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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밥은 먹고 다니니?

Author: 케사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1 06:00:00

엄마에게서 연락이 온 건 목요일 오후였다.

[퇴근하고 시간 돼?]

해원은 사무실에서 그 메시지를 받았다. 사흘 만이었다. 현관에서 조심해서 가라는 말을 들은 뒤로 엄마는 아무 연락도 없었고, 해원도 먼저 하지 못했다. 몇 번이나 대화창을 열었다가 닫았다. 엄마가 무슨 말을 먼저 할지 몰라서, 그 말을 듣기 전에 무언가를 보내는 게 무서웠다.

[응. 어디로 갈까?]

답장은 조금 늦게 왔다.

[너희 집 근처 카페. 아무 데나.]

해원은 그 문장을 한참 봤다. 집이 아니라 집 근처였다.

카페는 해원의 집에서 걸어서 오 분 거리였다. 해원이 먼저 도착해 창가 자리에 앉았다. 주문하러 가려다가 엄마가 무엇을 마실지 몰라 그냥 앉아 있었다. 평소라면 묻지 않아도 알았다. 따뜻한 라떼, 시럽 없이. 그런데 오늘은 그걸 미리 시켜두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수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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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140화. 또 너를 그렇게 만들까봐

    태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해원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이 사람이 지금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지 알았으니까."……내가 정해도 돼?"태헌이 물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정말로 허락을 구하는 목소리였다."네."태헌은 해원을 잠깐 더 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언가를 고르는 얼굴이었다. 회의실에서 수십 장짜리 보고서를 넘기다가 결론을 내릴 때와 비슷한 얼굴. 해원은 그 얼굴을 오랜만에 봤다."나가자."태헌이 말했다."점심은 내가 아는 데로."그 한마디에 해원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별말도 아니었다. 나가자, 내가 아는 데로.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해원은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먹을지, 그 집이 괜찮을지. 소개팅 자리에서 메뉴판을 붙잡고 그토록 원했던 게 이거였다."네."해원은 자기 목소리가 생각보다 가볍게 나와서 조금 놀랐다.태헌이 일어나 침실로 들어갔다가 짙은 회색 니트 하나를 들고 나왔다."셔츠 위에 이거 입어. 밖에 추워."해원은 니트를 받아 들었다. 해원에게는 컸다. 소매가 손등을 다 덮었다. 태헌은 그걸 보고 아무 말 없이 소매를 두 번 접어줬다.식당은 오피스텔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있는 작은 국숫집이었다. 테이블이 여섯 개뿐이었고, 주인 할머니가 태헌을 보자 아는 척을 했다."오늘은 혼자 아니네."태헌은 대답 대신 고개만 살짝 숙였다. 해원은 그 옆얼굴을 봤다. 이 사람이 한 달 동안 여기 혼자 와서 국수를 먹었다는 게 그려졌다.해원이 입구 쪽 자리로 가려는데 태헌이 말했다."이쪽에 앉아."창가 자리였다. 햇빛이 테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139화. 정해주세요

    해원이 눈을 떴을 때, 침대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커튼 틈으로 햇빛이 들어와 있었다. 낯선 천장이었다. 잠깐 여기가 어딘지 생각하다가, 베개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알았다.부엌 쪽에서 커피 가는 소리가 났다.해원은 침대 아래로 손을 뻗었다. 어젯밤 아무렇게나 벗어둔 블라우스는 구겨져 있었다. 대신 의자 등받이에 태헌의 셔츠가 걸려 있었다. 해원은 그걸 걸치고 소매를 두 번 접었다.거실로 나가자 태헌이 부엌 선반 앞에 서 있었다. 원두를 갈아 필터에 담고, 물을 붓고, 잔을 꺼냈다. 동작이 자연스러웠다. 이 집에서 한 달 동안 매일 아침 그렇게 했다는 게 보였다.태헌이 돌아봤다. 셔츠를 걸친 해원을 보고 잠깐 멈췄다가, 시선을 커피잔으로 돌렸다."일어났어?""네.""커피 마실 거지?""네."태헌이 잔 하나를 더 꺼내 커피를 따랐다. 해원 앞에 내려놓고 자기 잔을 들었다.그러고는 물었다."아침 뭐 먹을래? 네가 편한 대로 해."해원은 잔을 들다 말고 멈췄다.어디서 들어본 말이었다. 아주 최근에.편하신 대로 고르세요.해원은 웃음이 터졌다. 커피를 쏟을 뻔해서 잔을 다시 내려놓았다.태헌이 해원을 봤다."……왜.""아니에요."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웃다 보니 이상하게 짜증이 났다. 그 저녁에 메뉴판을 앞에 두고 얼마나 이 사람이 보고 싶었는데. 정작 이 사람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그런 말 하지 마세요."태헌의 얼굴이 굳었다. 뭘 잘못했는지 찾는 얼굴이었다. 해원은 그 얼굴을 보고 더 말하지 않았다. 지금 설명하면 소개팅 얘기를 처음부터 다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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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137화. 그렇게 조심하지 마세요

    해원의 입술이 닿은 순간, 태헌은 숨을 멈췄다.짧은 입맞춤이었다. 해원이 입술을 떼고 태헌을 내려다봤다. 아직 젖은 눈이었다. 당황한 듯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그 눈을 피하진 않았다.태헌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해원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손바닥에 감싸인 볼이 여전히 차가웠다. 태헌은 그 볼을 엄지로 한 번 쓸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맞췄다.꽤나 긴 입맞춤이었다.한 달이었다. 한 달 동안 이 입술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커피를 내리면서도, 강변을 달리면서도, 회의실에서도. 생각하지 않는 데 익숙해졌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 해원의 숨이 입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 한 달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해원이 태헌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태헌은 해원을 안은 채 거실을 지나 침실 문을 밀었다.침대 위에 해원을 눕히고, 태헌은 그 위에서 잠깐 멈췄다.스탠드 불빛 아래서 해원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가는 아직 붉었고, 입술이 조금 부어 있었다.태헌은 손을 뻗어 카디건 단추를 풀었다. 자기가 아까 걸쳐준 카디건이었다. 단추 하나를 풀고 해원의 얼굴을 봤다. 또 하나를 풀고, 다시 봤다.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했고, 해원은 따랐다. 이리 와. 가만히 있어. 눈 감지 마. 태헌의 목소리 하나로 이 여자의 몸이 어디로 움직일지 정해졌다.지금도 그 말들이 목까지 차올랐다. 이 여자를 끌어당기고 싶었다. 예전처럼, 숨을 쉴 틈도 없이.그런데 손이 자꾸 멈췄다.복도에서 울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날 밤 호텔에서 오빠라고도 주인님이라고도 부를 수 없다고 말하던 목소리도. 그 목소리를 만든 건 태헌이었다. 태헌이 원하는 대로 이 여자를 끌고 간 끝이 그거였다.이번에도 그렇게 하면.태헌은 해원의 블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136화. 재회

    현관에 불이 들어왔다.해원은 태헌에게 손을 잡힌 채 신발을 벗었다. 처음 들어와 보는 집이었다.현관 옆에 운동화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태헌이 운동화를 신는 걸 해원은 본 적이 없었다. 거실은 넓지 않았다. 소파 하나, 식탁 하나, 의자 두 개. 부엌 쪽 선반 위에 커피 머신이 있었다.해원이 모르는 한 달이 여기 있었다. 이 사람은 여기서 아침에 커피를 내리고, 주말에는 저 운동화를 신고 어딘가를 달렸을 것이다. 해원 없이.태헌이 거실 불을 켜려다 말고 멈췄다.해원의 손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다 태헌이 고개를 숙여 두 사람의 손을 내려다봤다. 복도에서는 미처 몰랐던 걸 밝은 데서 알게 된 얼굴이었다."……손이 왜 이렇게 차?"해원은 대답하지 않았다."언제부터 있었어?""좀 됐어요."해원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고 했다. 실제로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가 나왔다.태헌은 더 묻지 않았다.대신 해원의 손을 자기 두 손으로 감쌌다. 손바닥 사이에 넣고 꼭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 손 위에 이마를 댔다.해원은 가만히 서 있었다. 태헌의 숨이 손등에 닿았다. 뜨거웠다.그러다 손등에 뭔가 떨어졌다.해원은 그게 뭔지 몰랐다. 물방울 같은 게 하나, 그리고 또 하나. 손등을 타고 손목 쪽으로 흘러내렸다.몇 초가 지나서야 알았다.태헌의 어깨가 아주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해원의 손에 이마를 대고, 그 사람이 울고 있었다.해원은 숨을 멈췄다.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계약서를 내밀던 날에도, 가족들 앞에서 처음 뵙겠다고 손을 내밀던 날에도, 해원이 오빠라고도 주인님이라고도 못 부르겠다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135화. 오고 싶어서요

    복도의 센서등이 한 번 꺼졌다.태헌이 손을 들자 다시 켜졌다. 해원은 그 사이에도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손등으로 눈가를 눌렀다가 떼도 눈물이 금세 다시 차올라서, 해원은 몇 번이고 손등을 눈가로 가져갔다.태헌의 입안이 말라왔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왜 왔어?"목소리가 생각보다 낮게 갈라졌다.해원이 손을 내렸다. 젖은 눈으로 태헌을 봤다."오고 싶어서요."그 말을 하고 나서 해원은 더 울었다.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는데, 그러자 어깨가 더 크게 흔들렸다."진짜 짜증 나요."해원이 말했다. 목소리가 엉망이었다."진짜 미워. 아직도 미워요. 그날 생각하면 지금도 숨이 막혀요. 엄마가 웃던 거, 본부장님이 손 내밀던 거, 계속 떠올라요. 자다가도 생각나요."태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엄마 갤러리 앞까지 갔었어요. 전시 오픈한다고 오라고 해서. 문 손잡이까지 잡았는데 못 들어갔어요. 엄마가 저기 있는데. 다 누구 때문인데……."해원이 숨을 몰아쉬었다. 말이 끊겼다가 다른 데서 다시 시작됐다."저 잘 지냈어요. 진짜로요. 일도 잘했어요. 큰 예식도 하나 끝냈고, 회식 가서 웃고, 노래방도 가고."해원이 손등으로 코 밑을 문질렀다."좋은 사람이랑 밥도 먹었어요. 진짜 좋은 사람이었는데……."그 말이 태헌의 가슴 어딘가에 박혔다.태헌은 그 남자가 누군지 몰랐다. 어떤 사람인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알 자격도 없었다. 해원에게 기다리지 말라는 말을 들은 건 태헌이었고, 그 말을 지킨 것도 태헌이었다. 그 사이에 해원이 누구와 밥을 먹든, 태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그런데도 숨이 잠깐 멎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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