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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꿀떡
한소희는 강주혁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덤덤하게 대답했다.

“한지영이 이 집으로 들어오기로 했잖아. 괜히 이런 거 보고 불편해할까 봐 미리 치우는 거야.”

강주혁은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채며 그대로 제품에 끌어당겼다.

“아직도 나한테 화난 거야?”

“아니.”

“소희야, 너는 정말 거짓말이 서툴러.”

강주혁은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그녀의 턱을 치켜올리며 억지로 눈을 맞추게 했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난 그냥 저쪽 장단에 맞춰주는 것뿐이라고. 정말 한지영이랑 결혼할 생각이었으면 4년 전에 벌써 데려왔어.”

한소희는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돌연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강주혁.”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읊조렸다.

“당신이 진짜 누구랑 결혼하고 싶은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겠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벨 소리가 정적을 깨고 그녀의 목소리를 덮어버렸다.

발신인을 확인한 강주혁은 지체 없이 전화를 받았다.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어.”

짧은 통화 끝에 그는 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멀어지는 강주혁의 뒷모습을 보며 한소희는 이제 그와 마주 앉아 진실을 따지는 것조차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감정은 유통기한이 지난 사탕 같아서,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이미 까맣게 썩어 문드러진 지 오래다.

그러니 억지로 삼켜봤자 입안 가득 쓴맛만 남을 뿐이었다.

강주혁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지영에게 카톡이 왔다.

사진 속 강주혁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마디가 선명한 손으로 한지영의 발목을 정성스레 잡은 채 붉은 실을 묶어주고 있었다.

한소희는 문득 예전에 강주혁과 함께 연등축제에 갔던 기억을 떠올랐다.

노점 앞에 쪼그려 앉아 붉은 실을 한참 동안 고르다 고개를 돌렸을 때, 강주혁은 서너 걸음 뒤에 서서 짜증 가득한 얼굴로 시계를 보고 있었다.

“이런 미신을 왜 믿어?”

회상에 잠긴 사이, 한지영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내가 그냥 좀 아프다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주혁이가 바로 절에 가서 제일 영험하다는 붉은 실을 받아다 주더라.]

[너한테도 이랬던 적 있어?]

[한소희, 제발 정신 좀 차려. 주혁이는 단 한 번도 널 사랑한 적 없어.]

휴대폰을 움켜쥔 한소희의 손등에 핏줄이 돋았다. 액정의 차가운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눈동자에 고여 있던 마지막 온기마저 서서히 얼어붙었다.

그랬다.

강주혁은 단 한 번도 그녀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제 그녀도 그의 사랑 따위 구걸하지 않을 것이다.

...

이후 이틀 동안 강주혁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한소희는 한지영의 고별회에서 강주혁을 만났다.

몸에 맞춘 듯 정갈한 블랙 수트를 입은 강주혁은 많은 하객의 시선 속에서 휠체어를 부드럽게 밀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 위의 한지영은 금방이라도 꺾일 듯 가냘픈 꽃 한 송이 같았다.

한지영이 고개를 아주 살짝만 까딱해도 강주혁은 반사적으로 몸을 낮춰 상태를 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소희는 조소 섞인 미소를 지었다.

입으로는 그저 장단에 맞춰주는 연기일 뿐이라고 하더니, 그녀를 바라보는 저 눈빛은 4년 전처럼 애틋하기만 했다.

곧이어 고별회가 시작되었다.

한태준은 한지영의 병세를 알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 딸 지영이는 불행하면서도 참으로 운이 좋은 아이입니다. 비록 짧은 생이었으나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고 마지막까지 곁을 지키는 연인이 있었으니까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형 스크린이 켜지며 한지영의 성장 과정이 담긴 사진들이 흘러나왔다.

부모님 품에서 첫 돌을 맞이하는 모습, 한태준에게 피아노를 배우던 열 살의 가을, 그리고 온 가족이 행복하게 부둥켜안았던 열여덟 살의 졸업식까지...

모든 장면에서 한소희는 그저 흐릿한 배경처럼 그들의 행복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화면이 바뀌자 이번엔 강주혁이 등장했다. 우승컵을 든 그녀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그림 모델이 되어주고 결혼식에서 깊은 포옹을 나누는 모습들...

풋풋한 교복 차림에서 말끔한 수트 차림에 이르기까지 세월은 흘렀어도 그녀를 향한 그의 눈빛만은 한결같았다.

모두가 감동에 젖어 들 무렵, 화면이 돌연 꺼지더니 선혈이 낭자한 검은 바탕에 붉은 글씨가 나타났다.

[한지영, 지옥에나 처박혀라!]

[내 남편 가로챈 상간녀! 네 엄마랑 똑같이 남의 남자나 탐내는 천박한 년!]

[곱게 죽을 생각 마! 지옥 불에 떨어져서 개돼지로 살라고 끝까지 저주할 테니까!]

현장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곧이어 객석 전역에서 거대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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