 차이

    순간, 펜을 쥔 손끝에 아주 미세하게 힘이 들어갔다.그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그 말이 정확히 어디까지를 뜻하는 건지, 굳이 설명해주지 않는 표정.‘좋아하는 글.’분명 작품 얘기일 수도 있다.아니, 사실상 그 말이 맞을 것이다.그런데도 사람 마음은 늘 이상한 쪽으로 먼저 반응한다.나는 괜히 시선을 서류로 떨어뜨렸다.“그런 말, 되게 작가 좋아하게 만드는 말인 거 아세요?”“작가님은 이미 저를 좋아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나는 그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강도윤은 이번엔 정말로 아주 짧게 웃고 있었다.

  • 남친 쇼핑몰   84. 좋아하는 글은 더 오래 보게 되니까요

    ‘그만 좀 생각하자.’정말 이쯤 되면 중독 수준이다.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문이 열렸다.나는 조금 더 곧은 자세로 복도를 걸었다.출판사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커피 향이 먼저 났다.그리고 그다음으로 들린 건 강도윤의 목소리였다.“오셨네요.”나는 고개를 들었다.그는 사무실 안쪽 테이블 옆에 서 있었다.흰 셔츠에 짙은 네이비 니트, 소매는 자연스럽게 한 번 접혀 있었고,손에는 종이컵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어제처럼 정리된 얼굴이었지만,오늘은 조금 더 일상적인 쪽으로 보였다.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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