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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재회

Author: 케사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9 06:00:00

현관에 불이 들어왔다.

해원은 태헌에게 손을 잡힌 채 신발을 벗었다. 처음 들어와 보는 집이었다.

현관 옆에 운동화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태헌이 운동화를 신는 걸 해원은 본 적이 없었다. 거실은 넓지 않았다. 소파 하나, 식탁 하나, 의자 두 개. 부엌 쪽 선반 위에 커피 머신이 있었다.

해원이 모르는 한 달이 여기 있었다. 이 사람은 여기서 아침에 커피를 내리고, 주말에는 저 운동화를 신고 어딘가를 달렸을 것이다. 해원 없이.

태헌이 거실 불을 켜려다 말고 멈췄다.

해원의 손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다 태헌이 고개를 숙여 두 사람의 손을 내려다봤다. 복도에서는 미처 몰랐던 걸 밝은 데서 알게 된 얼굴이었다.

"……손이 왜 이렇게 차?"

해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있었어?"

"좀 됐어요."

해원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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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136화. 재회

    현관에 불이 들어왔다.해원은 태헌에게 손을 잡힌 채 신발을 벗었다. 처음 들어와 보는 집이었다.현관 옆에 운동화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태헌이 운동화를 신는 걸 해원은 본 적이 없었다. 거실은 넓지 않았다. 소파 하나, 식탁 하나, 의자 두 개. 부엌 쪽 선반 위에 커피 머신이 있었다.해원이 모르는 한 달이 여기 있었다. 이 사람은 여기서 아침에 커피를 내리고, 주말에는 저 운동화를 신고 어딘가를 달렸을 것이다. 해원 없이.태헌이 거실 불을 켜려다 말고 멈췄다.해원의 손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다 태헌이 고개를 숙여 두 사람의 손을 내려다봤다. 복도에서는 미처 몰랐던 걸 밝은 데서 알게 된 얼굴이었다."……손이 왜 이렇게 차?"해원은 대답하지 않았다."언제부터 있었어?""좀 됐어요."해원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고 했다. 실제로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가 나왔다.태헌은 더 묻지 않았다.대신 해원의 손을 자기 두 손으로 감쌌다. 손바닥 사이에 넣고 꼭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 손 위에 이마를 댔다.해원은 가만히 서 있었다. 태헌의 숨이 손등에 닿았다. 뜨거웠다.그러다 손등에 뭔가 떨어졌다.해원은 그게 뭔지 몰랐다. 물방울 같은 게 하나, 그리고 또 하나. 손등을 타고 손목 쪽으로 흘러내렸다.몇 초가 지나서야 알았다.태헌의 어깨가 아주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해원의 손에 이마를 대고, 그 사람이 울고 있었다.해원은 숨을 멈췄다.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계약서를 내밀던 날에도, 가족들 앞에서 처음 뵙겠다고 손을 내밀던 날에도, 해원이 오빠라고도 주인님이라고도 못 부르겠다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135화. 오고 싶어서요

    복도의 센서등이 한 번 꺼졌다.태헌이 손을 들자 다시 켜졌다. 해원은 그 사이에도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손등으로 눈가를 눌렀다가 떼도 눈물이 금세 다시 차올라서, 해원은 몇 번이고 손등을 눈가로 가져갔다.태헌의 입안이 말라왔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왜 왔어?"목소리가 생각보다 낮게 갈라졌다.해원이 손을 내렸다. 젖은 눈으로 태헌을 봤다."오고 싶어서요."그 말을 하고 나서 해원은 더 울었다.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는데, 그러자 어깨가 더 크게 흔들렸다."진짜 짜증 나요."해원이 말했다. 목소리가 엉망이었다."진짜 미워. 아직도 미워요. 그날 생각하면 지금도 숨이 막혀요. 엄마가 웃던 거, 본부장님이 손 내밀던 거, 계속 떠올라요. 자다가도 생각나요."태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엄마 갤러리 앞까지 갔었어요. 전시 오픈한다고 오라고 해서. 문 손잡이까지 잡았는데 못 들어갔어요. 엄마가 저기 있는데. 다 누구 때문인데……."해원이 숨을 몰아쉬었다. 말이 끊겼다가 다른 데서 다시 시작됐다."저 잘 지냈어요. 진짜로요. 일도 잘했어요. 큰 예식도 하나 끝냈고, 회식 가서 웃고, 노래방도 가고."해원이 손등으로 코 밑을 문질렀다."좋은 사람이랑 밥도 먹었어요. 진짜 좋은 사람이었는데……."그 말이 태헌의 가슴 어딘가에 박혔다.태헌은 그 남자가 누군지 몰랐다. 어떤 사람인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알 자격도 없었다. 해원에게 기다리지 말라는 말을 들은 건 태헌이었고, 그 말을 지킨 것도 태헌이었다. 그 사이에 해원이 누구와 밥을 먹든, 태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그런데도 숨이 잠깐 멎었다. 그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134화.

    새집에서 삼 주가 지났다.태헌은 아침마다 여섯 시 반에 일어났다. 커피 머신은 이사 다음 날 샀다. 원두를 갈고, 물을 받고, 창가에 서서 첫 잔을 마셨다. 처음 며칠은 그 시간이 길었다. 지금은 그냥 아침이었다.주말에는 강변을 달렸다. 첫 주에는 오 킬로미터에서 숨이 찼는데, 지난 일요일에는 십 킬로미터를 뛰었다. 냉장고에는 집 앞 반찬가게에서 산 반찬통이 몇 개 생겼다. 멸치볶음과 장조림. 가게 주인은 이제 태헌을 보면 오늘은 뭐가 좋다고 먼저 말했다.해원과의 대화창을 열어보는 횟수가 줄었다는 걸, 태헌은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알았다. 출근해서 점심때까지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날이었다. 해원에게서 연락이 올 리 없다는 걸 머리가 아니라 손이 받아들인 모양이었다.그렇다고 해원을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 생각이 하루를 멈추게 하지는 않게 됐다.화요일 저녁에는 명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집은 구했다고 들었다.]회사 인사팀에 주소 변경을 신고한 게 지난주였다. 아버지가 그걸 어떻게 들었는지는 묻지 않았다.[네.]한참 뒤에 답이 왔다.[그래.]그게 전부였다. 태헌은 그 두 글자를 잠깐 보다가 화면을 껐다. 더 보낼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다.금요일 저녁에는 거래처와의 식사가 있었다. 물류센터 부지 건의 상대 회사 대표가 계약을 앞두고 마련한 자리였다. 일 얘기는 첫 삼십 분에 끝났다. 그다음부터는 술이었다.열 시가 넘어 대표가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보여줬다. 지난주에 조카가 결혼했다고 했다."우리 처형네 딸인데요. 처형이 성격이 좀, 아시죠.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는 사람이라."옆자리 상무가 웃었다. 대표는 손사래를 쳤다."근데 이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133화. 편하신대로

    예식 당일 아침 일곱 시 십 분, 해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신부 어머니였다."플래너님, 부케요. 사진 보니까 색이 너무 연해요. 우리가 말한 건 이런 분홍이 아니었잖아요."해원은 칫솔을 문 채 화면을 봤다. 꽃집에서 새벽에 보내온 사진이었다. 지난달 네 번째로 바뀐 컨셉에 맞춘, 어머니가 직접 고른 바로 그 분홍이었다."어머님, 사진이 조명 때문에 연하게 나온 것 같아요. 제가 지금 꽃집 가서 직접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직접요? 지금?""네. 식 전에 확인하는 게 마음 편하시잖아요."해원은 세수를 오 분 만에 끝내고 택시를 탔다.꽃은 사진보다 진했다. 해원은 자연광 아래서 부케를 다시 찍어 보냈다. 이 분 뒤에 답이 왔다.[아 이거면 됐어요. 고마워요.]해원은 꽃집 앞에서 혼자 웃었다. 첫 연락을 받은 게 두 달 전이었다. 그동안 컨셉이 네 번, 테이블 꽃이 여섯 번, 식순이 세 번 바뀌었다. 처음 미팅 날 어머니는 해원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너무 어려 보인다고 했었다.아침 공기가 차가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낮에는 반팔을 입는 사람이 있었는데, 오늘은 다들 코트를 꺼내 입고 있었다. 해원도 얇은 트렌치코트 앞섶을 여몄다.예식은 열두 시였다.신부가 입장하는 동안 해원은 뒤쪽에서 무전기를 들고 서 있었다. 음향도, 조명도, 화동의 걸음도 연습한 그대로였다. 신부 어머니가 혼주석에서 손수건으로 눈가를 누르는 게 보였다. 해원은 그 모습을 보다가 무전기에 대고 사진 기사에게 짧게 말했다. 지금 혼주석 쪽 한 컷이요.식이 끝나고 하객들이 빠져나갈 때, 신부 어머니가 해원을 찾아왔다."플래너님."해원이 돌아서자 어머니가 해원의 손을 잡았다. 두 손으로. 생각보다 오래 잡고 있었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132화. 어떤 것도 쓸수없어

    일요일 오전, 태헌은 호텔 방을 정리했다.짐은 많지 않았다. 셔츠와 바지, 구두 두 켤레, 노트북, 서류 몇 묶음. 본저에서 가져온 게 전부였다. 가방 두 개면 충분했다.옷장 오른쪽에는 해원의 옷이 남아 있었다. 블라우스 두 벌, 니트 하나, 출근할 때 입던 슬랙스. 욕실 선반에는 작은 파우치가 있었다. 침대 옆 협탁 서랍을 열자 머리끈이 두 개 굴러다녔다.태헌은 프런트에 전화해 빈 상자를 하나 부탁했다.상자가 오자 해원의 옷을 하나씩 개서 넣었다. 블라우스는 단추를 잠그고 반으로 접었다. 니트는 소매를 안으로 넣었다. 해원이 의자 위에 개켜두던 방식이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개는지 알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마지막 블라우스를 내려놓다가 태헌은 손을 멈췄다.법무팀에서 올라왔던 양식들이 떠올랐다. 상환 기간을 늘려주는 것. 이자를 깎고 나눠 갚게 하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채권을 그냥 들고만 있는 것. 그중 아무거나 하나만 골랐어도 됐다.그랬다면 해원은 그 방에서 무릎을 꿇지 않았을 것이다. 빚 걱정을 조금 덜고, 사흘 뒤 엄마 옆에 앉아 처음 보는 남자에게 정말로 처음 뵙겠다고 인사했을 것이다. 엄마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을 때,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 말을 했을 것이다. 무서워서가 아니라.태헌이 빼앗은 건 그거였다. 해원이 엄마 옆에서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었던 그 저녁.몰라서 한 일이 아니었다. 양식은 전부 책상 위에 있었다. 태헌은 그걸 하나씩 읽었고, 닫았고, 자기가 원하는 걸 골랐다. 일 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끝나면 놓을 수 있다고. 그때는 그게 자기를 잘 아는 거라고 믿었다.어리석었다. 그 말 말고는 붙일 말이 없었다.지금 그는 그 여자의 블라우스를 그 여자가 개던 대로 개고 있었다. 그 방식을 알게 된 건 함께 지내는 동안이었다. 그 시간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131화. 돌아서는 길

    토요일 예식은 별일 없이 끝났다. 신랑 쪽 하객이 예상보다 스무 명 많이 와서 연회장 직원과 의자를 나르긴 했지만, 그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신부는 퇴장하면서 해원에게 손을 흔들었다. 해원도 손을 흔들어줬다. 장비를 정리하고 직원 출입구로 나오니 여섯 시 반이었다. 휴대전화에 엄마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늘 저녁 갤러리 전시 오픈해. 시간 되면 들러.] 해원은 그 메시지를 엘리베이터 안에서 두 번 읽었다. 시간 되면, 이라고 썼다. 오라는 말도, 안 와도 된다는 말도 아니었다. 엄마는 요즘 그런 식으로 말했다. 해원이 부담스럽지 않게, 그렇다고 아주 멀어지지도 않게. 그 집이 아니라 갤러리였다. 거기라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원은 택시를 잡았다. 온재 갤러리는 골목 안쪽, 낮은 건물 일 층에 있었다. 해원이 대학 다닐 때 엄마가 처음 문을 연 곳이었다. 그때는 손님보다 엄마가 직접 만든 그릇이 더 많았다. 오늘은 달랐다. 골목 입구부터 사람들이 서 있었다. 유리문 안쪽이 노랗게 환했고, 와인잔을 든 사람들이 작품 사이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해원은 맞은편 담벼락 아래에서 걸음을 멈췄다. 엄마가 보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화장을 하고 있었다. 머리도 평소와 달리 단정하게 올려 묶었다. 해원이 본 적 없는 짙은 남색 원피스였다. 엄마는 웃고 있었다. 손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데 손님이 다른 작품 쪽으로 돌아서자 그 웃음이 바로 내려앉았다. 엄마는 잠깐 아무것도 없는 벽을 보고 서 있다가, 다음 손님이 다가오자 다시 웃었다. 해원은 그 얼굴을 알았다. 엄마가 아버지와 이혼하던 해에 손님들 앞에서 짓던 얼굴이었다. 명우는 갤러리 반대편 끝에 있었다. 양복이 아니라 니트 차림이었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말은 대부분 상대가 하고 있었다. 명우는 고개만 끄덕였다. 엄마와 명우 사이에는 작품 진열대 두 개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손님 하나가 엄마에게 무언가를 묻는 게 보였다. 엄마가 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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